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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일(창 19: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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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창인 목사

이 시간에 창세기 19장 21절에서 29절 말씀을 가지고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일'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립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러한 일이 중요하다. 또 귀하다'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는 '저러한 일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석가모니는 또 다른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자나 석가모니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중요한 일, 귀한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옛날 어느 곳에 원님이 새로 부임을 했습니다. 그 고을에는 소문난 효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원님이 새로 부임해 오기만 하면 효자는 초청을 받습니다. 그래서 푸짐하게 대접을 받고, 또한 큰상을 받고 온갖 칭찬을 듣고 돌아옵니다. 새로 원님이 부임을 해서 또 이 효자가 초청을 받았습니다. 이 효자는 그런 일로 많이 초청을 받다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갔습니다. 효자가 원님 앞에 섰습니다. 원님이 "자네가 이 고을에 그렇게 소문난 효자가 맞는가?"라고 묻습니다. 효자는 "예, 다른 사람들이 저를 보고 효자라고들 합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원님이 "그럼 자네 부모 형편은 어떤가?"하고 묻습니다. 효자는 "제 어머니는 15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아버지 한 분이 지금 외롭게 살아가십니다. 그래서 제가 얼마나 외로운가를 생각하고 외롭지 않게 해드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불편이 없도록 지극 정성을 다해 온갖 시중을 다 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때 원님이 화를 내면서 "이 놈 당장에 형틀에 묶고 곤장으로 죽지 않을 만큼만 내리쳐라"고 명합니다. 그러면서 이 원님이 이런 말을 합니다. "천하에 이런 고약한 놈이 지금까지 효자라고 칭찬을 받고, 효자라고 상을 받고 있었다는 말이냐? 저는 제 마누라와 함께 살면서 아버지가 15년 동안 혼자 살게 하다니? 진짜 효자라면 아버지를 장가 보내줘야 하지 않느냐? 자기는 마누라하고 살면서 아버지는 혼자 내버려두는 고얀 놈이 효자란 말이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대접도 못 받고, 상도 못 받고, 그저 곤장만 죽지 아니할 정도로 맞고 벌벌 기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모두 이야기를 하니까 "이제야 제대로 된 원님이 오셨구만"하고 아버지가 말을 합니다.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효도와 아들이 원하는 효도는 전혀 달랐다는 겁니다. 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효도를 한 것이지 아버지가 원하는 효도를 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오늘날 믿음 생활을 할 때 이렇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다고 하지 않으시는데 우리는 내 좋을 대로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상고해 보려고 합니다.

I. 기도하는 일 (21-22, 29)

기도는 몇 가지로 흔히 설명들을 합니다. 그 중에서 첫째가 기도는 호흡과 같다는 것입니다. 호흡이라고 하는 것은 탄산가스를 비롯해서 온갖 좋지 못한 것을 밖으로 토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공기 중에서 산소와 같은 좋은 것을 다 받아들입니다. 그렇게 들이마신 산소가 피에 공급이 되면 피가 맑아지고 힘이 나고 건강해 지는 것입니다. 호흡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호흡과 같다고 하는 것은 주님의 비유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 중에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고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따로 서서 "하나님, 나는 저 세리와 같지 않고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하고, 십일조를 받치고, 불의, 토색, 간음하는 일이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바리새인의 기도가 기도입니까? 하나님 앞에 제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 앞이라고 자랑을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런 바리새인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상대해 주지도 않으십니다. 반대로 세리는 멀리 섭니다. 그리고는 머리도 못 들고 가슴을 치면서 "하나님이여! 나는 죄인입니다.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때 주님이 결론을 내리시기를 '이 세리가 의롭다 함을 얻고 돌아갔다'고 하십니다. 죄는 다 내놓고 고백을 하고 회개를 합니다. 모두 토해내 버린 후에 의롭다 함을 얻고, 은혜를 받고 돌아갔다는 말입니다. 좋지 못한 것은 내버리고 좋은 것은 다 받고 가는 기도였습니다. 이게 바로 호흡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이지 남을 정죄하거나, 남이 거꾸러지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도는 호흡과 같다고 합니다. 두 번째로 기도는 흔히 만능 열쇠와 같다고 합니다. 열쇠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에스겔 36장에 보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좋은 축복을 약속하시는지 모릅니다. 한마디로 '너희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 살게될 때 가나안 땅을 에덴동산처럼 만들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 이상의 더 좋은 약속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에덴 동산에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약속을 하신 다음에 '그래도'라고 하십니다. 즉 에스겔 36장 37절을 보면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온갖 축복을 약속해 놓으신 창고가 있습니다. 이 창고는 성경입니다. 성경 속에는 하나님의 온갖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했다고 해서 그냥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반드시 기도를 통해서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는 열쇠요. 통로이기 때문에 기도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1절과 22절을 보면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창세기 19장은 기도로 시작을 합니다. 한번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묻습니다. "어디를 가십니까?" "저 소돔성에 망할 놈들이 망할 짓만 하고 있는데 한번 가보겠노라. 가보고 오늘이 다 가기 전에 끝내고 말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는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조카 롯이 소돔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 그 중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그 의인 50명도 함께 망합니까?" "아니다" "그럼 만약 45명이 있다면요?" "아니다." "그럼 40명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니다." 30명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20명도 아니라고 하십니다. 10명도 역시 아니라고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무리 소돔성이 완악해도 '10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거기서 하나님과의 대화는 끝납니다. 하나님이 바로 소돔에 가서 롯의 집에 찾아가십니다. 롯의 집에 이르러서 가만히 소돔성을 살펴보니 말이 아니었습니다. 망할 짓들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밤 중에 끝내야겠다고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롯의 가족들에게 날이 밝자마자 이곳은 불바다가 되고 말테니 성밖으로 나가라고 하십니다. 이에 롯이 딸과 정혼한 두 사위를 찾아 얘기했습니다.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기며 믿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롯과 다른 가족들이 떠나야 하는데 자꾸 지체하고 꾸물거립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시켜 롯과 아내와 두 딸들을 이끌어 성밖으로 옮기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빨리 저 건너편 산으로 도망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가다가 힘들다고 들판에 머물거나 또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때 롯이 하는 말이 "내가 거기까지 갈 수 없습니다"라고만 말하였는데 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네가 거기까지 못 가겠느냐?" "예. 그 산을 가기 전에 '소알'이라는 성이 있는데 그곳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롯이 말합니다. "그래? 그럼 네가 그 성에 들어갈 때까지 절대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롯의 가족들이 겨우 소알성에 들어갔습니다. 들어가자 날이 밝았고, 유황불이 내려왔다는 내용이 본문입니다. 그리고 29절을 보면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보면 롯이 그렇게 삶을 얻기까지는 처음도 기도요. 나중도 기도가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이렇게 기도생활을 열심히 했지만 조카 롯은 아브라함과 함께 살면서도 기도생활을 못 배웠습니다. 평생에 한번도 기도한 일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오늘을 넘기지를 못하고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롯은 그때서야 다급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더불어 대화를 하며 살길을 찾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중에 지금까지 기도한 분들은 더욱 열심히 하시고, 그렇지 아니하신 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만이라도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살아남을 길이 열린다는 사실입니다. 꼭 기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살길에는 반드시 기도가 있어야 된다는 뜻입니다.

