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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샘물 곁에서 만난 주님 (창 16: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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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장빈 목사

# 1
아브람이 아직 아브라함이란 이름을 받기 전의 일입니다. 그가 어느 날, 하나님을 찾아 이렇게 아룁니다. <하나님, 전 아무래도 안 되겠습니다. 이제 나이 많아 제 몸에서 아들을 보기 어려우니, 다메섹에서 데려온 저 아이를 상속자로 삼으면 어떨까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초조해진 나머지 양자를 들이겠다고 하나님께 진언을 드렸던 것인데요, 그러나 하나님, 일언지하에 아브람의 청을 거절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창세기 15장 4절 이하인데요, <그 아이는 너의 후사가 아니다, 너의 몸에서 날 자가 너의 후사가 되리라!> 그러면서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별을 보게 하시며, 다시 약속해 주셨습니다. <너의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여 아브람은 그 약속의 말씀을 믿기로 하고, 계속해서 신실하게 그 날을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조급해졌습니다. 그녀 역시 사라라는 이름을 받기 전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고쳐 생각해 보아도 이 몸으로는 아들을 낳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6장 1절을 보니, 이미 사래의 몸이 생산 기능을 상실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남편의 몸에서 날 자가 후사가 된다 하시니 정말 막막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래가 남편에게 제안합니다. <여보 당신, 하나님이 당신 몸에서 날 자라 했으니, 당신 몸에서만 나오면 될 것 아닙니까? 나의 몸은 이제 생산치 못하니, 원컨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시오,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오, 여보 당신!>

