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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 문을 여는 축복의 열쇠 (창 14:17-20, 말 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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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영무 목사

  신앙생활에는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6장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로마서에 보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어떤 업적이나 공로나 또는 잘나서, 학벌이 좋아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축복은 어떻게 받습니까? 바로, 순종함으로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적 축복과 건강, 형통함은 모두 순종의 축복으로 오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씀인 신명기 28장 2절 말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복주시는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물을 얻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신명기 8장 18절에 보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의 생애는 하나님이 복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복을 주실 때 흥왕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127편 1절, 2절 말씀에 중요한 하나님의 축복의 원리가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여호와가 집을 세우지 않으면, 아무리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일해도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헛된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지 않으면 모든 일이 헛된 일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고 게으르고 나태해도 하나님의 복 만 바라면 된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인간은 최선을 다하고 그 위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서 배워야 할 성경적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십일조입니다. 십일조 얘기하니 인상이 찡그러지는 분이 계십니다. “그래, 오늘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하더라. 안 부르던 십일조 노래를 부르지 않나 말이야” 그러나, 마음을 닫지는 마십시오. 십일조가 하나님이 정하시는 축복의 원리라면 우리가 그 원리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똑바로 배워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들어가는 것이 진짜 중요하지 않을까요?

  우스운 얘기입니다만, 한 엄마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자꾸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생겨 고민이 되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자꾸 손가락을 빨면 배가 풍선처럼 불러와서 배불뚝이 가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이가 겁이 났는지 안 빨더랍니다. 그 다음날 어느 모임에 갔는데 배가 부른 임산부가 있었답니다. 의기양양해진 아이가  그 임산부에게로 가더니 이렇게 얘기하더랍니다. “아줌마! 나는 아줌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다 알아요!”^^
 
  어린 아이의 속단입니다. 속단은 금물입니다. 십일조, 헌금 얘기하면 마음을 닫고 ‘뭐 뻔하지’하는 분이 계신데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축복의 원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복 받는 길을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받은 그리스도인,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지켜야 할 두가지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는 기본입니다. 첫째가 주일성수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 날을 ‘복 주사’ 안식의 날, 예배하는 날로 정하셨습니다. 육신의 쉼을 얻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함으로 영혼의 공급을 얻고, 말씀을 통해서 힘을 얻고 한주간을 승리하면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복 받는 날입니다. 주일성수를 꼭 하십시오. 주일 성수를 안하면 신앙인의 기본을 안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고,  기도할 기회가 없는 것 아닙니까?
 
  두 번째는 십일조 생활입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이 명령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십일조의 기원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말라기 3장 10절에서 분명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성경에서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얘기한 것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물질을 드려서 나를 시험해 보라는 하나님의 말씀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오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십일조는 율법의 잔재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말라기서는 율법에 영향을 받았으니까 그렇지, 예수님시대에는 그런 것 없지 않습니까? 예수님 시대에 율법을 다 폐했는데 아직도 우리가 율법의 명령을 따라야합니까?”라고 말입니다. 아는게 병입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십일조는 율법의 잔재가 아닙니다. 율법 시대 이전에 아브라함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야곱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복음의 시대에 존재했던 하나의 헌금의 원리가 바로 십일조입니다. 
  창세기 14장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결별 얘기가 나옵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땅의 비옥한 땅을 차지했고 아브라함은 그 반대로 갑니다. 롯이 거주하고 있던 소돔과 고무라에 그둘라오멜과 연합군이 침범해 왔습니다. 이 전쟁에서 소돔과 고모라는 지게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롯의 가족도 끌려갑니다. 많은 양떼와 재물을 다 약탈당했습니다. 누군가가 그 소식을 아브라함에게 전해 줍니다. 그의 마음속에 행여나 “자기가 좋은 땅을 차지하더니 잘됐네!! 하나님은 역시 살아 계신다니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래, 그럼 내가 가야지. 조카가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 내가 가야지”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있던 식솔 318명을 이끌고 야간의 기습작전을 감행해 성공합니다. 318명을 데리고 만명이 넘는 군인들과 싸워 승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가 전쟁에 승리하고 롯의 가족들과 많은 전쟁의 노획물들을 가지고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는데 소돔 왕이 그를 환영하고, 살렘왕 멜기세덱이 포도주와 떡을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 일행을 대접해주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아브라함의 십일조 사건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14장 18절에서 20절까지를 읽겠습니다.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멘.
  ‘살렘’하면 어느 곳이 생각납니까? 네. 바로 예루살렘, ‘평화’란 뜻의 장소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멜기세댁을 가리켜 그를 하나님의 제사장, 의의 왕, 평강의 왕으로 부릅니다. 그는 족보도 없고 아비도 어미도 없는 신비에 쌓인 인물, 왕과 제사장을 겸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땅에 오신 분 중 왕과 제사장, 선지자를 겸임한 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왕으로, 제사장으로, 선지자로 오셨습니다. 바로 이 멜기세댁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 되는 분입니다. 그런 분이 아브라함을 영접해주었습니다. 그에게 떡과 포도주로 대접하고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그는 제사장으로 축복권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축북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복을 비니 아브라함이 감격해서 20절,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멘! 이것이 바로 십일조의 출발이며, 기원입니다.
 
