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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님의 기도(4) (막 14:3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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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노강국 목사

오늘은 주님의 기도의 내용 중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내용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을까요? 이 문제를 생각함에 있어서 우리는 이 “뜻”이란 말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되겠습니다. 이 “뜻”이란 말은 헬라어로 “텔레마(thelema)”라고 쓰는데, 문자적으로는 “원하는 바 그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이라 하면 “내가 원하는 바 그 내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반면에 “하나님의 뜻”이라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그 내용”을 말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뜻”이라는 말 자체는 중립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이 “뜻”이란 말 앞에 누가 나타나느냐에 따라 그 뜻 의 내용이 같을 수도, 정반대도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같은 내용이거나 같은 방향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다를 경우에는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즉,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이 서로 다를 경우에,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경우를 염두에 두고 오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의 내용을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기도문의 이 구절을 일컬어 “기도의 자살(自殺)”이라고 일컬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기도란 그 기본적인 의미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깊은 뜻을 이루기 위해 행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여기서 보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뜻을 이루기 위함보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간구하라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기도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성격을 무시하고 뒤엎어버린다는 의미에서 기도의 자살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이 기도는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는 자기 자신에게 역행하는(against) 성격의 기도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를 하는 사람은 이 기도를 하면서 기도하는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해보게 하는 그러한 기도인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 기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그대는 하나님이 이 기도에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에 반하여 간구할 것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한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 자신보다 더 악한 원수가 없음을 가르쳐 주신다. 따라서 이 간구에서 십자가를 구하는 일, 즉 고통과 재난과 모든 종류의 고난 외에는 아무 것도 구할 수가 없다. 이는 마치 우리의 뜻을 일방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의 이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과 기도 자체를 철저히 분리시키게 하는 그러한 기도입니다. 즉, 기도하는 사람에 의해 기도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하고자 하는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 그 내용의 가장 기본적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를 성경에서 발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먼저 구약 성경에서는 창조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것을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이끌어가고자 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란 이렇게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대로 존재하는 것에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에 율법을 주신 사실에서 하나님의 뜻이 나타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을 반영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이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고자 하신 사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행위를 구약성경을 통해 믿고 알기에 이를 “창조 신앙과 구속 신앙”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이렇게 “창조 신앙과 구속 신앙”으로 표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러한 구약에서 보여진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 아버지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 사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신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해 몇 가지 성경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보십시다.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마 18:14,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요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엡 1:9-10,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렇게 신약 성경에서의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창조하심과 구속하신 사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적용되어서 이러한 구원에 동참하게 되는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이미 알고 이러한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가 잘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타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에서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막 14:32-49은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 가운데 기도하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이 기도는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가르치신 기도에 대한 예수님 자신의 권위 있는 해석이요, 주석이며, 모범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기도에 대해서 몇 가지 사실을 배울 수 있습니다.

1. 기도를 통해서 어떤 결정을 하고자 할 때 자기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는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과 담판을 해야 하는 것이 기도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꼭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다르다고 한다면 자기의 뜻을 먼저 포기하거나 죽이는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자세라는 것입니다.

2. 어떤 귀한 일에 대해서 결단해야 할 경우에 있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깊이 숙고하거나 사색하는 것이 기도하는 자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나는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을 보십시다. 예수님은 이 일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 직접적으로 부닥쳤습니다. 이 문제를 두고 깊이 사색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고 명했을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갔습니다. 왜 그렇게 했습니까? 이러한 절박한 경우에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다보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보다는 그 명령을 회피해보려고 하는 인간의 연약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결단이 필요한 시점에, 생각해보겠다는 이유가 사실은 빠져나갈 어떤 합리적인 구실을 찾기 위해 골몰해지는 핑계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자세와는 사뭇 다른 것입니다.

3.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은 또한 영웅적인 성자처럼 처신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님은 괴로워하고 매우 슬퍼하는 인간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기의 아픔을 제자들에게 알리는 연약한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점에서 가장 인간적인 사람인 것을 알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것은 고난을 의식적으로 내세우거나, 자학을 즐기는 모습의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 자기의 개인적인 소망을 숨기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여, 하실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 하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버지께 모든 것을 맡기는 모습도 봅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렇다고 이러한 모습은 어떤 의무를 감당하기 위해 억지로 인내한다거나, 할 수 없이 복종하는 태도 역시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아버지에 대한 신뢰에서 만들어지는 그러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기도란 “나”에게서 발생하는 이중성에 대한 싸움의 장소이기도 한 것입니다.

5. 이런 점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자기를 죽이고 하나님의 새로운 현실 앞에 자기를 개방시킴으로 하나님이 뭔가 하실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놓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가 새롭게 나타나는 현실을 맞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란 이렇게 하나님께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하시는데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가운데 나타나는 하나님의 새로운 일들은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유익이 되는 귀하고 복된 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그리고 이러한 현실이 복되게 이루어지는 현실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이와 대조되는 모습을 43절 이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은 예수를 잡고자 하는 사람을 칼로 내리쳐서 부상을 입히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새롭고 창조적인 일이 일어나는 것을 방해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모습이 우리의 인간적인 선한 마음에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비록 이러한 인간적인 선한 마음과 자세로 한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는 일에 방해가 된다면 이는 하나님의 일을 오히려 어려운 지경으로 빠지게 만드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는 것입니다.

스웨덴의 시인이며 소설가인 라게르크비스트(P. F. Lagerkvist, 1891~1974)가 1950년에 쓴 “바라바”(Barabbas)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로 라게르크비스트는 1951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 “바라바”라는 소설은 예수님 때문에 십자가형을 면제받은 성경에 나오는 그 바라바를 모델로 하고 쓴 소설입니다. 물론 이는 작가의 상상력에 근거한 소설입니다. 예수 때문에 살게 된 바라바가 예수에게 묘한 빚진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 바라바가 이리저리 떠돌면서 살다가 나중에는 로마로 갑니다. 그런데 이 로마에서 “예수쟁이들이 로마 시에 불을 질렀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는 물론 그 당시 로마의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들을 핍박하기 위해 꾸며낸 거짓된 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에게 묘한 빚진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던 이 바라바는 이 소문을 듣고 자기도 로마 시내 이곳저곳에 불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빚진 예수에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이러한 소문이 은근히 크리스천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크리스천들은 아주 곤란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수소문하여 이 바라바를 만납니다. 이러한 베드로 앞에서 바라바는 자기가 이렇게 행동한 것에 대해 은근히 자랑삼아 말합니다. 이러한 바라바의 이야기를 들은 베드로는 한숨을 내 쉬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께서 원하시는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오히려 누가 되는 일이라고 설명을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잘 모르면 이러한 행동이나 기도를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도하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잘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내 뜻과 어긋날 때, 나는 언제나 내 주장이나 뜻을 포기할 수 있는 자세를 간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기도할 때, 이를 우리 스스로 알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건, 즉 창조적인 사건으로 우리를 구원케 하며 구원이 이루어지게 하는 귀한 역사가 나타나도록 그 길을 열어드리는 그릇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그 모습에서 하나님의 귀하고 선하시고 복된 뜻이 우리 주변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네의 기도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자리에 예수님처럼 나아가며, 쓰임 받게 되는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시여!
저희들의 기도의 입술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고 기도하는 저희들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어긋날 때,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기도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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