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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하게 됨으로의 행복 (갈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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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 5:1)

1. 사람들은 새해를 맞으면서 결심한 일이 있었습니다.

술 먹던 사람들은 술을 안먹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담배를 피우던 사람들도 새해부터는 금연하겠다고 작심(作心)하였습니다.
또 허랑방탕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새해에는 바르게 살아보려고 결단하면서 떠오르는 새해의 태양을 바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벌써 보름이 지나면서 처음 마음먹었던 일들이 무너진 것은 없지 않는지? '인심(人心)은 조석변
(朝夕變)'이란 말이 있듯이 아침과 저녁에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의지가 얼마
나 약한가를 실감하게 됩니다. 누구나 그러면 안되지, 안되지 하면서도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갑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버리는가? 왜 내 마음을 내가 원하는 바대로 따라 행동하지 못하는
가?
그에 대한 대답은 우리는 모두 죄의 세력 하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멍에 하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도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고
탄식하였습니다.
우리는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모두 죄의 세력하에서 살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입니다. 새해에 결심이 깨진
분들이 계시다면 다시 말씀 앞에 귀기울여야 하겠습니다.

2. 구원이란 죄의 멍에로부터 자유하게 함을 의미합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하는 통로는 욕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성경에서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을 때 당신의 형상대로 지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같이 자유로움의 존재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당신과 같이 서로 의사를 교환할 수 있는 존재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돌덩어리들, 화석들, 고목나무들 처럼 굳어버린 존재들이 아니라 부르면 응답할 수 있는 존재로 지었다
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대화란 인격과 인격의 만남입니다.
그 만남은 전적으로 기계적인 만남이 아니라 자유로움의 만남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자유함>에 대한 무한한 책임을 지웠습니다.
스스로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그런 존재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예>와 <아니오>를 할 수 있는 존재로 지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요즘도 하나님을 믿게 되는 것은 강제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예>와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본래적인 능력(本能)을 사탄이 유혹하였습니다. 결국 사탄
이 유혹하는 말로 기울어져 버리게 하였습니다. 결국 금단의 열매를 따먹어 버렸습니다. 이후부터 우리
는 하나님 떠난 본능의 욕심의 멍에 하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육체의 욕망과, 정욕의 욕망 앞에서
언제나 뿌리치지 못하게 되어 작심삼일밖에 될 수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
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
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에 구속을 기다리느니라'(롬
8:22-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받은 성도들도 다 같
이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죄로부터의 자유함에 이름을 의미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자유함에 이르게 되겠습니까?

우리 인간의 의지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불교에서는 고행(苦行)이나, 명상(冥想)이나 금욕(禁慾)으로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108가지의 번뇌로움
에서 해탈되어야 참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들은 고행을 택합니다.
이것은 중세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원이 많이 생겼습니다.
루터도 그 중에 한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원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수행을 통하여 죄의 멍에로부터 자유함에 이르려고 하였으나, 그러면 그럴
수록 더 심각한 고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말씀을 묵상 중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자유함을 누려야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의로운 행위로, 자신의 의지력으로 죄의 멍에를 꺾어,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어 보려고 무척이나
고민했지만,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말씀 속에서 발견하고 무릎을 치고 일어났습니다.
로마서 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얼마나 감격적인 깨달음 이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
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자유는 나의 의지로 만들어낸 자유가 아닙니다.
이 자유는 시민운동으로 얻어낸 정치적인 자유도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성취한 자유입니다.
그래서 영어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So Christ has really set us free 라고 하였습니다.
이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준 자유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의지력은 나약하기 짝이 없습니다.
나의 의지력으로 자유함에 이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죄의 세력은 집요하게 우리를 따라옵니다.
내 자신의 의지가 성령과 결합하여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와 합해져 제3의지를 만들어 내야합니다.
그것이 순종입니다.
우리는 언필칭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합니다마는 순종이 뒷바침 되지 않은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죽은 믿음에서는 새 생명이 자랄 수 없습니다.
믿음은 순종에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지금까지 순종 없는 믿음생활만 하고 있지는 아니했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죄의 세력은 새 해라고 스스로 우리를 떠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의 세력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욕심대로 끌어가 버립니다.
<하고픈 욕심>, <갖고픈 욕심>, <누리고픈 욕심>, 그 욕심들이 우리를 번뇌케 만듭니다. 이런 죄의 세력
으로부터 해방이 우리의 참 행복입니다.

저는 이번에 수술을 받으면서 육신의 고통의 속박에서 해방된 것을 실감해 보았습니다. 언제나 한쪽 어
깨 때문에 늘 괴로웠던 아픔의 멍에에서 자유함에 이르게 된 이 하나만 가지고도 그 기쁨을 측량할 수 없
는데, 죄의 값인 사망으로 부터의 자유함에 이르는 기쁨이야 얼마나 더 크겠느냐 입니다.

미국 흑인 노예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한 흑인 노예가 목숨을 걸고 도망을 쳤습니다.
그러나 강을 건널 수 없어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판사가 물었습니다.
'왜 도망을 쳤느냐?'
노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아니했습니다.
'주인이 나빴나? 호되게 일을 시켰느냐?'
노예는 아니라는 뜻으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면 음식이 나빴느냐? 혹은 잠자리가 불편했느냐?'
노예는 역시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면 왜 도망을 쳤느냐?'고 판사는 호되게 물었습니다.
노예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판사님, 저는 노예로서 별 부족한 것이 없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기쁘지 않았습
니다. 저는 무엇보다 자유를 갖고 싶었습니다.'라고.....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상에서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면서 살아도 인간의 참 행복은 죄로 부터의
자유함에 있습니다.
자유하게 됨으로 부터 오는 행복은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죄로 부터의 자유함이 어떻게 이루어지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 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당신은 고난의 십자가를 졌습니다.
처절한 매를 맞았습니다.
온갖 멸시와 조롱을 다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그 분을 주(主)라고 말하면서도, 그 분을 믿지 못합니다. 그 분이 내 마음에 들어
와 거할 방이 없습니다.
아직도 물질을 더 의지합니다.
아직도 명예욕에 눈이 어두워 있습니다.
아직도 자유함에 이르는 기쁨 보다는 이 세상적인 것을 더 크게 보고 살고 있습니다.

왜 금년도 또 예수를 믿어야 하는가?
왜 금년에도 교회의 직분을 받아 지내야 하겠는가?
깊이 반성하는 가운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욕심들이 있었다면,
과감하게 떨쳐 버리도록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도와주려고 간구하고 있다고 하였
습니다.
우리 모두 이 한 해 동안 자유하게 됨으로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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