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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기를 압시다 (롬 13: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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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윤성진 목사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이 뚜렷해서 가을이 되면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구나, 겨울이 오면 또 한 해가 지나가는 구나 그렇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적도지방에서는 춘하추동이 따로 없다보니까 사람들이 한 해가 지나가는 것을 잘 모른다고 합니다.

나이를 물어봐도 몇 살이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몇 살 쯤 된다고들 대답한답니다. 때에 대해서 매우 둔감하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나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합니다. 시간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시간을 떠나서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몇 살 되었다, 하면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시간을 잘 다루어야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시험을 치는 학생도, 시험을 잘 치기 위해서는 시간을 잘 안배(按排)를 해야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잡고 끝까지 씨름을 하다가 결국에는 아는 문제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학생은 지혜롭지 못한 학생입니다. 지혜로운 학생은 아는 것부터 먼저 다 쓰고 난 다음에 모르는 것은 뒤에 하는 것이 지혜로운 학생입니다.
농사하는 사람들도 파종할 때가 있고, 제초할 때가 있고, 거름 줄 때가 있고, 또한 추수할 시기가 있습니다. 이런 시기를 잘 사용해야, 놓치지 않아야 농사를 잘 지을 수가 있습니다.
고기를 잡는 사람도 만조(滿潮) 와 간조(干潮)의 시기를 잘 파악하고 출항해야 좋은 고기를 많이 잡을 수가 있습니다. 때와 시기를 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무한정(無限定)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한정(限定)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 암 환자만 시한부(時限附)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는 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자는 26살만 되면 그때부터 늙기 시작한답니다. 여자들도 24살만 되면 늙기 시작 한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태어나서,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늙어 가다가, 결국 시간 속에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시기를 잘 모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이 시기를 알라고 하는 데 우리는 시기를 잘 몰라요. 나이가 많이 드신 분들도 자기 나이와 건강을 잘 분간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집에 불이 날 조짐을 보이면 집 안에 있는 쥐들이 먼저 소란을 피우고 집을 떠나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모릅니다. 태풍이 불어와서 배가 침몰할 위기가 올 것 같으면 배가 아직 출항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배 안에 있던 쥐들이 배를 떠나서 육지로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일기예보는 신경 쓰면서 왜 이 시대가 어느 시대인지 시대의 징조를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신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시간에 대해서 말할 때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카이로스(kairos)라는 시간과 크로노스(chronos)라는 시간입니다. 크로노스는 1년, 12달, 흘러가는 물리적인 시간입니다. 그런데 카이로스는 시간은 시간인데 의미 있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2004년 12월 26일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지나가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오늘 되게, 내 인생의 한 사건이 되는 시간이 되게 할 수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잊을 수 없는 한 시기가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이 연말이니까 이렇게 연말을 보내고, 또 연말을 보내고, 몇 번을 보내면 내 인생이 끝나겠구나, 결국 여러 해를 보내다 보면 죽음이 내게 오겠구나, 그러므로 연말이 되었으니 죽음이 그만큼 가까워 온 줄 알고 내 기력이 더 쇠하기 전에, 내 기억력이 더 감퇴하기 전에, 내 경제력이 더 떨어지기 전에 남은 시간 동안에 좀 더 믿음으로 살고, 좀 더 알차게 살고, 좀 더 깨끗하게 살아야지 하고 깨닫고 살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흘러가는, 크로노스의 시간이 아니라 의미 있는 카이로스의 시간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시간을 성경에는 <세월을 아끼라>고 말합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세월을 낚아채라’는 말입니다. ‘세월을 붙들라’는 말입니다.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송년주일을 맞이하여서 흘러가는 시간,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 의미 있는 시간, 이 시간을 내 시간으로 만들어서 우리 인생이 달라지고, 더욱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왜 이 시기를 알라고 했습니까?

