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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팔복 (마 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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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예용범 목사

신년 벽두라고 해서 교회들이 축복성회 하는 것을 보며
도대체 무슨 복을 바라며
도대체 무슨 복을 가리킬까? 하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1) 복

복 싫어하는 사람 없습니다.
하나님 역시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다면 성도라도 할지라도 바라는 복과 하나님께 주시길 기뻐하는 복이 같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과 같아야 기독신앙이고, 좋은 신앙임에는 틀림없습니다.

① 세상 복
일반적으로 받길 바라는 복은 시대나 신앙이나 사람이 달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일류도 첨단도 유행도 없습니다.
대체로 나아지고 높아지고 많아지는 상태로써의 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물량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 진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이것도 복이라고 했습니다.

  창 26:12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으므로...”

그러나 이러한 복에는 태양의 이면같이 복 될 수 없는 모양도 찾아옵니다.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거부되지 않았다면 시기 받지 않았을 것이고, 우물도 뺏기지 않았을 텐데...
거부가 된 만큼 대가를 치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런 복 때문에 인생살이가 너나 할 것 없이 웃다가 우는 등 춤을 추게 되고,
이러한 인생이 모여 복잡한 세상사와 요란한 인간사를 만들어 냅니다.

② 하나님 복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복은 어떨까요?

  약 1:16-17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다.
호사다마다 없는 복입니다.

  잠 10:22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 천국
그 대표적인 복이 천국이라면 믿겠습니까?
여러분은 천국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고 믿고 있습니까?

단순히 성도가 죽은 후에 영원히 살 처소로만 믿습니까?
아니면 현재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천국도 있다고 믿습니까?

전자는 장소적인 천국이라면,
후자는 의미적인 천국입니다.

주님은 니고데모에게 「네가 거듭나야 된다」고 하시면서 거듭나지 않으면,
◦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고」
◦ 하나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둘의 하나님 나라는 전혀 다른 하나님 나라이지만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 의미적 천국을 현재의 삶속에서 누려야만 참 성도이고 그 성도만이
◦ 장소적 하나님 나라를 들어간다는 확실한 경고입니다.

  요 3:6-7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 팔복
거듭난 자가 이 땅위에서 누리는 천국 생활이 곧 팔복입니다.
◦ 위로를 받을 것이요
◦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
◦ 배부를 것이요
◦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하나님을 볼 것이요
◦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 상이 큼이라

  계 22:3-5는 장소적 천국의 미래생활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강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느니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추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어떻습니까?
팔복이나 실제 천국생활이 다르질 않습니다.

그러므로 팔복은 성도가 이 땅위에서 꼭 누려야 되고, 누릴 수 있는 저 천국의 성품이고 자기 내면의 천국 증거입니다.

2) 복 있는 자

그렇다면 과연 누가 복 있는 자입니까?
누가 행복한 사람입니까?

떨어지거나 내려올 권세를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까?
아님 경기 따라 줄어드는 재물을 쥐고 있는 부자입니까?
언제나 어디서나
◦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 팔복을 간직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누구인가요?
모든 성도가 다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 5:3 “「심령이 가난 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특별히 「심령」이라고 했던 것은,
뭇사람들이 느낄 수만 있는 감정적 마음이 아니라 오직 주님 모시고 사는 성도의 인격좌소를 가리킵니다.

오직 심령이 가난해야만 됩니다.

  빌 4:2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성도의 복 받을 그릇은 「심령」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심령이
하나님과 예수님과 영적인 것들에 대한 갈급함,
말씀을 더욱 알고자 하며,
성령충만을 위하여 기도하고,
예수님의 보혈이 더욱 드러내기를 갈망하는 마음 등...

이 모든 것이 시령이 가난하다는 증거입니다.

◦ 세상에서는 육신과 정욕적인 것에 갈급함이 있습니다.

◦ 세상 사람들은 은과 금과 부귀와 명예와 사치를 갈급하여 움켜잡고자 하기에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알 수 없고 갈급함도 없습니다.

이들에게 천국은 귀신 씨나래기 까먹는 소리이고 팔복은 상상도 못할 성품입니다.

이 가난함이 적극성을 뛸 때
◦애통함이요

이 가난함의 최고 모습이
◦ 의는 물론 주님을 위하여 욕 받고 핍박받고 순교까지 이룰 수 있는 모습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의 직분이 무엇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 성도만이 사나죽으나 천국입성자요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고후 6: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은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가진 자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신약의 사도들이
그 후의 교부들과 초대교회의 성도들이 팔복만 천국의 증거들을 가졌습니다.

이 팔복으로!
이 천국으로!
경건하여 죄악세상에서 거룩할 수 있었고,
담대하여 갖은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온유하여 갈등과 다툼의 시대를 품을 수 있었고,
충성하여 어둔 세상 빛 되는 산 제물 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써 이 복을 구하여야 합니다.

  굘 3:1-2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그러므로 성도로써 너무 「돈돈」찾아 다니지 마십시오.
「땅땅」도 하지 마십시오.
「건강건강」도 너무 하지 마십시오.

팔복 있으면 그 다음은 세상 것은 보너스로 따라 오는 것입니다.

늘 강조합니다만,
에서는 팥죽과 떡을 구하다가 장자권과 축복권을 잃었습니다.
반면 야곱은 없는 것을 얻고 마침내 이스라엘의 영광의 족장이 된 것을 기억하십시오.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이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찬양예배 때 영상으로 소개하겠습니다만,
작년 80세로 세상 떠난 맨발의 전도자가 계십니다.

그분을 처음 본 기자는 고아신자정도로 여겼습니다.
또 다시 볼 때는 그에게 광기가 없고 온유와 담대함이 있는 것을 보아 가깝게 취재도 했습니다.

◦ 청년 때는 동경 와세대학에서 유학을 했고,
◦ 독립운동을 하다 김구 선생과 함께 귀국한 애국지사이고,
◦ 김포공항입구에서 인천국도까지의 땅 부자였고,
◦ 개척교회와 고아들을 살폈던 목사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름 모를 병을 얻고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고치 받고 외로운 전도자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는 심령이 가난하여 천국을 소유한 자만 된 것이 아니라 여러 모양 있습니다
심령이 큰 자도 되어 모든 사람을 품다가 지하철 전도 중 앉아서 천국 입성했습니다.

  결 론)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앙자태는 여러 모양 있습니다.
◦ 기적이나 덕을 보고 따르는 무리도 있고,
◦ 말씀이나 삶을 바꾸고자 하는 무리도 있고,
◦ 십자가 곁에까지 울며 따라갔던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팔복이 그들 속에 있고 없고의 차이가 예수님 앞에서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입니다.

광야 같은 나그네 같은 인생살이에 팔복은 힘의 원천되고 천국소망의 근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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