세상에 어느 여인이라서 자기 남편의 침소에 다른 여인들이기를 허락하겠습니까만, 사래는 그렇게 했다고 성경은 전합니다. 일견 감동적인 듯도 하고, 일견 매우 합리적인 듯도 하지만, 그러나 성경은 왜 사래가 자기의 여종 하갈을 남편과 동침케 했는지, 그 구체적인 동기에 대해선 침묵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남편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내 사래의 제안을 받은 아브람이 두 말도 하지 않고 자기 아내가 하라는 대로 했다는 데 있습니다. 그 때 아브람이 자기 아내의 제안이 하나님의 뜻의 부합하는지를 깊이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너무 쉽게 아내 사래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그로 인해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마 그 때 아브람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나만 그러는 것 아닌데 뭐, 앞 동네 김 서방도, 뒷동네 박 서방도, 모두 그러는데 뭐, 그렇게 해서라도 아들을 얻을 수 있다면, 죽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드리게 되니 더 좋은 일 아닐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2005년 새 해를 살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늘 묻고 또 물어야 하는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하늘 아버지 내 하나님의 뜻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지금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인지, 하나님 가라 하시는 길인지를 날마다 물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금년 한 해 사시면서 내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시기 바랍니다. 내 머리에 합리적인 결론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뜻에 부합하는 결론을 얻어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뜻과 그 결론을 살아내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니 순종하지 못하겠다고 우깁니다. 여러분,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 아닙니다. 아니요, 꼭 내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 하나님의 뜻이라고 우겨서도 곤란합니다. 그건 내 뜻이지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내 문제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언제나 하늘 아버지의 뜻을 물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설령 내 머리로 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뜻을 발견하면, 무조건 그 뜻을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 주님이 꼭 그렇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 이 땅에 오셔서 하늘나라 가시기까지, 언제나 먼저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아무리 상황이 다급해도, 아니 죽는 한이 있어도, 하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찾아 하셨습니다. 만약 그 일이 아버지의 뜻에 어긋나는 일이거나, 아버지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일이라면, 우리 주님 세상을 다 준다 해도 거절하셨습니다. 대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이라면,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2005년 한 해, 목숨 걸고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멋진 한 해, 내 생애 최고의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2
그런데요,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 하나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게 되면, 꼭 그 인생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하늘 아버지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 뜻을 구할 때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 맞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선택과 행동이 어떤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지, 오늘의 주인공 아브람과 사래와 하갈의 경우를 중심으로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우리 삶의 반면교사로 삼겠습니다. 2005년 새 해를 살면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 교만 마귀가 그 가정에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16:4 / (읽기) / 거기 보니 아브람의 가정에 그 전에 없던 것 하나가 쳐들어 왔습니다. 쳐들어온 것 맞습니다. 누군가? 바로 교만 마귀입니다. 여러분, 교만은 마귀입니다. 그런데 그 교만 마귀가 누구를 사로잡았나? 바로 여종 하갈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교만 마귀에게 홀린 이 여종이 하는 행동 좀 보십시오, 여종 주제에 <여주인을 멸시합니다!> 거기 멸시한다는 표현, 업신여긴다는 뜻인데요, 여주인의 사랑을 멸시로 되갚는 중인데요, 왜 갑자기 여종이 여주인을 멸시하기 시작했나? <자기의 잉태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주인 사래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는 점입니다. 정말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여종 하갈의 입장에선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왜?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의 침상에 들게 되었고, 자기 여주인은 성공하지 못했던 임신까지 단번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젠 여종인데도 집안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안방마님처럼 몸 보전하고 누워, 다른 여종들의 시중을 받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니 자기 주제를 망각하고 우쭐해지는 것, 인간적으론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문제는 그만 그 마음에 교만 마귀가 들어가,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여주인이 하찮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열등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작은 자랑거리 하나만 생겨도 하염없이 교만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인격적 됨됨이를 제대로 알려면, 그가 무언가를 소유한 뒤에 그를 들여다보라 하는 건데요, 예를 들어 볼까요? 돈이 없을 때는 누구나 겸손합니다. 그러나 상당한 액수의 돈을 번 이후에도 여전히 겸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권력이 없을 때는 누구나 겸손합니다. 그러나 세상 권력을 장악한 후에도 여전히 겸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힘이 없을 땐 대기 다 겸손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힘이 생긴 이후에도 겸손하기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무언가 갖지 못했을 때의 겸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겸손은 무언가를 많이 가진 이후에 보여주는 겸손입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교만해지는 군상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중 하나인 여종 하갈도 처음엔 겸손했습니다. 자기 여주인의 말에 순종했던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얼마나 고분고분하고, 참하고, 순종적인지, 심지어 여주인이 안심하고 자기 남편의 침소에 넣어 드릴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종이 아이를 갖게 되자 그만 교만해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이를 갖지 않았을 때는 겸손했는데, 여주인도 갖지 못한 아이를 갖게 되자, 그만 교만에 빠진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2005년 한 해, 교만 마귀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교만 마귀에게 넘어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나에게 무언가 없던 것이 생길 때 교만 마귀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교만 마귀는 늘 우리 주변을 맴 돌면서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습니다. 좀 가졌다고 교만하고, 좀 높아졌다고 교만하고, 좀 알게 되었다고 교만하고, 좀 열심을 낸다고 교만하고, 신앙생활 좀 잘 한다고 교만하고, 전도 좀 했다고 교만하고, 기도 좀 잘 한다고 교만하고, 하여튼 무슨 비슷한 것만 있으면 그걸로 교만을 떨게 되는 것, 다 교만 마귀의 장난입니다.

만약 그 때 여종 하갈이 교만 마귀에 넘어가지만 않았더라도, 해서 여주인을 멸시하지만 않았더라도, 그 집에서 쫓겨나는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다 준다 해도, 절대로 교만한 자의 자리에는 서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아버지의 뜻을 구하시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뜻을 이루어드리는 한 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옆의 분과 인사하며 다짐할까요?

<끝까지 겸손하게 섬기겠습니다. 끝까지 순종만 하겠습니다.>

2. 책임 전가 귀신이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16:5 / (읽기) / 지금 아내가 남편에게 덤비는 중입니다. 오늘 이 때까지 사래는 아브람을 하늘처럼 받들어 섬기던 여인이었습니다. 자기 남편을 주라 부르며, 정말 주님처럼 사랑하고 섬겼던 여인 맞습니다. 그렇게 사랑했기에 그 사랑으로 자기 여종을 남편에게 씨받이로 제공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후덕하고 아량이 넓었던 이 여인의 태도가 여기서 갑자기 달라집니다.

