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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가운데서 행하는 교인 (엡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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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교육하고 선교하며 봉사하는 교회의 금년 표어는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16:14)이며 생활 목표는 사랑 가운데서 행하는 (엡5:2)교회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도가 살아야 할 자세에 대해 교훈하시며 그 삶의 원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 받아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의 근거가 됩니다(Meyer, Mitton).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를 경험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엡4:32)에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고 하신 말씀과 연결이 됩니다.

'인자'는 하나님의 속성으로 (엡 2:7)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합니다.

이것은 타인의 필요를 생각하고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고후 6:6-10)은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성령의 감화와 거짓이 없는 사랑과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어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영광과 욕됨으로 말미암으며 악한 이름과 아름다운 이름으로 말미암으며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 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비', '인자'와 함께 신약에서 자주 나타나는 것으로 타인의 필요에 공감하고 동정하는 것입니다.

(갈 5:22,23)은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합니다.

이러한 행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모두가 '서로'에게 표현해야 하는 덕목입니다.

(골 3:12-14)은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합니다.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하라의 같이(카도스 카이)는 '일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서 하신 것이 그리스도인의 행동의 기준과 근거가 됨을 나타냅니다(Lincoln).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의 구원 행위는 모든 그리스도인 행위의 원래의 형태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을 용서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도 타인에 대해 용서해야 하며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용서 자세는 반드시 사랑으로부터 출발되어야 합니다(Wood).

  하라(기네스)는 실제로 '되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그렇게 되라'는 의미입니다.

서로 용서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교제 가운데서 반드시 드러나야 할 행위입니다.

(엡 1:5,6)은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기에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본받아 행해야 합니다.

(마 5:44-48)은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합니다.

(벧전 2:21-25)은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합니다.

자녀된 그리스도인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자신들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카르타고의 감독을 지냈던 '키프리아누스(Cyprianus)'  발음에 따라서는 '사이프리아누스'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 사람은 258년에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순교를 당했는데  “어머니인 교회가 없다면 아버지인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고 말했다합니다. 교회를 어머니처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사랑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용서는 구하는 즉시 이루어 집니다

뉴욕의 복잡한 밤거리에 한 젊은 청년이 병들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는 죄와 병고에 시달려 거의 죽어가고 있는 상태에서 무엇인가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경찰관이 살펴보니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나는 아버지께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중얼거리고 있습니다. 경찰은 그를 부축하며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 당시 뉴욕의 저명한 재벌이었습니다. 경찰은 곧 그의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지금 당신의 아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알렸습니다. 아버지는 옛날에 그런 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잊었다고 아들을 거부했습니다. 평생을 괴롭힌 아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 아버지와 아들을 전화로 연결시켜, 아들이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용서를 구하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아버지,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아버지께 용서를 받아야만 합니다." 이 말에 아버지는 "그래, 너를 용서한다. 좀더 빨리 회개했으면 그때에 용서할 터인데 왜 이제야 회개하느냐"고 안타까워했습니다. 아들 역시 더 일찍 돌아오지 못했음을 뉘우치면서 용서를 받고나서야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용서받지 못하고는 절대로 자유할 수 없습니다. 용서란 사람을 자유케 하며 소망을 줍니다. 사람은 용서를 미루기도 하나 하나님은 용서를 구하는 즉시 용서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즉각적인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우리도 즉각적으로 용서하며 사랑안에서 행하는 모두가 됩시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의 본질이며 동시에 그리스도인이 닮아야하는 성품의 본질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닮아야 할 사랑의 모범은 그리스도 자신입니다(Wood). 바울은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1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카도스)를 사용하여 모방의 기준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같이(카도스)는 그리스도인이 닮아 지녀야 할 사랑이 개인의 주관적 생각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객관적인 사랑에 근거해야 함을 말해 줍니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객관적 기준인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희생하신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역사 안에서 드러난 것입니다(Lincoln).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종교가입니다. 그는 시장 아버지와 첩이었던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첩의 아들이라고 눈칫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저주스러운 생이었겠습니까? 왜 나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담모퉁이에 우두커니 기대서서 역시 자기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에 북 치고 나팔을 불면서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대를 만났습니다. 저들이 전도하면서 외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나요 ?" "아무렴요,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쓴 글 가운데에는 '나는 기생 아들이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는 이야기가 종종 나타난다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그 확실한 의식, 그 감격이 가가와 도요히코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한 것입니다.

