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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함께 하며 서로 격려하는 인생 (공동체 교회의 비젼) (전 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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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가정호 목사

(전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전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전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전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오늘의 전도서 본문도 바로 이런 "우리가 서로 정기적으로 만나 교제하여야 하는  하는 이유"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함게 하며 서로 격려하며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본문은 "두 사람이 한사람보다 낫다"라는 선언으로 시작하여 "삽겹줄은 끊어지지 아니한다"로 마무리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길에서 서로가 만남을 가져야 할  필요로 하는 이유-무엇입니까?
성경에는 서로라는 말이 수고 없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존재도 3위1체로 표현합니다.
사람은 절대 혼자 살아갈 수가 없다.
서로사랑하라
서로 도우라
서로 돌아보라
서로힘을 합하라
서로 나누라
서로 기도하라
서로 찬양하라

1.다시 일어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길을 걷다보면 누구나 예외 없이 넘어짐의 순간을 경험하게 됩니다. 넘어져 본 일이 없으신 분 계십니까? 문제는 넘어지느냐, 안넘어지느냐가 아니라 넘어질 때 얼마나 빨리 다시 일어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또한 다시 일어서고자 할 때 나의 일어섬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느냐 는 것입니다. 오늘 전도서의 본문10절 마지막 부분에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했습니다. 그러니까 일으킬 사람을 곁에 둔 사람은 행복한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가정의 목적이 있습니다. 결혼생활의 행복은 부부가 서로 붇 잡아 줄 때입니다. 어떤 부부를 본 일이 있습니다. 남편이 인생의 방황기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분은 소진 되어서 가출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지탱하는 힘을 상실한체 어느 소읍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여인의 품에 안기어 불륜을 저지르고 맙니다. 문제는 그것을 부인의 친구가 본 것입니다. 잊습니다. 기억하지 않기로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온 남편 절망속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남편을 끌어 안고 슬피웁니다. 여보 얼마나 마음이 아프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외롭고 고독하게 하였길래 이러시오 나를 용서하시오. 

그러나 본문은 꼭 결혼관계만을 전제하고 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인생의 길에서 내가 넘어질 때 내 넘어진 손을 붙잡아 일으킬 수 있는 친구들을 가진 행복을 넒은 의미에서 서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전도서의 기자는 신앙의 사람으로 신앙 공동체내에서의 교제의 중요성을 강조할 의도로 이 말씀을 주신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희대의 호색인 입니다. 이런 패륜적 인륜을 무시한 왕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람이 이러한 귀한 진리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요?

공동체의  중요한 존재기능의 하나가 코이노니아 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일반적으로 교제로 번역되지만 단순한 친교이상의 '삶에의 참여'를 뜻하는 말입니다. 교회는 인생의 길을 걷다가 넘어진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부름받은 공동체입니다.

교회생활 제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은  교회까지 오기는 오는데 하나님과 사람들과교제와 나눔을 갖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더 비극적인 일은 다른 사람들 비난하고 정죄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안에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삶이 힘들고 버거워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짓밟고 정죄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없어야 합니다.
지금도 미국에서 주목받는 교회중 하나가 갈보리 채플입니다. 이 교회의 태동은 선명한 목적 아레 세워졌습니다.
60년대 초 소위 히피운동이 미국대륙을 휩쓸고 있을 때에 방황하는 당시의 젊은이들이 교회 문을 녹크하기 시작했지만 교회는 교회 오려면 머리깍고 오라, 새옷입고 오라, 먼저 회개하고 오라, 하면서 냉대했습니다. 그때 진정한 교회는 상처받은 모든이들을 있는 그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목사님 한분이 새교회를 개척하며 이렇게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교회는 당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환영합니다. 우리는 당신이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 것입니다."--이 한마디 말에 이 교회에는 셀 수 없는 무리의 젊은이들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교회가 갈보리 채플이라는 교회요, 이 목사님이 유명한 척 스미스 목사였습니다.

오늘날 갈보리 채플은 한 교단이 되어있고, 지금도 상처받은 미국인들이 교회를 선택할 때 제일 먼저 생각하는 교회는 갈보리 채플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압니다. 거기에 가면 그들이 정죄 받지 않고 용납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압니다. 거기에 가면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진실로 우리교회가 특별히 우리 성문공동체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치유를 일으키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 합니다.