왜 이 시기를 알고 깨라고 했습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보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시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거에 구원받았다고 말합니다. 또 구원받은 사람이 생활이 달라지는 오늘의 구원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원받아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화의 구원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처음 믿을 때보다도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듣고, 기도하면서, 날마다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성경대로 살아가는 삶의 변화가 있습니다. 이것을 ‘성화(聖化)의 구원(救援)’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미래의 구원이 있습니다.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영육 간에 구원 받아서 천국의 축복을 누리게 될 영화榮化)의 구원이 남아 있습니다. 그때는 우리가 시공간(視空間)의 제한을 받는 몸을 다 벗어버리고 변화된 몸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죽음도 한숨도 걱정도 없는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영화의 구원이 우리를 위해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원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서 이루어질 하나의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 날짜는 하나님이 정해 놓고 있는 한 날이 있습니다. 그날을 우리는 몰라요. 하나님만 아시는데 그 정해 진 날짜는 아무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날짜를 알 수가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그 날짜는 정해져 있고 우리는 이 한 해를 보내면서 한 해 더 그 재림의 날짜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개인이 누릴 영화의 구원도 있습니다. 내가 언제 이 세상을 떠날는지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우리는 모르지마는 정해진 한 날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날이든지, 내 인생의 종말이든지그 날짜는 정해 져 있는데 금년에 우리가 한 해를 보내니까 그 날이 한 해 더 가까워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 날이 한 해 더 가까워졌으니까, 이 시기를 알고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작년보다도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종말이 더 가까워졌으니, 이제 우리는 더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그 마지막 때를 준비할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해가 지나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이 한 해 더 가까워졌습니다. 영광스럽게 구원될 날이 한 해 더 가까워 졌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설 날이 가까워 졌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날이 한 해 더 가까워 졌습니다.

내 삶의 이력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 나는 이렇게 일생을 살아 왔습니다.” 하고 보고할 그 때가 한 해 가까워 졌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한 해 가까워 졌으니까 이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깨어야 하는 것입니다. 깨어 일어나서 그 재림을, 그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는 <깨어라, 일어나라>하는 말들을 죽은 사람을 향해서 일어나라, 병든 사람을 향해서 일어나라, 잠자는 사람을 향해서 일어나라, 깨라고 했습니다. 내 신앙이 잠들고 잇지 않는가, 내 봉사가 잠들고 있지 않는가, 내 헌신이 잠들고 있지 않는가, 내 기도가 깊이 잠들고 있지 않는가, 우리 자신들을 살펴보면서 이 종말의 시기에, 한 해의 마지막 송년주일에 우리의 신앙을 다시 한 번 깨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육신이 깊이깊이 잠들면 물질을 도적맞을 수가 있습니다. 백성들의 도덕과 양심이 잠들면 나라를 빼앗깁니다. 영혼이 잠들면 천국을 도둑맞고 상급을 도둑맞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잠들면 시험 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신앙을 깨우십니다. 향락에 잠들면 우리의 육신과 영혼을 다 도적맞게 되는 것입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우리의 종말이 한 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은 성자요, 신학자요, 교회사(敎會史)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를 잠에서 일어나게 한 말씀이 오늘 우리가 읽었던 이 말씀입니다. 어거스틴은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생활은 참 방탕했습니다. 배운 것은 많았지만 참 못된 짓을 많이 했습니다.
죄를 짓는데 필요에 의해서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쾌감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남의 밭에 들어가서 사과를 따 먹는데 배가 고파서 사과를 따 먹는 것이 아니고 남의 밭에 들어가서 사과를 훔치는 재미가 어떨까하고, 죄 짓는 그 재미, 죄 짓는 쾌감 때문에 죄를 지었습니다.
사생아도 낳았습니다. 20년 동안 그렇게 살았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 덕분에 끝내는 회개하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교회도 다녔습니다. 성경도 읽었습니다. 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배어있던 과거의 습관을 끊어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옛사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되지를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정원을 거닐고 있을 때에 이웃집에서 소년인지 소녀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집어 들고 읽어라! 들어서 읽어라!”하는 노래가 계속해서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래서 그는 방에 들어가서 성경을 들고 폈더니 오늘의 본문말씀이 자기의 눈 안으로 빨려들어 왔습니다. 가슴속에 막 와 닿았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고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이 그의 가슴속에 막 와 닿는 순간에, 들어오는 순간에 그는 깊은 잠에서 깨어 날 수가 있었습니다. 어두움이 물러갔습니다.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끊고 싶었지만 끊지 못했던 과거의 옛 습관들이 깨끗이 끊어지고 지워졌습니다. 드디어 성 어거스틴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아직까지 꿈틀거리는 정욕에 사로잡혀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신앙보다도 세상 재미에 빠져있는 분이 있습니까? 세상 취미 때문에 신앙 속으로 선뜻 들어오지 못하는 분이 있습니까? 신앙의 잠에 빠져서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그런 분이 있습니까?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깨어야 됩니다. 잠에서 깨어나게 해 달라고 주님 앞에 기도해야 됩니다. 어거스틴을 변화시킨 이 말씀을 통하여서 나를 변화시켜 달라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야 합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왜요? 우리의 구원이 작년보다도, 처음 믿을 때보다도 한 해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 앞에 서야 할 때가 한 해 더 가까워 졌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 흘러가는 2004년 12월 26일, 이 날을 그저 보내지 말고, 크로노스의 시간을 그저 보내지 말고, 물리적인 시간을 그저 보내지 말고, 이 시간을 내 시간으로, 의미 있는 나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어서 어거스틴이 성 어거스틴이 된 것처럼 우리의 삶도 새롭게 출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벗을 것 벗어 버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인생의 분깃점이 될 수 있는 축복의 날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세상은 점점 어두워져 갑니다.

