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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궁한 그의 사람 (사 40:1~8, 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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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종화 목사

구약의 말씀: 이사야서 40:1 ~ 8
  놀랍고도 반가워라! 희소식을 전하려고 산을 넘어 달려오는 저 발이여! 평화가 왔다고 외치며, 복된 희소식을 전하는구나. 구원이 이르렀다고 선포하면서, 시온을 보고 이르기를 "너의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하는구나. 성을 지키는 파수꾼들의 소리를 들어 보아라. 그들이 소리를 높여서, 기뻐하며 외친다. 주님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오시는 그 모습을 그들이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주님께서 모든 이방 나라들이 보는 앞에서, 당신의 거룩하신 능력을 드러내시니, 땅 끝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리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서신서의 말씀:  빌립보서 4:4 ~ 7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여러분의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리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복음서의 말씀: 누가복음서 1:28~ 33, 38
  천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기뻐하여라, 은혜를 입은 자야,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하신다." 마리아는 그 말을 듣고 몹시 놀라, 도대체 그 인사말이 무슨 뜻일까 하고 궁금히 여겼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마리아야,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 보아라, 그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는 위대하게 되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주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의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다. 그는 영원히 야곱의 집을 다스리고, 그의 나라는 무궁할 것이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의 말씀대로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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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제 크리스마스를 한 주일 남겨놓고서 네 번째 대림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어떻게 될지를 시적으로 표현합니다. 숲에서 사자와 염소가 같이 풀을 뜯어 먹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자는 육식동물이고 양은 초식동물인데, 둘이 아주 정답게 놀면서 풀을 뜯어먹는다는 이 비전은 놀랍습니다.
사실 그런 일은 우리 인간의 마음속에서 겪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우리 속에는 악의 상징인 뱀도 있습니다. 에덴동산 이야기에서 뱀은 악마의 상징이지만, 하늘나라가 임하면 그 뱀도 함께 뒹굴 것이라고 하는 이사야의 예언, 이사야의 꿈은 바로 성탄의 꿈입니다. 이사야는 현실적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이 꿈을 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 삼았습니다.
동물들 간의 갈등, 인간들 사이의 갈등, 가정의 갈등, 사회적 갈등,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 이 모든 갈등이 다 해소되어서 모두가 함께 뛰노는 기쁨, 그것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최대의 기쁨입니다. 우리는 이 기쁨을 누리려고 성탄을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성서는 성탄을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기뻐하하고 하십니다. 기뻐하라는 말씀은 굉장한 은총의 말씀이기도 하지만, 도전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오늘 얼마나 기쁩니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할 때, 이 메리란 말에는 ‘사람들이여 기뻐하십시다. 그래야 온전한 크리스마스를 맞게 됩니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하는 것입니다. 메리란 말이 없이 그냥 ‘크리스마스’ 라고 인사하지는 않습니다. 하늘의 영광이신 그리스도의 나심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 모두 즐겁습니다.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인간의 기쁨 속에 하늘의 영광이 잉태됩니다. 하늘의 영광은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서 인간들을 기쁘게 만듭니다. 제가 이것을 생각하면서 역시 하늘나라는 기쁨 속에 오는구나, 생각하다가 언론에 보도된 책에 관한 내용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감사원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서 백두완이라는 사람이 [내가 변해야 대한민국이 산다]라는 책을 냈는데, 거기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달걀을 밖에서 깨면 후라이가 되지만, 달걀이 안에서 스스로 깨고 나오면 병아리가 됩니다.”
제가 그것을 읽서, 이 사람, 굉장한 신학자요, 철학자다 싶었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은 많았습니다만, 달걀껍질을 안에서 깨면 병아리가 되고, 밖에서 깨면 우리가 먹는 후리이가 된다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었습니다.
거기에 빗대어 말씀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오실 때 하늘을 깨고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늘을 깨고 나오셔서 병아리가 되셨습니다. 본래 우리에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을 깨고 스스로를 우리에게 드러내신 것입니다. 안에서 깬 것, 그것은 안으로부터의 폭발입니다. 안에서 병아리가 나오듯이 안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을 안으로부터의 폭발이라고 합니다. 인플로그션! 이와 반대로 바깥의 충격으로 터지는 폭발은 엑스플로그션!

하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스스로를 깨고 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하늘의 모습으로가 아니라 땅의 모습으로,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하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을 신학의 용어로 성육신(成肉身)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주십니다. 성탄은 하늘을 깨고 나오신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사건입니다.
하늘을 깨고 나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에게는 기쁨을 주십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기쁨, 이 두 가지 등식은 알을 깨고 나온 그분과 그 나온 알을 먹는, 그분의 피와 살을 먹는, 그분과 우리의 합동 축제를 표현합니다. 이것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분께서 우리 가운데 오신 목적은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을 주고, 목마른 자에게 마실 것을 주고, 슬픈 자에게 위로를 주고, 옥에 갇힌 자는 풀어주고 그리고 고난 속에 사는 사람에게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를 오랫동안 믿고 기도도 많이 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서원을 들어지시지 않는 것 아닌가 의문이 드신 분들, 오늘 말씀을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병든 자의 병을 기적으로 완전히 없애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병든 자들 속에 오셔서 같이 병든 슬픔을 몸으로 껴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병자 속에 오셔서 고통을 함께 나누시면서 병을 치유할 능력을 주십니다. 의사의 손길을 통해서든, 기도를 통해서든!
가난한 사람에게 오셔서 가난한 사람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시는 게 아니라, 가난한자에게들과 함께 가난의 고통을 겪으시면서, 열심히 일해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끔 만드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유대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데 끝내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하늘의 기적은 어디 갔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은 어디갔습니까? 그들은 예수를 믿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 관해 유대인들과 헬라인을 비판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문제는 그 하나님이 세상에 오실 때에 기적과 같은 방식으로 능력을 행하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통속에 있는 인간에게 와서 함께 고통을 당하시는 모습으로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과 함께 고통당하고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하고 같이 인간과 정을 나누심으로써, 그 고통과 죽음까지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능력의 주가 되셨습니다. 그것이 성육신의 의미입니다.

