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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시 2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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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광일목사 (벧엘감리교회)

골프 선수 중에 아프리카의 짐바브웨 출신의 닉 프라이스라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 선수에게는 한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골프를 하다가 게임이 잘 안 풀릴 때는 꼭 휘파람을 분다고 합니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다른 선수들은 골프채를 던지며 화를 내는데 반해, 이 선수는 다릅니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얘야, 어려움이 있을 때는 휘파람을 불어라" 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 위기 때마다 휘파람을 불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닉 프라이스는 경기가 잘 안 풀려도 쉽게 이겨냅니다. 그는 슬럼프를 노래를 통해서 극복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도 역경이 왔을 때 노래하시기 바랍니다. 고난이 왔을 때 불평 대신에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찬송하는 자에게 승리가 있습니다. 구약의 욥은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를 다 잃어버리는 고난을 당합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저주하며 가출해버렸습니다. 엄청난 고통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욥은 원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1장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로다" 라고 말하며 고난 중에도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러므로 삶의 가장 큰 위기는 찬송이 사라졌을 때입니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 처했다 할지라도 찬송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여전히 승리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치열한 전쟁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병사의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편기자는 자신의 능력과 지혜를 통해서는 결코 승리를 경험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실 때만 이길 수 있음을 온전히 신뢰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승리를 주시는 원동력임을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무서운 전쟁터와 같은 삶의 한복판에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담대한 모습으로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편기자가 이와 같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또한 어려운 삶 속에서 우리 역시 하나님을 찬송해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로 나의 힘과 방패이시기에 찬송해야 합니다

마틴 루터는 16세기 당시 로마 카톨릭 천주교에 대항해서 오직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종교재판에 서게 됩니다. 종교재판소에서 이미 많은 사람이 화형을 당했습니다. 루터역시 불에 태워져 죽음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하나님, 나는 여기에 섰습니다. 주여! 나를 도와주옵소서! 주님만이 나의 힘입니다. (O! Lord! I stand here. help me! my strength!)". 결국 그는 종교재판에서 화형 당하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너무나도 힘든 재판과정으로 인해 낙심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그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누가 죽었냐고 물었고, 그의 아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루터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왜 돌아가셨냐" 고 묻자, 그녀는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왜 당신이 낙심하느냐" 고 답했습니다. 루터는 그 한마디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나서 낙심해서는 안 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시 힘을 얻고, "내 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가 되시니" 라며 힘과 방패이신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송가 384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7절 상반절에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시니라" 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기에 '나의' 라는 말이 두 번 반복하여 나옵니다. 이것은 구원의 하나님을 두 손으로 붙잡고 있는 모습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손끝으로만 만질 수 있어도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믿음의 행동은 손만 내미는 것이 아니라 두 손으로 하나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여호와는 힘과 방패이시니라' 고 표현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고백한다면 그 하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힘과 방패가 되시는 여호와가, 개인적으로 나의 힘이 되고 나의 방패가 되어야만, 나에게 진정한 위로와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약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여호와가 나의 힘이시니" 라는 확신을 가지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나의 힘이 되심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처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고백하며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후로 부디 하나님이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가 되심을 찬송하여 언제나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나의 의지와 도움이시기에 찬송해야 합니다

20세기 영적 거인 중의 한 사람이었던 선교사 스탠리 존스가 노년에 중풍으로 인하여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말하는 것조차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건재하였다고 합니다. 한 번은 은퇴한 감독이 그에게 역경에 굴하지 않고 승리의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결을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감독은 은퇴한 후에 사람들로부터 각광과 주목을 더 이상 받지 못하게 되자 불만과 공허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탠리 죤스 선교사는 은퇴한 감독에게 "나는 먼저 내 영혼의 깊은 곳으로부터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살았기에 중풍을 만났어도 나의 삶이 결코 흔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라고 말해주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은퇴한 후에 청청한 생명의 빛을 잃어버렸으나 한 사람은 은퇴한 것만 아니라 육신에 중풍까지 들었으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청청한 빛을 발하며 승리자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환경의 지배를 당하지 않고 환경을 극복하며 살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는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는 나무과 같다고 예레미야 17장 8절은 말씀합니다. 7절 말씀 중간에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의 말씀가운데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란 말씀은 우리들의 심령 안에서 이루어진 내적인 체험을 표현한 말씀이라면, "도움을 얻었도다"는 말씀은 받은 은혜를 외적으로 공개하는 표현입니다. 사실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을 향하여 찬송을 부를 수 있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도움이 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 56편10절에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라고 증거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의 것입니다. 찬송은 두려움에 떨던 성도가 하나님을 의지하며 두려움을 물리치게된 감격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이 몰려오는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려움을 물리쳐야만 합니다. 적어도 주를 믿는 성도들은 두려워하는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내 두려움이 변하여 찬송이 되었네" '하고 노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리 힘든 현실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전혀 동요함 없이 용기 있게 살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진정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찬송하며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의 시편기자는 내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더니, 외적으로 도움을 얻게 되었노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얻어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나의 노래와 기쁨이시기에 찬송해야 합니다

독일 힐츠 산맥은 카나리아의 천국입니다. 이곳에는 수십만 마리의 카나리아를 사육하는 조류공원이 있습니다. 카나리아의 합창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냅니다. 그런데 공원의 주인은 새를 팔 때 합창을 리드하는 솔리스트 카나리아는 절대로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카나리아 속에는 노래를 주도하는 몇 마리의 솔리스트가 카나리아들이 다른 새들을 자극하여 아름다운 화음을 엮어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 중에도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주도하는 '솔리스트 카나리아' 가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의미 없이 입만 움직이는 '수동적인 카나리아' 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솔리스트 신자' 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솔리스트 신자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피상적인 기쁨이 아닌 마음으로부터 크게 기뻐하여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믿지 않는 사람들도 기쁘면 노래가 나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은 찰나적일 때가 많습니다. 입에는 웃음이 있는 것 같지만 그 마음 속에는 허탈함이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잔이 콸콸 넘치는 듯한 기쁨이요, 너무 좋아서 덩실덩실 춤을 출 정도의 기쁨이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빠지더라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억울하게 매를 맞고 착고에 채워져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억울한 처지까지도 그들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다른 사람이 들을 정도로 힘껏 찬송을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요 나의 방패이심을 믿기에 기쁜 마음으로 찬송을 부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기쁨과 찬송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과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과 실라는 그 날 지진으로 옥문이 열려지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내게 기쁨이야!" 라고 말하는 감격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럴 때 찬송해야 합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예배드릴 때 부르는 찬송이 일주일 동안 드리는 유일한 찬송은 아닙니까?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언제나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성도들은 함께 모이면 세상 이야기하는데 시간 보내지 말고 찬송을 불러야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 걱정이 없어집니다. 찬송을 부르면 염려가 사라집니다. 찬송을 부르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찬송을 부르면 힘이 생깁니다. 찬송을 부르면 감사가 솟아납니다. 찬송은 마귀를 물리치게 합니다. 찬송을 부르면 승리하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임명받은 성가대원과 성도 여러분들은 의미 없이 입만 움직이는 찬송의 사람이 되지 마시고 다른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있는 힘있는 찬송의 삶을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의 힘과 방패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의지와 도움이신 하나님을 찬송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노래와 기쁨이신 하나님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평생동안 언제 어디서나 찬송을 부르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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