12절을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유토피아(Utopia)를 꿈꾸고 있습니다. 19세기 이래 지상천국(地上天國)을 건설하려고 했던 유토피아 사상은 칼 막스(Karl Heinrich Marx)나 엥겔스(Friedrich Engels)나 레닌(Vladimir Il'ich Lenin)이나 스탈린(Iosif Vissarionovich Stalin)으로 이어졌지만 이 지상에 지상천국이 아니라 결국에는 지옥(地上地獄)이 만들어지고 말았습니다.

인류의 꿈과 행복을 실현할 것이라고 믿었던 과학으로 인하여서 편리하게는 되었지만 인류의 멸망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세상은 더 깊은 밤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습니다.
범죄는 날로 지능화되고 흉포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세상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침이 가까워오고 있다’는 하나의 징조입니다. 세상에는 점점 더 심각한 죄악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죄들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이 생긴다고요.

그럴 때마다 ‘아, 세상이 왜 이리 되었는가.’하고 실망하고 낙심하지 마세요. 우리를 놀라게 하는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아! 그렇구나! 이제 종말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구나, 깜깜한 세상이 되었구나, 이제 예수님의 재림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구나, 이제 일어나서 깨어야지, 바른 믿음생활 해야지, 그렇게 다시 한번 각성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3. 우리가 해야 할 일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는 것이 뭡니까? 13절에 나오는 6가지의 생활입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게 바로 어두움의 옷을 벗는 것입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라>. 방탕이 뭡니까? 무질서입니다. 육체의 정욕이 원하는 대로 아무 제재 없이 내맡기고 방향감각이 전혀 없는 삶, 먹고 마시고 소리 지르면서 돌아다니는 삶을 방탕이라고 합니다. 이 방탕의 원인이 뭡니까? 술 취한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탕과 술 취함을 하나로 묶고 있습니다.
술로 인한 피해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의 사회가 술 문화인데 우리나라에 작년 한 해 동안 마신 술이 2억 몇 천 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 당 술을 몇 병씩 마셨다는 말입니까? 세계에서 술 많이 먹기로 두 번 째입니다.  학생들도 술 문화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술 파티로부터 시작해서 마칠 때까지 술 파티로 마칩니다.