2.서로 격려받기 위해서입니다.

왜 우리는 인생의 길에서 서로를 필요로 합니까? 이 더운 여름일지라도 인생이라는 길은 너무 춥고 험하기 때문입니다. 혼자의 힘으로 헤쳐 나가기에는 너무 힘든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 11절에는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고 말합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게 하는 약간 에로틱한 장면을 연상되게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말씀이 기록된 팔레스틴은 사막지대에 속합니다. 낮이면 열사의 태양이 내려 쪼이는 사막이지만 밤에는 무섭도록 뼈 속까지 에이는 추위가 있습니다.

그래서 길가는 행인들은 밤이면 서로 등을 마주하고 밤을 보냅니다.(물론 동성끼리) 그래서 오늘 본문이 시작되는 9절에 "두 사람이 한사람보다 낫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막지대의 유목민들은 길가는 동안 친구를 만드는 것이 인생의 필수조건이었습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 혼자 사는 것이 둘이 함께 함 보다 차라리 나은 예외적 상황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도서의 기자는 지금 보편적으로 보다 나은 삶의 길을 소개하려는 것이 본문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자주 출현하는 단어의 하나가 '나음'(better)입니다.(9,13절) 즉 better life는 함께하며 서로 격려하며 사는 인생입니다. 격려하면 용기를 얻습니다. 그래서 영어로 격려는 용기와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en-courage-ment)

우리는 넘어졌던 인생의 길에서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그러나 일어서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일어서서 다시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문제는 계속해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어디에서 공급받아야 합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친구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있는 소그룹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교회가 공동체 교회를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3.함께 승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격려의 결과는 격려 받는자 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격려는 격려받는자와 격려하는 자를 함께 유익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격려하며 그가 나를 통해 격려 받는 것을 보면 그를 격려하던 내가 또한 격려를 받습니다. 그래서 격려는 궁극적으로 두 사람을 함께 승리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비판을 받는 사람을 관찰해 보십시오. 그가 틀림없이 다른 이들을 그렇게 비판하는 사람들입니다.

황금률이 얼마나 진리입니까?

한 20년전만 해도 인류가 시장에서 경쟁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철저하게 흑백논리(아군과 적군의 논리)였습니다. 나에게 당신은 적이고 내가 이기기 위해서 당신은 패배해야 한다는 승패논리 시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적 마인드를 가진 리더십 이론가들(피터 드러커, 스티븐 코비)이 출현하면서 소위 '함께 승리의 전략'(win-win strategy)이 소개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함께 승리하는 대표적 인간관계가 부부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부부싸움을 하면 승리자가 있습니까? 둘 다 패배자에요. 반면에 아름다운 부부관계는 둘 다를 승리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그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경쟁자로 만들지 말고 협력자를 만들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서 새로운 에너지가 창출됩니다. 이것을 요즈음 네트웍 시너지 효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미 지금으로부터 3,000년전에 전도서에 이 진리를 기록했습니다.

그것이 12절 말씀입니다.-"한 사람이면 능히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성경학자들은 여기에서 삼겹줄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놓고 여러 의견을 개진합니다. 어떤이는 꼭 두사람의 관계가 아닌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두 사람(최소 공동체)이상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 삼겹줄을 소개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가장 흥미있는(은혜가 되는) 학설은 믿음의 사람 두 사람이 함께 하면 거기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님이 가세한 삼겹줄은 결코 끊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함께하고 거기에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사실 그것이 또한 우리주님의 약속이 아니었습니까? 마태복음18: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이름으로 모인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승리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경험하는 넘어짐의 아픔과 상처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과 기도로 곁에 머물러 선 친구의 손을 붙들고 일어나  "내가 다시 일어선 것은 이런 친구들, 그리고 이런 친구들이 있었던 교회, 그리고 이 교회의 머리되신 내 사랑하는 주님 때문이었습니다" 라고 우리는 간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교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공동체 교회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나에게 당신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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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리사 비머라는 한 여인이 펴낸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는데 그 책은 9.11사태 때 발생하였던 남편의 죽음을 주제로 한 책입니다. 그녀가 펴낸 남편과 그녀의 이야기 "Let's Roll"이란 책은 출간되자 마자 100만부가 팔리는 베스트 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바쁜 사람중에 한 사람이 되어 학교, 교회, 정부기관등을 다니며 미국의 대 테러전의 정신적 지주로서 활동하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 런데 미국신문들은 그 중에서도 특히 펜실바니아 상공을 나르고 있었던 유나이티드 93편 비행기에서 전화 교환수에게 비행기가 테러리스트에게 납치된 것을 알린 후 자기 부인에게 사랑의 안부를 전하고 침착하게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고 옆에 뜻을 같이 한 몇사람에게 '행동개시'(Let's roll)를 소리치고 비행기를 추락시켜 더 큰 비극을 막았던 휘튼대학 출신의 성실한 주일학교 교사 그리스도인 타드 비머의 아내 리사 비머의 근황을 실었습니다.