  또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갈 때 벧엘에서 잠을 청한 후 꿈에 환상을 본 이후, 하나님께 십일조를 약속하게 됩니다. 십일조는 결코 율법의 잔재물이 아닙니다. 그것은 복음 시대에 아브라함과 야곱이 이미 실천했던 헌신의 모습입니다.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은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과연 십일조의 의미, 십일조의 영성은 무엇입니까?

  첫째,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요, 온 우주의 소유주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천지의 주재시오”에서 ‘주재’라는 말은 만드신 분, 창조주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동시에 소유주가 되심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 생명, 내 신체, 내 가족, 내 집, 내 기업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십분의 일을 하나님 앞에 드리지만 사실은 십분의 십, 전부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마음과 자세로 드리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다시확인하고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십일조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미국의 어떤 교회는 십일조를 한달에 한번 드리는 것이 아니라 네 등분해서 매 주마다 드린다고 합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 마다 내 인생의 주인, 내 소유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것이기에 참 좋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일천번제 할 때마다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저도 이제 두 번째 시작 했는데, 그런 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천번제는 예배드릴 때 마다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제사에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제물입니다. 그래서 예배드릴 때 성경찬송만 들고 오는 것 아니라 예물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봉투에 숫자만 써 놓았다가 예배드리러 오기 전 내가 작정한 액수를 봉투에 정성껏 넣어서 가족의 이름을 한 사람 한 사람 쓸 때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름을 쓰면서 가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잊고 있었던 가족의 기도제목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이 물질을 드리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내 마음에 물질을 담아 드릴 때, 이것이 참 감사한 일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또한 우리는 소유권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1절에 보니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누구 것입니까? 네! 하나님의 소유권을 확인하는 것, 이것이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응답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전쟁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까? 318명으로 어찌 만명을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 말입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훈련을 잘 시켰어도 어찌 승리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나갔고 하나님이 이 전쟁을 승리케 하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의 십일조는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응답입니다. 멜기세댁의 고백을 한번 더 볼까요? 20절 입니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아브라함의 대적을 그의 손에 붙이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입니다.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 하나님 손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응답으로 십일조를 드립니다.

  또한 십일조의 정신은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헌금생활을 보면 믿음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헌금생활을 보면 그의 믿음의 상태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왜 입니까? 믿음이 없이는 헌금, 십일조를 드릴 수 없으니 말입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헌금의 액수에 따른 얘기가 아닙니다. 그 헌금 속에 그의 정성과 진실한 마음이 담겨져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의 많은 헌금보다 가난한 여인의 엽전 두 닢을 더 기뻐하셨고 축복하셨습니다. 그것은 왜입니까? 그 재산의 전부, 물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최선을 다한 헌금이냐, 그의 진실한 마음이 담긴 중심이 있는 헌금이냐가 그의 믿음의 척도가 된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물질에 대한 자유합니다. 우리는 물질 세상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돈 없으면 안되는 일이 어디있냐!”고 얘기하곤 합니다. 그러나 돈 가지고 되는 일은 시시한 일입니다. 진짜는 돈 가지고 안 되는 일이 진짜 일이요, 가치 있는 일입니다.
  많은 이들이 돈의 영향 아래 살아갑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부모를 죽일 수도 있고, 형제와 헤어질 수도, 이혼을 할 수도 있다는 돈의 노예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을 지배하는 사람임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질을 주셨지만 난 이 물질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물질의 노예가 아니라, 내가 물질의 주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물질에 대한 자유함을 얻으려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릴 때 가능합니다.
십일조의 정신은 이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믿음의 표현으로, 물질에 대한 자유함을 얻는 것! 이것이 십일조의 의미입니다.
 
