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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찬양이 앞에 서다 (느 12: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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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유관지 목사

오늘은 예배 중에 찬양대원 임명순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느헤미야서의 후반부, 7장 이후부터는 찬양대원들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얼마나 중요한 직무를 맡은 사람들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는 예루살렘 성의 성벽을 재건한 기록인데, 찬양과는 거리가 먼 내용인데 느헤미야서가 찬양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궁금하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 처음 듣네!’  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세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공사는 착공으로부터  52일 만에 끝났습니다.(느6: 15)
성벽 재건 공사가 끝나자 느헤미야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합니다.
7장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먼저 일할 사람들을 세웁니다. 조직을 합니다.
7장 1절을 보세요.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

제일 먼저 세운 사람들이 문지기입니다.
그 때 예루살렘 주변에는 예루살렘을 엿보는 세력들이 많았기 때문에 문지기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그러니까 문지기를 먼저 세운 것은 당연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찬양대원들이었습니다.
그 다음이 레위 사람들, 제사장들, 오늘날로 말하면 교역자와 장로님들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행정을 맡은 관리들이었습니다.

찬양대원들의 우선순위가 이렇게 높았습니다.

7장 5절부터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모두 사만이천삼백 육십 이 명이 돌아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개 자손이 몇 명이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44절을 보세요. “노래하는 자들은 아삽 자손이 백사십 팔 명이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아삽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 찬양대 지휘자였습니다. 
노래하는 자들, 찬양대 대원들은 이와 같이 특별히 계수되었습니다.
중요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7장 73절에는

이와 같이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님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 다 자기들의 성읍에 거주하였느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문지기들, 노래하는 자들은 중요한 계층이었습니다.
백성 몇 명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느디님 사람들은 노예들의 집단이었습니다. 아마도 포로들의 후손이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들은 다윗 때부터 성전에서 잡역을 담당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서 7장 73절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백성 몇 명과 느디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 자손”이라는 말은 아주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에서 시작해서 평범한 사람들과 천한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돌아와서 살았다는 뜻입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마치고 개혁운동을 일으킵니다.
절기를 지키고 회개운동을 합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더불어 언약을 세웁니다.
10장 뒷부분에 그 언약의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지켜 행하겠습니다,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않겠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겠습니다, 성전에 필요한 것들을 위해 봉헌에 힘쓰겠습니다, 첫 열매를 여호와의 전에 드리겠습니다,  제사장들을 잘 섬기겠습니다, 십일조를 잘 바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전을 소홀히 여기지 않겠습니다,’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준공을 한 다음에 개혁운동을 했다, 철저하게 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 교회에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힘써 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언약을 세운 다음에  사람들이 언약에 인봉을 합니다.
인봉을 했다는 것은 서명을 했다는 뜻입니다.
10장에 서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총독 느헤미야에서 시작해서 여든 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지도자들, 또는 각 계파의 대표들이었습니다.

10장 28절을 보세요. 여기에도 노래하는 사람들, 찬양대원들이 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서 7장에서 끝 장인 14장까지에 “노래하는 자들”이라는 말이 매우 빈번하게 나옵니다. 노래하는 자들은 바로 찬양대원들을 말합니다.
이 말이 왜 이렇게 자주 나옵니까?
노래하는 자들, 찬양대원들은 왜 이렇게 특별히 취급되었습니까?
귀환 시대의 이상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영광 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찬양하는 사람들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자세한 것은 역대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36절을 보면 봉헌예배를 드릴 때 나팔을 압은 사람들, 악기 잡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악기를 잡았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다윗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악기를 만들고 사용하는 일에 힘쓴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런 모습을 살리려고 애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뒤에 이어지는 12장 45절에서 47절까지를 보면 그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결례의 일을 힘썼으며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도 그러하여 모두 다윗과 솔로몬의  명령을 따라 행하였으니 옛적 다윗과 아삽의 때에는 노래하는 자의 지도자가 있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노래와 감사하는 노래를 하였음이며 스룹바벨 때와 느헤미야 때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날마다 쓸 몫을 주되 그들이 성별한 것을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을 또 성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느니라

