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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보기를 원하나이다. (막 10:4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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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은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예루살렘을 향해서 올라가시는 노중인 여리고에서 일어난 사건으로써 여리고 성의 바디메오라는 사람의 눈을 띄워주신 사건입니다.

바디메오는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뜻이며, 디메오라는 말은 소경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대를 이어 소경이며 거지생활을 하고 있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고쳐주시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주님께서 기뻐하셨던 바디메오의 믿음을 찾아 가지기를 원합니다.

첫째 바디메오는 자기의 모든 비참 가련 멸시 천대 불행의 원인이 돈이나 권세나 건강이나 명예가 없어서가 아니라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됨에 있음을 발견하고 눈뜨기를 소원한 것입니다.

바디메오는 육신의 눈이 어두웠지만 우리는 심령의 눈이 어두워 지혜의 눈이 어두워 멸망의 길을 가면서도 고칠려고 노력도 하지 않고 있지 않는지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마15:14, 요9:41, 엡1:18,19, 약1:5).

시편73편에 나오는 악인이나 홍포를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라하던 부자가 하늘나라를 보는 눈이 있었더면 후회되는 그런 걸음을 걷지 않았을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어두운 눈을 뜨게 하실이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부둥 쳤던 것입니다. 그는 돈이나 권력자를 찾아가지 않았습니다. 지식있는자를 찾아가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에게 자기의 전부를 투자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실 때, 그의 성령의 영감이 나를 밝혀 줄 때 내가 모든 것을 바로 알고 바로 살아갈 수 있다는 요것을 믿는 믿음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서 가까이 나아갈려고 할 때 방해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옹호해 주거나 협조는커녕 방해하는 세상이었으나 바디메오는 방해에 가로막히지 않고 "더욱", "심히"소리쳤습니다. 결사적인 간청이 있었을 때 주님은 그냥 지나칠수 없었고 그를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미지근한 그런 믿음은 싫어하시는 주님이십니다(눅11:8-, 눅18:1-).

그러므로 우리가 가져야 할 세 번째 믿음은 방해에 가로막히지 않는 강청하는 믿음입니다.

넷째는 바디메오가 주님이 부르실 때 그의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갔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있어 겉옷은 가장 귀한 것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이불, 좌판, 외투...). 그러나 주님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을 돌아보지 않고 단행하는 믿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눅9:59-62, 마16:24, 눅14:27). 뒤로 미루면 기회가 지나갑니다.

다섯째는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주님 앞에 구한 것이 눈을 뜨기를 구한 것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룰 구한 것 같이 하나님께 지혜를(약1:5) 구해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대하여 기도한 것 같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밝은 눈으로(마6:22-23) 모든 것을 정평 정가하며 생명의 길을 걷는 우리들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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