일본 '시고꾸'에 '가고시마'라고 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 '이또 에이이찌'라고 하는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이곳에서 목회를 하다가 중국대륙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는 자비량 선교사가 되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려고 했습니다. 이때 교인들이 도움을 주고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50원이 남았습니다. 50원이면 중국에 가서 두 달 정도는 살 수 있을만한 돈입니다. 이 돈을 갖고 떠나려고 할 때 잊었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전에 그 교회 교인 중에 병이 들어 병원에 입원, 수술을 하려고 해도 돈이 없어 입원하지 못하는 가난한 처지에 있는 교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또 목사님이 회계에게 가불하여 도와주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떠나려는데 그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때 가불한 돈이 49원이었습니다. 50원에서 1원밖에 남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돈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겠습니까? 갚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갚고 나니까 1원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막막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선교사로 가지 말라는 뜻인가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선교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제가 아파 누워버리던가 부모님께서 병석에 눕고 입원하시게되던가 한다면 떠나지 못할 테니 어떻게든 막아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기다려봐도 아무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하여 1원을 가지고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를 타고 떠나려고 하는데 교인들이 많이 전송하러 왔습니다.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점심이나 저녁 값을 하라고 하면서 봉투 하나씩을 내밉니다. 나중에 계산을 해보니 전부 30원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시모노세키'에 갔습니다. 그곳으로 이사하여 살고있는 본 교회 출신 교인들이 연락을 받고 다 나와있었습니다. 이 교인들이 점심 값을 하라고 봉투 하나씩을 주었습니다. 계산을 해 보았더니 15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모두 합쳐 45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규슈'로 가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나와 기차로 중국에 가야 하는데 배를 타려고 나왔더니 그곳에서도 본 교회 출신 교인 두 사람이 소식을 듣고 나와 있었습니다. 또 봉투를 내밉니다. 봉투 안에 2원씩, 합쳐서 4원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래서 합계가 49원이 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정확하신 분이십니다. 그 선교사님은 그곳에서 확신을 얻었습니다. 중국으로 가서 중국 옷을 입고, 중국말을 배우고, 중국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하고, 같은 집에서 뒹굴며, 같이 먹고, 중국사람과 다름없이 어울려 주니까 복음이 잘 전달되었습니다. 선교사업에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이 분은 기도로 출발했고, 기도로 가고 있었고, 기도로 일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곳에 승리가 있고, 기도하는 곳에 하늘 문이 열린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II. 인정받는 일 (22-25)

