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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복 있는 사람 (시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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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영국 런던의 템즈 강변 옆에 한 재판소가 있습니다. 그 재판소 뜰에는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그 나무의 열매가 맛도 달고 또 독특한 맛이 있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식물학자들은 ‘유독 그 재판소 뜰 포도나무가 왜 맛있을까’를 연구했답니다. 성분을 따져보니 똑같았답니다. 단, 차이는 나무의 뿌리가 템즈 강변 밑에까지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기근이 와도 충분한 수분, 영양분을 공급 받을 수 있었고, 결국 그 포도나무는 특별히 달고 독특한 맛을 낸다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미 복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도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과 같을지 모르나 우리 심령이 하늘 보좌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뿌리를 말씀의 시냇가에 뿌리 내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외모로 보면 같지만 이미 복을 받은 사람이고 풍성한 복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신년이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많이 합니다. 서로에게 복을 비는 것은 아름다운 전통이고 미덕입니다. 그러나 우린 진정한 복의 실체를 분명히 알아야하고 진정 복 있는 사람은 어찌해야 하는지 그 비결도 알아야 합니다. 자, 이제 성경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볼까요?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쫒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본문을 ‘행복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좆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바꾸어 말하면 의미가 더 확실해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5년 새해에 행복을 원하십니까? 아니면 물질을 원하십니까? 명예나 권력을 원하십니까?

미국 인디아나 폴리스에서 어떤 부유한 과부 할머니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지켜보지 않는 쓸쓸한 죽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현금으로 500만불이 발견되었답니다. 장롱, 신발장, 서재 심지어 쓰레기통에서도 돈다발이 나왔습니다. 그 할머니는 그렇게 돈이 가득한 집에서 쓸쓸히 죽어갔습니다. 그 할머니의 죽음이 화제가 되자 사람들의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초등학생들은 불쌍하다고 했고, 고등학생은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비웃었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은근히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죽을 때 죽더라도 쓰레기통에 돈 가득 넣고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행복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행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첫째, 성경의 행복은 죄를 떠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 1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악인, 죄인, 오만한 자는 같은 얘기로 범죄한 자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마음 놓고 죄를 짓는 자들 말입니다. 또한 이 세 가지 부류는 사람이 죄에 이끌려 범죄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먼저 악인의 꾀를 좆는 것이 무엇일까요? 범죄 하려면 먼저 악에 의해 미혹당합니다. 그리고 유혹을 당하면 범죄 장소로 가게 됩니다. 이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유혹을 막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게서 남이니라’는 잠언 4장의 말씀은 우리에게 마음을 지켜라, 네 마음을 철통같이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 죄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알기에 그 처음을 단속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 마음에 유혹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마음이 미혹당한 사람의 다음 단계는 죄인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죄인의 길에 서는 것은 죄인의 무리에 서는 것, 곧 그들과 무리를 지어 걸어가는 것입니다. 범죄한 자들과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당연합니다. 어떤 죄로 인해 교도소 에 들어가 1,2년 있다보면, 더 나쁜 죄를 배워 나오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 안에 사기범, 소매치기, 도둑들이 다 있으니 배우기에 딱 좋은 환경인 것이지요. 바로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게 되는 환경이 문제입니다.

  다음 세 번째 단계는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아예 서서 불안하게 범죄하는게 아니라 멍석 깔고 앉아서 범죄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죄에 미혹당해선 안되고, 범죄한 자들과 교제해서는 안되고, 함께 걸어서는 안되고, 범죄한 자의 자리에 앉아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바로, 죄는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가 들어오면 인간은 비참해집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이 그에게 재정을 맡길 정도로 신실한 사람이었지만 죄가 들어오니 은 삼십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립니다. 그는 괴로워하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인생이 됩니다. 죄가 들어오면 행복한 가정이 깨지고 안정된 삶이 분열됩니다. 이렇게 죄가 무서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임을 받던 다윗도 죄가 들어오니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 않습니까? 시편32편 1절 말씀에 보면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죄가 용서받은 사람, 회개한 사람은 죄가 가리움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곧 가장 복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죄는 두려운 것입니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죄를 멀리해야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한 사람은 죄와 담을 쌓고 살아야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죄를 멀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전에 내려오는 이야기 중, 화장실과 사돈집은 멀면 멀수록 좋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는 멀면 멀수록 좋은 것입니다.  여러분, 죄가 여러분의 마음을 틈타지 못하도록 경비해야합니다. 경계해야합니다. 죄는 영원히 숨길 수 없습니다. 언젠가 죄가 고개를 쳐들고 수치와 부끄러움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죄를 떠난 사람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성경의 행복은 외적인 것보다 내면에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물질이 많으면 행복할 것 같지요? 물질을 잃어버리고 빼앗기면 사람들은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예나 권력이 있으면 행복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건강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병들고 노쇄하면 불행 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인간의 행복은 외적인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속에서 인간의 행복이 결정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즐거움과 풍요로움이 인간의 행복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목사님, 돈 한번 실컷 써보고 죽으면 행복하겠습니다. 했답니다. 그 후 사업이  잘 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후에 돈을 잘 관리하지 못해서 가정에 어려움과 분란이 왔습니다. 그때가 되니 오히려 “가난하면 더 행복할텐데”하는 탄식을 하더랍니다. 여러분, 가난하면 행복합니까? 부유하면 행복합니까? 행복은 가난함에도 부유 함에도 있지 않습니다. 행복은 부유나 가난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에 그렇습니다.

