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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아가도 복 된 길이 있습니다. (출 13: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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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재신 목사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일찍이 아브라함에게 “너와 네 자손들에게 주리라” 고 하셨던 약속의 땅입니다.
  창 26:3-5절에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하시니라

  수 백년이 지나 아브라함은 죽었지만 그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바로 왕의 학정아래 신음하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찾아오셔서 강퍅한 바로와 그 백성들을 10 가지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심판하시고 억압받던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장엄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1. 두 갈래 길
  그런데 본문 17, 18절에 보면 가나안으로 가는 길이 두 갈래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불레셋 사람의 땅의 길과 홍해 광야 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섰습니다.
  출 13:17-18절에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라고 했습니다.
 
  ① 첫째는 지름길입니다.
  17절에 보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 지라도..”라고 표현되어진 길이 있습니다. 지중해 해안을 따라 난 해변 길로서 애굽의 18왕조가 북방 정책의 일환으로 빈번히 이용하였기에 “왕의 대로”라고 불리는 길입니다. 가나안 지경에서 애굽으로 오가며 무역을 하던 대상들이 지나 다니는 넓고도 가까운 지름길입니다. 애굽에서 이 길로 곧장 가면 가나안까지 4일이면 갈 수 있습니다.

  ② 둘째는 돌아가는 길입니다.
  이 길은 18절에서 “광야 길”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데 이길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왜냐면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 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직선거리가 아닌 돌아서 가는 길입니다. 홍해 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서 가야하는 멀고도 험한 길입니다.
 
  2.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두 갈래의 길 앞에 서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고 멀게 돌아가는 홍해 광야의 길을 택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멀리 돌아가는 길보다는 지름길 가기 원하고 좁고 험한 길보다는 넓고 평탄한 길을 가기 원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시는 방법이 우리 인간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가깝고도 편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멀고 험한 홍해 바다의 광야 길로 백성들을 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돌아서 멀고 험한 길 가게 하시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1) 이스라엘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블레셋 사람의 길 즉 지름길은 쉽고 가까운 대신 그 길목에는 일찍이 철기 문화를 발달시켜 각종 철 병기로 무장하고 서로 동맹을 맺어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블레셋 족속의 가사,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과 같은 다섯 개의 큰 도시 국가들이 있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아직 출애굽 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조직도 제대로 정비되지 않고 군사력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막강한 블레셋 군대와 맞부딪치게 되면 쉽게 낙심하고 절망할 것이 분명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었겠지만 믿음이 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리 낙심하고 시험에 들것을 우려하셔서 광야 길로 가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2) 목적 때문입니다. 
  출3:12절에 의하면 출애굽의 1차 목적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즉 백성들이 애굽에서 거주하던 400년 동안 중단됐던 예배를 드리게 함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 길이지만 광야 길로 가야했습니다.

  3) 연단 때문입니다.
  광야 길에서 만나는 모든 장애물, 그리고 환난과 시련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을 훈련하는 도구였습니다. 가나안의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환난과 시련을 통하여 단련되고 성숙해진 믿음의 소유자가 받는 것입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연단 없이 가나안에 들어갔다면 가나안에서 더 많은 잘못을 저질렀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길을 갈 때도 이와 같이 멀고 험한 길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편한 길 지름길 놔두고 굽이굽이 돌아서 험한 길 가게 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하나님의 큰 뜻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55:8-9절에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돌아가게 하실 때 낙심하지 맙시다.
  지금은 재앙 같고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 같아 보여도 그 길의 끝에는 소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렘29:11절에 보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돌아가게 하셔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기도해야 합니다. .
  돌아가는 길에서 힘들고 낙심할 때 기도하면 들을 것이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만나주신다고 했습니다. 렘 29:12-13절에 보면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하게 하실 것입니다.
  롬8:28절에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게 하신다고 했습니다. 직선 길, 지름길 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시면 불행입니다. 그러나 멀리 돌아서 험한 길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축복입니다.

  지름길이라도 저주의 길이 될 수 있고 돌아가는 길이라도 축복의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름길을 택하지 않으시고 돌아가는 길을 택하게 하였습니다.

