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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소중한 시간 (창 8: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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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정호 목사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이 세상을 참 공평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환경, 처지, 출신 배경 등). 그러나 시간에 관한한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하나님으로부터 공평하게 선물로 받은 것은 하루 24간이라는 시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의 가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면서 살고 있을까요?

시간의 가치를 알려거든... 

한 해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시험에 떨어진 학생에게 물어보고, 한 달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조산아를 낳은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한 주일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주간지의 편집자에게 물어보고, 한 시간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연인에게 물어보고, 일 분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버스를 놓치고 허둥거리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일 초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진 자동차 사고로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천분의 일초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속도를 다투는 올림픽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들의 제국》중에서)

사람들은 모두 하루의 스물네 시간이라고 하는 똑 같은 시간을 소유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왜 어떤 사람은 그 시간 안에서 무엇인가를 이루며 살고, 어떤 사람들은 늘 바쁘지만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이 살아갈까요? 왜 어떤 사람은 같은 시간이지만 비교적 여유를 가지고 살고, 어떤 사람들은 항상 쫓기면서 살아가는데 이 차이는 도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대해서 "스티븐 코비"박사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사람들이 중요한 것과 긴급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급한 대로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분별하고 판단한대로 선택하면서 살아가십니까? 중요한 일이란 바로 "내게 가치 있는 것" 그것을 말합니다.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진정한 의미의 만족과 보람과 그리고 성숙을 주는 그러한 일이 내게 있어 중요한 일입니다.

중요한 일이란 바로 "내게 가치 있는 것" 그것을 말합니다. 내 인생을 변화시키고 진정한 의미의 만족과 보람과 그리고 성숙을 주는 그러한 일이 내게 있어 중요한 일입니다.

반면에 긴급한 일이란 당장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말합니다. 그 일들은 나의 관심을 요구하게 되고 그래서 내가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열심히 해봐야 별로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많은 일, 그것을 가리켜서 긴급한 일이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갑자기 조용한 집에 따르릉~하고 전화가 와서 급히 받았지만 별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전화를 받았지만 내 삶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텔레비전을 몇 시간씩 열심히 시청을 합니다. 흥미진진한 드라마를 열심히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생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 본다고 해서 손해가 오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 관심을 요구하고 내 시간을 달라고 하고 내 정력을 다 바치는 일이기 때문에 그것 또한 긴급한 일이 됩니다.

반면에 자기 아이하고 눈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대화의 시간,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퇴근해서 집에 가는데 어둑어둑할 때 어떤 아이가 자기를 흘끗 보더니만 고개를 획 돌립니다. 그래서 저 아이가 누군가하고 가까이 가보니 자기 아이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자기 한번 쓱 보더니만 얼굴을 또 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가서 하는 말이 "야, 너 왜 그러니? 무슨 일이야?"그랬더니 그 아이 대답이 "아버지도 항상 그랬잖아요." 그랬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언제 날 쳐다 본적 있어요. TV 보면서 건성으로 대답했고, 신문 보면서 조용히 하라고 말했고, 밥 먹으면서 말했지 언제 내 눈 쳐다 본적 있어요?”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정말 그런가 하고 잘 생각해 보았더니 맞는 것입니다. 자식 눈보고 말한 적이 없더라는 것입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부모 자식이 얼굴 맞대고 눈 쳐다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몇 분쯤 될까요? 하루에 10분도 안 된다고 합니다. 자식과 얼굴을 정겹게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은 중요한 일에 속합니다. 긴급한 일에 마음을 빼앗겨서 진작 중요한 일을 놓치는 경우입니다.