부산의 명문대학에 우리 교인의 자제가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는데 너무 친구들이 술을 많이 마셔서 도저히 견길 수가 없어서 자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술을 마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자퇴를 하고 말았습니다. 학생들 안에서 이런 술 문화가 팽배해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술 먹지 않으면 직장에 다닐 수가 없는 직장도 있습니다.
술 문화에서 벗어나야 됩니다. 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고 술 때문에 얼마나 건강을 해치고 술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교통사고가 나며 술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재산상의 피해를 입고 있습니까? 그런데도 아직까지 술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술 문화에서 벗어나야겠습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이 말씀을 우리 가슴속에 잘 받아들여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문화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용단을 내릴 수 있는 이 송년주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술 잘 마시고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술도 잘 마시고 예수도 잘 믿는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보다도 술이 더 좋은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는 예수 제대로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성경에 술 취하지 말라고 했지, 술 마시지 말라고 했느냐 하면서 나는 적당하게 술을 마셔서 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참 성경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술을 마시면 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취하면 용감하게 죄짓습니다. 용감하게 죄짓고 난 다음에는 나는 술을 마셔서 그렇게 죄 지었다고 그렇게 핑계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술을 마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술을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잠언 23장 20절에 보면 술을 즐기는 자와 사귀지 말라고 했습니다.
21절에는 술 취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29절에는 재앙이 뉘게 임하느냐 분쟁이 누구에게 일어나느냐 원망이 누구에게 있느냐 까닭 없는 창상, 아픔이 누구에게 있느냐, 술 마시는 사람에게 있다 31절에는 술을 보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술을 보지도 말라, 술 취하지 말라, 술 마시지 말라고 합니다. 술을 끊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2004년  12월 26일, 크로노스의 시간은 지나갑니다. 이 시간을 의미 있는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비결은 방탕과 술 취하는 분이 있다고 하면 용단해서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송년주일이 인생의 분깃점이 되는 카이로스의 참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 음란과 호색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적(性的)인 범죄입니다. 음란은 ‘코히테’라는 말인데 ‘침대’라는 뜻입니다. 누워서 안 될 침상에 누워서 죄를 저지르는 것을 음란이라고 말합니다. 자기 아내하고 누워야 되는데 남의 아내와 눕는다든지 결혼하지 아니한 사람과 눕는다든지 이것이 바로 음란이라는 말입니다.
음란문화가 이렇게 판을 치고 있으니까 가정이 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을 보세요. 어린애들에게 보여주기 힘든, 벗고 나오는 장면들이 얼마나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 보세요. 가정이 있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애인이 있답니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이런 해괴망측한 일이 있는데 어떻게 그 가정이 유지될 수 있습니까?
밀양의 여중생 윤간사건 보세요. 40명이 넘는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1년 동안 윤간을 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양심의 가책, 죄의식을 가지지 않습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만약 내 자녀가 피해자라고 상상해 보세요. 피가 거꾸로 흐르지 않겠습니까? 이게 다 어른들이 보여준 것을 애들이 따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성적(性的)인 범죄가 소돔과 고모라보다도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폼페이보다도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로마의 타락한 시대보다도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역사 이래로 성적으로 타락한 나라 다 망합니다.
성적으로 타락한 지역이 다 망합니다. 이는 역사가 증명해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몸은 성전이라고 했는데 음란한데 우리 몸을 함부로 놀릴 수 없습니다.

두 번째로 벗어야 할 죄악들이 뭡니까?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성도들은 연루(連累)되지 않아야 할 죄악인데 성도들까지도 여기에 연루되어 있다고 하면 이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음란과 호색의 옷을 벗어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 죄에 연루되어 있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추어내기 전에 내가 스스로 회개하여서 끊어버리고 벗어버릴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 바른 신앙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끊어야만 내 신앙이 살고 내 신앙이 살아야만 내가 삽니다. 끊어야만 내 가정이 살고 끊어야만 내 자녀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해마다 교수들이 한 해의 사회상을 사자성어로 선택하여서 교수신문에 싣곤 해 왔습니다. 2001년도에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라는 사자성어를 통하여서 그 시대상을 잘 표현했습니다. 2002년도에는 이합집산(離合集散), 2003년도에는 우왕좌왕(右往左往), 금년에는 당동벌이(黨同伐異)라는 말을 선택을 했습니다. 당동벌이는 중국 후한(後漢)시대의 당고열전(黨錮列傳)에 나오는 말입니다.
후한은 외척(外戚)과 환관(宦官)과 유생(儒生)들의 집단이 대립하고 항쟁하여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가 망한 시대입니다. 역대 황제는 대부분 어릴 때에 즉위하는 바람에 초기에는 섭정(攝政)을 맡은 황태후와 그의 친인척들이 실권을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황제가 장성하게 되면 환관을 친위세력으로 삼고 외척을 제거했습니다. 환관이 오래 권력을 잡다가 보니까 또 다시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었습니다. 이때에 선비집단들, 유생들이 가세하여서 부패한 환관, 호족세력을 탁류(濁流)라, 아주 더러운 물이라고 말하고 자신들을 청류(淸流)라 하여서 서로 물고 물리는 권력다툼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는 당을 만들어서 단합하고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과는 공격하고 배척하여서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을 당동벌이라고 합니다.

