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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아침은 실패한 자리에 앉아있을 때가 아닙니다. (눅 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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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필곤 목사

새 해가 되어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올해 우리 교인들이 중한 병에 걸려 쓰러지는 분이 없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몇 차례 병원에 심방을 하였습니다. 수술하신 집사님 기도를 해 드리고 차를 타고 나오면서 하나님께 투정이 나옵니다. "하나님 왜 1월부터 이렇게 병들어 수술하는 환자가 생깁니까?" 목요일 집에 가지 않고 교회에서 저녁에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몇 년 전 일이 생각났습니다. 동료 목사님께서 분당으로 이사오시는 집사님을 저희 교회에 보내었습니다. 저에게 보내면서 잘 지켜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만 남편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장례식을 치루는데 그 친구 목사님이 저를 보자 마자 "잘 지켜달라고 했는데 이게 뭐야?"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더 잘 가르치고 주일을 지키게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하고 후회한 일이 있습니다. 목회자가 교인들을 악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행복하게 살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당연한 본분입니다. 아프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베드로와같은 능력을 저에게도 좀 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어부이고 사람들이 무식하다고 했지만 성전 미문에 앉은 뱅이를 "은과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 3:6)"라고 하니까 일어나 걸었지 않습니까? 저도 그런 신유에 은사를 좀 주십시오. 그리고 이번 주일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이른 아침은 희망의 시간입니다. 기대의 시간입니다. 찬란히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힘차게 출발하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새 아침이 밝아 왔는데 밤새워 고기를 잡았는데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허탈해 하면서 그물을 씻고 깁는 사람들이 오늘 성경에 나옵니다. 힘차게 출발해야 할 새 아침에 베드로는 실패한 생업의 현장에서 허탈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 가야만 하시는 성도님들 혹 있습니까? 오늘 이 말씀 붙들고 일어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실패의 현장에 찾아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 삶의 주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실패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삼성이 역사이래 최대의 호황을 누린다고 언론들은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쓰러져간 수많은 개인 영세 업자들의 이야기는 언론도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성공한 운동선수, 성공한 학생, 성공한 가정, 성공한 기업에 관심을 가지고 그곳에 몰려듭니다. 실패한 가정, 실패한 학생, 실패한 기업, 실패한 인생 사람들은 외면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실패한 가정을 찾아오십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치유의 손길을 펴시고 찾아오십니다. 실패한 사업터에 회복의 손길을 가지시고 찾아오십니다. 실패한 심령에 위로의 말씀을 들고 찾아 오십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를 보십시오. 밤새워 고기를 잡았으나 고기 잡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병든 장모도 계시고 책임질 가족이 있습니다. 게을러 잠만 잔 것이 아닙니다. 밤잠 자지 못하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습니다. 얼마나 허탈했겠습니까? 그래도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아무 것도 잡지 못한 빈 그물을 씻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베드로가 고기잡기에 실패한 그날 아침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해변에 모여있는데 예수님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인생은 여기에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의 배에 예수님 찾아와 오르시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죽은 나사로의 집에 예수님이 찾아 오시니까 나사로가 일어납니다. 나인성에 홀로되어 마지막 희망인 외아들이 죽은 집에 예수님이 찾아 오시니까 죽은 청년이 일어나게 됩니다. 부모도 형제도 이웃도 버려버린 도저히 낳을 수 없는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만나니까 자리에서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눈물이 변하여 기쁨을 주시기 위해, 탄식이 변하여 환호를 주시기 위해, 실패가 변하여 성공을 주시기 위해, 질병을 치유하여 건강한 몸을 주시기 위해, 절망에서 소망을 주시기 위해, 분쟁에서 평화를 주시기 위해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이 예수님만 모시면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베드로는 찾아 오신 예수님을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자신의 배를 내어 줍니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간밤의 실패로 짜증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간밤의 실패로 더 이상 허탈해하며 절망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다 전하신 후 간밤에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4절을 보십시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실패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어떻게 합니까? 5절에 보십시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의 지시에 따릅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사람이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이 잡았습니다. 대 성공입니다. 환희의 수간입니다. 빈배는 고기로 가득찬 배로 변했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무엇이라고 말을 합니까? 8절을 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난 것을 보고 예수님의 무릎 아래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은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5절에서는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선생님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이미 안드레를 통해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생업이 중요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말씀들으려고 아침부터 나와 예수님을 따르는데 자신은 밤새워 고기잡고 아침에 한 마리도 잡지 못해 허탈한 가운데 집으로 가려고한 사람입니다. 실패하여 허탈한 아침에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베풀어 주신 기적을 보고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할 뿐 아니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인생의 주인으로 예수님을 모신 것입니다.

