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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고받는 일에 참예한 교회 (빌 4: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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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15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18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20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찌어다 아멘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가장 귀한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목표에 맞추어 대학 전공도 결정하고 자신의 생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평생을 빈민국에서 의사로 헌신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특별히 의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재능과 물질을 주를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이 세상은 밝아지고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저의 경우, 초등학교 6학년 때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고 나서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무슨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면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그때부터 열심히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도하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지 평생 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이 나라 이 백성을 몽땅 예수 믿게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비록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이었지만, 이렇게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을 보면 성령의 은혜를 받아도 제대로 받은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저의 평생 계획을 세워놓고 지금껏 살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사는 동안 가장 보람되고 가장 귀한 일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일은 영원히 지옥에서 멸망당할 영혼을 구원해 내는 일입니다.

성경을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이 땅에 계시다가 승천하실 때에 마지막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고 당부하셨습니다(마 28:18~20).
다시 말해서 우리 마을 사람, 우리나라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족속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학자들은 이 말씀을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이 명령에 순종하여 일평생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 9:16).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가장 귀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주님과 복음을 위해 일평생 살다가 순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미국의 명문대학을 졸업한 5명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가운데 피트라는 청년은 신혼여행도 포기하고 에콰도르 선교에 나섰습니다. 5명의 선교사는 아내들을 후방지역에 남겨둔 채 경비행기를 타고 아우카 인디언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1965년 1월 2일 피트 선교사는 아내에게 “흥분한 인디언들이 몰려오고 있다. 기도해 달라.”라는 긴급무전을 보낸 뒤 연락이 끊어졌습니다. 이튿날 구조대원과 가족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5명의 선교사들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는 총과 무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사용한 흔적이 전혀 없었습니다. 결국 제대로 복음을 전해보기도 전에 순교하고 만 것입니다.
선교사의 젊은 부인들은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남편이 이루지 못한 과업을 우리가 이루자”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아우카 마을로 들어가 그곳에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 그 마을은 복음의 땅으로 변했습니다. 선교사를 살해했던 5명의 인디언 가운데 4명이 목사가 되었고, 1천여 명의 주민들이 모두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젊은이들의 순교의 피가 결코 헛되지 않고 세상을 바꾸게 되었음을 증명해 보여주는 위대한 기독교 역사입니다.

갈보리선교교회의 강문호 목사님은 설교 가운데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이 교회는 파나이 섬에 120개의 교회를 지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위암 말기 치료를 받고 있던 이 교회의 김수연 집사님이 300만원이면 그곳에 교회 하나를 지을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어머니에게 “엄마 , 나 죽는 것 다 아는데 지금 죽으면 하나님께 보고할 것이 없잖아요. 치료비에서 남은 돈으로 교회 하나 봉헌하고 하나님께 가서 교회지었다고 보고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고 그날로 퇴원한 후 남은 치료비를 교회건축헌금으로 보내왔습니다.
성도들이 파나이 섬 말리브 망고나무 밑에서 예배를 드리고 이 돈으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이름을 ‘수연교회’라 짓고 영원히 기념하기로 했습니다. 그 후 3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던 김 집사님은 3년을 더 사셨는데, 장례비용을 절약해 교회 하나를 더 세우라고 유언하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도 한 권사님이 천만원을 들고 오셨습니다. 그 돈이면 선교지에 교회 하나 지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십 년 전부터 기도해오셨다고 합니다. 제가 볼 때 형편이 좋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아주 가난한 분입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도 여러 권사님이 선교비로 천만원씩을 내주셨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가장 귀한 일이기 때문에 선교와 전도에 쓰이는 물질이야말로 가장 보람있게 쓰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일생을 드리고 물질과 목숨을 바쳐 헌신하는 것입니다.