  그러면 십일조는 어떻게 우리에게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까? 서두에서 읽은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너희가 나를 시험해서  창고에.. 붓지 아니할까 보라”는 말씀처럼 쌓을 곳이 없이 부어주신다고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말라기 3장 11절 이하에 보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황충은 벌레입니다. 그것도 아주 해로운 벌레입니다. 농사가 아무리 잘 되어도 황충떼가 나타나면 모든 것이 사라집니다. 여러분의 기업을 갉아먹는 황충이 있습니다. 내 재산을 갉아먹는 황충이 있습니다. 내 가정의 행복을 갉아먹는 황충이 있습니다. 그것을 금하여 주시겠다, 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열매가 과실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여름에 농사가 잘 되어 가을에 많은 열매를 맺어도 수확기에 태풍이 불면 그 과실은 다 떨어지고 맙니다. 뭔가 잘 되어가다가, 꼭 잘 될 것 같은데 망합니다. 뭡니까? 기한 전에 떨어져버리는 것입니다. 기한 전에 망하는 것입니다. 수확 전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으리라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리라고 약속하시며, 그 땅이 비옥한 땅이 될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을 보면 십일조를 온전하고도 철저하게 드렸던 분들입니다.
  강철왕으로 불리는 카네기는 십일조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의 어머니의 유언이 “너는 십일조를 온전히 드려라”였다고 합니다.
  또한 콜게이트 치약을 만든 콜게이트 역시 어머니의 십일조의 유산을 받고 그것을 열심히 실천한 사람이었습니다. ㅡ
  백화점 왕인 존 오너메이커는 십의 오조까지 드렸던 인물입니다. 그는 가난한 소년이었지만 후에 큰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그의 교회가 건축을 하는데, 아무것도 드릴 것이 없어 벽돌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벽돌공장에서 일을 해주고 그 벽돌을 리어카로  끌어다가 교회에다가 드린 그런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가하면 세계적인 석유왕으로 불리는 존 록펠러 역시 철저한 십일조의 실천자였습니다. 그의 자손들이 부통령, 대학총장, 변호사등을 지내는등 그가 받은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기자가 록펠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기업은 이해가 안됩니다. 다른 회사들은 이윤을 얻어 100% 재투자를 해도 불황이 오고 어려운데 당신 회사는 이익금의 10분의 1을 바치고도 어떻게 번성할 수 있습니까?” 그의 대답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른 회사들은 5년 뒤, 10년 뒤를 보고 투자하지만 우리들은 50년 뒤, 100년 뒤를 보고 투자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50년 뒤의 내 영혼을 생각하고, 100년 뒤의 이 회사를 생각하기 때문에 5년을 보고 투자하는 회사와 어찌 같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십일조는 위대한 투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감사의 제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꼭 기억하십니다.

