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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7년을 수일같이 봉사합시다(2) (창 2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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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한규 목사

< 1등 목사를 꿈꾸며 나갑시다! >

지난 목요일 미국 텍사스에서 목회하는 한 동료 목사님과 통화를 했습니다. 뉴욕에서 같이 공부했던 신학교 동기목사님인데, 그분이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 지난 시애틀에서 한 목회자 연장교육은 참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금년 연장교육은 좀더 잘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단이 120년 동안 선교를 하면서 많은 노하우가 있고, 한 분야에 탁월한 분들도 많은데, 이제는 외부의 유명한 분만 강사로 모시지 말고 그런 분들을 활용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를 감독 목사님과 총회 교육국장 목사님에게 하니까 반응이 시큰둥했다고 합니다. 사실 감독 목사님과 교육국장 목사님이 얼마나 신경을 써서 준비했겠습니까? 아무리 교육프로그램을 잘 준비해도 3박 4일의 교육을 통해 모든 목사님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할 때 프로그램의 주관자 및 리더의 고충을 이해하고 격려하며 그들의 지침에 최대한 순종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할 것입니다.

제가 그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단이 잘 되고 선교를 힘 있게 하는데 실제적인 보탬이 되려면 오히려 목사님이 섬기시는 교회가 부흥되어 영향력을 키우고, 또한 교단을 위해서 선교헌금도 많이 내고 헌신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많은 의견보다 많은 헌신이 교단과 감독목사님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서 제가 이런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들도 4종류의 목사님이 있습니다. 1등 목사님은 교단 선교헌금에 힘써 동참하고 순종도 잘하는 목사님입니다. 2등 목사님은 교단 선금헌금은 안 하지만 순종을 잘하는 목사님입니다. 3등 목사님은 교단 선교헌금은 많이 내지만 자기주장과 요구도 많은 목사님입니다. 4등 목사님은 교단 선교헌금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자기주장과 요구가 많은 목사님입니다. 우리 1등 목사가 되기를 같이 꿈꿉시다. 우리 교단에 1등 목사들이 많아지면 목회자 연장교육에서 탁월한 교육을 받지 못해도 우리 교단은 반드시 지금보다 더 선교를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의 얘기를 듣고 목사님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 함께 1등 목사가 되기를 꿈꾸며 나갑시다.”라고 맞장구를 쳐주었습니다. 비록 전화상이었지만 그런 얘기들을 통해 서로의 비전을 격려하는 좋은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1등 목사를 찾고, 또한 1등 교인과 1등 시민을 찾고 계실 것입니다.

< 7년을 수일같이 봉사하는 길 >

오늘은 우리 교회 설립 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제 7년째 되면서 금년 우리 교회의 표어를 “7년을 수일같이 봉사합시다”로 정했는데, 그처럼 봉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난주에 4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추가로 몇 가지 말씀을 더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7년을 수일같이 봉사하려면 교회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요?

1.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요새 왕따 문제가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및 선교사역에서는 왕따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새 실업 문제도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및 선교사역에서는 영적 실업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운동경기에는 관중이 필요하지만 교회 및 선교사역에서는 관중보다는 직접 뛰는 선수가 되려고 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의 중요한 생명은 참여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1년, 2년 시간이 지나면 점차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가끔 갈등과 불편함이 싫어서, 혹은 성격이 조용해서 봉사를 꺼리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조용히 참여하면 됩니다. 참여가 꼭 무대에 올라서는 것만은 아닙니다. 무대에 올라서지 않고 참여하는 방법이 많습니다. 조용히 설거지 하고, 아무도 없을 때 교회에 와서 청소하고 정리하고, 조용히 선교와 구제에 참여하는 것도 참여입니다. 하나님은 무대 위에서 참여하는 사람만큼 무대 아래에서 참여하는 사람에게도 큰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진짜 풍성한 축복과 기적을 체험하려면 화려한 무대와 화려한 기적을 찾지 말고 오히려 봉사거리를 찾아야 합니다. 화려한 것만 바라보면 영적으로 초라해지고, 초라한 것을 살피면 영적으로 화려해집니다. 그러므로 진짜로 축복받기를 원하면 천 명 이상의 교회만 찾아 등록하지 말고, 내 손길이 필요한 100명 이하의 교회도 찾아 등록할 줄 알고, 시골 교회와 선교지 교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무엇이 기적입니까? 최대의 기적은 ‘자기만 위해 살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나 혼자 살기에 급급한 사람이 되면 급급하게 살 수 있을만한 축복밖에 받지 못합니다. 반면에 교회와 선교에 힘써 동참하는 넉넉한 사람이 되면 넉넉하게 살 수 있는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게 희생하는 삶이 2% 부족하다!”고 느끼면 오늘 이 시간에 희생하는 삶을 새롭게 다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생이 없는 삶에서 축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합니다. 눈앞의 것에 연연하는 애벌레처럼 살면 평생 기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꽃가루를 옮겨주는 나비처럼 살면 하나님께서 예쁜 날개를 주셔서 창공을 날게 하실 것입니다.