목표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노력해서 시간을 내서 할애하고 공부를 하거나 혹은 운동을 하거나 하는 것은 다 소중한 것들입니다. 하루에 일이십 분씩만 내어 일 년만 해도 무엇인가 체계 잡힌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삶의 보람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일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것은 내 삶의 중요한 그러한 문제들은 긴급을 요구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뭐 하루 이틀 안 한다고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한 일 없이 바쁘게만 살았고 쫓기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긴급한 일이 꼭 나쁜 일은 아닙니다. 해야 할 일이지만 쫓기다 보면 중요한 일을  할 수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괴테"는 말했습니다. "중요한 일이 하찮은 일에 의하여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고... 그래서 내 삶이 정말로 변화되어야 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자기 삶의 패턴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내게 있어서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되고 그리고 그 시간들을 내 시간 계획 속에 반드시 넣고 실천해야만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시간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충고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일에도 마찬가집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8장에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며, 또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정확하게 기록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7장에 홍수가 시작됩니다. 하나님은 120년이라고 하는 긴 세월동안 죄인들을 부르시고 돌아올 수 있는 유예기간을 허락해 주셨고 마침내 일주일 전에는 모든 동물들의 행진을 보여주시면서 징조를 가르치셨고 마지막으로 노아는 백성들에게 말하기를 “이제 타라”고 하는데, 아무도 타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문이 닫히고 홍수는 시작되었습니다. 사십일 동안 폭우가 쏟아지고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온 세상은 온전히 물속에 잠기면서 노아와 그 식구 외에는 코로 숨 쉬는 모든 것들이 깨끗하게 죽게 됩니다.

방주 안에 있는 노아는 언제 땅에 발을 붙일 수 있는가를 기대하고 그날을 사모해 왔습니다. 일 년 넘도록, 그리고 마침내 그는 땅에 물이 빠졌는가를 알기 위해서 두 가지 조치를 취하게 됩니다. 까마귀를 먼저 날려 보내고 두 번째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비둘기라고 하는 것은 깨끗한 곳에만 앉기 때문에 접촉할 것을 얻지 못하고 다시 돌아 왔고 다시 두 번째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그 결과가 감람나무 잎사귀 하나를  비둘기가 물고 왔습니다. 그것은 이미 땅이 드러나고 잎사귀가 자라고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배 안에 일 년 이상 있던 그에게는 너무나 큰 복음이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의 전개를 이제 그는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다시 노아는 비둘기를 날려 보냈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땅에 물이 말랐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방주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실 때까지 그는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이 내려오라 말씀하셨고 그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 밖으로 나옵니다. 그 앞에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었습니다. 새로운 삶의 시작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가 방주 밖에 나와서 이 땅에 발을 디디고 맨 처음 한일이 무엇인가요? 20절입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壇)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燔祭)로 단에 드렸더니" 그가 땅에 내려서서 맨 처음 한 일은 제사를 드린 일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 고 했습니다. 이것은 아주 완벽한 제사를 드렸다는 말이고 우리말로 말하면 아주 반듯한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드렸다"는 말은 중요한 말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때로 자기를 위해 예배드릴 때가 많습니다. 또한 방주를 위해 예배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예배의 목적이 자기 자신이요, 자기를 위한 예배도 많습니다, 또한 방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바 은총의 수단에 불가한 것인데 그 수단을 숭배하여 그곳에 예배하는 자도 많습니다. 돈 잘 벌기 위해 예배하는 것, 다 방주를 위한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은 가르쳐 줍니다. 진정한 예배의 대상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래서 노아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데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사 중에서 가장 깨끗한 제사입니다. 자기를 온전히 드려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가리켜 번제라고 말합니다. 우리말로 하면 "내 소원 내 욕망이 많으니 내 소원 들어주시오"라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나를 다 바칩니다. 하나님께 내 인생을 다 위탁합니다. 주여, 나를 받으소서." 그러한 전적인 헌신과 위탁의 제사를 아주 깨끗하게 드립니다. 여호와를 위하여. 자기의 생을 다 맡기는 "위탁의 예배" 이것이 노아의 예배였습니다.

노아가 왜 이러한 예배를 드렸는가 하면 그가 깨달은 것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당시 사람들이 그렇게도 분주하게 뛰어다니면서 이루어 놓은 위대한 업적들, 그들의 소유물이 얼마나 간단하게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쓸려가 버렸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보다 소중한 것은 하나님과 그와의 "관계"라는 것을 안 그는 예배가 가장 소중함을 고백하고 그 앞에 엎드립니다.

