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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명예로운 크리스챤 (잠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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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인식 목사

  예화> 노르웨이에는 이런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떤 소년이 숲 속에 놀라갔다가 이상한 새알을 하나 줍게 되습니다.
  그는 그 알을 집에 가지고 와서 거위가 품고 있는 알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마침내 부화가 되어 새끼들이 나왔는데, 그 알에서 나온 새끼는 다른 새끼들과는 달리 부리가 뾰족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 새끼는 거위 흉내를 내면서 어미 거위를 졸졸 따라 다녔습니다.  얼마가 지나자 이 새끼는 날개가 크게 자랐습니다.
어느날, 독수리 한 마리가 저공 비해을 하면서 거위들을 위협했습니다.
  그때 이 새는 '나도 저 독수리처럼 날 수 있을 것이다.'로 생각하고 날개를 쭉 펴더니 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날기 시작 했습니다.  그새는 바로 독수리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너무나 세상적인 것과 어울려 사는 바람에, 날개를 펴지 못한 채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고상한 목표를 보여주실 때에야 비로소, 날개를 쭉 펴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명예로운 크리스챤의 삶을 상징해 주는 말씀인 것같이 느껴집니다.

  잠언서는 우리에게 도덕적 윤리적인 규범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잠언 22:1절에 보면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것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우리나라의 속담은 명예롭게 사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인간의 고귀한 자존심이나 명예보다 재물을 선택한 까닭에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통계에 의하면 알코올과 마약중독, 10대의 범죄,
인신 매매 등은 인간의 명예나 자존심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명예나 자존심을 잃어버렸을 때는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 동시에 명예롭게 살아야 되겠습니다.
  자존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크리스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크리스챤이란 말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고, 명예롭게 사는 인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벧전 3:1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무슨 소망을 가지고 사느냐?"는 물음에 대하여 항상 대답할 준비를 갖추라고 말씀하시면서, 명예로운 크리스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가르치고 계십니다.

  1. 하나님을 먼저 명예롭게 섬기라.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벧전 3:15)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며 하나님을 명예롭게 섬기는 사람이 명예로운 크리스챤이 된다는 말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일 첫머리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 6:9) 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을 먼저 명예롭게 존귀히 여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인간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고 명예롭게 살기를 원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존귀히 여기는 자를 축복해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청년기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에게는 온갖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에게는 온갖 유혹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서 나는 죄를 범할 수 없다'라고 결심하고 끝까지 자신을 지켰습니다.
  명예롭게 살기를 원했던 요셉이었기에 후에 높은 지위에 올라 애굽으로 구원하고 형제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바벧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궁궐에서 주는 음식을 먹으라고 강요당할 때에, 그는 이방 나라의 임금이 먹는 음식은 먹을 수가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며 채소와 물을 먹으면서 유대인의 명예를 지켰습니다.
  그에게는 사자굴 속에 들어가는 위험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명예를 지킬 수 있게 보호하셔서 후에 바벧론의 총리대신까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명예롭게 섬기는 사람을, 명예롭게 대접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알고 난 후부터, 자기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분토와 같이 여기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까닭에, 우리는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게 된 것입니다.
  잠언 22:4절에 보면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했습니다.

  조셉 파워라는 사람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격을 낮추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높이기 위해서 오셨다."라고 말씀했습니다.

  삭개오는 부자였지만 그에게는 명예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명에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 삭개오를 예수님께서는 명예롭게 대접하시고 그에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명예를 주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모든 사람에게 업신여김을 받던 창녀였지만, 그가 예수님 앞에 엎드렸을 때에 하나님의 딸이 되는 명예를 얻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적 규율이나 이념이나 사상이 아닙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부활이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인격체와 사귀는 가운데, 그안에 있는, 무진장한 자원을 공급 받아서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을 명예롭게 하는 자가 바로 명예로운 크리스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지 아니하도록 명예로운 크리스챤이 되기 위해 예배하고 준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선한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가지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벧전 3:15-16)

  그리스도인은 포악한 성품의 소유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성품, 모든 사람을 존귀히 여기며 선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사회심리학자인 에릭 프롬의 [존재냐 소유냐] 라는 책에 의하면 인간의 존재 가치는 소유에 있지 아니하고 인간의 됨됨이에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명예롭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치 날마다 호화열락하면서도 자기 집 대문 옆에 앉아 구걸하는 가난한 나사로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부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자존심이 있고 명예롭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8가지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① 고차원적인 도덕관과 윤리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② 가정과 가족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③ 인간관계가 매우 좋습니다.
④ 그들의 성공 비결은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아니하고, 높은 인격에 있습니다.
⑤ 직장에서 남보다 더 능률적으로 일합니다.
⑥ 중독에 이르는 알코올이나 마약을 멀리합니다.
⑦ 지역 사회에서 사교적인 활동에 남달리 참여하기를 좋아합니다.
⑧ 자선 단체에 대하여 남달리 관심을 가지고 아낌없이 돕습니다.

  현대인은 자존심을 가지고 명예롭게 살기보다는, 선한 양심을 다 저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채 불명예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① 온유한 마음을 가집시다.
  ② 남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집시다.
  ③ 선한 양심을 가집시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① 온유한 인격과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가집시다.
② 선한 양심을 가집시다.
이것이 명예로운 크리스챤이요,      명예로운 민주 시민의 삶입니다.

  신명기 6장의 '쉐마'의 말씀은 모세의 이스라엘을 향한 권고의 말씀입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4-9)
  그리하면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거니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시리라"(신 6:10-11)고 하시며, 명예로운 가나안 땅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이는 존귀한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될때에, 그의 인격을 갖게 될 때에 존귀히 여김을 받는 명예로운 인생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3. 선한 열매를 맺는 생활을 하라.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벧전 3:13)
  이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때에 오히려 더 많은 고통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할 때에도, 고통을 당하지만 선한 열매를 맺으려고 할 때에는, 그 선행 때문에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명예로운 크리스챤의 삶의 열매라고 말씀했습니다.

  크리스챤의 삶은 날마다 무엇인가를 심고 거두는 생활입니다. 
  오늘 무언가를 심어 놓으면, 내일 반드시 거둡니다.
  오늘 포악한 살인을 심어 놓으면, 내일 그것을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선을 심고 선한 결심을 맺는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선한 열매를 맺는 데에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유를 얻기 위해서도,  선을 얻기 위해서도, 우리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용기가 필요합니다.  선이라고 하는 것은 우연히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에 이기적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선한 훈련을 받고,    명예롭게 사는 교육을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비로소 인간은 선한 눈을 가지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잠 22:9).
  남에게 베푸는 행위는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선한 사람은 선한 습관을 가진 사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 앞에 나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한 결실을 맺는 습관을 가질 때에,  어떤 환경에서든지, 늘 신실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과 존경과 선한 양심을 가진 인격자,
선한 결실을 맺는 명예로운 크리스챤의 삶이 계속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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