  3. 돌아가도 복된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 길로 돌리신 것처럼 성도들의 인생길을 번번히 돌리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고난과 환난을 당하고 모든 고생을 다하며 길을 가게 하십니다. 남 안 당하는 모든 역경을 다 겪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돌아가는 그 길이 복된 길일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어느 때가 돌아가도 복된 길일까요?

  1) 소망 있는 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돌아가는 길이라도 그것은 가나안을 향한 길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꿈의 땅입니다. 희망의 땅이요 대망의 땅이었습니다. 그 땅을 가는데 조금 돌아가면 어떻습니까?
  그렇습니다. 소망이 있으면 돌아가도 복된 길입니다.
  마 7:13절에 보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좁은 문은 고난의 길이만 생명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아무리 넓고 편해도 마지막에 멸망당하는 길이라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소망 때문에 광야 길도 복인 것입니다.
  광야길 좁은 길 돌아가는 길을 갈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가나안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가나안의 소망을 가지고 가는 길이었습니다.
  아무 근거 없이 혼자 기다리고 바라는 것은 희망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희망을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성도는 희망이 아니라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희망이 소망입니다. 광야의 길은 돌아가는 길이었지만 그 길은 가나안으로 나아가는 소망의 길이었습니다. 왜냐면 약속의 땅을 향하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이 약속되어 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딤전 4:10절에보면 살아계신 하나님께 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오늘 예수 따르는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위로 받을 소망이 있고 하나님께 상 받을 소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복 받을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길이 축복의 길입니다.

  2)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 
  하나님이 백성들을 홍해의 멀고 험한 길로 가게 하셨지만 그들 홀로 가게 하지 않으시고 그 길에 하나님이 함께 가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7절과 18절 21절에서 하나님이 “인도” 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출 13:17)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보면 뉘우쳐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출 13:18)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항오를 지어 나올 때에
(출 13:21)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

  인도하셨다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노정에 개입하셔서 가야할 방향과 때를 정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21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 앞서 행하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앞서서 가셨다는 것입니다.
  앞서가시면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길을 예비하시고 대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특히 출 23:2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왕벌을 보내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왕벌을 네 앞에 보내리니 그 벌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은 오늘도 적극적으로 믿음의 사람들에 삶에 개입하셔서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줄을 믿으시기 바람니다. 

  3)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길 
  22절에 보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출 13:22)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
  떠나지 아니했다고 하는 것은 언제나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함께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이 험한 길 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험한 길 가게 하신 하나님이 그 길을 책임지고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없이 가는 길은 아무리 넓고 편해도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은 비록 멀고 험해도 기쁨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주님 없이 편한길 가기 원하십니까? 좁은 길 험한 길 광야길이지만 주님이 동행해주시는 길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선택은 자유이지만 길은 험할지라도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이 훨씬 안전하고 복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과 걷는 길을 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주와 함께라면..... 돌아가는 길도 복된 길입니다.

  4)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길
  하나님의 보호는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한다는 증거였습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은 별개의 두 기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한 개의 기둥이 이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즉 밤에는 찬란한 불 모양으로 나타나서 추위나 맹수들의 습격으로부터 보호하고 해가 뜨면 구름 기둥으로 변하여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열기,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무엇입니까?
  요 14:26절에 보면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즉 성령님이 오늘날의 구름기둥과 불기둥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잘못할 때 말씀으로 책망하기도 하시고, 슬픔에 잠겼을 때는 다가 오셔서 위로해 주시고, 힘을 잃고 넘어졌을 때는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합니다. 도와주시는 스승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때로 험한 길, 멀리 돌아가는 길로 가게도 하시지만 결국은 우리를 도우셔서 영광스런 목적지까지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편하고 가까운 지름길이 항상 최선의 길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때로는 돌고 돌아 멀게만 느껴지고 가고 가도 끝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그 사랑하는 자녀에게 언제나 선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은 빗나가는 적이 없고 실수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내 길의 구름 기둥으로 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불기둥으로 삼아서 열심히 걷는 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멀고 험한 인생길에서 주님만 바라봅시다. 그분만 의지하고 낙심하지 말고 열심히 저 앞에 보이는 우리의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향해 전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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