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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뜻을 정한 사람들 (단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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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손상률 목사 

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9.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10. 환관장이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내 주 왕을 두려워하노라 그가 너희 먹을 것과 너희 마실 것을 지정하셨거늘 너희의 얼굴이 초췌하여 동무 소년들만 못한 것을 그로 보시게 할것이 무엇이냐 그렇게 되면 너희 까닭에 내 머리가 왕 앞에서 위태하게 되리라 하니라
11. 환관장이 세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좇아 열흘을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진미를 먹는 모든 소년보다 나아 보인지라
16.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그들에게 분정된 진미와 마실 포도주를 제하고 채식을 주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제사장적이고 왕적이고 선지자적인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임무를 가지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 앞에서 수행하여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영적 상태가 깨어있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계시에 민감하여야 됩니다.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삶은 시대나 환경이나 주변의 상황에 구애됨이 없이 어떤 경우에도 실천하여야 되는 명제(命題)입니다.

본문 말씀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히브리 소년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동무들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느부갓네살의 침공으로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유대에서 바벨론으로 끌려온 인질들입니다. 다행이 그들은 바벨론 정부가 선발한 국비 장학생으로 그 나라의 문물을 익히며 학문을 하여 공직에 기용될 사람들입니다. 당시 바벨론 당국은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그들의 문화와 관습을 따르도록 이 소년들에게 강요하였습니다. 이들은 비록 나이 어리고 포로 민이라는 불행한 신분이었지만 여기에 맞서며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지키기로 뜻을 정했습니다. 이들의 입지(立志)와 결심은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Ⅰ. 바벨론의 환경

고대 바벨론은 애굽과 함께 인류문명의 발상지였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포로생활을 할 당시에는 느부갓네살이 통치하는 새로운 바벨론 제국으로써 세계를 제패하며 부와 권력의 황금기를 누렸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문화와 관습은 우상숭배와 음란과 방종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타락한 인간세상의 모습이며 세상 마지막 때의 현상이기도 합니다(계 17:5). 이와 같은 환경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처럼 뜻을 정하고 살지 않으면 신앙을 지킬 수가 없게됩니다.

(1) 외부적인 억압 때문입니다.

여기 유대 소년들에게 처음 부닥친 시험은 음식으로 저희 몸을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8절). 왕궁에서 왕이 주는 음식을 먹으며 그 나라의 법도에 따라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었기에 이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는 음식물들은 왕이 먹는 진미이지만 대부분 우상의 제물이거나 또는 포도주와 같이 취하게 하는 술들이기 때문에 율법을 소중히 여기는 유대인들은 그것으로 자기 몸을 더럽힌다고 보았습니다(레 11:5).
훗날 두라평지에 세운 느부갓네살의 우상 앞에 절하게 하는 시험도 같은 유형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나 형상을 섬길 수 없는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이것도 따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에나 어떤 환경에서나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와 유사한 시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라고 하였습니다(벧전 5:8).

(2) 결단을 하여야만 합니다.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음식물로 자기 몸을 더럽히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이를 환관장에게 통보하였습니다. 그러나 환관장은 그들이 왕이 주는 진미를 먹지 않고 채식만 했을 때 영양부족으로 얼굴이 초췌하거나,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면 자기의 생명이 위태롭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때 이 소년들은 환관장에게 제의하기를 앞으로 열흘 동안 시험을 하고 다른 친구들과 건강 상태를 비교하여 나빠지면 당신의 처분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지 않는다든지 저희 생각대로 안되었을 때 거기 따르는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를 피력하였습니다. 훗날 느부갓네살 왕이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면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지겠다고 했을 때 그들은 우상에게 절하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풀무불에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결단하였습니다(단 3:16-18). 말하자면 몸을 던져 하나님의 원하시는 그 뜻을 지켜나가려 했던 것입니다.

Ⅱ. 뜻을 정해야 할 이유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상황에 부딪쳤을 때 사리 판단이 확실하고 분명하게 행동해야 될 책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옳고 그름에 대한 견해를 명확히 하라고 말했습니다(마 5:37). 이쪽 저쪽의 눈치를 봐가면서 이해타산을 하고 행동을 한다면 이는 그리스도인의 자세가 아닙니다(갈 1:10). 두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고 마귀의 궤교에 말리게 되는 것입니다(마26:69-75).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선뜻 저희들의 의사를 결정하고 이를 선언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1) 세상과 구별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은 「구별된 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였습니다(레 11:45).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은 경건(거룩)을 생명처럼 여기는 자들입니다. 야고보서 4:4에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속에는 나타나지 아니하는 정욕이 숨어 있어서 틈만 보이면 기를 쓰고 일어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안에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가 숨겨져 있다고 하였습니다(고후 12:7). 솔로몬 왕은 자기 속에 있는 혈기나 정욕과의 싸움이 성을 빼앗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하였습니다(잠 16:32). 갈라디아서 5:24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야 될 사람들이기 때문에 세상의 정욕을 멀리하고 성별된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받은 사명 때문입니다.

일찌기 하나님께서는 선민의 조상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와 그 후손들이 세상 사람 가운데 의와 공도(公道)의 표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였습니다(창 18:19).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을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13-16). 소금의 맛이 변치 않는 것처럼 성도는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됩니다. 빛이 어두움을 추방하고 세상을 밝히는 것처럼 성도는 그의 밝고 거룩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사람입니다. 그 사명이 내 인생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밀레도에 모인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하면서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하였습니다(행 20:23-24).

Ⅲ. 뜻을 정한 자의 삶

다니엘 12:3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을 요긴하게 들어 쓰셨고 세상 사람들 가운데 의로운 삶과 축복의 증거가 되게 하였습니다.

(1)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를 가까이 하시며 그와 동행하십니다. 창세기 5:22-24에 보면 에녹은 삼백 년 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나님께서 그를 옮기심으로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로 올라갔다고 하였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비결은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히 11: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여 자기 몸을 깨끗이 보존하려고 뜻을 정한 이 소년들을 기쁘게 여기시고 그들과 동행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의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들어갔을 때 불속에서도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과 같이 하였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 눈으로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네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고 하였습니다(단 3:25).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풍성한 하나님의 지혜를 발휘합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지혜로 모든 어려운 문제를 풀어 나갔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지혜로 꿈 해석을 하는 것을 보고 그를 벨드사살이라 불렀습니다. 곧 ‘신들의 지혜가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단 5:12).
옛날 종으로 팔려간 요셉도 애굽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였으나, 경건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창세기 39:2-3에 보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하였습니다.

(2) 증거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왕의 진미를 거부하고 채식만 먹은 소년들은 열흘 후 진미를 먹은 소년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윤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뜻을 정한 것이 성공의 비결임을 증명한 것입니다(15절). 왕의 신상에 절하기를 거부하고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 들어갔을 때도 하나님의 사자가 화염을 막아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습니다. 다니엘 3:28에 보면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고 하였습니다. 다니엘 6:26-27에 보면 다니엘이 원수들의 모함으로 사자 굴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털끝 하나 상하지 않고 나온 것을 보고, 다리오 왕은 전 국민에게 조서를 내리고는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 임금들의 눈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 주시고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기여하도록 역사 하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지위가 높은 방백이 되었고 다니엘은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뜻 있는 삶은 당장 고난과 희생을 감수하게 하지만 결국은 승리와 축복의 증거로 남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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