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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 (행 10: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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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지철 목사

브라질의 아마존 강은 세계 최대의 하구를 가졌다고 합니다. 7만 평방 킬로나 되기 때문에 강 한가운데서는 양쪽 강기슭이 안 보여서 처음에 가는 사람은 강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 아직 바다 한복판에 있는 줄 종종 착각을 일으킨다고 합니다.
대서양에서 폭풍 때문에 오래 표류한 배 한척이 식수를 구하기 위해 겨우 이 하구에 도착했습니다. 해도 상으로는 분명히 아마존 강 하구에 도착했을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강 양쪽 기슭이 안 보였습니다. 염려하고 있던 차에 마침 다른 배 한 척이 내려오고 있었으므로 그 배의 한 사람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식수를 구하고 있는데 아마존 강은 어느 쪽이오.” 저쪽에서 고함소리가 돌아왔습니다. “당신들은 이미 맑은 물 한복판에 있소. 물통을 내려 뜨기만 하시오.” 라고 말하더랍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이미 은혜의 한복판에 들어와 있습니다. 세상적인 항해를 이젠 다 끝내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서 이미 성취되어서 우리는 구원이라고 하는 은혜의 맑은 물 한복판에 있는 것입니다. 물통을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을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넘치도록 나를 둘러싸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생수와 같은 주님의 은혜는 믿음의 물통을 내리는 자에게 값없이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때요 지금은 은혜를 받을 때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값없이 받을 수 있는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받을 물통 즉 믿음이 없어서 구원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심히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우리의 어머니들이 무슨 음식을 해 주어야 내 자녀가 잘 먹고 건강 할 수 있을까?를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건강하여 무엇을 주든지 잘 먹는 자녀를 둔 어머니는 음식 준비에 신이 나서 준비하고 싶은 데로 맛있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잘 먹지 않는 자녀를 둔 어머니는 별로 신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신경이 쓰입니다. 이게 몸에 좋은 것인데 잘 받아먹어야 하는데 그래야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데 하고 염려를 하면서 음식을 준비를 합니다. 그런데도 잘 먹지 않으면 속이 상합니다.
저 역시 성도들을 생각하며 말씀을 준비하는데 무슨 말씀인들 우리에게 양식이 아니고 양약이 아닌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은 내 입맛에만 맞춰서 먹으려고 하고 듣기만 하고 보기만 하고 잘 먹지를 안는다고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다는 말이 있듯이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끝이 난다면 마치 무당을 불러 푸닥거리나 하고 복을 받을 줄로 여기고 복을 받기를 기다리는 자들하고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의 인격이 하나님을 닮아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의 그릇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어떤 이는 종교적인 행위를 하지만 하나님이 전혀 받으시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적인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어떤 사람을 필요로 하여 구한다고 한다면 어떤 인물을 고르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고르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옆집 아저씨 마음에 드는 사람을 구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지 정 의 인격의 내 자신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드는 자로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습니까?
행하기는 내 좋을 대로 행하며 하나님에게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고 한다면 이 얼마나 모순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에게 합한 삶에서 은혜롭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한 예로 사울 왕은 자기 좋을 대로 하나님께 행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나님의 은혜는 고사하고 하나님의 성령이 그를 떠나 버렸습니다.
도저히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순전히 자기 마음이지 하나님의 마음은 아니 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아니라 사실 은혜는 구하다고 오고 안 구한다고 안 오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의 은혜는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나 허락되어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은혜롭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인물입니다.
자신의 주관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뜻을 따르는 자입니다.
은혜를 구하는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예배를 생활적으로 드렸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드는 자가 있는가? 살펴보니 다윗이 행하는 일이 마음에 드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신을 해하려는 사울 왕을 해 할 수 있는 기회가 2번이나 있었지만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은 고넬료라는 사람이 마음에 드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누구에게든지 다 허락 되어 있습니다.
온 사방에 은혜를 받을 일 뿐인데 믿음이 없어서 받지 못하고 있음을 볼 때에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 내 생활에 은혜를 못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구원을 베풀지 않으심도 아닙니다.
온 땅에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충만하고 또한 그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으십니다.