느헤미야서 12장 24절을 보면 레위 족속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명령에 따라 순서대로 주를 찬양하며 감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귀환시대에는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전례에 따라 찬양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특별대우를 했습니다.
찬양대원들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 귀환 시대에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역사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 년 쉰 주일 가운데 연초의 한 주일을 택해 찬양대 임명예배로 드리며 찬양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제 느헤미야는 재건된 성벽을 봉헌합니다.
이 성벽 봉헌의 의미는 대단히 큰 것이었습니다.
삶의 터전이 견고해졌습니다.
외부의 조롱하는 세력들로부터 방비를 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 귀환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음 놓고 돌아와서 살 수 있는 그릇이 마련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미 돌아온 사람들의 사기를 높이고 마음을 하나로 묶게 되었습니다.
만일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지 않고 부서진 상태 그대로 있었다면 이스라엘 역사에서 귀환 시대는 훨씬 더 초라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일은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인데 하나님의 도성을 파괴된 상태로 그대로 둘 수 없다. 초라한 모습으로 놔 둘 수 없다.’ 하는 신앙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그와 같이 감격적인 봉헌예배를 준비하는데 제일 먼저 한 것, 제일 힘쓴 것, 제일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음식 준비였을까요?
요즘 말로 하면 매스게임 같은 식전행사였을까요?
27절 뒷부분에 그것이 나와 있습니다.
감사하며 노래하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타며  즐거이 봉헌식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노래하는 사람들, 찬양대원들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봉헌식을 하는데 찬양대를 둘로 나눕니다.
한 찬양대는 오른쪽으로, 한 찬양대는 왼쪽으로 찬양을 하면서 돕니다.
오른쪽으로 도는 찬양대 뒤에는 율법학자인 에스라가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왼쪽으로 도는 찬양대 뒤에는 총독 느헤미야가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율법학자 에스라와 총독 느헤미야, 이 둘은 귀환시대의 대표적인 두 지도자였습니다.
이 둘 앞은 각기 찬양대를 앞에 세우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여러분, 예루살렘 성벽을 봉헌하는데 찬양대가 앞에서고 그 뒤를 하나님의 큰 일꾼들이 따르고 그 뒤를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따르고, 이들이 한쪽으로 시계방향으로, 한쪽은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광경을 머릿속에 그려 보세요.
그리고 40절 앞부분을 보세요, “이에 감사 찬송하는 두 무리가 하나님의 전에 섰고” 이들이 성전에서 만나는 광경을 그려 보세요.
얼마나 장엄했을 것입니까?
얼마나 감격적이었을 것입니까?
그 때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찬양으로 둘러싸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찬양으로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은 봉헌식을 크게 기뻐하셨고, 이 일을 통해 영광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봉헌식을 하는데 찬양을 앞세웠습니다.
우리도 중요한 일을 할 때, 아니 모든 일들을 하는데 찬양을 앞세워야 합니다.
찬양을 앞세우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봉헌식을 하는데 왜 찬양을 앞세웠습니까?
찬양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으로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느헤미야의 마음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사로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완전히 멸망하지 않고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그 명맥이 보존되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화시켜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신 일에 대한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자기에게 페르시아 왕실의 술 맡은 관원으로 만족하면서 일생을 보내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와 성벽재건의 일을 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신 일에 대한 감사가 있을 것입니다.
성벽을 재건할 때 어려운 일도 많았고, 방해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모함도 많았습니다.
투서도 많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민원도 많았습니다.
자세한 것은 느헤미야서 전반부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성벽을 봉헌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감사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은 찬양입니다.

여러분, 감사할 일이 있습니까?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가장 간단한 찬양은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의 뜻이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 16~18)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이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범사에 “할렐루야!” 해야 합니다.

감사를 찬양으로 표현하는 성도들, 할렐루야가 앞장 서는 생활, 할렐루야에 둘러싸인 생활을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봉헌식을 하는데 왜 찬양을 앞세웠습니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시편 78편을 여시기 바랍니다.
제일 앞에 “아삽의 마스길”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아삽은 아까 말씀 드렸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찬양대의 지도자입니다.
마스길이라는 말의 뜻은 난외주에 있습니다. 교훈시라는 뜻입니다.
시편 가운데 교훈적인 성격을 가진 시들에는 이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시편 78편은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시편 78편 5절에서 8절까지를 읽어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그들의 조상들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들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이 하나님께 충성하지 아니하는 세대와 같이 되지 아니하게 하려 하심이로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을 자손들이 알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나님을 거역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게 됩니다.