지금 사래가 무어라 합니까? <나의 받는 욕은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지금 사래가 누구한테 욕을 보고 있습니까? 자기 몸종 하갈에게! 왜 여종에게 욕을 당하고 있습니까? 자기 남편의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그러니 이 욕은 내가 아닌 당신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할 만 하지요, 한 마디로 이 모든 사태의 책임은 당신에게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중인데요,

인류의 조상 아담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허락하신 바로 저 여자가 집어주는 바람에 엉겁결에 먹고 말았습니다!> 아니,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이게 사내가 할 말입니까? 자기 손으로 받아 자기 입으로 먹었으면 자기가 책임을 져야지, 하나님 주신 저 여자가 주어서 그냥 먹었다니요, 여러분, 준다고 그저 넙죽 받아먹을 것이 아니라, 먹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뜻을 상고했어야 합니다. 존경하는 남성 여러분, 여성이 준다고 아무 거나 넙죽넙죽 받아 잡숫지 마시고, 먹기 전에 먼저 아버지의 뜻을 물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아버지의 뜻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 하나 있으니, 책임을 떠넘긴다는 점입니다. 사탄의 꼬임에 넘어간 것도 자기요, 죄를 지은 것도 자기요, 맘대로 행동한 것도 자기이면서, 문제가 되면 꼭 다른 사람 탓을 한다는 겁니다. 여종을 남편의 침소에 밀어 넣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래, 바로 당신입니다. 아브람이 첩얻어 아들 낳겠다고 한 것 아닙니다. 오히려 아브람은 약속의 때를 기다리자는 쪽이었습니다. 그런 남편을 우겨서 여종과 동침케 하더니, 그 여종이 임신한 끝에 좀 째려보며, 불손하게 굴고, 자기를 멸시한다고, 그 모든 책임을 아브람에게 전가하며 바가지를 긁어댄다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씀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2005년 한 해를 살면서, 책임 전가할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살다 혹 실수를 하게 되거든, 그 책임 내가 지시기 바랍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책임을 떠넘기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모님들께 고합니다. 우리 부모 세대의 죄는 우리 부모세대가 안고 가기를 원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자녀 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무책임한 부모 세대가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나쁜 것은 우리들 부모가 다 책임지고, 좋은 것만 자녀들에게 물려주는 복된 한 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인사!

<절대로 책임 전가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3. 직무 유기의 마귀가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16:6 / (읽기) / 지금 남편 아브람이 아내 사래에게 무어라 합니까? <아니, 여보 당신, 왜 나한테 이러는 거요, 본디 그대의 여종은 그대의 수중에 있던 것 아니요? 그러니 나한테 따지지 말고 그대 좋을 대로 하시오! 난 모르겠소!>

궁지에 몰린 아브람이 여종 하갈을 성난 여주인에게 넘겨주는 장면인데요, 문제는 가장이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자신이 처리해야 할 일을 아내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 가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가장이 끝까지 책임지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거늘, 심지어 자기가 직접 연루된 문제를 놓고, 난 모르겠으니, 당신 좋을 대로 하라니요, 한 마디로 아브람이 자기 직무를 포기하고 유기해버린 것이지요.

거기 6절에 보니, 아브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의 눈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한 마디로 자네 마음대로 하라는 거지요. 그러자 아내 사래가 어떻게 합니까? 때는 왔다고 외치며 여종 하갈을 마구 학대합니다. 얼마나 심하게 학대했는지, 한 때 도도하게 여주인까지 멸시하던 그 여종이 참다못해 임신한 몸으로 도망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문제는 믿음의 어머니요 그렇게 사람 좋던 사래가 하루아침에 포악한 사람이 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왜 그리 되었나? 중요한 원인의 하나, 아브람이 직무를 유기했기 때문입니다. 마음대로 하라 하니 마음대로 했던 결과입니다. 직무 유기가 부른 결과입니다.

<직무를 유기하지 않겠습니다. 제 때 제 때 일하겠습니다.>

# 3
마지막으로 하갈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반면교사로 삼고 싶습니다. 그 때 하갈이 겸손하게 처신만 했어도, 계속해서 아브람의 총애를 받으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갈은 그 기회를 스스로 놓치고 말았습니다. 자기 아이를 잉태했다고 그렇게 좋아하던 아브람이 하루아침에 그 사랑을 거두어 가더니, 여주인 사래가 임신한 자기에게 그렇게 포악을 떨며 학대를 하는데도 모른 척 합니다. 결국 하갈은 아브람의 사랑을 잃고, 무관심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것입니다.