  지난번 신년 마석 기도원 집회 때에 한신 대학교의 명예교수인 정태기 박사님께서 아주 좋은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한 말씀의 제목이 “위대한 투자”였습니다.
  전라도 섬, 어느 가난한 지역에 다 쓰러져가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목회자도 없는 교회에 어떤 전도사님이 병요양을 하려고 일부러 찾아왔습니다. 교인들은 한 열댓명이 되는데 다들 어려워서 새벽기도 나올 때 보리 한 줌 씩 가지고 와 내는 것으로 연명하던 그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나오던 열두살 소년이 있었습니다. 부모님 몰래 교회에 나오던 소년이라 더욱 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시골에는 보리쌀이 주식이고, 쌀은 그저 큰 명절이나 생일에 보리쌀 위에 좀 얹어서 약으로 먹던 그런 어려운 시절, 그것도 아이들에게는 차례도 미처 오지 않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쌀의 자리도 부엌이 아닌 창고였던가 봅니다. 이 소년이 그걸 한 되박을 푹 퍼서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새벽기도에 아무도 안왔답니다. 그래서 강단위에 쌀자루를 올려놓고 기도하다 돌아왔답니다. 그리고는 세월이 많이 지나서 놀라운 놀라운 고백을 듣게 됩니다.
  그 어려운 교회에 계시던 전도사님이 섬에 와서 요양을 하는데 먹을게 없어서 사흘을 굶었답니다. 그 날도 굶을 수 밖에는 없는 형편인데 새벽기도를 하러 일어나다가 결국 쓰러졌답니다. 그리고는 몇 시간을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있었습니다. 이윽고 방에 햇살이 들어와서야 정신이 겨우 들었는데 그 전도사님 마음에 “이제 내가 죽겠구나, 이웃에 민가도 없고, 아무도 나를 돌봐주러 와 줄 이가 없을테니... 내가 여기서 죽을 바에는 그래도 강단에 가서 죽자”하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방에서 있는 힘을 강단으로 나왔습니다. 거기서 기도하다 죽으려고 보니까 봉지에 쌀 한 되박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건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이다!’ 아멘! 그것 가지고 죽을 써서 사흘 동안 연명을 했고 힘을 내어 배를 타고 섬을 나왔습니다. 그 후 병을 치료받고 신학대학에 가서 목사가 되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소년이 목포에 와서 유학을 하고, 신학대학을 가고 목사가 되고, 유학을 다녀오고, 교수가 되고, 대학 총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후에 한 자리에서 예전에 그 교회에 계셨던 그 전도사님을 만났는데 그 분 고백이 “그 때 그 쌀 때문에 내가 살았다” “아~! 그거 제가 갖다 놓았는데요!”이렇게 되었답니다.
  그 어려운 가운데 아버지 눈을 피해 한 되박을 가지고 온 소년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놀랍도록 축복해주신 것입니다. 그 소년과 정태기 박사님은 앞 뒷 집에 살았는데 정 박사님 말씀이 “생긴 것도 내가 낫고, 우리 집이 훨씬 나은데, 우리 집이 훨씬 더 명망있는 가문인데, 총장이 되면 내가 되어야 되는데 그 친구가 대학 총장이 된 것은 하나님의 축복 때문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는 그 새벽에 ‘위대한 투자’를 했다는 것입니다. 쌀 한 되박을 드린 정성을 하나님이 보시고 그를 축복하셔서 학교에 총장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정말 위대한 투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참 감동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오래전에 행하고 잊어버린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기억하시고 그를 통해 생명을 살리고 그를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십일조를 드릴 때 어떤 자세로 드려야 할까요?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야합니다. 여러분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계십니까?
  다른 교회 가니까 이상한 교인들이 있답니다. 100만원이 월급이면 거기서 10만원이 십일조 아닙니까? 그런데 그 10만원에서 감사헌금 2만원 떼고, 여신도회비 떼고, 구역헌금 떼고 나머지 6만원만 드린다지 뭡니까? 돈이 없어서 구역헌금은 못 드리고 여신도회비는 못 드려도 십일조는 십일조대로 온전하게 드려야합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 내 창고의 양식이 있게 하라”고 그랬습니다. 이 십일조는 누구 것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은 감히 손대서는 안 됩니다. 손댈게 있고 손댈 수 없는게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 선악과 나무는 먹으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나무가 너무 많으니까 다 먹어도 되는데 그것만은 손대서는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손을 댔고, 거기서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십일조는 손대지 마십시오. 이것만은 손대지 마십시오. 그것이 복받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삶에 온전한 주일성수와 온전한 십일조 생활이 있다면 여러분에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반드시 축복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시는 원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십일조를 드리되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드리지 마십시오. 감사한 마음으로 감격한 마음으로 드리셔야 합니다.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출신인데 독일에 유학와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목사였지만 신앙이 많이 떨어져서 교회도 잘 안나가고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와 함께 화랑에 갔습니다. 거기서 한 성화를 봤는데 그 성화가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옷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는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서 재판을 받으시는 모습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이 사람을 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램브란트가 그린 그 성화 밑에 이런 글이 쓰여져 있었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런 고난을 받았는데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했느냐!” 그 때 그 여학생 마음속에 충격처럼 감동이 밀려 옵니다. 그녀가 돌아와 찬송시를 지었는데 그 찬송시가 바로 찬송가 185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나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는데, 내 대신 어려움을 당하셨는데 나는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드릴 수 있습니까?

  시링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시려고 정하신 이 십일조의 원리에 한번 순종해 보십시오. 하늘 문을 여는 축복의 열쇠, 그것은 바로 십일조입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이 새해에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기로 결단하고 실천하는 동안 여러분의 가정과 기업에 하늘의 놀라운 축복이 임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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