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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서로 봉사하는 기쁨 (벧전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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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영준 목사

사람의 일하는 유형을 보면 여러 가지 형이 있습니다.
우화 속에서 동물을 통해 비유하는 것을 보면 우리는 쉽게 이해하게 됩니다.
첫 번째로는 베짱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놀고먹으려는 사람, 쉽게 살려고 하는 사람의 상징입니다.
두 번째는, 개미 같은 사람입니다.
개미는 근면, 부지런함의 상징입니다.
그런가 하면, 세 번째는 꿀벌과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꿀벌은, 근면과 부지런 함, 그리고 여기에 이타적인 삶을 사는 동물입니다.

사람은 개미와 같은 사람을 좋아 합니다.
개미의 근면, 부지런함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근면함과 부지런함이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자기들을 위한 것입니다.
개미는 매우 이기적인 동물입니다.
자기만을 위하여 모으는 동물이 개미입니다.
그러나 꿀벌은, 부지런함과 아울러 자기의 것을 나눠 줄줄 아는 동물입니다.
그래서 개미는 사람이 좋아하는 동물이라면, 꿀벌은 존경받는 동물입니다.

[크리스소톰]은, 그의 시를 통해서, 꿀벌에 대해 남다르게 표현했습니다.
“꿀벌이 다른 동물보다 존경되는 것은 부지런하기 때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근면함과 부지런함만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부지런함이 자기만을 위한 것일 때는, 그 개인이 소속된 사회는 차갑고 어두워집니다.
근면과 부지런함과 함께, 남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이익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지 않는가. 나의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는 슬픔이요, 고통이 되지 않는가.’를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이 시대의 특징을, 성경을 이미 예견하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이미 1900여 년 전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특징을 예견하고서, 디모데후서 3:1절 이하에서, 오늘 이 시대를 말세의 고통당하는 때라고 하고 있습니다.

보세요.
자기중심적이고, 물질 중심적인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나의 유익을 위해서, 남이 손해를 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나의 기쁨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키고 슬픔으로 몰아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이는 시대라고 합니다.

얼마 전 뉴스에 보니, 미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더군요.
태어난 지 10일 밖에 되지 않은 딸아이를, 화재로 인해 잃었습니다.
그런데 6년이 지난 어느 날, 파티에서 한 아이를 보았는데, 바로 자기 몸속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그 아이에게서 머리카락 몇 올을 뽑아 유전자 확인을 해 보니, 정말 자기 아이였습니다.
화재로 인해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그 아이를 자기 남편의 먼 친척이 기르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그 사람이, 계략을 꾸며 몰래 아이를 유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아이가 화재로 죽은 것으로 가장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예리한 육감으로 딸아이를 6년 만에 찾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이 시대의 한 단적인 예입니다.
부지런함과 열심은 있는데 자기중심적입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차갑고 어둡습니다.
사랑과 온정은 없고 배부른 되지만 있게 됩니다.

이러한 시대를 딤후 3장에서 “말세의 고통당하는 때”라고 했습니다.
곧 말세라고 합니다.
곧 주의 날, 주이 재림의 날이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이 말세의 세상을 바로 세우고,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근면하고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풍요와 풍부함으로 전진할 뿐 아니라, 남을 생각하고 남을 생각하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주의 날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봉사하고 섬기는 사역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자주 언급하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닮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의 사역은 먼저 말씀 선포와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캐리그마’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함께 교제하셨습니다.
이것을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또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을 돌아보시고 병든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이것을 ‘디아코니아’라고 합니다.
‘캐리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세 가지 중요한 사명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 개인 개인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섬김과 봉사(디아코니아)의 삶이 있음을,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벧전 4:7절 이하에서, 말세에 성도들이 가져야 할 모습을 언급하면서, 서로 섬기며 봉사할 것에 대해서 명합니다.
말세가 가까웠으니, 먼저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살 것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아가 오늘 우리가 본 본문말씀으로,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위해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모든 곳에서, 봉사할 것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본문10절)
그러한 차원에서 우리는 이렇게 봉사해야 합니다.

1. 은사를 받은 청지기서 봉사해야 합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10)
우리 각 사람은 은사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 받는 순간, 우리는 거듭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됨의 싸인이, 바로 세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듭난 것은, 단지 세례라는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실은 성령의 감동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라 주라 시인하고 그분을 사모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하나있습니다.
바로 은사입니다.
곧 성령의 은사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섬기는 순간, 성령께서 그 사람에게 필요한 은사를 주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워 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재능이 필요합니다.
우리에게는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 곧 재능으로 일하고 살아갑니다.
자기의 재능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은, 크고 작고를 떠나서 재미있게 보람되게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교회에서는 재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일하는 은사가 필요합니다.
재능은 자기에게 주어진 재주이지만, 은사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사역입니다.
아무리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성령의 도우심이 없을 때는, 교회 안에서는 아무런 힘이 안 됩니다.
나는 열심히 해 보지만, 열심만큼 열매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요?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세요. 11절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11절)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받은 은사는, 어느 것이든지 이 영역 가운데 속해 있습니다.

은사를 크게 볼 때, 이렇게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사도, 예언, 전도, 목사, 교사, 성교사),
지도력의 은사(믿음, 지혜, 지식, 다스림, 권유),
능력의 은사(능력, 병고침, 영분별, 예언, 방언, 통역),
봉사의 은사(서로 도움, 남섬김, 구제, 긍휼, 손대접)
기타 은사 등,
이렇게 은사들이 있습니다.
이 은사들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때, ‘말로 하는 은사’와 ‘몸과 물질로 하는 은사’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사와, 지도력의 은사, 능력의 은사는 주로 말로 하는 은사입니다.
그리고, 봉사의 은사는, 주로 몸과 물질을 통해서 하는 은사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11)
말을 하려면, 가르치고 전하고 권면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하려면, - 이것은, 남을 섬기고 돕고 봉사를 의미합니다. - 이러한 봉사를 할 때는,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곧 이것은 철저히 성령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지식이 아닙니다.
자기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힘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은사입니다.