한때 선명회도 만들고 빌리 그래함보다 더 유명했고 선명회의 지도자였던 퍼어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피어스 박사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자기 부인과 이혼을 하느냐 같이 사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성격도 굉장히 괴팍했다 합니다. 그렇지만 퍼어스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합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마음에는 언제나 좋지 못한 요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일화가 많은데 모든 사실을 다 알고 보면 존경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보기도 합니다. 인도주의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는 자기가 인류를 사랑한다는 박애 정신을 생각하면 무지개 같아서 인류를 위해서라면 열 번이라도 죽을 용의가 있다고 했으나 그는 구체적인 사람과는 단 하루도 같이 살 수가 없었다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배후를 전부 다 알고 사랑을 하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미화시켜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소문난 사람들, 유명한 사람들, 성자들, 자서전을 쓴 사람들은 대개 다른 사람들이 미화 시켜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말하기를 자서전의 99퍼센트는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크롬웰은 한때 영국에서 매국노이고 위선자라고 해서 시체까지도 형벌을 받을 정도로 가혹한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토마스 카알라일이 크롬웰의 전기를 쓰면서 크롬웰은 200년만에 다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고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서 그 명예를 회복할 수가 있었다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해 볼 때 사람의 마음을 다 모르기에 때로는 그 모든 것을 다 알면서 일곱 번 속아 주고 열 번 속아 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속이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용서해 주고 사랑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독교의 사랑인 것 입니다.(인터넷정보클럽-김준곤 예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경험한 사죄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대속적인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으니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원리가 희생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를 밝히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휘페르 헤몬)는 무엇을 대리하여 행한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이 대속적인 것임을 말씀합니다(Wood).

바울사도는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 39:7)나를 모든 죄과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 욕을 보지 않게 하소서 (시 39:8) 내가 잠잠하고 입을 열지 아니하옴은 주께서 이를 행하신 연고니이다 (시 39:9)고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히 10:5)고 합니다.

제물과 생축 모든 종류의 희생 제물을 가리킵니다(Lincoln).

향기로운(에이스 오스멘 유오디아스)은 70인역에서 희생 제사와 관련된 문맥에 많이 나타납니다.

창세기에는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 8:21)합니다.

출애굽기는 그 숫양의 전부를 단 위에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요 이는 향기로운 냄새니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출 29:18)...너는 그것을 그들의 손에서 취하여 단 위에서 번제물을 더하여 불사르라 이는 여호와 앞에 향기로운 냄새니 곧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니라 (출 29:25)...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리되 아침과 일반으로 소제와 전제를 그것과 함께 드려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여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지니 (출 29:41)라 합니다.

레위기는 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1:9)...그 내장과 정갱이를 물로 씻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전부를 가져다가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1:13)...또 그 날개 자리에서 그 몸을 찢되 아주 찢지 말고 제사장이 그것을 단 윗불 위의 나무 위에 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레 1:17)합니다.

바울 사도는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빌 4:18)고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이 하나님 아버지께 기쁨이 되었다는 것이며 화해의 한 방편으로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말씀합니다(Wood).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향기로운 제물이 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께서 받으시기에 합당한 희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미안 신부는 모로카이 섬에 유배된 나병환자들의 참상을 보고 크게 마음이 움직여 자원하여 그 곳에 들어가 나병환자들과 일생을 함께한 위대한 선교사입니다. 처음에는 온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데도 나병환자들이 도무지 받아 주지를 않으며 같은 불쌍한 사람들과 지내는 것이 당신 같은 정상인으로서는 오히려 향락이 아니겠소? 하며 그의 진실된 사랑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미안 신부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차라리 제게 문둥병을 주십시오. 마침내 그 역시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문둥병 환자들이 그를 친하게 대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사람을 어루만지는 순간은 정신을 치료하는 순간이요, 마음을 치료하는 순간이요, 고독한 심령을 치료하시는 순간이고 육체를 치료하시는 시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는 절대로 만질 수 없는 사람, 그 누구도 접근을 해주지 않는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해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아니고는 절대로 대할 수 없는 경우에 나를 구원하신 사랑에 감사하며 사랑으로 대할 수 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하나님을 본 받아, 그리스도께서 사랑 하신 것 같이,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게 자신을 드리신 주님을 본 받아 사랑으로 행하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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