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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12)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 1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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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명혁 목사

  지난 주일 새해 첫 주일을 맞아 “여호와를 기뻐하라”라는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새해의 선물로 드렸습니다. Delight yourself in the Lord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성도들을 기뻐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오늘 아침에는 감사하라는 말씀을 선물로 드립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입니다. Give thanks to the Lord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이 26번이나 나옵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도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주일 방명록에 올린 김순영씨의 감사의 글을 여러분들에게 읽어드렸습니다.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으로, 복음을 향한 열정으로, 남을 돕고자하는 헌신으로, 단호함과 사랑의 조화를 보이심으로 저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지난 주에도 박영희 집사님과 남현숙 선교사님 등이 감사의 글을 올렸습니다. "어저께는 신년감사예배로 감사와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예배였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시리로다 라는 목사님의 말씀과 교역자님들의 은혜로운 찬양과 예수님의 살과 피를 흘려주신 성찬식 또한 눈물의 시간이었습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는 저녁예배에도 제직 부서장들의 찬양과 헌신을 다짐하시는 두분 집사님의 고백에도 은혜가 넘쳤습니다. 마지막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시며 사랑하시는 목사님의 모습에 진정 사랑을 배울 수가 있었습니다. 좋은 교회 주시고 좋으신 목사님과 교역자님들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선교지에서 귀국하여 강변교회의 예배에 참석하면서 일본 교회에서 누리지 못한 풍성한 나눔의 은혜와 감격을 맛보며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의 상처들이 치료받고 회복되는 시간이기도 했음을 고백드리며 감사 드립니다.” 감사를 느끼고 감사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누가 감사를 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고 느끼는 사람이 감사를 합니다. 오늘 아침 시136편은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를 26번이나 반복해서 지적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사랑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2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제가 서울고등학교 학생 때 영작을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제목의 글을 영어로 쓰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란 제목의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북한에 두고 온 어머니가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인자하신 사랑을 영어로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이라는 말은 쉽게 생각이 나는데 인자라는 말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영어 선생님이신 안병욱 선생님에게 인자 라는 말을 영어로 어떻게 쓰느냐고 질문을 했습니다. 안병욱 선생님이 그때 저에게 가르쳐준 단어는 benevolent 라는 단어였습니다. Benevolent 라는 단어는 인자한, 자비한, 자애로운, 친절한 이란 여러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을 가장 잘 묘사하는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 저는 benevolent 라는 단어를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Benevolent 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안병욱 선생님이 생각나고 어머님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시편136편은 하나님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인자’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히브리어로는 헤세드란 단어입니다. 헤세드란 말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인자한 사랑과 같은,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헬라어의 아가페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헤세드란 말을 영어 성경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단어로 번역했습니다. Mercy(자비, 긍휼), loving-kindness(인자, 자애), steadfast love(변하지 않는 사랑), faithful love(신실한 사랑), love(사랑). 

  오늘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주제를 가지고 12번 째 설교를 합니다. 오늘 아침 설교 제목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인자한 사랑과 같은, 인자하신 사랑입니다. 자비로운 사랑, 긍휼의 사랑, 인자한 사랑, 자애로운 사랑, 변하지 않는 사랑, 신실한 사랑인데 그 사랑이 영원하다고 했습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His love endures forever. 이 말이 여기 26번이나 반복되어 있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나타나신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사랑은 첫째로 창조 세계에 나타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둘째로 구원의 사건들에 나타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셋째로 영원토록 계속해서 나타나는 사랑입니다.