실패한 날 아침이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빈 배는 예수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실패한 날 아침이 세상의 음성보다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사업에 실패했을 때, 이일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을 때, 질병에 걸렸을 때, 가정에 어려움이 왔을 때 바로 그 때가 우리를 외면하시지 않고 찾아 오시는 우리 주님을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모실 기회입니다. 그 때 바로 아름다운 회개가 있게 되고, 고기 잡이 배가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강단이 됩니다. 구원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고 신비한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 순간 나의 추한 모습, 나의 무능력, 자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건강할 때 자기 마음대로 살았지만 병들면 얼마나 인간이 연약한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돕기 위해 찾아 오십니다. 히브리서 13장 6절에는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에서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짐, 증오의 짐, 질투의 짐, 질병의 짐, 가난의 짐, 저주의 짐, 미움의 짐, 죽음의 짐을 주님께 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라고 말씀합니다. 실패했을 때 영혼의 귀가 열립니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입니다. 느끼지 못한 것을 느끼게 됩니다. 베드로의 사정을 아신 예수님이 오늘 우리의 사정을 아십니다. 오늘의 실패를 아시듯이 우리의 과거의 실패도 아십니다. 숨은 한숨과 고통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오늘 믿음이 없으신 분은 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시고 믿기는 믿지만 아직도 신앙의 체험이 없으신 분들은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받는 시간이 되시길 원합니다.

2. 실패의 현장에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진정한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밤새워 실패한 베드로를 새 아침에 성공한 베드로로 만들어 주셨습니까?베드로는 무엇을 통해 실패에서 성공으로 방향을 전환하였습니까? 좌절에서 소망으로, 허탈감에서 환희로 인생이 전환되었습니까? 그것은 단순했습니다. 경영학이나 인간 처세술을 통해 일어선 것이 아닙니다. 순종을 통해 인생이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말씀하라 때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랑하라. 용서하라. 일어서라. 두려워하지 말라. 십자가를 지라.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라. 소망을 가져라" 상황 상황 속에서 수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베드로는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5절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이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갈리리 바다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시간 대별로 고기가 많은 곳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밤새워 고기를 잡지 못한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의 경험과 지식으로는 맞지 않는 지시입니다. 예수님은 고기잡이에 관한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없는 목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밤새워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지쳐있었기 때문에 무리한 지시라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동료들이 이미 그물을 씻은 상태이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그물을 내리자고 하는 것이 무리라는 사실도 알았을 것입니다. 고기잡는데 최적의 시간은 밤인데 지금은 태양이 바다에 눈부시게 비추는 아침입니다. 베드로는 전문 어부답게 예수의 가당찮은 명령을 조목 조목 지적하며 반박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기도가 나옵니까? 어떻게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까? 상식에 맞아야 하지요. 예수님도 내 입장이 되어 보십시오. 이런 때 소망이 있겠습니까?라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라고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뜻하지 않는 횡재를 하게 된 것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잡혔습니다.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신앙적인 체험을 한 것입니다. 질병에 걸려 기도하다 보니 질병에서 낳는 기적을 체험한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워져가는데 기도원에 가서 금식하면 기도하다 보니 정말 사업이 일어서는 경험을 하게되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인데 용서하다 보니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두 배에 잠기게 될 정도로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자기만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직원에게도 가족에게도 사회와 민족에게도 혜택이 가는 것입니다. 베드로 한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자신도 풍성한 삶의 축복을 얻게 되고 동료들도 실패의 현장이 축복의 현장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베드로에게 고기를 잡아 주지는 않았지만 말씀으로 도전을 주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빈 인생이 넘치는 인생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축복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주님은 잠깐 빌려쓴 배에 엄청난 사용료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말씀에 의지하여 인생의 그물을 내릴 때 진정 축복의 인생을 살 수가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말씀을 좇아 그물을 내릴 때 여호와 이레의 복을 누렸습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가르친대로 믿는 자의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신앙은 인간의 이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샘 슈메이커 목사님은 말하기를 "10%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10%의 행복을 누릴 것이요, 50%만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50%의 행복을 누릴 것이요, 완전히 순종하는 사람은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라고 말했습니다.

3. 실패의 현장에서 방향을 전화하여 새 출발하는 개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실패의 현장에 찾아 오셔서 축복의 현장으로 바꾸어 주신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10절에 보십시오.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고기를 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을 말씀합니다. 실패의 현장에 찾아오신 예수님의 궁극적인 이유입니다. 베드로를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명자로 삼기를 원했습니다. 썩어질 것들 세상에서 취하다 세상에 다 빼앗기고 갈 인생살이가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 수 있는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고기 잡는 그물이 아니라 사람 낚는 어부로 그를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때 베드로는 어떻게 했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베드로 뿐 아니라 동업자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은혜받고 새로운 사명을 받았습니다. 실패의 현장에서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부르심에 결단하였습니다. 아름다운 헌신이 일어났습니다. 고기 잡는 어부가 사람을 살리는 예수 제자가 된 것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부 예수님께 내어드렸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베드로 배만 상용하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 자신을 쓰시길 원했습니다. 이 땅 위에 가장 아름다운 사역은 그물에 영혼을 담는 일인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우리도 고기만 잡는 어부가 아니라 그 물속에 영혼을 담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이후로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한 후, 예수님을 경험적으로 만나 신앙을 고백한 후 그렇게 변한 것입니다. 실패의 쓴 잔에서 성공의 축배를 마신 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의심에서 믿음의 사람이 되고 자만에서 겸손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진정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세계관이 달라집니다. 물질관이 달라집니다. 즐거워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헌신도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고 새사람 되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축복받으며 사명으로 붙듬으로 인생은 의미있고 사는 재미가 생깁니다.

새아침은 실패한 자리에 앉아있을 때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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