은혜가 없어서 여호와의 구원의 손길이 없어서 내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어서 그 은혜와 그 구원이 나의 삶에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귀신들이 아이를 둔 어머니가 예수님께 나아와 아이의 치료를 원 할 때에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개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라는 말을 할 때에 이 얼마나 자신의 마음에 들리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참으로 은혜를 받을 만한 마음을 내어 놓았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나이다 이 말에 예수님은 여인아 네 믿음이 크도다 너 소원대로 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그 믿음은 추상적이 아니라 여러 모양으로 표현 될 수가 있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의 고넬료라는 이방인 백부장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의 기도를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고 함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를 무슨 도를 닦는 것이나 주문을 외우는 것으로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내면적인 교제입니다. 영으로 교통하는 교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과 하나님의 영 성령의 교통 즉 이것을 영적인 호흡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내 영의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니 죽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도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악 순환이 계속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니 믿음이 생기지 않고 믿음이 없으니 기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내 삶이 은혜가 되겠습니까?
믿음의 사람은 기도의 일정한 분량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않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 이는 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제 9시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하고 자기 집에서도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도 기도하는 습관을 두시고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기도하는 좋은 습관을 두었습니다.
제 같은 경우는 새벽 기도 시간에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사실 제 모든 문제가 이 기도하는 시간에 다 해결을 받습니다.
그러니 기도 시간마다 기대를 가집니다.
하나님은 오늘은 무슨 은혜를 주실까?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모릅니다.
본문의 고넬료 역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행 10:2
그는 기도하는 가운데 참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게 되며 그의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30절-32절 기도를 하는데……. 하시기로
얼마나 상세하고 얼마나 구체적입니까?
여러분 기도해 보십시오.
사업이 달라지고 가정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집니다.
자꾸만 축복이 됩니다. 사실 구체적으로 인도하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최고로 믿음이 없는 행위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좋아 하시는지 모릅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얼마나 많은 손해를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도의 생활은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행동하게 합니다.
기도에 따른 생활이 복되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는 하지만 기도에 따른 행위가 없으므로 생활에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입술의 기도는 손과 발의 고백이 함께 따릅니다.
하나님은 기도 하시는 가운데 반드시 말씀 하시고 일러 주십니다.
우리가 철야기도 시간에 합심하여 기도하고 또한 그 외의 시간에 함께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가 있지 않습니까?
그 말씀은 내가 받을 은혜가 행함으로 성취 된다는 것을 일러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 할 때에는 반드시 그 행함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고 그기에 따른 결과가 있기 마련입니다.
모세가 그러했고 여호수아가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모세에게는 기도만 하지 말고 내게 이러 준 대로 이 백성을 홍해로 몰아넣으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홍해가 갈라졌습니다.
여호수아는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다 너의 것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믿음으로 나아가서 얻지 못한 땅이 없었습니다. 요단강이 길을 내고 천연의 요새 여리고 성이 길을 내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그가 담장을 하나 넘는 것까지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행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나아가는 곳마다 승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온 주위의 나라가 매년 조공을 바쳤습니다.
짖지 않는 집을 얻고 심지 않는 열매를 먹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상외의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기대 해도 좋습니다. 믿음으로 기적 같은 일이 축복이 다가 옵니다.
우리 가운데 기도하고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행동에 옮기지 않고 있음은 이 역시 하나님 앞에 믿음이 없는 행동으로 종교적인 행위에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은 죄가 되고 늦게 행하는 것도 역시 죄가 됩니다.
성도들이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도 있지만 알고도 행치 않음으로 얻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행동에 옮기지 않음으로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많습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청하라고 할 때에 지체 없이 그를 사람을 보내어 청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청하지 못할 요소들이 그에게 있습니다.
신분상으로 계급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등등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이유가 되지를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이유는 하나님이 뜻을 이루는데 있어서는 아무런 장애가 될 수가 없습니다.
고넬료는 32절 곧 사람을 보내어 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그에게 축복을 하였습니다.
34-35절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로 깨달았도다.
그 가정을 그 직장을 그 생업을 그 인생을 은혜와 구원으로 받을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목사도 그래요 자꾸만 축복이 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가 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어떠한 문제도 이 자리에 참여한 어떠한 사람이라도 받으시고 은혜롭게 구원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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