비머 리사는 남편이 죽은지 10일이내에 미국의 영웅(icon)이 되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와 국민앞에서 임신복을 입고 의회에 나온 그녀에게 희생자 전원을 대표하여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녀는 굿모닝 아메리카, 오프라 윈프리쇼, 래리 킹 쇼등에 등장하여 희생자들의 생각을 대변하여 알리는 역할을 했고 오히려 미국 국민들을 위로하였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남긴 재산과 보험금,위로금을 모두 합하여 희생자들중 어린이들을 돕기위한 타드.M.비머 장학 재단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매스컴들 중 뉴스위크지는 이런 그녀의 화려해진 공적 생활의 이면에 가려진 한 미망인, 어머니, 외로운 여성으로서의 삶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집에 돌아올 때 그녀의 집에서는 남편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다만 침실 탁상에 놓여진 비행기 잔해에서 수거된 남편 타드의 시9.11날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종종 세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질 때 그녀는 2층 침실에 올라가 벽장문을 연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아직도 남편의 옷가지가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거기서 리사 비머는 자주 남편의 옷가지를 만지면서 "어떻게 이렇게 나를 버려두고 당신은 혼자 가버렸단 말이요"하고 흐느껴 울곤 한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뉴스위크지는 미망인 리사 비머가 정말 위로받고 살아가는 두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일주일에 하루저녁 빠짐없이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과 만나 슬픔을 나누는 지원그룹(support group)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만난 역시 세계무역센타가 붕괴될 때 남편 스티브를 잃어버린 질 골드스타인이라는 여성과 매 월요일 저녁에 만나 교제하는 모임이 없이는 1년을 견딜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9.11사태로 남편을 잃은 리사 비머가 질 골드 스타인을 친구로 만난 이유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리사 비머가 아무리 바빠도 수요일 밤이면 테러 희생자들의 지원그룹 모임에 참여하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만나 아빠없이 자녀들을 키우는 어려움, 아버지날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들이 생일파티에서 아빠들에게 전화하는 시간을 어떻게 모면하는지 등, 남자들이 측은히 여기고 데이트를 신청해 올 때 대처하는 방법까지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함께 울고 함께 웃고 기도하는 이 만남이 바로 지난 1년을 버틴 힘이었다고 전합니다.

리사 비머와 질 골드스타인은 둘다 상처입은 남편 잃은 여인들이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말하면 둘 다 패배자가 되어야 마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은 함께 하며(함께 식사하고, 함께 공원을 걷고, 함께 극장도 가고-)함께 삶을 나누면서 함께 상처를 극복해 갈수 있었습니다. 질 골드수타인은 유대인이었지만 리사와 믿음의 의미를 함께 나누면서 둘은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세속적인 잡지인 뉴스위크지조차도 리사 비머를 취재하며 이들이 비극을 극복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신앙심과 하나님, 공동체이었음을 기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리사 비머는 그녀의 책 "행동개시(Let's roll)"에서 이 비극을 통과하는 동안 무엇보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주고 그녀의 손을 잡아 다시 일어서게 한 그녀와 남편의 교회에서 들려준 놀라운 간증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 마땅한데 그대로 되지 않았다고 분노할수 있습니다. 하지만그가 깨달은 것은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마땅한데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한가지로 우리는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그녀는 동일한 간증을 미국의 여러 교회, 학교, 미디아에서 하면서 그녀와 남편의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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