금년에 우리나라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대통령 탄핵, 수도이전, 국가보안법 등 4개 법안을 둘러싸고 1년 내내 당파적인 대립이 계속되어 온 한 해였습니다. 나라는 이렇게 되었는데 오늘 교회는 어떻게 되었느냐, 신앙적으로는 이런 일들이 없었는가, 당을 짓고 끼리끼리 모여서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는 이런 일들은 우리에게 없었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쟁투와 시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서로 싸우고 시기하고 물고 먹으면 다 동시에 망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감정적인 죄입니다. 금년 한 해 혹시라도 쟁투와 시기를 해서 맺힌 것이 있다고 하면,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하면, 보지 아니하고 얼굴을 돌리고 말하지 아니하는 한 맺힌 관계가 있다고 하면 풀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어두움의 옷을 벗는 것입니다. 이것을 벗어야만 새 옷을 갈아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산상보훈을 보면 <너희가 예배드리다가 누구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드리려는 제물을 두고 예배드리지 말고 먼저 그 사람을 찾아가서 화친(和親)하고, 풀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예배드리라, 그래야만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혹시라도 우리 가족 중에서, 혹시라도 우리 구역식구들 성도들 가운데서 하지 못할 일들을 했다든지, 그래서  맺혀진 일들이 있다고 하면 다 풀고 넘어가야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줄 믿습니다.
어두움의 일을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무엇을 벗어버려야 합니까? 방탕과 술 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 이런 육체적인 죄들, 성적인 죄들, 감정적인 죄들, 이런 온갖 죄들 외에 내가 습관적으로 짓는 죄들이 있다고 하면 다 옷을 벗듯이 훌훌히 벗어버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수 있는 성도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어두움의 옷을 벗어버리고 대신에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습니다. 빛의 갑옷을 14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 빛의 갑옷이 뭐냐,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시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으로 하라>. 긍휼과 자비 겸손과 온유 인내와 용서의 옷이 바로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에게 싸이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갑옷은 언제 입습니까? 전쟁할 때 입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어두움의 세력 속에서 살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전쟁터에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영적(靈的)인 군사들입니다.
전쟁에 나가는 사람은 완전무장을 해야 합니다. 방탕과 술 취하지 않으려고 갑옷을 입고 이것과 더불어 싸워야만 여기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음란과 호색하지 않으려고 애를 써야만 여기 빠지지 아니하지, 텔레비전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보여주는 이것을 통해서 계속해서 자극받게 되면 이런 것에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과 싸워야 됩니다. 쟁투와 시기하지 아니하려고 날마다 갑옷을 입는 병사와 같이 싸워야만 우리가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죄와 어두움의 영과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이 싸움에 이기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인내와 온유와 용서의 갑옷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나가게 될 때 이 어두움의 세력가운데서 우리는 이기고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2004년 12월 26일 송년주일입니다. 마지막 주일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이 때를 그저 흘려버리지 말고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마지막 때를 대비하는 자가 참 지혜로운 것입니다.
흘러가는 이 마지막 주일을 우리가 그저 흘려버리지 말고, 이 크로노스의 시간대로, 물리적인 시간으로 흘러 보내지 말고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붙들어서 이때 벗어버릴 것 벗어버리고 새로운 결단을 가지고 나가게 되면 마지막 주님 앞에 섰을 때 정말 영광스럽게 설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깨어야합니다.
오늘 이 송년주일에 지금까지 우리가 잠들었다고 하면 이제 잠을 깨어서 좀 더 주의 뜻대로 살아가리라고 다짐하고 우리가 6가지의 죄악,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의 삶을 살아왔다고 하면 이것도 벗어버리고, 끊어버리고, 잘라버리고, 이제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한 해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더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송년주일을 보낸다고 하면 이 시간을 잘 건져서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사용한다고 하면 우리가 언젠가 주님 앞에 서는 마지막 순간에 영광스럽게 설 수 있는 성도들 될 줄 믿습니다.

부끄럽게 서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서서 영광스러운 하나님나라의 은총을 입게 될 줄 믿습니다. 마지막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잠을 깰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벗어버릴 것 벗어버리기를 바랍니다. 입을 것 입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섰을 때 영광스럽게 설 수 있는 우리영락의 온 성도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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