  지난 주에 스위스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Victor E. Frankl)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는 나치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갖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그 후에 그의 저서 ‘의미의 탐구’라는 책에서 이러한 말을 남깁니다. “독일의 게슈타프는 나의 모든 것, 심지어 결혼반지까지 빼앗아 갔다. 그들은 나의 아내, 아이들, 나의 자유를 몽땅 박탈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빼앗지 못했다. 그것은 나의 선택의 자유다. 행복은 결국 나의 선택이다.”

  겨울이 되면 어떤 분은 불행하다고 합니다. 관절염이 도지고 아파서 못 살겠다고 집 사서 따뜻한 엘에이로 이사 가시는 분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겨울이 좋다고 합니다. 눈이 와서 좋고, 남편이 사준 밍크코트를 입을 수 있으니까 손꼽아 겨울을 기다립니다. 멋지게 차려 입고 나갈 수 있으니 겨울은 기다려지는 계절이 되었답니다.

  우리 집 아이는 비 오는 것을 싫어합니다. “아빠, 또 비가와요”하며 얼굴을 찡그립니다. 비 맞는 것도 싫고, 우산 쓰는 것도 싫고, 운동화 젖는 싫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좋습니다.  너무 많이 오지 않고, 적당히 오는 것이 참 좋습니다. 어려서 시골에 살아서 그런지, 어린시절 비 오는 날 마루에 누워 처마 끝에서 내리는 비 쳐다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빗 속에 사랑하는 사람이 찾아올 것도 같고 말이지요. 왠지 감성적이 되고 기분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은 비가 오면 좋아하고 행복해하고, 또 어떤 사람은 싫어하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그것은 주관적이란 것입니다. 내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오막살이에 살아도 행복하고 백악관에 살아도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어느 나라 왕이 많은 권력과 부에도 불구하고 점점 불행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그는 고독하고 외롭다고 생각해서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심한 정신병을 앓게 되었고, 어느 날 용한 의사를 만나 처방을 받게 됩니다. “왕이시여, 병을 고치려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나 그 속옷을 빌려 입으십시오. 그러면 고칠 수 있습니다.” 왕은 평민 복장을 하고 세상 여행에 나서게 됩니다. 어느 날, 두메산골을 지나다가 한 오두막에서 너무나 행복한 노래 소리가 들려오더랍니다. 왕은 안으로 들어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그는 두말할 것 없이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이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속옷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그는 “미안하지만 난 속옷이 없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속옷을 사 입을 수 없지요” . 그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지만 가장 부자는 아니었습니다. 행복은 외적인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면적이며, 영적인 것에 우선순위가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의 복, 구원의 복, 평강과 안정을 얻는 것이 행복의 출발입니다. 내 영혼이 먼저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의 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데서 내면에서 복이 시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우리의 영적 생명이 풍성해질 때 우리의 외적 삶도 풍요로워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성경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함께 2절을 다시 읽을까요?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율법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요, 교훈이요, 계명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율법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곧 행복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즐거우십니까? 설교가 길어지면 시계부터 보시는 분들 있습니다만, 말씀을 듣는 것이 즐겁고 신이 나야 합니다. 성경을 읽는 것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는 것은 밤낮으로 듣고 연구하고, 내면 속에 새긴다는 말씀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사람,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말씀을 멀리하면 행복은 다 떠나갑니다. 말씀을 가까이 할 때 우리 인생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말씀으로 하나님을 알고, 말씀으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어찌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울 때, 불안할 때에 두려워말라 염려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읽고 새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등불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인생길을 걸어갈 때도 하나님의 말씀이 등불이 되어 우리의 가는 길을 비추어 주시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등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의 길을 비추어 주는 지혜가 됩니다.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지 모르십니까? 어찌 살아야할지 어려운 선택 앞에 높여져 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십시오. 그 말씀에 우리가 살아갈 지혜가 있습니다.