기적을 밖에서 구하지 말고, 기적을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기적은 먼저 우리들에게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봉사하는 손길은 기적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교회가 깨끗해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꺼진 등이 살아나고, 교육관이 정리되고, 선교지의 필요한 것들이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처럼 우리가 뭔가 의미 있는 일에 자원봉사자로 나선다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기적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려고 하면 우리 앞에 기적이 펼쳐지지만 사명을 외면하고 마술적인 기적과 세상적인 성공만 추구하면 반드시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찾아다니는 사람에게는 기적을 주지 않고 내 일상에서 아름다운 삶을 실천하며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에게 진짜 기적을 주실 것입니다.

2. 리더를 존중해야 합니다.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일입니다. 그러나 참여의 원리를 혼동해서 리더의 영역과 권위까지 흔들어버리면 그 참여는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참여와 참견은 다릅니다. 참여는 행동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참견은 말로만 참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대해서는 “이래야 한다!”고 비판을 많이 하면서 교회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교회가 선교와 구제를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뜻있는 말을 많이 하면서도 정작 선교와 구제를 위해서 헌금을 하나도 하지 않는 것은 문제입니다. 정치인을 욕하면서 선거 날 놀러 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좋은 의견만 많은 것은 사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진짜 좋은 것은 좋은 행동이 많은 것입니다.

리더가 된다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요즘은 사장노릇 하기도 힘들고, 부모노릇 하기도 힘듭니다. 그처럼 리더의 고충을 알고 리더에게 최대한 협조하고 리더를 섬겨주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리더가 됩니다. 적어도 부모는 다 되기 때문에 결국 리더의 길은 자기 자신도 가야 할 길입니다. 그런데 내가 리더를 존중하지 못하면 나중에 내가 리더가 되었을 때 존중받지 못합니다.

참여는 ‘내 의견을 주장하고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의 부족한 부분을 묵묵히 메워나가는 것’입니다. 주관이 없는 사람이 되라는 말은 아닙니다. 객관도 있어야 하지만 주관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관이 있되 충성과 인내라는 인격을 먼저 갖추어야 합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은 ‘자기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의 의견’보다 ‘묵묵히 충성하는 사람의 의견’이 더 잘 수용된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의 경영 방침과 철학과 분위기를 파악하고 그 방침에 잘 따르는 일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열심히 해도 회사의 기본 방침을 따르지 않고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가 왜 이런 방향으로 갑니까? 바꿔야 합니다.”라고 하면 성공적인 회사원이 될 수 없습니다. 바른 사원은 먼저 충성을 인정받은 후에 좋은 방향을 제시하는 사원입니다.

제가 김 전도사님이 다시 우리 교회에 온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아했는지 아내에게 몇 번이나 “내가 꿈꾸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좋아한 이유는 능력이 탁월해서도 아니었고, 외모가 잘 생겨서도 아니었고, 목회자를 이해하고 충성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해도 항상 “예! 한번 해보죠!” 합니다.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전도사님이 무슨 의견을 내면 제가 거의 그 의견을 듣고 따릅니다. 왜냐하면 그 충성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이든지, 교회생활이든지, 어떤 공동체 생활이든지 먼저 충성됨과 사람됨과 진실함을 인정받고 그 다음에 ‘의견의 봉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의견은 대개 수용됩니다. 그러나 충성과 진실함과 사람됨을 인정받기도 전에 ‘의견의 봉사’만 열심히 하면 그 의견은 불행과 상처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리더의 스타일을 바꾸려는 사람이 되기보다 먼저 리더의 스타일을 존중하려고 할 때 칠년을 수일같이 봉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축복을 기대해야 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가장 행복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가 조건 없는 봉사와 헌신입니다. 사람들은 헌신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한 대견함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우리가 돕는 선교사님들을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 잘 알지도 못하는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기도의 손길을 모으고, 선교헌금을 하고, 컴퓨터를 기증하고, 무명으로 성경 훈련센터 건축에 동참할 때 얼마나 가슴 뿌듯한 영적인 만족감이 있습니까?

