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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핑계하지 맙시다 (창 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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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충웅 목사
         
하나님께서 만드신 들짐승 가운데 제일 간교한 것이 뱀이었습니다. 그 뱀이 여자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더러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야?” 여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하였습니다. 그러자 뱀이 여자를 꾀었습니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하고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아서 그 열매를 따먹고 같이 사는 남편에게도 따 주었습니다. 남편도 받아먹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알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앞을 가리웠습니다.

날이 저물어 산들바람이 불 때 하나님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는 하나님 눈에 띄지 않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아담을 부르셨습니다. “아담아 아담이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따먹지 말라고 일러준 나무 열매를 네가 따먹었구나?” 그러자 아담은 핑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여자도 핑계를 했습니다. “뱀에게 속아서 따 먹었습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의 줄거리입니다. 이 말씀은 역사의 초기에 나타난 비극적인 사건입니다. 인류가 처음 하나님께 죄를 지은 장면입니다. 인간의 수준이 이 정도 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봅니다. 그 다음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저는 이런 신문 기사를 읽었습니다. 영락교회를 설립하신 열 분 장로님 중의 한 분의 딸이 되는 김정란 교수님의 글을 인용한 것입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내 아버지는 대한민국 최대의 교회 중 하나인 영락교회를 창건하신 열 분 장로님 중 한 분이십니다. 나는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영락교회 뜨락에서 보냈습니다. 교회는 나의 영혼의 깊은 터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더는 교회에 나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내가 여전히 예수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말은 내가 예수를 깊이 사랑하고 나의 어리석음과 죄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나의 진정한 구원자로 여기고 따릅니다. 교회 뜨락에서 보낸 유년이 지나간 뒤, 갈등은 내 영혼 깊은 곳에서 신음처럼 치고 올라왔습니다, 나의 내면에서는 비참한 사회의 현실에 진정으로 눈을 주지 않는 대형교회의 무책임한 복음주의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싹터 올라왔습니다. 그는 세상의 거지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 거지들이 유대의 사제들과 로마의 고위 정치인들만큼, 어쩌면 그들보다 더 높은 존재 이상의  가치를 가진 자라는 것을 일깨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체제의 종교적 세속적 울타리를 부수고 존재 이상을 가르쳤기 때문에 힘센 부자 사제들과 정치 권력자들의 손에 잡혀 죽었습니다. 부자들과 독재자를 위해 기도하고 신도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복을 받기 위해 진정한 천국을 잊게 만들고 그들을 형이상학적으로 협박하여 1년에 수십 억 원을 긁어모아 제 배를 기름지게 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은 예수의 친구가 아닙니다.”

이상이 김정란 교수가 쓴 글입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난 지진 사건을 보았습니다. 6만명이 죽었는지 그 이상인지는 모릅니다. 그런 비극적인 상황을 아무도 지금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 비극은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말이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I. 먼저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무화과나무를 엮어 옷을 만들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지 않아도 부끄러운 것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습니다. 그들은 욕심이 앞선 것입니다. 거짓말 했습니다. 정말 그럴듯하게 말입니다. 하와에게 찾아 온 사탄은 하와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에게 가서 던진 질문을 보세요. 정말 그럴듯하지요. “하나님께서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하나도 따 먹지 말라고 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그러니 여자의 말이 기가 막힙니다.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되 죽지 않으려거든 이 동산 한 가운데 있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 먹지 말아라 그것을 다 먹는 날에 너는 반드시 죽는다.”(창세기 2장16절 말씀)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지지도 말라는 것은 하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자 마귀는 지혜롭습니다. 기회는 지금이다 “절대로 죽지 않는다. 그 나무 열매를  따먹기만 하면 너희의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나님이 아시고 그렇게 말하신 것이다.” 그 때 그 여자는 바로 이것이구나! 하나님이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 그 과일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구나 하는 섭섭한 생각과 호기심이 발동한 것입니다. 그 때 그 여자가 그 나무를 쳐다보니 과연 먹음직해 보입니다. 보기에 탐스러울뿐더러 사람을 영리하게 해 줄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행복을 잘 모릅니다. 대구에 정신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가 있습니다. 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서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이 아이는 늘 최고가 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런데 막내가 낳았습니다 . 여덟 살이 되어도 일어서지를 못합니다. 그는 행복의 기준을 바꾸었습니다. 그저 말하고 걷고 뛰는 것만 해도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하와는 너무 욕심이 많았습니다. 성경에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는다. 이 말씀을 깊이 또 깊이 생각합시다. 우리 지나친 욕심을 버립시다. 과욕은 죄가 됩니다. 기독교가 무엇입니까? 본래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자는 종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선배들은 이렇게 전도 했습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갑시다.“ 그런데 요즈음은 전도 방법이 좀 달라져버렸습니다. ”예수 믿고 복 받읍시다.“ 물론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도 복이라고 표현해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게 썩 잘 된 것은 아닙니다. 바른 표현이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보세요. 교회가 너무 세속적이라고 말하면 지나칩니까? 너무 현세적이라면 잘못된 것입니까? 초대 교회 교인들은 서로 만나면 인사를 이렇게 했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하늘을 우러러 보면서 ”마라나타’ 했습니다. 그 뜻은 “주님이 오십니다.” 그들이 오늘의 교회처럼 교회의 정치화나 세력화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초신자들은 늘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들, 소외당한 자, 나그네, 갇힌 자, 과부들, 이방인들을 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언제부터인지 늘 부자들 편에 섰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도 교회는 늘 성장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크기가 얼마인지(몇 층, 몇 평), 교인이 얼마인지. 헌금은 얼마나 나오는지 이런 것으로 교회를 평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정말 비참하지요. 이런 것이 과연 하나님이 좋아 하시겠습니까? 하와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첫 단추룰 잘 못 끼면 옷은 볼 품 없지요.

