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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인생 행군의 세 가지 원리 (민 9: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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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흥규 목사

<한 해를 돌아보니>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는 말이 금년에는 유난히도 어려웠다고들 합니다. 경기는 바닥을 쳤고 실업률도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정치하는 분들은 구습을 벗어 던지지 못하고 여전히 짜증스러운 모습만 연출했습니다. 이래저래 힘든 한 해를 보내면서 여러분들의 감회가 남다를 줄로 압니다.

우리는 다가오는 새해가 올해와는 뭔가 다르기를 소원합니다. 정치도 달라지고 경제도 달라지고 교육도 달라지고 세상 인심도 달라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달라지기를 바라고 개인적인 삶의 질도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생활 수준이나 삶의 만족도도 더 나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새해에 새소망을 품는 우리들이 꼭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미래의 소망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지만 한다는 것입니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지난날을 돌아보며 곰곰이 반성하지 않고서는 새해의 새소망과 새꿈은 이루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행군이다>
저는 신앙 생활이라는 것이, 아니 우리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행군(行軍)이라고 생각해봅니다. 더 정확하게, 성서적으로 말해서 우리의 신앙 생활은 애굽을 뛰쳐나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찾아 나서는 광야의 행군과 같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의 영도로 마침내 해방을 찾았지만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방황(遊離彷徨)해야만 했습니다.

사실 애굽에서 가나안까지의 거리는 먼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지름길로 갈 경우 한 1주일 정도면 갈 수 있었고 이리저리 우회해서 갈 경우 1달 정도면 능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오늘날 비행기로 여행할 경우 한 50분 정도 걸리고 자동차의 경우 약 7-8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거리입니다. 이렇게 짧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광야에서 고생시킨 다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도록 만드셨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이곳 저곳을 옮겨다닐 때 어떤 방법으로 옮겨다녔는지 그 행군 원리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2004년도의 마지막 주일에 한 해를 돌아보면서 여러분 모두 우리 신앙 생활의 행군 원리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생 행군의 세 가지 원리>

I. 제 1원리: 인생 행군의 총지휘관은 주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행군해나갔던 곳은 광야였습니다.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사막의 빈들이 아닙니까? 중동 지역의 사막 땅은 사람이 살기에 최악의 장소입니다. 낮에는 최고 45도까지 올라가는 고온인 데다가 물을 찾기 어렵기 때문에 늘 갈증에 시달려야만 합니다. 밤에는 영하 10도까지 내려가는 기온 속에서 추위를 견뎌내야 합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천막을 치고 생활했습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부러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거치도록 만드셨습니다. 가나안 땅에 거저 들어가게 하지 않으시고 광야 생활을 통하여 철저한 연단과 시련을 받게 하셨던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십계명을 비롯한 여러 가지 율법들이 바로 이 광야 생활 동안에 수여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신앙 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우리는 애굽이라는 우상숭배하던 불신앙의 세계 속에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케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곧바로 기다리는 것은 가나안 땅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모든 축복이 저절로 주어질 것 같았는데 정반대로 수많은 시련과 장애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광야의 시련 생활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는 우리가 이 광야 생활을 어떻게 잘 통과하는 가에 따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도 있고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광야 없는 가나안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출애굽→광야→가나안 순(順)으로 나아갈 때 광야는 성도가 통과해야 할 필수적인 코스입니다! 