고통없이 십자가 없이 부활을 주시는 하나님, 기적의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냥 하늘이 기적으로 세상을 다 뒤바꾸어 버리면 되지, 왜 하늘이 세상 가운데 임해서 세상과 함께합니까? 죄에 가득 찬 세상, 아예 없애버리면 되는 것이지, 왜 세상과 함께 고통당하십니까? 유대인들의 질문입니다.
헬라사람들의 질문은 달랐습니다. 아니 왜 바보같이 꼭 고통을 걸머져야 합니까? 어리석은 짓 아닙니까? 고통을 걸머진다고 그게 없어집니까? 유대인들이 기적을 믿었다면, 헬라사람들은 지혜를 최고로 쳤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보기에 신이 인간의 고통을 짊어진다는 것이 어리석기 그지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기대한 기적이나 헬라사람들이 추구한 지혜의 방식이 아니라, 세상을 끌어안는 방식으로, 세상의 죄를 다 걸머지는 방식으로, 그래서 성육하는 방식으로 이 인간의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귀신 같은 하나님을 믿는 게 아니라 인간이 되신 하나님을 믿게 되니, 너무나 감사합니다. 고통속에서 허덕이지만, 이 고통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감사하다 못해 저는 기쁘기까지 합니다.

이제 우리 가운데 고통과 슬픔이 있으면, 우리 가운데 오신 하나님과 더불어서 껍질을 깨는 내적 폭발을 한번 일으킵시다. 깨고 한번 나가봅시다. 가난, 질병, 좌절 이 모든 껍질을 깨고 한번 나아갑시다. 우리의 능력은 모자르지만 우리게게 오신 예수가, 우리와 함께 계신 그리스도가 이 일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이 잘 아는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는 [인생론]이라는 작은 책을 하나 썼습니다. 내용은 이런 겁니다. 사람이 광야를 거닐다가 어떤 사람이 무서운 사자를 한 마리 만났습니다. 그래서 엉겁결에 근처에 있는 우물로 숨었습니다. 우물에 달린 줄에 매달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물 아래를 보니, 거기에는 큰 구렁이 하나가 떨어지면 삼키려고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위에는 사자고 아래는 구렁입니다. 진퇴양난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가며 줄을 물어뜯는 것입니다. 줄이 끊어지면 구렁이 입으로 떨어질 것이고, 위로 나가면 사자에게 당할 것입니다.

톨스토이의 이야기는 이런 뜻입니다. 흰 쥐 검은 쥐는 낮과 밤으로, 우리 인생에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낮과 밤이 번갈아 줄을 물어뜯어서 줄이 끊어지면 우리의 인생은 끝이 납니다. 사자와 구렁이는 인간이 당하는 슬픔과 고난 그리고 죽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대인들 같으면 기적을 일으켜서 사자를 돌풍으로 날려버리고, 구렁이를 사라지게 하고, 흰 쥐도 쫓아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답이겠습니까? 오늘 성육신하는 그리스도의 방식을 생각하면서 여러분이 함께 답을 찾아보십시오. 분명히 그리스도께서는 고통과 죽음 앞에 놓인 인생을 끌어안고서, 사자도, 구렁이도, 쥐들도 다 회개시켜서 함께 살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리 하실는지 제가 알 수 없지만 다들 돌이켜서 더불어 사는 성탄의 은총을 베푸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적과 같은 초월적인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 제약 가운데 들어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그 사실이 저는 너무나 기쁘고, 또 그런 하나님이시기에 기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복음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 하늘의 천사들이 노래한 것처럼, 하늘의 영광이 임하면 땅에는 평화가 이루어집니다. 오늘 하늘의 영광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십니다. 전쟁으로 찌든 이곳에 하늘 영광이 임하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사자와 양이, 뱀과 사람이 함께 하늘의 양식을 먹으며 즐겁게 사는 낙원이 됩니다.

하늘의 영광이 임하면 이 땅에는 평화가 온다고 하는데, 중요한 것은 그 평화는 우선적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평화라는 것입니다. 인간세계의 평화도 중요하지만, 먼저 땅과 하늘과 사이의 평화가 중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그런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괴로울 때 힘들 때 하늘을 좀 쳐다보고 하늘과 연결하기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하늘이 와야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옛날부터 자주 듣던 이야기입니다만, 남북전쟁 중에 에이브라햄 링컨 대통령이 참모회의를 하는데, 참모들이 북군이 승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링컨은 이렇게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 북군들이 승리하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 북군들이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승리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내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께 맞추자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이 땅에 평화가 있기를 원한다면 하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춰 봅시다. 우리의 코드를 하늘에 맞춰 봅시다. 사고와 발상을 전환해 봅시다. 하늘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하늘의 영광에 코드를 맞춰 봅시다. 하늘은 이미 우리에게 내려오셨으니, 우리는 하늘에 맞추고 하늘과 땅이 서로 평화를 이루게 하십시다. 그러면 우리들 사이에도 평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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