왜? 그녀가 교만을 떨었기 때문입니다. 교만 마귀에 홀려 그만 여주인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주인이 자기를 학대하기 시작하자, 그동안 자기를 미워하던 다른 여종들까지 자기를 학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기가 안방마님이야? 주제 파악도 하지 못하고 거드름을 피우더니, 싸다 싸! 쟨 좀 더 당해 봐야 돼! 그럼!> 결국 하갈은 그 가정의 모든 권속들에게 소위 <왕따>를 당하고 맙니다.

예나 지금이나 <왕따>를 당한다는 것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 해서 하갈은 최후의 선택을 합니다. 그 집을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가 갈 곳이라곤 친정이 있는 애굽뿐, 해서 하갈은 고향을 향해 광야 길을 재촉합니다. 그러나 임신한 몸으로 광야를 넘어 고향으로 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광야의 한 샘 곁에서 주의 사자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치고 외로워, 차라리 죽고 싶은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6장 7절인데요, <여호와의 사자가 광야의 샘 곁, 곧 술 길 샘물 곁에서 그를 만났다!>고 합니다. 샘물 곁에서 천사를 만났던 것입니다.

주의 천사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 하갈이 말합니다. <나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하여 도망 하나이다!>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야할 지, 이젠 잘 모르겠으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나의 여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가는 중이라는 겁니다. 그러자 주의 사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전혀 우리의 예상을 빗나갑니다. 들어봅니다. / 16:9 / (읽기)

다시 돌아가라는 겁니다. 가서 여주신의 수하에 복종하라는 겁니다. 무슨 뜻입니까? <다시 돌아가서 사래의 권위 아래 겸손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라!>는 겁니다. 너의 교만 때문에 비롯된 문제니 너 스스로 겸손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겁니다. 문제 상황에서 도망가지 말고 정면으로 맞서 인생의 승부를 걸라 하신 것입니다.

거기가 어딘데 돌아가라니요? 인간적인 반문이 터져 나올 법한 상황인데요, 그래서 우리 주님, 하갈에게 힘을 주시고자 축복을 주십니다. / 16:10-11 / (읽기) / 놀라운 말씀입니다. 아무리 뒤져 보아도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여인을 향해 주시는 말씀, 앞으로 아들을 낳을 것이요, 너의 자손이 크게 번성할 것이라 하십니다. 그 아들의 이름이 <이스마엘>, 곧 하나님께서 고통을 들으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갈은 이집트 여인, 곧 이방인이요 또 하인이었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자기 주인에게서조차 버림받아 쫓겨난 상태입니다. 이젠 광야에서 죽어도 누구 하나 돌아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 바로 그 여인을 찾아가 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여인의 신음소리와 고통의 기도소리를 들으신 것입니다. 샘물 곁에서 말입니다.

하갈은 샘물 곁에서 만난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고백합니다.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나를 그래도 하나님은 끝까지 감찰하시고, 내 고통의 신음에도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고백한 것이지요. 2005년 한 해, 감찰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시며, 주 안에서 마침내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4
그로부터 수천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샘물로 어느 여인이 물을 길러 나왔습니다. 마침 그 때 유대인 청년 하나가 우물가에 있다가 그 여인에게 물 한잔 달라 청하면서 긴 대화가 시작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샘물 곁에서 주님을 만나는 장면인데요, 그 때 우리 주님이 그 여인에게 주신 말씀을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새 해 선물로 받으며 말씀 마당을 닫겠습니다. / 요한 4:13-14 / (읽기)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아멘!>

기도 / 사랑의 하나님, 2005년 한 해를 살면서, 주님처럼,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그 어떤 일에도 책임을 전가하지 않겠습니다. 나에게 맡겨주신 일, 다른 이에게 떠넘기지도 않겠습니다. 주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옵소서.

여기 샘물가에서 우리를 만나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2005년 한 해, 주님 계시는 샘터를 즐겨 찾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여기 샘물가에서 늘 주님을 만나, 주시는 생수를 마시며, 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삶이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여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라 하신 그 명령, 온전히 이루어드리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를 떠나지 마시고, 여기 샘 곁에 늘 계시옵소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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