올해, 2005년은 해방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난 60년 동안 이 민족을 보호해 주시고 인도하시고 부흥시켜주시고 국제적인 지위가 높아지게 해 주신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알려 주어야합니다.
우리가 IMF를 겪었고 지금 유례없는 불경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이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고, 전쟁의 위험에서 건져주시고 부흥시켜 주시고, 정치적으로도 민주화를 이루게 하신 것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1885년 부활절에 아펜젤러 선교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첫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12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난 120년 동안 한국교회를 부흥시켜 주고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를 비롯하여 세계 10대 교회, 50대 교회에 한국 교회가 여럿 들어가게 하시고, 타문화권 선교사들을 세계에서 두 번째, 또는 세 번째로 많이  파송하는 교회로 성장시켜 주신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한국교회가 성장이 둔화되었다, 감소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에는 막연하게 들리더니 요즘은 목회현장에서 이런 일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큰 이유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다, 하나님이 그 복음이 왕성하게 자라게 하셨다, 하나님이 한국 교회에 여러 가지 놀라운 일들, 자랑스러운 일들이 많게 하셨다, 이것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에게 어떤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일을 잊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지금까지 우리에게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것을 자손들에게 전하기에 힘쓸 때 하나님이 이 나라를 경제적인 어려움과 답답한 정치현실에서 벗어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남아시아의 지진해일이 종말과 관계가 없습니까?
아닙니다. 관계가 있습니다. 15만 명이 훨씬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은 일이 어떻게 성서적인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종말 문제는 원래 말하기 아주 조심스러운 일이고, 지진해일 지역의 주민들이 겪은 슬픔과 고통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금은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사랑을 나누는 일이 더 급하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성서적인 관점, 특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현상과 연결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럴 때 ‘지금은 참 긴장된 시대이다. 우리는 종말론적인 긴장 가운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이 오늘 재림하시더라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하는 마음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지금은 이와 같이 영적으로 긴장해야 할 때입니다.
한국 교회가 지난 120년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시고 많은 복을 주신 것을 잊지 않고, 이것은 자손에게 전하기에 힘쓴다면 하나님께서는 한국 교회를 이 중요한 때에 더욱 귀하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도움들을 기억하고 그것을 주변에 알리기에 힘쓴다면, 자녀들에게 전하기에 힘쓴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여러분을 더 귀하게 사용하시며 많은 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는 데는, 그것을 자손들에게 전하는 데는 찬양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시편 78편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손에게 전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어서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신 일, 낮에는 그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인도하신 일, 반석에서 물이 나게 하신 일, 만나와 고기를 주신 일, 이스라엘 백성이 자주 하나님을 배반할 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가 되게 한 일,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대적을 물리쳐 주신 일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찬양하는 가운데, 찬양을 앞세우는 생활을 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들, 놀라운 일들, 많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을 자손들에게 전하기에 힘쓰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봉헌식을 하는데 왜 찬양을 앞세웠을까요?
즐거움을 표현하는데 찬양이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43절을 보세요.

이 날에 무리가 큰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 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

즐거워했다는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몇 번 나옵니까?
네 번 나옵니다.
이 즐거움을 표현하는데 찬양보다 더 적절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편 126편을 보세요. 이스라엘 민족이 포로생활에서 돌아올 때 부른 노래입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이스라엘 백성을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신 일,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된 일,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었던 기쁘고 좋은 일들  하나님이 행하신 큰 일입니다.

설교는 보편적이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예루살렘 성벽 봉헌을 목양교회와 연결시키는 일을 피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본문을 읽으면서, 말씀을 들으면서, 성전 준공과 입당과 봉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목양교회 성전 준공, 앞으로 석 달 뒤에 있을 입당,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우리가 한 해라도 빨리 당기기 위해 힘써야 할 봉헌,  하나님이 행하실 큰 일입니다.
이와 같이 즐거운 일이 있을 때 그 즐거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일, 찬양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삶에 즐거운 일들이 차고 넘쳐서 그것이 찬양으로 표현되기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봉헌식을 하는데 왜 찬양을 앞세웠을까요?
예루살렘 성벽 봉헌의 사실을 멀리, 널리 알리는데 찬양이 효과적이었기 때문입니다.

43절 끝부분을 보세요. 예루살렘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다고 했습니다.
주변 부족들이 그 소리를 듣고 ‘저것이 무슨 소리지?’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어 봉헌하면서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이것 보아라, 우리가 그렇게 방해했는데 성벽이 완성되었네. 그들은 하나님이 이 일을 하셨다고 하는데 우리를 꺾고 이 일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이란 도대체 누구일까?’ 하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찬양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멀리, 널리 전하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그 능력과 위엄을 전하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느헤미야 당시에는 찬양 소리가 주변 부족에만 들렸지만 오늘날에는 여러 매체를 통해 전 세계, 전 부족이 듣게 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찬양은 감사를 표현하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고 후손들에게 전하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즐거움을 표현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 하나님의 존재를 널리 알리는데 아주 효과적입니다.

찬양에 힘씁시다. 찬양을 앞세우는 생활을 합시다.
이 일을 앞에서 하고 있는 찬양대원 여러분, 여러분의 직무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바랍니다.

찬양에 힘쓰고 찬양을 앞세우는 생활을 하여 감사할 일들이 더욱 많아지고, 하나님이 더 큰 일, 위대한 일을 하고, 즐거움이 더욱 넘치고, 하나님이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기를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오직 한 분이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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