민수기 2장을 보면 광야에서 생활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이기 위하여 부대 편성을 어떻게 했으며 행군 순서를 어떻게 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성막(聖幕)을 중심으로 해서 동서남북으로 한 방향에 3 지파씩, 12 지파를 사면에 배치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성막이 무엇입니까? 성막은 말 그대로 '거룩한 천막'이며 성전이 지어지기 전의 모형으로서 광야 이동 시대의 간이 성전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모세는 성막을 지을 때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그대로 정성을 다하여 지었습니다. 어쨌든지 간에 성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장소로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상징하는 성소(聖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군진(軍陳)을 편성할 때 항상 성막을 정중앙에 배치한 채 12 지파가 3지파씩 그 성막을 사면으로 둘러싸고 행군해나갔다는 사실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성막 중심의 군진 편성, 성막 중심의 행군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존중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출 19: 6)으로서 하나님을 총지휘관으로 모시고 행군해 나갔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진격해나갈 때마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물인 법궤를 앞장세우고 나갔는데, 이것이야말로 바로 하나님께서 총사령관 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보인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민 10: 35-36절을 보면, 행군을 시작할 때 모세는 "주님, 일어나십시오!" 하고 외쳤으며 행군을 멈추고 쉴 때에는 "주님, 돌아오소서!" 하고 외쳤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군진을 형성하고 행군을 해나갈 때 철두철미 하나님을 총지휘관으로 모신 채 모든 일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특히 성막이야말로 주 하나님이 총사령관으로 머무시면서 이스라엘의 행군 전체를 진두지휘(陣頭指揮)하는 총지휘 본부였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보면 구름이 항상 성막을 중심으로 덮고 있다든지 걷힌다든지 할 때 전진해나가거나 멈추어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총사령관이 되셨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예가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한 해 동안 거친 광야길을 행군할 때 여러분의 지휘관은 누구였습니까? 여러분 자신이었습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이었습니까? 만일 주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혈육이나 권세나 욕심이 여러분의 지휘관이었다면 지휘관을 바꾸셔야 합니다. 주 하나님을 총지휘관으로 삼아 하나님의 뜻에 기꺼이 순종하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지휘본부는 어디였습니까? 가정이었습니까? 직장이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다른 어떤 곳이었습니까? 내리교회의 성전을 여러분의 지휘본부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계획하고 실천에 옮겨보십시오! 금년 한 해 동안 이렇게 살지 못했다면 새해에는 꼭 이렇게 살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II. 제 2원리: 철두철미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군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군할 때 자기 멋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했습니다. 마치 군인이 행군할 때 지휘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듯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리하여 본문 말씀을 보면 '여호와의 명을 쫓아'라고 하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먼저 18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명을 쫓아 진행하였고, 여호와의 명을 쫓아 진을 쳤으며." 19절도 보세요. "여호와의 명을 지켜 진행치 아니하였으며." 20절을 보세요. "여호와의 명을 쫓아 유진하고 여호와의 명을 쫓아 진행하였으며." 23절도 보세요. "여호와의 명을 쫓아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을 쫓아 진행하고 또 모세로 전하신 여호와의 명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여호와의 명'이라는 말이 모두 몇 차례나 나옵니까? 모두 8번이 아닙니까?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말해줍니까? 철두철미 하나님의 지휘를 따라 움직였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군했던 것입니다!

성막을 세우던 날 구름이 하나님의 법궤가 보관된 성막을 뒤덮었습니다. 이 구름이 밤에는 마치 노을이 불타듯이 하나의 불처럼 보였는데 그 이튿날 동이 틀 때까지 그렇게 보였습니다. 출 13: 21에 보면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셨다고 했는데 바로 그 구름 기둥과 불기둥 비슷한 것이 성막 위에도 나타났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멈추어 서서 진을 쳤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구름이 성막 위로 걷혀 올라갈 경우 천하에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길을 떠났습니다.

구름이 다른 곳 위가 아니라 성막 위에 머물렀다는 사실 역시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법궤가 안치되어 있는 성막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거나 걷혀 올라가는 모습을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사인이요 지시로서 해석했습니다!

그러므로 구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름 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구름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자연현상이나 여러 도구들을 통하여 얼마든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실 수 있습니다. 까닭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만 보고 움직인 것이 아닙니다. 구름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고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여러분 주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이나 조짐(兆朕)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 되어지는 일들이 과학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다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뜨시기 바랍니다!