그런 행복과 만족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봉사와 헌신을 다짐하고 시작하는 것은 잘합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 봉사와 헌신에 동참하면 기쁨이 넘치고, 재미도 있고, 의욕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어려운 환경이 펼쳐집니다. 가정과 사업에 골짜기가 생기고, 갈등의 골짜기도 생기고, 때로는 권태의 골짜기도 생깁니다.

그때 봉사와 헌신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때 봉사와 헌신을 포기하기 않는 것이 진정한 헌신이고, 그런 헌신은 더 큰 축복을 예비하는 원천이 될 것입니다. 인생에는 올라갈 때가 있고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내려갈 때에 잘 반응해서 내려갈 때의 반동을 잘 이용하면 우리는 더 많이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삶이 힘들어도 봉사와 헌신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편 126편 마지막 구절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면 반드시 거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진실한 봉사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축복을 믿고 기대해야 합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과거에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현재도 책임지시고, 미래에 큰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갈수록 더 큰 축복을 받게 됨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으로 봉사하면 지금은 메마른 것 같고, 가망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메마른 땅바닥에서도 반드시 은혜의 강물을 만드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말씀을 보면 종말이 가까울수록 세 가지를 하라는 권고합니다. 첫째,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고(7절), 둘째, 열심히 서로 사랑하고(8절), 셋째, 서로 봉사하라고 합니다(9-10절). 가끔 보면 나이가 많이 드셨다고 봉사를 놓는 분들이 있습니다. 규정상으로는 은퇴가 있어도 교회봉사에는 은퇴가 없어야 합니다. 천국에 가실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봉사해야 합니다.

금년 6월 말쯤에 우리 교회에서도 몇 분의 명예권사 임직식을 하려고 기도 중에 있는데, 어떤 교회들은 권사가 명예권사가 되면 교회 일을 놓게 하지만, 교회의 공식적인 일은 놓게 되어도 비공식적인 일은 더 많이 함으로 명예권사가 ‘명예만 있는 권사’가 아니라 ‘교회의 가장 명예로운 권사’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처럼 봉사함에 은퇴가 없고 헌신함에 후퇴가 없는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성도의 본질은 봉사와 헌신에 있습니다. 그리고 봉사하고 헌신해야 하나님의 자녀임이 피부로 느껴집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봉사하고 헌신해야 하나님의 자녀임이 실제로 느껴집니다. 믿으면 최상의 행복이 주어지지만 봉사하고 헌신해야 그 행복이 실제로 내 것이 됩니다. 사실 신앙생활의 진정한 행복과 실제적인 축복은 봉사하고 헌신할 때 주어집니다.

시편 37편 2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종일토록 봉사하면 그 자손이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한국 교회 초기에 하나님의 일에 헌신했던 사람들 중에는 천민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도 장로가 되고, 그 자녀들도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봉사는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는 것입니다. 봉사하면 반드시 축복 받고 무엇보다 영혼이 행복해집니다.

잠언 10장 4절에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일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시고 부지런히 봉사하는 자에게 영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에 의하면 사람은 일할 때 병균에 대한 저항력이 평소의 4배로 높아진다고 합니다. 부지런히 봉사하면 건강의 축복도 받습니다.

< 영적인 실업자가 되지 마십시오 >

1987년 제가 청년 때 잠깐 한 개척교회를 전도사처럼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교인 간에 큰 갈등이 생기면서 그 교회가 1년 만에 문을 닫았습니다. 제가 그 유탄을 맞고 교회 봉사자리를 잃고 영적인 실업자가 되었습니다. 그 일로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컸는지 모릅니다.

교회 문을 닫은 지 며칠이 지난 그해 5월 20일 경에 회사에서 점심식사를 하는데 무엇인가 배를 찌르는 듯한 통증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밥만 먹으면 엄청난 고통이 밀려 왔습니다. 그때 선교사가 되려고 미국 유학을 준비 중이었기 때문에 5월 31일부로 회사를 그만 두었습니다.

