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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밀을 맡은 자 (엡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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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강석공 목사  I  2005년1월9일 설교 
 
  2005년 새해를 맞으면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바로 ‘희망이 없다!’는 것 같습니다. 정말 그런 것 같지 않습니까?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의석이 과반수를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 상황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습니다. 아니 나아지기는커녕 전보다 훨씬 더 나빠진 것 같지 않습니까?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특히 경제 사정은 그 어느 때보다 나쁜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자살한 어머니의 뒤를 따라서 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습니까? 희망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절망 그 자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맞는 말일 것 같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해외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녀 교육 문제도 해결한다는 명분을 앞세워서...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이민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사는 교포들에게 물을 것 같으면 한결같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것처럼 고국에서 했더라면 거기서 이미 더 크게 성공했을 텐데...” 누가 과연 누렇게 찌든 변기를 맨손으로 닦을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남들이 다 잠든 깊은 밤에 그 무거운 청소기를 들고 사무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것이라고 상상인들 했겠습니까?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일간지의 칼럼 제목이 눈에 확 띄는 것이었습니다. 그 제목이 바로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칼럼을 쓴 사람은 어릴 적부터 새문안교회에서 저와 함께 자란 서경석 목사라는 친구였습니다. 그 칼럼을 여기서 다 옮길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주요 부분만 골라서 잠시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다.”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느끼는 소감이다. 희망을 느끼는 첫 번째 이유는 더 이상 밀어붙이는 식의 정치는 성공할 수도 없고 성공해서도 안 된다는 인식이 사회적 공감대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9~10월까지만 해도 나라가 완전히 위기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노무현 정부는 수도 이전, 4대 입법을 가차없이 밀어붙였고 민심은 급속히 이반되고 있었다. 보수 세력의 시청 앞 시위가 터져 나온 것도, ‘기독교사회책임’과 같은 새 움직임이 나온 것도 이즈음이다. 그런데 헌재 판결로 수도 이전이 저지되고 정부,여당 내에서도 위기 의식이 커져, 더 이상 밀어붙이기가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여야 간에 대화와 타협이 시작되었다. 비록 마무리가 깔끔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여야 합의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과 노력은 충분히 이루어졌다고 본다. (중략)

  희망을 느끼는 두 번째 이유는 노동조합의 집단이기주의 행동에 의해 더 이상 우리 사회가 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LG 칼텍스, 전공노 등 노조의 파업은 국민의 차가운 반응과 정부의 단호한 대응으로 실패로 끝났고 향후 노조들은 강경 노선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략)

  게다가 요즈음 노 대통령께서 과거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그래서 새해에는 국민 통합을 모색하고 경제에 올인하여 선진국을 향해 열심히 나아가겠다는 요지의 말씀을 거듭하고 있다. 만시지탄이 있고 또 너무 많은 대가를 지불한 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은 이 말만 듣고도 지지율을 상승시킬 정도로 대통령의 변화를 환영하고 있다....

  과연 목사이기 전에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참 좋은 글을 썼다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이라고 할 때 그래도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확신이 없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습니다. 사실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과 관점의 문제인 것입니다. 과거에 집착해서 모든 것을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시각으로 보면 희망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긍정적이고 능동적인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을 희망적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히 11:1 참고) 그렇다면 믿음은 희망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이 절망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을 갖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하나되는 일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에게 아주 중요한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비밀을 이제 성령으로 나타내셨다고 합니다. 그는 그 비밀을 복음이라고 부르면서 그 복음의 참된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그 설명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부터 만민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은혜로 구원하실 뜻을 가지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먼저 그리스도의 비밀인 그 복음의 대상에는 이방인까지 포함된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이방인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괜히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가 함께 구원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주님이 그토록 비참한 죽음을 죽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는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때문에 많은 유대인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이방인은 과연 누구일까요? 피부색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리고 재산과 지식과 권력이 누구에게는 있고 누구에게는 없다는 이유 때문에 오늘 우리도 계속해서 새로운 이방인을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음으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헌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말하기를 그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자격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인간의 기준으로 볼 때 그런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전혀 다른 기준으로 일꾼을 택하십니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이력서의 화려한 경력을 보고 일꾼을 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라는 기준으로 택하여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하십니다.

  사실 사도 바울도 구원의 복음이라는 선물을 주님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그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해야 하겠다는 강한 사명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와 같은 선물을 받지 않았습니까? 때문에 우리도 또한 그와 같이 강한 사명감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우리가 받은 바 그 귀한 선물을 다만 보관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온 힘과 정성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와 같이 영원히 복된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수 있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능력이 있다 없다로 결정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를 구원하신, 그리고 일꾼으로 택하여 부르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며 아주 작은 일부터 실천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배 전에 의자를 정돈하는 일이나 주보를 나눠 주는 일은 하찮은 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하찮은 일도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예배를 제대로 드리기 어렵지 않습니까? 때문에 그런 하찮게 생각되는 일도 소중한 헌신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은사들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의 바람직한 자세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헌신할 때 주님은 우리를 더욱 풍성한 헌신의 자리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의 비밀을 맡은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영원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또 예정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믿음으로, 그리고 희망을 가지고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사명은 과연 무엇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는 것처럼 하나되게 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또한 일터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 같지만 주님의 몸된 교회가 다시금 온전히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 때 비로소 이 나라와 민족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희망의 그 나라를 건설하는 일에 충성함으로 말미암아 장차 주님 보좌 앞에 섰을 때 그 주님으로부터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는 칭찬과 함께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아 쓰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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