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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2) (마 6: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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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노강국 목사

오늘은 성탄 후 첫 주일인 동시에, 2004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렇게 처음과 마지막이 교차되는 오늘 우리는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문의 내용 중에서 첫 번째 간구의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독일의 문호 괴테(Goethe)는 “첫 단추를 잘못 꿰면 모든 단추를 다 잘못 꿴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주기도문의 이 첫 간구는 참으로 중요하다 아니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간구가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 중, 첫 번째 간구라는 점을 우리는 깊이 있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즉, 주님의 기도는 몇 마디 안 되는 짧은 기도인데, 따라서 여기에는 다른 어떤 수식어를 붙일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의 내용은 이 다음에 나오는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향하기 위한 하나의 형식적이거나 들러리 같은 간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의 내용을 독자적인 동시에 가장 먼저 나온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 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이 간구의 내용 속에서 우리는 “이름”이라는 말과 “거룩히”라는 표현에 이러한 중요한 모습의 초점이 모아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 “이름”이라는 하나님을 표현하는 모습이 가져다주는 의미

이는 하나님은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고유하시고 그리고 인격적이시며 나름대로의 자유함을 지니신 분이라는 사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칼로프(Calov)라는 신학자는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 자신이시다(Nomen Dei est Deus ipse)”라고 말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름을 갖고 계시다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의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구체적인 분이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경우는 예언자 이사야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사 30:27에 “보라, 여호와의 이름이 멀리서부터 오되 그의 진노가 불붙듯하며 빽빽한 연기가 일어 나듯하며 그 입술에는 분노가 찼으며 그 혀는 맹렬한 불같도다.”라고 하나님의 이름이 가져다주는 구체적인 모습을 심판의 모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이름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막연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씀하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의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익명의 하나님, 곧 자신을 은폐하려고 일부러 숨기는 하나님이 아니시라는 사실입니다. 뤼티(Walter Lüthi)라는 신학자는 이런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익명성은 이 세상의 비극이다. 인간의 죄악이다. 왜냐하면 흑암은 익명성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름이 나와 있지 않은 익명의 편지, 서명이 없는 편지는 공개적인 편지가 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익명으로 편지를 쓰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시든 하시지 않든, 또는 무슨 말씀을 하시든, 모든 일에 자신의 이름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밝음을 피하실 이유가 없다. 악마는 익명을 좋아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갖고 계시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익명성”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사회를 비인격적인 사회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이러한 인간 사회와 인간성을 향한 도전인 동시에 어둠의 세력을 폭로시키고자 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막연하거나 추상적인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이 하나님께서는 이름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인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름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은 하나님은 자유로우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고대에 있어서 자유가 없는 종들은 이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감옥에 들어가면 이름보다는 번호로 그 사람을 부르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유하시다는 사실이 우리 인간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아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역사하신 흔적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유로우신 행위들이 자유롭게 나타날 때, 그것은 결국 우리 인간이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사건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출애굽 사건을 보십시다. 이 출애굽 사건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이는 종 되었던 히브리 민족의 해방에 대한 바램도 있었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기의지를 실현시킨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마음먹고 행동하신 것이 결국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출애굽 사건이라는 구원의 사건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은 결국 하나님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느 누군가가 하나님을 향해 “이 예수를 다시 살려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타협이나 요청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유로운 행위요 독자적인 결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사도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상은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롬 4:24). 이렇게 하나님 편에서의 자유하신 행동이 결국 우리 인간에게는 구원의 사건이 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유하심이 우리에게는 귀한 유익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이러한 하나님의 자유하심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자유하심으로 인해 주어진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는 구체적인 사실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게 되는 하나의 현실인 것입니다.

2. 이름과 거룩함

이렇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란 기도와 비슷한 내용의 권고가 십계명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출 20:7의 십계명 중 세 번째 계명은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라고 경고하는 것은 우리의 현실의 삶에서 얼마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게 되는 모습이 있음을 암시해 주는 말씀입니다.  또한 고대 교부 중의 한 사람인 어거스틴(St. Augustine)도 “우리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거룩한 그분의 이름이 인간에게서 거룩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는 것, 즉 멸시 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간구를 생각함에 있어서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나 교회에서 또한 우리의 개인적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끊임없이 모독당하는 흉악한 경험을 우리는 갖고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겠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특별히 우리들의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현실의 모습을 칼 바르트(Karl Barth)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인간이 인간에게 참으로 중요하게 여겨야 하게 되는 데에서, 즉 우리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협조자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경우 냉담한 타인이 되고 적이 되고 훼방자가 되는 데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함을 받지 못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에게 마치 인간 같은 이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되는 데서 하나님을 지나쳐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런 점에서 ‘주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간구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바로 이 점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웃에 대한 자세와 관심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우리 기독인 한 사람, 한 사람과 더불어 교회를 일깨우는 역할을 하게 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즉, 우리들이 행하는 행동 하나 하나에서 무의식적으로나마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게 하는 도전인 동시에 우리의 바램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라는 의미의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속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거룩한 모습을 지닐 수 있게 되는 모습이 이루어져야 되겠기에 예수님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3.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의 모습.

이를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묘사합니다. 히 6:10, “하나님께서는 불의하신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의 행위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을 잊어버리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을 섬겼으며, 또 지금도 섬기고 있습니다.” 라고 성도를 섬기며 사랑을 행하는 모습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는 우리의 삶의 가장 현실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의 모습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요 12:27-28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염두에 두신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이렇게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남에 대해 자신을 열린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기도의 내용을 또 한 군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요 17:11,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이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는 이 예수님의 기도에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요청되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된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고자 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이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를 드릴 때에는 이러한 우리의 하나됨 속에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쉽게 드리는 주기도문 중에서 오늘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이 기도의 내용을 우리에게 기도하기를 원하셨는가를 염두에 두면서 우리의 기도의 모습과 자세와 내용을 더 한층 새롭게 해야 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시여!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 중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내용의 기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잘 새기면서 이 기도를 드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이름이 저희들 가운데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으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 받으시게 되는 일들이 풍성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풍성해지고, 저희들이 하나 되는 가운데 주의 사랑이 견고해지게 하옵시며, 나아가서 익명으로 치닫는 이 세상의 어두움의 세력이 드러남으로 오직 하나님의 진리와 진실만이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귀한 일들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2004년을 보냅니다. 2004년, 그야말로 다사다난했던 우리의 현실들이 실타래처럼 꼬인 가운데 한 해를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의로움으로 이러한 꼬인 모습들이 선하게 풀어지는 귀한 하나님의 역사(役事, Work)를 기다리오니, 속히 이루어주시고 다가오는 2005년도는 하나님 아버지와 더욱 친근해지는 귀한 한 해가 되도록 저희들을 품어주시고, 사랑으로 압도하시며 사로잡아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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