100 미터 달리기를 하는 선수가 심판의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달릴 수 없습니다. 반드시 총성이나 휘슬 소리가 나야지만 출발할 수 있습니다. 올림픽 경기 때 주심의 총성 신호보다 조금 빨리 달려나갔다고 해서 우승이 종종 취소되는 경우를 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행군도 하나님의 출발 신호가 떨어질 때 시작해야 합니다. 겉보기에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확실한 성공이 보장된다고 할지라도 먼저 하나님의 뜻을 겸손히 물어본 연후에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내 멋대로 움직여 나간다면 그것은 참 위험한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여러분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여쭈어 본 후에 어떤 일을 도모하고 움직였습니까? 아니면 순간적인 충동이나 겉보기에 그럴듯해서 순전히 세상적인 동기 때문에 일을 시작했습니까?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출발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작은 힘들고 고생스럽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었을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주십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먹을 것 입을 것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먹여주시고 입혀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십시오! 성전을 중심으로 신앙 생활하시면서 성전 위에 떠오르고 사라지는 구름 기둥 불기둥을 볼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I. 제 3원리: 급하게 전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때로 오래 머무르는 것도 유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람 살기 어려운 광야에서 고생할 때 언제나 마음이 급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광야 생활을 빨리 청산하고 가나안 땅에 신속하게 들어가고 싶어했을 것입니다. 특히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잠잘 것, 등등 생존 문제에 위협을 받을 경우 조급함의 강도는 더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위급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느긋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문 19절 말씀을 보세요. 구름이 성막 위에 여러 날 머물 경우에도 구름이 움직이지 않는 한 절대로 전진해나가지 않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22절을 보세요. 구름이 이틀이나 한 달, 혹은 일년씩 계속하여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경우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곳에 진을 진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구름이 걷혀 올라가야지만 길을 떠났다는 것이지요! 혹 하루 이틀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데 한 해 내내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까? 목적지를 바로 코앞에 두고 아무리 고생이 심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미동(微動)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여기에 위대한 신앙의 비결이 있습니다.

무조건 전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못 먹어도 고(GO)!"라는 말이 있습니다. 특히 모든 일이 잘 되고 성공의 기미가 엿보일 때 우리는 앞으로 계속 가지 못해서 안달이 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무조건 전진하는 것만이 좋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때로 멈추어 설 줄 아는 지혜도 있어야 합니다. 모든 일이 형통할 때 멈추어 선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닙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확실한 성공과 출세가 보장된다고 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 일에 대해서 끝장을 보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때로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습니다! 전진이 아니라 정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해서 행군해나가다가 조금만 더 나아가면 진을 치기에도 좋고 양식을 얻기에도 좋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에도 기가 막히게 좋은 곳이 왜 없었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왜 유혹을 받지 않았겠습니까? 설상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다고 해도 그냥 편한 길을 계속해서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특히 머무는 기간이 한 달, 두 달, 세 달, 일 년, 길면 길어질수록 빨리 떠나야 한다는 강박감은 더 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 더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붙들었습니다. 땅을 보지 않고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아무리 편해 보이는 길, 아무리 안전해 보이는 길도 마다하고 그냥 진을 친 째 꼼짝도 하지 않고 마냥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은 한 해 동안 혹시 정신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오시지 않았습니까?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중단을 모르고 질주해오시지 않았습니까? 어떤 일이 잘 될 것 같아서 하나님의 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그 일을 강행하시지는 않았습니까?

사실 돌아보면 한 해 동안 우리는 잘 나가다가도 어느 순간 주저앉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때로 직장에서 해고되어 여러 달을 쉰 적도 있을 것입니다. 장사가 안되어 오랫동안 찬바람만 날린 적도 있을 것입니다. 나는 전진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도무지 허락하시지 않는 것 같은 절망감을 경험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한 해의 마지막 주일에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정신 없이 앞만 향해 나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때로 오랫동안 멈추어 서서 기다리고 인내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그 멈춤과 기다림의 시간은 절대로 헛것이 아닙니다. 재충전하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은총의 시간이 될 줄로 믿습니다.

인생 행군에 있어서 전진하느냐 멈추어 서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누구의 뜻을 따라 전진했으며 누구의 뜻을 따라 정지했느냐 그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때로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전진하는 것만 좋고 멈추어서는 것은 좋지 않은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전진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멈추어 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전진하면 장래를 하나님께서 보증해주셔서 좋을 것이고, 멈추어 서서 쉬게 될 때에는 더 알찬 미래를 준비할 수 있어서 좋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전진도 멈춤도 결국 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군할 때 성막 위에 머물렀던 구름은 두 가지 역할을 했습니다. 먼저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낮에는 더위를 막아주는 그늘이 되었으며, 혹한의 추위가 몰아치는 밤에는 불기둥이 되어서 추위를 막아주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막 위에 높이 걸려있는 구름을 주시한 채 그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읽으며 그 뜻에 전적으로 순종했습니다!

오늘 한 해를 마무리지으면서 내리 성전 위에 높이 떠있는 구름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에는 그 구름 뒤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읽으며 그 뜻을 따라 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이라면 전진하든 정지하든 기쁨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의 뜻이라면 전진은 확실한 승리가 보장되어서 좋을 것이고, 머무름은 겸손한 마음으로 더 큰 축복의 때를 기다려서 좋을 것입니다!

여하한 길이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새해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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