제가 성가대를 잘했다고 칭찬하면 기분이 좋습니까? 좋지 않습니까? 좋으실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이 아내를 칭찬하면 아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남편은 퇴근하고 돌아와서 아내에게 "밥만 먹고, 하루종일 집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남편이 야단을 할 때에 그 아내 되는 여인이 얼마나 속상합니까? 아내가 집에서 뒹굴며 쉴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자녀들을 키우고, 돌보며, 식사 준비, 빨래하고 온갖 잡일 등 모든 집안 일을 하려면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서 "여보, 흔적도 나지 않는 집안 일에 얼마나 고생이 많소?"라고 한마디만 해 주면 집안 일로 인해서 몸살이 날 지경이 되었어도 그 몸살 기운이 깨끗이 가십니다. 그리고 그 수고를 다 잊어버립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기분이 좋고 힘이 솟습니다. 살맛이 납니다. 인정받는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1편 1절에서 6절까지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로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 하였는데 죄를 멀리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로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설명합니다. 즐겁지 않은데 무슨 묵상을 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이 시간이 즐거운 것입니다. 셋째로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라고 설명하십니다. 즉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남편에게 인정받는 아내가 복되다면 하나님께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복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3절에서 25절을 보면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롯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소알성까지라도 다 멸망시키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롯이 "저는 산에까지 가지 못하겠으니 소알성에 들어가서 피하게 해 주십시오" "그래. 내가 소알성을 멸망시키지 않겠다. 거기에 네가 들어가기까지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롯이 소알성에 들어가고 해가 돋자마자 하늘에서 유황불이 비오듯하여 전부 불바다가 되고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을 이만큼 인정하여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문만을 보면 마음이 개운하고 시원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후서 2장 7절과 8절을 보면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롯에 대한 하나님의 의롭다는 말씀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롯의 시대보다 거슬러 올라가면 노아 시대가 나옵니다. 그때 세상이 홍수로 멸망을 당합니다. 노아에 대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고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롯에 대해서도 세 번씩이나 의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까? 모든 세상사람에게 나의 믿음, 나의 실력을 인정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가장 복된 사람이라는 겁니다.

저는 일제시대 때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때에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지금까지도 그 성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이름이 일본말로 '아라이'선생님입니다. 초등학교에서 음악시간이 되면 노래 한 곡을 가르쳐 주고 선생님이 지명하는 대로 나와서 노래를 부르게 하지 않습니까? 제가 지명이 되었습니다. 이때 교단에 나가서 노래를 불렀더니 선생님께서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되다보니 음악시간이 기다려집니다. 그 선생님이 너무 예뻐 보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초등학교 선생님 한 분이 산수, 국어 할 것 없이 모든 과목을 가르치십니다. 그 선생님이 좋으니까 모든 과목에서 칭찬 받으려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공부에 재미가 났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력이 부쩍 늘었습니다. 그 선생님께서 저에게 "네가 반장을 하라"고 말씀 하셔서 반장을 했던 일이 있습니다. 선생님께 인정을 받으니까 첫째로 학교에 자꾸 가고 싶어집니다. 둘째로 공부가 재미있습니다. 셋째로 그 선생님이 무척 예뻐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은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하면 됩니다. 첫째로 내가 학교에 가고 싶듯이 교회에 자꾸 가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공부가 재미있듯이 성경말씀을 듣고 공부하는데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선생님이 예뻐 보이듯이 눈만 감으면 하나님이 제일 좋다고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께 인정받고 있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받아도 되고,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꼭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구원하는 일 (26-29)

본문 26절을 보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36절을 보면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라고 하였습니다.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했으면 그 집안의 꼴이 무엇입니까? 노아 시대 때는 홍수로 말미암아 세상이 심판을 받았으나 노아의 여덟 식구가 온전히 구원을 받았기 까닭에 롯의 집안 일과 같은 일은 없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 롯의 가족은 불바다로 인하여 멸망당할 때에 아내가 죽고, 두 사위들이 죽었기 때문에 롯과 두 딸밖에 살아남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딸들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여 모압과 암몬, 두 아들을 낳아 모압 족속의 조상,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그래서 롯은 구원을 받고도 통곡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딸들과 살아가면서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구원을 받고도 괴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아내를 구원하지 못했고 사위들을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 가족이 함께 구원 얻는다는 것이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복되지만 롯의 가정은 구원을 얻고도 불행합니다. 여러분들의 남편들이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까? 전도하여 하나님 앞으로 모시고 나오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공부는 잘 하지만 교회에는 나오지 않습니까? 공부가 전부는 아니지 않습니까? 교회 나오지 않는 남편들이 돈을 잘 번다고 하더라도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공부나 돈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우리의 가정 식구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구원치 못한다면 롯의 통곡이 우리의 통곡이 되지 않는 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족을 구원하는 일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내 가족이 모두 구원을 얻었다면 네 가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이처럼 구원하는 일은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일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드리자면 성경이 가르치는 중요한 일은 첫째 기도를 열심히 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여러분들의 호흡과 같고, 만능열쇠와 같고,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입니다. 셋째로 우리의 가족들을 구원하는 일이 가장 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이 바로 여러분들의 급선무요, 중요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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