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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미래가 보장된 사람들 (살전 4: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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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보장된 사람들 (데살로니가 전서 4:13-18)
- 설교 : 서영원 목사

  제목 : 행복의 파랑새

어떤 신혼부부가 있었다.
남자는 행복을 찾아주는 파랑새가 있다하여
나섰다. 가는 곳마다 저쪽동네, 이쪽 산을
알려주었지만 가는 곳마다 허탕을 쳤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
어느덧 노인이 다되어
이제 더 이상 걷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살던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부인은 죽고 없었는데,
그토록 찾아 헤매며 행복을 주리라던 파랑새가
자신의 집 처마에 둥지를 틀고 앉아있었다.

수많은 사람은 행복을 찾아
무척이나 애를 씁니다.
그런데도 행복을 찾지 못하는 것은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즐거움으로 하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의 일에 더
마음이 빼앗겨 있는 것을 봅니다.

어떤 기사가 버스운전을
하면서 큰 사고를 내고 경찰에
사고조사를 받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버스운전이 너무 지겨웠던 데다
동창회에 가서 만난 친구가
큰 회사 사장을 하고 있어,
나도 사업 해보려고 구상을 하다가 그만.. ”

  현대인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살고 있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도 미래의 보장이 없기 때문에 불안해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입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만약 미래가 분명한 사람이라면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우리의 미래가 보장 되었다고 선언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성도들을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소망이 없는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고 소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 땅의 삶이 전부인 것으로 착각을 하고 이 세상에서 즐기는 일, 자신에게 유익된 일만을 추구하며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 없이 자신에게 유익이 된다고만 한다면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도 쉽게 여기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인 것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죽음에는 육체적인 죽음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더욱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육체의 죽음외에 영혼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는동안에는 육체의 집에서 지내고,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여전히 살아 남아 있습니다. 이같이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육체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이 적용되는 죽음입니다. 이 죽음은 지혜자도, 우매자도, 현자도, 무지한자도, 강자도, 역자도, 천한자도, 의로운자도 다 죽으며 우리 성도들도 이 육체의 죽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러나 육체의 죽음과는 달리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둘째 사망 즉 영혼의 죽음 혹은 영원한 죽음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영혼의 죽음은 장래에 일어날 일이지만 현재의 우리의 믿음을 통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이기는 자만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계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믿음으로 승리한 자만이 미래가 보장되어 진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서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본문 14절에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자들은 육체적으로는 죽었지만 영혼은 하나님께로 갔기 때문에, 육체는 땅 속에서 잠을 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도의 죽음은 죽은 것 같으나 죽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잠자는 자들인 것입니다. 창세가 47장 30절에서 야곱이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분명히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피곤하면 잠자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시편 127편2절을 통해 말씀하기를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야곱은 147년 동안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많은 역경과 고난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런 야곱이 인생의 달려갈 길을 다 달려와 기진맥진하였을 때 그는 비로소 편안히 안식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잠자는 것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복음을 전파하실 때 죽은 자를 보시고 ‘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보시고 “이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마 9:24)고 하시므로 무리들이 비웃었으나, 예수님께서는 자는 사람을 깨우듯이 일어나라는 말씀으로 그 소녀들 다시 살리셨습니다. 또한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요11:11)고 하셨으며 그가 장사 지낸지 사흘이나 지났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은 여러 곳에서 죽음에 대해 잠을 자는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따라서 성도의 죽음에 대한 성경적 교훈은 죽음이 곧 멸망이 아니라 편안히 쉬는 잠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같은 안식은 주님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미래는 죽음이 아닌 쉼의 소망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미래는 이처럼 분명하게 보장이 되어 있습니다. 이 땅의 수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 분명한 쉼의 축복이 있음을 분명이 알 고 믿고 깨닫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13절 하반절을 통해 말하기를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미래는 슬픔이 아니라 새로운 소망과 기쁨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미래는 불 투명한 것이 아니라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미래가 확실하기 때문에 자신 있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가 보장된 사람입니다. 승리가 보장된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슬퍼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시고 나신 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약속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통해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 가진 축복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영원한 만남을 위해 재림하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가진 성도들의 미래는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습니다. 불투명한 미래가 아니라 확실한 미래가 우리에게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즐거운 혼인 잔치 집 잔치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이 보장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혼인 잔치 집에 초청장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초청장을 가지고 그것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사용하며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인 염려와 걱정으로 인해 힘들어하십니까? 이제 우리는 주인 되신 주님께 여러분의 삶을 맡기신다면 주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민거리가 있습니까? 모두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전능하신 주님께서 여러분의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미래가 보장된 사람들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도 세상 속에서 세상염려속에서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다가가셔서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내가 속해 있는 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미래가 보장된 사람이기 때문에 내 걱정할 것이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걱정 속에 살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하나님의 선한 일군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영원한 미래를 보장하신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영광돌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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