II. 핑계 하지 맙시다

아담과 하와가 한결같이 하나님의 물으심에 답이 핑계였습니다. 하나님이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 주더냐? 내가 따 먹지 말라고 일러둔 나무 열매를 네가 따먹었구나?” 하나님은 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아담은 하나님께서 저에게 짝지워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 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여자에게 물으신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그러자 여자는 “뱀에게 속아서 따먹었습니다.” 이게 원 시조 아담과 하와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정직해야 합니다. 진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 지은 인간은 늘 핑계를 댑니다. 우리 이런 사람은 안 되어야 합니다. 정직하게 솔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그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기독교는 본래부터 화해와 화평의 종교입니다. 자기 허물을 드러내야 합니다. 나는 죄인이라는 데서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늘 남 핑계하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왜 이렇게 세상이 살아가기가 힘이 듭니까? 이렇게 세상이 시끄럽고 야단들입니까? 온통 세상은 달라지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우리 자신을 다시 정리하고 2005년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너무 남만 탓하는 그런 세상 말고 말입니다. 전부 핑계입니다. 그러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머리가 매우 좋은 사람들입니다. 모든 만물의 이름을 짓고 다시 기억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본 그들은 매우 어리석은 사람이란 것을 압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빌어야 했습니다. 나는 죄인이라고 빌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이 많았습니다. 묻지도 않는 엉뚱한 말만 늘어놓았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질서가 어지럽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늘 조용할 수가 없습니다. 왜 그렇게 이유가 많습니까? 왜 그렇게 말이 많습니까? 저는 핑계하는 사람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핑계 없는 무덤 없다는 말을 잘 압니다. 또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것을 자기가 드러내는 수치인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이야 다 있지요.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별로 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늘 진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늘 자기를 살피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2005년이란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순항만 있어야 하지만 그러지 못한 비바람 폭풍우가 나타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우리는 진실, 정직, 최선을 다 하는 그런 사람이어야 합니다. 삶은 지식도 아닙니다. 기술도 아닙니다. 인생은 어느 날 갑자기 쨍하고 해 뜨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금 숨 쉬고 있는 하루하루가 그 전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 날 다음 달 다음 해 이렇게 미루면 그건 아주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일 잘 하지 하는 사람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삽니다. 어떤 이유를 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별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을 사람들은 피곤해서 싫어합니다.

맺는 말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아담 부부는 정말 인류 최초의 범죄자입니다. 이 시대는 정말 혼란하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종종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늘 우리는 이런 지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날마다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저는 늘 승리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의 인상적인 글을 읽었습니다. 그는 승리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패배자가 있는 그런 것 보다 늘 사랑하는 자가 되라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도 승리자가 쟁취하는 것입니다. 여기 사탄의 세력이 이렇게 밀려옵니다. 사탄은 이런 방법으로 우리를 늘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사탄은 인정사정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언제나 그럴듯한 말로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해도 변명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갈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됩시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승리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5년1월16일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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