지금 노아의 눈앞에 전개된 세상은 푸른 초장 맑은 물가가 절대로 아닙니다. 모든 것을 다 홍수가 쓸어 가버린 황폐해진 그 진흙 바닥에 그가 엎드려서 예배를 드립니다. 여러분! 그가 지금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빨리 집도 지어야 하고 음식도 마련해야 되고 할 일이 태산이지만 이런 모든 일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예배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 모든 삶의 기초는 예배다"이게 노아의 고백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것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이 때로는 "잉여"의 문제로 착각하는 겁니다. 내가 좀 돈 좀 벌고 여유가 생기면, 건강을 좀 회복하면, 이제 편한 마음으로 인생의 의미도 생각해 보고 하나님도 믿고 교회도 다니고 시간나면 예배도 좀 드리고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뭔가 잘 되고 나면 "잉여의 문제"요 조건이 붙는다는 말인데 노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일보다도 제사가 먼저다" 이것이 노아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정성으로 그가 예배를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는 예배

이 예배의 효과를 오늘 본문은 설명해 줍니다. 21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歆饗)하시고" 그랬습니다."흠향"이라는 말은 연기를 기분 좋게 들여 마신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드린 번제의 제사 그 연기가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도 향기로워서 깊이 하나님이 들이마십니다. 그 예배를 정말로 기쁘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정성을 다한 깨끗한 예배를 하나님이 너무 너무 기쁘게 받으셨다는 말입니다. 받으실 뿐 아니라 하나님은 21절 하반 절에 또 말씀하십니다.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제는 땅을 저주하지 않고 인생을 물로 멸망하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예배외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이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뜻을 바꿉니다. 그분의 긍휼을 힘입게 하는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그뿐 아니라 죄인 됨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고" 죄를 용서합니다. 죄의 용서는 오직 제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제사의 능력입니다. 죄인이 용서받고 하나님의 마음이 변하여 긍휼을 베푸시는 위대한 역사를 예배는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제 축복을 주시고 약속을 주십니다.22절에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앞으로의 인생을 보장합니다. “내가 농사짓는다고 거둘 수 있을까?” “내 미래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는가?” 두려워하는 노아에게 하나님은 "거두게 될 것이다. 쉬지 아니할 것이다." 불안한 미래를 보장하고 축복을 주십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듣고 노아는 다시 시작할 용기와 희망과 능력을 공급받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일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예배를 모르는 자들은 가짜 현실주의자들이다." 라고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 바쁜 세상에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예배한다고 밥을 주나, 취직시켜주나, 예배한다고 돈을 버나.” 그러므로 이 바쁜 세상에 예배라고 하는 것은 실용적이지 않고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건물도 보이지 않는 기초 위에 존재하듯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과의 교제인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예배 없이 살아가는 자들은 목적 없는 항해자와 같고 방향도 없이 시동을 걸고 달려가는 자동차 경주자와 같은 것입니다. 어디론가를 향해서 빠른 속도로 달려는 가는데 인생의 끝점에서 보면 나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열심히 격렬한 회전 운동만 한 셈입니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이 그래서 마지막 지점에서 예배 없는 자는 이렇게 부르짖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허무로 끝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나오는데 낮 12시에 아무 사람도 없을 때 물 길러 나온 것을 보면 그 사람의 인간관계는 다 파괴 된 것입니다. 사람 꼴 보기 싫다는 얘기입니다.  이 때 또한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물 한 모금만 달라고... 그런데 두레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물 한 모금을 안 주는 것은 그 마음이 정상이 아니고 지금 완전히 틀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여자는 자기 인생이 왜 이렇게 고달프고 복잡하고 짜증나는 삶을 살고 있는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을 나누다가 왜 이 여자가 이렇게 복잡한지를 진단하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네 삶에 진정한 예배가 회복되어야만 되겠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리고 한마디 보태기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랬습니다. 하나님이 찾는 사람은 돈 많은 사람, 유식한 사람이 아니라 그 앞에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 하나님은 그를 찾고 계시고 그를 통하여 역사하시기를 기대하고 계시고 하늘 문을 여시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영원으로 가는 시간