8남매 중의 7명은 다 결혼했고, 부모님까지 미국으로 간 상태였기 때문에 저만 적막한 집에 혼자 있으면서 얼마나 쓸쓸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회사까지 그만두고 진짜 실업자가 되다 보니까 더 쓸쓸했고, 교회에서까지 영적 실업자가 되니까 사는 맛이 하나도 없었고 배의 고통은 더 심해졌습니다.

6월 초에 들어서면서는 김밥 몇 조각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병원에 가지 못했습니다. 원래 병원에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병원 가는 법도 몰랐고, 병원 가야 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냥 나으려니 생각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섣부른 지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금식에 대한 맹신이었습니다. 금식하면 배 아픈 것은 다 낫는다는 약간 엉뚱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6월 초에 처음 3일 간 금식했습니다. 조금 배가 괜찮은 듯하다가 보호식을 하는 이틀째에 다시 배가 아팠습니다. 그렇게 해서 8월 말까지 90일 동안 3일 금식, 4일 금식, 일주일 금식을 몇 번씩 했습니다. 그런데 금식할 때는 괜찮아지는 듯하다가 보호식을 하는 하면 다시 배가 찌를 듯이 아파왔습니다.

나중에는 입에 넣기만 해도 녹는 바나나킥 과자 몇 개만 먹어도 배가 아팠습니다. 그러니까 몸무게는 48킬로도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키가 작아도 뼈는 통뼈인데, 뼈 무게를 빼면 거의 살이 없었고, 뼈에 피부 가죽 하나 얹혀져 있을 정도로 말랐습니다.

그러다가 9월 초에 배를 쥐어짜는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아무도 없는 집에서 뒹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으로 어떻게 숨을 쉴 수도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헉헉거리며 뒹굴며 지내다가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죽는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다행히 이튿날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그날 기다시피 해서 처음으로 동네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위경련이라고 하면서 약을 지어주면서 내일 다시 와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약을 먹어도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기 때문에 그 약조차 먹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걸을 힘이 없어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고 그때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죽음의 금식에 돌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저의 짧은 생각에 의하면 3일 금식하고 부었던 상처 부위가 가라앉을 만하면 음식이 들어와 또 도지고, 그런 식으로 반복이 되니까 위의 상처가 아물어질 기회가 없는 줄 알고, 상처가 완전히 아물 때까지 물 이외에 아무 것도 먹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정확히 금식 15일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왠지 배가 깨끗해진 것 같았습니다. 물을 먹을 때 무엇인가 배에 얹히는 느낌이 없었습니다. 그때 금식을 그만 두고 보호식을 시작했습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보호식을 했습니다. 5일 동안 문제가 없었습니다. 10일 동안 문제가 없었습니다. 14일 동안 문제가 없었습니다. 보호식 15일째 되는 날 드디어 약간의 식사를 했습니다. 그 식사 후에 다시 배에 무엇인가 얹히는 듯한 느낌이 들면 어떡하나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식사를 했지만 아무 증상이 없었습니다. 배가 깨끗해진 것입니다. 그 뒤 지금까지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때 한 가지 확실히 느낀 것은 “영적 외로움은 건강의 적이요, 영혼의 무서운 적이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다 떠나서 외로웠고, 직장을 떠나서 외로웠고, 특별히 몸과 마음과 물질로 헌신할 수 있는 영적 일터와 관심사를 잃어버리고 영적 실업자가 되어서 외로웠습니다. 결국 사단의 공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큰 시련을 만났던 것입니다. 그때 영적인 실업자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확실히 경험했습니다.

제가 선교지에 있는 선교사님들에게 유난히 관심을 기울이고 그분들의 필요를 가볍게 지나치지 못하고 여러분들에게 “끊임없이 기도하고 돕자!”고 도전하는 이유는 첫째, 그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둘째, 저도 영적 외로움의 무서운 고통을 체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전방에서 수고하는 선교사님의 영적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정성과 관심을 통해 “후방에는 우리가 기도하고 있습니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면 선교님들이 얼마나 힘을 얻겠습니까?

우리는 실업자로 있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영적 실업자는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내 맡은 일을 찾아서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하며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에 건강을 주시고, 우리의 육신에도 건강을 주시고, 가장 복된 삶을 예비해 놓으실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7년을 수일같이 봉사하고 헌신함으로 영육 간에 강건함을 얻어 누리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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