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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나 찬양하리라 (엡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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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영태 목사 (2005. 01. 02)

2005년이 밝았습니다. 금년한해는 찬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끝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에게는 세상의 노래가 있고 믿는 사람에게는 찬송이 있습니다. 세상의 노래는 인간을 향한 노래이고 찬송은 하나님을 향한 노래입니다. 인간을 향한 노래는 사람들이 좋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면 자기들을 위한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노래 가사를 보면 기쁘고 감사한 노래가 별로 없습니다. 모두다 슬픔의노래요 헤어지는 노래요. 탄식의노래요. 허무를 노래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찬송은 기쁨의 노래입니다. 감사의 노래입니다. 감격된 사람들이 고백으로 하는 노래입니다. 그러기에 감동이 다릅니다. 찬송은 생명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이 되어 고백하는 글이 담겨있습니다. 그 감동의 첫마디가 다른 말이 아니라 찬송하리로다. 입니다. 나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구원의 축복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지 그는 감격해서 나 찬송하리로다. 입니다. 그는 지금 감옥에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기가 3년 동안 애써서 개척한 에베소 교인들을 마음에 두고 그들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감옥 바닥에 앉아서 펜을 들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주신 은혜가 얼마나 기가 막힌 복인가를 에베소 교인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편지의 첫 마디가 '찬송하리로다.'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여,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렇게 좋은 복을 우리에게 주시다니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찬송해야 할 이유를 쓰는데 거침이 없습니다. 주저함이 없습니다. 확고부동한 자신감과 믿음이 있습니다. 글을 쓰는 그 자신이 신이 나있는 모습입니다. 그가 말하는 찬송의근원은 어디 있는 것입니까?

3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신령한 복입니다. 바울은 땅에서 얻는 복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육에 속해 있는 복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땅에 있는 복으로 육에 속한 복으로 그런 기쁨과 찬송을 할 수 있었다면 여기에 편지를 쓸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안에서 얻은 것은 이 땅에서 얻은 것들이 아닙니다. 그가 지금까지 가졌던 모든 것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가지고 있던 것들, 그의 지식이나 혈통이나 권력이나 그런 것들에서 얻을 수 없던 참 행복을 예수 안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하늘에 있는 복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신령한 복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참 기쁨 이 어디에 있습니까? 참 행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복, 신령한복을 사모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미국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가면 헤밍웨이의 본가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가 사용하던 여러 가구들을 둘러보며 그가 소설을 통해 준 감동들을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면 그는 훌륭한 소설가 였습니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에게 존경도 받았고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다 손에 쥐고 누려본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 자신은 행복하지를 못했습니다.

땅에 있는 복을 다 받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1961년 7월 2일 주일 아침, 그는 아이다호에 있는 자택 로비에 앉아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는 그가 좋아하는 말, “무로부터 무에 이르는 짧은 날의 여행이 주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평소 그가 사용하던 총을 들고 나와 탄환을 놓고는 개머리판을 바닥에 고이고, 총구를 입안에 넣어 방아쇠를 당겨버림으로 그의 생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다 손에 쥐고 누렸지만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늘의 복이란 어떤 복입니까? 오늘 본문이 길게 여러 가지로 설명을 합니다. 그 모든 것을 설명하기는 어렵고 몇 가지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 구속함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보증으로 지금 우리는 성령의인치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5절,6절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11-12절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14절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누리는 축복을 받고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기쁨이 있는 생활입니다. 가난 속에서도 찬송합니다. 불행 속에서도 찬송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찬송합니다. 병상에서도 찬송합니다. 세상의가치관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비밀입니다. 불행한 것 같으나 불행 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것 같으나 가난하지 않습니다. 병상에서 죽는 것 같으나 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찬송하는 것입니다.“그래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 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찬미하며 살도록 부르셨습니다. 찬미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사 어떠한 환경에서도 찬미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고 보호하시고 마음을 감동시켜 주시는 것입니다. 하늘의 복을 받고 사는 사람, 신령한 복을 받고 사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삶 자체가 다릅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 속에서 신령한 복을 받고 사는 증거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바랍니다. 그 증거는 기쁨이요 찬송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찬송합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을 보세요

그는 항상 불안하고 초조한 모습을 보여야 정상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감옥에 있고 언제 죽을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감옥 안이 추워서 오들오들 떨립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아 배가 고픕니다. 그런데 찬송이 나옵니까? 그런데 그는 말하기를 '찬송하리로다.' 합니다. 그 옆에 간수가 있었을 터인데 바울을 이해 할 수 있었겠습니까? 신비한 모습으로 바울을 지켜  보았을 것입니다. 바울의 표정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어쩌면 너무 기쁘고 감격해서 그 눈에 눈물이 흘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글을 쓰다가 두 손을 번쩍 들고 "하나님, 찬양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큰 소리로 외쳤는지도 모릅니다. 이건 비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진 비밀입니다.

당시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터키에 성지 순례를 간적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갑바도기아라는 곳에 가서 초대교인들의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수많은 교인들이 핍박으로 인해 정든 집을 떠나고 가족과도 흩어진 채 갑바도기아에 모여 들었습니다. 그들은 토굴을 파고 그 안에 들어가 살면서 믿음을 지켜 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베드로전서에 보면 날마다 기뻐했다고 나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찾아와 도리어 질문하곤 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 그렇게 좋아서 기뻐합니까? 당신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그만큼 그들은 달랐습니다.

한 젊은 청년이 해병대에서 쫓겨났고, 사회에서는 흑인 노예매매를 했으며, 어두운 생활을 즐기며 놀았습니다. 그러다 이 청년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 오셨습니다. 그에게 구속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는 십자가의 죄 사함을 체험한 이후 어두움의 옷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의 옷을 입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죤 뉴우톤입니다. 그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405장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라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라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그는 82세의 마지막 순간 까지 주님을 찬송하다가 주님 품에 안겼습니다.

하늘나라의 복을 누리며 살기를 바랍니다. 신령한 복으로 행복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스펫포드 집사는 파선사고로 네 딸들을 모두 잃는 비극 속에서도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라고 찬양했습니다(찬 470장). 슈몰크 목사는 화재로 두 아들과 전 재산을 잃고도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라고 찬양했습니다(찬 431장).

원망할 수밖에 없는 순간! 그 순간을 원망으로 자국을 남기지 말고 내 생애 최고의 찬양을 올려드릴 수 있는 둘도 없이 소중한 순간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찬양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찬양하면 천군천사들이 화답합니다. 찬양하면 천군천사들이 내려와 약 하여진 나를 돕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 날수 있는 것입니다. 나 찬양하리라. 주님을 찬양할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이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주님의 성찬에 초대 합니다. 찬양으로 시작하고 찬양으로 끝나는 이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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