전주의 안디옥교회는 선교로 유명한 교회입다. 이 교회를 개척한 김동희 목사님은 일년 예산의 70%를 선교에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성탄주일에도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시상물이 없는 것은 물론 찬양대원이나 지휘자, 주일학교 교사나 구역장 누구를 막론하고 아무 것도 주는 것이 없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충성봉사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 하는 것이므로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게 될 것이고 따라서 굳이 교회에서까지 상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교회방침입니다. 이렇다보니 “진짜 교회다운 교회”라고 소문이 나면서 더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든다고 합니다. 선교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이 교회는 성도들이 모두 은혜를 받아 기쁨으로 봉사하며 이미 30개국에 15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모범적인 교회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렇게 선교에 열심인 교회가 있는 반면에 대부분의 교회들은 선교를 등한히 하고 있습니다. “내 지역도 복음화 하지 못하고 있는데, 굳이 먼 나라까지 가서 선교를 해야 하느냐, 혹은 재정이 없는데 어떻게 해외선교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 뿐만 아니라 2천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이곳저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할 때에, 그가 세운 교회가 많았지만 빌립보교회 외에는 그 어떤 교회도 도움을 주는 교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4:25이하를 보면, 엘리야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흉년이 들어 기근이 몹시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지만 엘리야를 대접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돈 땅에 사는 사렙다의 한 과부만이 엘리야를 대접했습니다. 그녀는 통에 남은 한 줌의 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마지막 식사를 하면 이 땅에서의 삶이 끝이 나는 극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먼저 엘리야 선지자를 대접하므로 해서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기근의 때를 무사히 보냈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어떤 선교사님을 보는 순간 “여비라도 좀 드려야겠다. 내가 대접을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관심이 없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어떤 경우, 여러분 한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순간인지도 모릅니다. 아무에게나 이런 감동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에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이 아니면 생각도 나지 않고 하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을 감동시켜서 이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한번은 제 아내가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을까요?”하고 물어왔습니다. 저는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죽이나 조금 쑤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어느 권사님이 흑임자죽을 가져오셨습니다. 무릎이 성치 않으신 분이 다리를 절뚝절뚝 절며, 그것도 죽이 식을까봐 보자기에 꽁꽁 싸서 들고 오신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라 “권사님, 우리가 오늘 저녁 죽 먹기로 했는데 어떻게 알고 죽을 쑤어 오셨어요.”하고 물었더니, 갑자기 우리 목사님 깨죽을 쑤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 깨도 있고 해서 죽을 쑤어 왔다고 하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날 저녁에 하나님께서 백 사람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더라면 큰일날 뻔했습니다. 오직 그 권사님 한 분에게만 감동을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어떤 감동이 올 때는, 여러분을 택하시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임을 아셔야 합니다.

또 제 얘기를 해서 죄송스럽습니다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선교단체의 총재인 영국신사가 우리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대접도 하고 잠자리도 봐드리고 했습니다만, 마침 제게 500불이 있어서 그 돈을 선교비로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받는 순간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어느 나라를 가도 수영로교회처럼 잘 대접하는 교회가 없었다고 감격해 하셨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워낙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다 보니 어느 교회나 개인이 백 불, 이백 불 주겠습니까. 후원도 많이 받고 잘 살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 당시에도 많은 교회가 있었지만, 사도 바울에게 필요한 여비와 생활비를 드린 빌립보 교회는 역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선교사인 사도 바울을 후원한 교회로 역사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특별한 교인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싶지만 물질이 없어서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여유가 있지만 전혀 마음에 감동을 받지 못하여 선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본문 16절 이하를 보면,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을 물질적으로 돕되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풍성하게 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어찌 사도 바울이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에게 축복을 마음껏 빌어주고 싶지 않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과실이 번성하기를 구함이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확신에 찬 축복을 빌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가복음 10:29~30을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영국이 세계적인 나라로 발전한 것은 빅토리아 여왕 때였습니다. 이때 영국은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토마스나 로스 선교사 같은 분들도 모두 이 때 파송한 분들입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세계는 나의 교구’라는 큰 꿈을 가지고 전도와 선교에 온 힘을 다 쏟았습니다. 또 미국이 선교의 절정을 이룬 것도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라고 합니다. 이처럼 전세계를 상대로 선교할 때 교회들이 크게 부흥되었고 나라도 부강해졌습니다.

한국교회는 2002년 현재 162개국에 만 여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이어 제2위의 선교 파송국이 되었습니다. 1997년 IMF 때에도 한인 선교사는 17.7%나 증가했고 해마다 천 여명씩 새로운 선교사가 파송되고 있습니다.
선교단체도 79년도에 21개였으나 2000년 후반에는 136개로 늘어났습니다. 선교훈련기관이 11개, 연구기관이 4개, 선교회 연합기구가 6개, 협력단체가 17개나 된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는 작년에 800여명에 가까운 선교사를 파송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금년 목표는 1,500명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란과 같은 회교국가들이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선교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세계의 교회들이 복음과 사랑의 빵을 들고 그들에게 선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들이 모두 미국을 비롯한 백인 선교사들은 거부하고 동양계의 한국 선교사들을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후복구사업을 돕고 있는 세계 NGO(국제 비정부기구)들도 테러의 대상이 되어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오직 한국의 NGO들만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바야흐로 세계선교는 이제 한국의 몫이라고 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전세계의 선교단체들로부터 한국 선교사들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꿈 속에서 마게도니아인이 나타나서 마게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한 것처럼 전세계가 한국 선교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들 모두가 다 선교에 동참하기를 원합니다. 적어도 각 사랑방마다 1명씩, 한 가정에 1명씩, 한 사람마다 1명 이상씩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시기 바랍니다. 후원비가 적든 많든 액수와 관계없이 모두가 다 한마음으로 이 일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교회의 목표인 5,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그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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