몇 년 전 미국의 한 공장에 도둑이 들어와 많은 시계를 훔쳐갔는데 이것을 처음 발견한 직원이 경찰에 이렇게 연락했습니다. “오늘 새벽 도둑이 우리 시간을 훔쳐 달아났습니다” 직원은 너무 바쁜 나머지 ‘시계’를 ‘시간’이라고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시간도 시계처럼 도둑맞을 수 있음을 말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시간 속에 삽니다. 성경의 세계는 공간적 세계가 아니라 시간적 세계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1). 모든 창조는 하루하루의 시간 단위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에 되니 이는 창조의 첫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처음으로 “거룩하다”고 선포한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창 2:3) 하나님의 거룩은 에덴동산에 있던 아름다운 산과 강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 곧 ‘안식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공간에 관심이 많지만 하나님은 시간에 관심이 많습니다. 공간은 물체와 그것의 소유에 대한 관심이지만 시간은 존재와 그것의 주권에 대한 관심입니다. 인간의 성공은 보다 넓은 공간에 대한 성공이요, 기술문명의 목적은 보다 넓은 우주공간에 대한 정복의 꿈이요, 산업혁명의 기술은 보다 많은 재화의 획득에 대한 기술입니다. 그러나 더 넓게 사는 것이 더 오래 사는 것이 아니며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더 많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시간적 세계관은 삶의 목표를 획득에 두는 것이 아니라 존재에 두며, 소유에 두는 것이 아니라 분배에 두며, 정복에 두는 것이 아니라 조화에 둡니다.

영적인 생활의 목표

영적인 생활의 목표는 더 넓은 땅을 획득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거룩한 순간에 있습니다. 우리 영혼에 자국을 남기는 것은 보다 크고 넓은 세계에 대한 소유가 아니라 보다 거룩하고 영원한 시간과의 만남입니다. 우리는 7일마다 그 거룩을 체험하며 그 시간이 영원에 닿기를 기도합니다. 교회 성장은 넓은 공간의 확보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신앙의 본질은 거룩한 시간의 확보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유대인이 힘들게 지은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은 무너지고 안식일만 남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교회가 남길 것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공간은 없고 다만 영원한 시간이 있을 뿐입니다. 

예배가 모든 회복의 기초

예배를 통해서 내 죄의 결박이 풀어지고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의 은총이 부어집니다. 영혼이 소생하고 생각이 바르게 됩니다. 목적과 방향이 분명해지고 존재의 가치와 인생의 사명을 알게 됩니다. 모든 것의 회복의 기초가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새로운 도전, 새로운 시도, 변화의 기초는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신다면 예배를 새롭게 드려야 합니다. 나 자신이 바뀌고 싶으면 그 방법이 예배 외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이 역사해 주셔야 되고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문제가 있으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함께 모여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무릎 끓고 서로 위해 기도할 때 정말로 새로운 변화는 시작되고 새 역사는 창조되는 것입니다.

때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순간에 “내가 지금 뭐하나? 이 바쁜 시간에 내가 뭐 하는가?” 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은 분명하게 자기 자신에게 말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은 내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내 인생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는 시간이다.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요, 축복받는 시간이다” 라는 생각으로 무장하면  예배가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시 한편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주님,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고 그들은 걷거나 뛰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서두릅니다.
  자동차도 거리도 도시 전체가 서두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을 좇아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시간을 벌려고 말입니다. 죄송하지만 안녕히 계십시오.
  저는 시간이 없습니다. 편지를 끝마치겠습니다. 시간이 없거든요.
  도와드리고 싶어요. 하지만 시간이 없군요.
  생각할 수도 없고 책을 읽을 수도 없네요. 시간이 없거든요.
  기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학생은 숙제를 시간 없다고 미루고
  젊은이는 운동을 시간 없다고 미루고
  아버지는 손자와 놀기를 시간 없다고 미루고
  아파서 죽게 된 사람도 시간이 없답니다.

  주님! 모든 사람이 시간을 좇아갔습니다.
  그들은 인생을 뛰면서 살아갑니다.
  너무 급하게 서로 밀치면서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그들은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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