  십 여년 전에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교수인 신클레어 훠거슨 박사님이 정암신학강좌의 강사로 오시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오시기 전에 제가 그분에게 개혁주의 신학과 삶의 특징에 대해서 강의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분은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알고 구속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이라고 지적했고 그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 개혁주의적 삶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의 강의를 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바로 알고 구속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개혁주의 신학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창조세계에 나타났고 그리고 구속의 사건들에 나타났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첫째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창조세계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과 땅과 우주 만물에 나타났습니다.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땅을 물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달과 별들로 밤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큰 빛들과 해와 달과 별들을 지으신 것이 바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의 표시라는 말씀입니다. 해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지요. 밤이 없으면 사람이 쉴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습니다. 하늘과 대기가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지요. 땅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가 없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주만물은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시와 문학의 대상이 되고 노래와 음악의 대상이 되고 과학과 탐구의 대상이 되지요. 이 모든 것에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나타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행복하게 가장 기쁘게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을 신비롭고 아름답게 만들어놓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어린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아이를 위해서 부모가 만들어놓은 준비물과 환경에 부모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부모는 어린 아이가 태어날 때 그 아이를 위해서 옷도 준비하고 침대도 준비하고 기저기도 준비하고 장난감도 준비하는데 이와 같은 모든 준비물과 환경에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세밀하게 나타나 있다는 말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항상 저에게 가장 행복한 환경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저에게 필요한 것들과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어놓으셨습니다. 가장 예쁜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제가 3,4살 때 입고 찍은 사진이 제 방에 걸려있는데 보는 사람마다 어쩌면 그때 그렇게 멋진 옷을 입고 있었느냐고 말합니다. 옷뿐 아니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가장 좋은 것들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을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우주 만물에 인자하게 나타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나단 에드워즈라는 미국의 위대한 설교자는 자연만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느꼈습니다. “나는 걸으면서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 마음속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엄위와 은혜에 대한 달콤한 느낌이 쏟아져 들어왔는데 나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모든 사물 안에 하나님의 영광의 고요함과 달콤함이 나타나 보이는 듯 했다. 해와 달과 별들 안에, 구름과 푸른 하늘 안에, 풀 포기와 꽃들과 나무 안에, 그리고 물들과 모든 자연 안에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이 나타나 보이는 듯 했다. 나는 가끔 앉아서 달을 쳐다보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거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달콤한 영광을 바라보기 위해서 였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창조주와 구속주를 명상하곤 했다.” 제가 30여년 전 요나단 에드위즈의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하늘과 땅과 우주 만물에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5:45).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26,32). 하나님의 사랑이 하늘과 땅과 우주 만물에 나타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일에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원의 사건들에 나타났습니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강한 손과 편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백성을 인도하여 광야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큰 왕들을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저희의 땅을 기업으로 주신이에게 감사하라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범죄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건져내시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 살아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장자들과 군대들을 치시고 범죄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희 중에서 건져내시고 인도하시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지금 존재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시고 범죄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그 가운데로 통과케 아니하셨다면 그들은 모두 물에 빠져 몰살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은 범죄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건져내시고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일들에 나타났습니다.
 
어린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아이를 모든 위험에서 건져내고 보호하고 보살피는 일들에 부모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지성이가 간의 병으로 시들어져 갈 때 엄마 아빠는 자기들의 생명의 일부를 떼어주면서 아기를 질병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저를 북한의 탄압과 박해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기 위해서 11살 난 맏아들을 남쪽으로 보내는 아픔과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건져내시는데 나타납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자기에서 건져내시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죽음의 구렁텅이에서,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실패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들을 건져내시는데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믿을 수 없는 약한 존재들이기 때문에 자주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집니다. 사탄의 시험에도 빠집니다. 우울증에도 빠집니다. 절망과 탄식에도 빠집니다. 미움과 저주의 구렁텅이에도 빠집니다. 원망과 불평의 구렁텅이에도 빠집니다. 교만과 불신앙의 구렁텅이에도 빠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들을 죄악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내셔서 구원하시는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셋째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영원히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히 계속되는 사랑이 없습니다. 물론 저의 어머니는 세상에 계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저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계속해서 지니고 계셨을 것입니다. 저에게 보낸 어머니의 편지의 구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훌륭하게 된 내 아들을 나는 보고 십고나 손이라도 한번 꽉 쥐어보고 십고나 몽중엔들 이저스랴 내 명혁이” 부모님의 사랑은 어느 정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영원하지는 못합니다. 제가 저의 사랑하는 아들 철원이를 잊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잊고 지나는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리이다”(시27:10).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토록 계속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 하심과 사랑을 말씀하실 때 ‘항상’ ‘언제나’ 라는 말을 자주 쓰셨습니다. '손 바닥'이라는 친밀한 말도 사용하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란 말도 사용했습니다.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신11:12).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58:11). “내가 너를 내 손 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16).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상항 함께 있으리라”(마28:20).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계1:8).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 아침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나타나신 모습을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사랑은 첫째로 창조 세계에 나타났습니다. 그 사랑은 둘째로 구원의 사건들에 나타났습니다. 그 사랑은 셋째로 영원토록 계속해서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은 인자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자세와 태도가 무엇이어야 하겠습니까? 감사입니다. 감사의 기도와 감사의 찬양입니다. 감사의 생각과 감사의 말입니다. 감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언어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생각이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 때문에 우리가 한 평생 감사해야 하지만 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한 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우리들에게 나타난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랑과 감사는 불가분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 우리의 감사가 있고 우리의 감사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있습니다. 누가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을 받고 느끼고 체험하면서 한 평생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금년 한 해가 날마다 감사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인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차고 넘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사랑이 여러분들의 삶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영원토록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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