  시편 19편에 보니까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말씁합니다.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주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동시에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에게 참지혜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중 아브라함 링컨은 초등학교도 못나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을 열심히 읽어 그 지혜로 정치를 해 나갔습니다. 그는 역대 대통령 중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를 능가한 대통령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성경을 가리켜서 ‘내 정치의 교과서, 내 인생의 모든 지혜가 여기 성경에 담겨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변화되고 성공하는 비결은 바로 성경 속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노무현 대통령도 링컨을 존경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 닮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는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고생을 많이 한 분이지만 성경을 읽었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른 대통령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 말씀의 지혜가 그 심령 속에 들어가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성경 66권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문제 해결의 기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오면 꼬였던 문제가 펴지고 해결되기 시작합니다. 그 문제 많은 가정에 여호와의 말씀이 들어와서 달라지기 시작하고, 우상만 숭배하던 동네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와서 100년도 안되어 목사 장로가 수두룩하게 배출되는 일도 생겨납니다. 하나님 말씀이 들어오면 이렇듯 인생이 달라집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의 삶이 부딪치지 못했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게 될까요? 행복과 불행의 열쇠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열심히 배우고 순종해야 합니다. 왜입니까? 이 말씀이 복된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3절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새해에 무엇을 결심하셨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읽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올 1년에 적어도 성경 1독을 계획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 1독을 계획하면 날마다 말씀으로 시작하고 말씀으로 마칠 수 있습니다. 또 교회에서 1독하면 성경책도 선물로 드립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 말씀을 자주 듣는 기회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일년 52주를 빼먹지 말고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옆 사람과 인사할까요? “52주 내내 만납시다!” 어떤 분은 부활절과 성탄절에만 나오시는 분이 계십니다. 또 꼭 한 주 걸러서 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러나 한 주 빠지면 2주 동안을 말씀 없이 흑암가운데 사는 것과 같습니다. 텔레비전을 켜면 거기에 말씀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인생에 등불이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새해에 한 가지 이상의 성경공부에 동참하는 것도 새해 계획에 넣으시길 바랍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 2절에 보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떠난 사람치고 행복한 사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의 상태는 어떠할까요? 함께 3절을 읽어볼까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아멘!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사철 푸르고 열매를 맺고 풍성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시냇가에 내 인생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 내 인생이 요동치지 않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니 모래위에 지은 집은 창수가 나고 태풍이 나면 쉬 흔들리고 무너집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위에, 반석위에 우리 인생의 집을 세우면 견고하고 흔들림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리면 그 사람은 안정되고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3절을 보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고 말씀합니다. 이게 바로 행복한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4절에 보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라고 했습니다. 악인은 말씀에 뿌리를 내리지 않기에 늘 불안하고 염려합니다. 바람에 흩날리는 겨처럼 그의 인생이 곧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행복한 사람은 그 삶이 안정되어 있습니다. 계속 성장하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는 계속 뻗어나가고 늘 자라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시편 92편 12절에서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발육하리로다”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나이가 들어도 말씀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면 늘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해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엔 중단이 없고 정지는 없습니다. 말씀 안에 있다면 우리는 늘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도 결실해야 합니다. 바로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태신자를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곧 계속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행복한 사람은 삶이 아름답습니다. 3절에 보니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탐스러운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늘 청청하고 푸르고 메마르지 않는것!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 인생은한 사람은 나이 들어도 활기가 넘칩니다. 그 얼굴에 광채가 납니다. 우리 교회 권사님들 얼굴을 보십시오. 얼굴빛이 얼마나 인자하신지 하나님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리니까 똑같이 살아도 얼굴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으면 삶이 아름다워지고 외모도 아름다워집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벨론으로 끌려갔을 때 우상제물을 먹지 않기 위해 채식만 먹었어도 그 얼굴빛이 다른 소년에 비해 더 붉고 용모가 아름다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하고 용모까지도 변하게 하십니다.

미국의 해양도시 샌디에고는 멕시코랑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도시로, 유명한 해양 동물원도 있는 멋진 도시입니다. 경계선 중 미국쪽 경계에서 보면 숲이 푸르고 얼마나 열매가 많은지 아주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멕시코 쪽 경계에서 다 사막이랍니다. 이곳은 원래 사막 지역이랍니다. 미국은 관개시설이 잘되어있어서 하루에도 몇 번 씩 스프링클러를 통해 물이 뿌려지니 숲이나 열매나 다 잘 자란다고 합니다. 그러나 멕시코에는 그런 시설이 없으니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이 그저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의 공급 없으면 우리 인생은 마치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한 식물처럼 메말라가고 흉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이라는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 받을 때 충만하고 아름다워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사람은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고 말합니다. 오해하지 말길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시련이 있습니다. 연단이 있습니다. 질병과 시련이 옵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시련과 연단 속에서 말씀으로, 믿음으로 극복합니다.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습니다. 바로 행복한 사람 은 말씀으로 무장한 사람이며 인생의 시련을 이겨내고 전화위복의 축복을 받는 사람인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는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말하며, 예레미야 17장 8절에 보면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합니다. 인생에 시련이 와도 우리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일까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기에 그렇습니다.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는 복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삶에 고난이 많았습니다. 형들에게 팔리고, 구덩이에 던져지고,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억울한 오해를 받고 배신을 당했습니다. 그의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었고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처럼 말씀에 든든히 선 사람은 인생의 시련을 딛고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6절에 보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정하십니다. 곧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돌봐주시고 보호해주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망하는 길입니다. 말씀과 담을 쌓고 살고,  범죄와 짝을 지어 삽니다. 결국 망하는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5년 새해에 우리 앞에 놀라운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비참한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의인의 길도 놓여져 있고,  악인의 길도 놓여져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 그것이 우리의 문제일 뿐입니다. 새로운 2005년, 여러분이 행복한 길을 선택하셔셔 말씀의 시냇가에 깊이 인생의 뿌리를 내리고 고 늘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사철 푸르르고 형통한 삶을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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