이 은사를 주신 것은, 바로 봉사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서입니다.
엡 4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4:12)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것이 바로 지체론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한 면에서 뛰어난 신학자요 지혜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바울은, 은사를 설명하며 몸의 지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장에서도, 몸의 지체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몸의 각 부위마다 역할과 능력이 다르지만, 그 기능들이 다할 때, 몸이 건강하듯이, 우리 성도들도 각각 다른 은사를 통하여, 서로의 역할을 다하고 하나 될 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기 위하여, 은사를 받은 사람이다.’

2. 우리는 은사를 통해서,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합니다.

청지기란, 한 집안의 사무를 관장하는 집사가 바로 청지기입니다.
주인이 아닙니다.
단지 자신은 모든 것을 맡은 관리자일 뿐입니다.
그는 상당 부분 자유가 주어지고, 권한도 주어집니다.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기도 하고, 자기가 만들어서도 하고, 상당한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 것이 아닙니다.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의 뜻 안에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하나도, 내 것이 없습니다.
내 목숨, 내 몸, 내 건강, 내 소유, 내 지식, 내 재능, 은사... 다 주님의 것입니다.
그것을 맡은 자로서 우리는 서 있습니다.

청지기는 일꾼이지 주인이 아닙니다.
만일 봉사하는 자가 주인인 것처럼,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은 때는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한다면, 그는 일꾼이 아닙니다.
선한 청지기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자신의 일을 감당할 뿐입니다.
꾀를 부린다거나, 기분이 나쁘다고 집어 던지거나, 자기 그분에 따라 하고 안하고 하질 안습니다.
선한 청지기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은, ‘충성’입니다.
주어진 일에 말없이, 꾀를 부림 없이, 선한 청지기처럼 충성할 뿐입니다.
본문 10절에,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10)고 하셨습니다.
선한 청지기같이, 선한 청지기가 가진 성품으로, 선한 청지기 같은 충성으로, 봉사하라는 말씀입니다.
선한 청지기의 모습과 성품이, 여러분의 심령에 충만하게 되기를, 주님의 아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10절 말씀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10)
‘서로 봉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봉사를 하되, 서로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로 봉사하십시오.
서로 섬기며 도우십시오.
그리고,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십시다.
봉사는 ‘서로’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 편으로 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가졌던 가지지 못했든,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능력이 크고 작고를 떠나서, 서로 봉사하며 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말을 통한 은사를 가진 사람은 말로써, 섬김과 봉사의 은사를 가진 사람은 섬김과 나눔, 베풂으로써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초대 교회의 모습을 보세요. 
초대교회 안에서 가르치는 자와 구제하는 자, 섬기는 자의 구분이 지어졌습니다.
구제의 문제로 인하여, 교회가 조금 시끄러워 졌습니다.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에 비해, 소외당하는 것을 느낀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입니다.
은혜롭던 교회 안에,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무척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조용하던 가정에, 내분이 일어날 때, 얼마나 당혹스럽고 어렵겠습니까?

사도들은,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이것의 의미를 깨닫고 곧 수습합니다.
바로 교회의 질서를 수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들이 해야 할 일과,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을, 구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겠노라고 하면서, 봉사할 일꾼 7명을 세웁니다.
바로 초대 교회의 일곱 집사입니다.

이렇게 해서 봉사의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사도들은, 기도와 말씀으로 저들을 세워나갑니다.
성도들은, 사도들을 섬기고, 서로를 섬깁니다.
성도들 안에서도 말씀의 능력을 입은 직분자들이, 말씀을 가르치고 사람들을 세워 나갑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은, 말씀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과 함께 사역합니다.

서로 서로 함께 섬기며, 봉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됩니다.

가만히 있는 사람은, 세 부류입니다.
유아거나, 병들었거나, 아니면 죽은 자입니다.
갓난아이들은, 나서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아직 성숙되지 못했고,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아직 어린 아이와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교회 문을 들어서서, 신앙의 초기에 있는 분들은, 쉽게 봉사하지 못합니다.
교회에 대해서 배우고 경험하면서,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하면, 어린아이들도 봉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들어도 봉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인정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영적으로 병들면 무능할 뿐입니다.
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도 일할 수 없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봉사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어린아이입니까?
병들었습니까?
아니면 죽은 사람입니까?
우리는 살아있는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았고, 하나님의 영으로 살아있습니다.
때문에, 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통해서, 우리는 서로 봉사하며 나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는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말로서, 일로서,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 많은 장소가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곳으로 우리는 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나눠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됩니다.

여러분! 준비되셨습니까?
우리는 성탄절을 몇 날 앞에 두고 그리고 이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직분들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실 때, 우리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가 등잔의 기름을 예비한 것같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 준비하고 기다리는 삶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은 나눠줄 수 있는 것도, 나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것 일뿐입니다.
때문에, 나의 삶은 내가 준비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근신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에녹]이, 경고하심을 받은 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들어갔듯이, 그 안에서 지혜를 가지고 거룩함을 지키며, 하나님의 성품으로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삶이 준비되었을 때, 우리는 신랑을 맞는 처녀들같이, 진정한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종말의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경건의 능력입니다.
경건의 삶입니다.
그것은 봉사입니다.
봉사는 자유자의 축복입니다.
이 자유와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는, 그래서 주님이 오실 때에 진정한 기쁨으로 주님을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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