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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버려진 돌의 역사관 (단 2: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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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필재 목사 (갈보리교회)

저하고 교단이 같고 또 노회가 같은 그런 공동체에서 늘 만나고 동역을 하시던 목사님이 계셨는데, 아주 늦도록 공부를 하셨습니다. 나이가 50이 넘도록 학문에 정열을 기울여서 마침내 그가 연구한 모든 학문을 끝내고 박사 학위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학교와 사는 집이 멀어서 목사님은 하루 전에 학교 주변에 가서 내일 학위 받을 준비를 하고 계시고 그 사모님과 가족들은 그날 아침 일찍이 새벽같이 차를 타고 학교로 아버지와 남편의 박사 학위식에 참석하려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네 사람이 이제 차에 타고 갔는데 가다가 그만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차에 탔던 몇 사람이 다 다치고 목사님과 사모님은 현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잘 아는 동료 목사들은 너무 놀랐고 또 그 사건이 신앙적 갈등을 주었습니다. 아니, 그 목사님은 이민 와서 참 그렇게 어려운 이민자들을 위한 목회를 열심히 하시고 또, 사모님도 개척교회를 하시느라 나가서 일을 하시고 그런 학문에 뜻을 두고 자기 연구 분야를 포기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어려운 공부를 해서 이제 목적한 바를 성취하는 학위식을 하는 그렇게 좋은 날 그 목사님, 사모님이 교통사고로 현장 사망을 하니까 이 친구 목사들은 '이런 일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가?' 그런 갈등을 좀 겪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사람이 죽었으니까 장례식을 해야 되잖아요? 모두 모여서 할 말을 잊은 채 슬픔에 잠겨 장례 예배를 드리는데, 좀 이상한 일은 그 집의 대학생 아들이 조금도 슬픈 기색이 없이 마치 무슨 집안에 잔치라도 생긴 것처럼 신바람이 난 듯 그 조객들을 안내하고 마이크를 잡고 방송 안내를 하면서 막 얼굴에 기쁨이 충만한 사람처럼 돌아다니는 겁니다. 보기에 모양새가 안 되어 보였습니다. '아니,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모두가 슬픔에 잠겼는데 저 놈이 뭐가 저렇게 신이 난 듯이 마이크를 잡고 어쩌고저쩌고… 저 놈은 미국에서 자라서 버릇이 없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장례식 끝나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날 아침에 그 아들이 항상 아침 기도를 드리는 장소가 있답니다. 그래서 새벽 일찍이 기도를 드리고 나오더니 어머니에게 하는 말이 "엄마! 오늘 하나님이 엄마를 하늘나라로 데려 가신데!" 그렇게 말을 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식구들이 "야! 그럼, 엄마가 오늘 죽는단 말이냐?" "맞아요. 내가 지금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아, 몰라. 아무튼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그렇게 들려주셨어요." 그런데 그 소리를 듣는 그 사모님은 "그럴지도 모르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막겠니?" 그런데 두 시간이 있다가 그런 일이 벌어진 거예요.

오늘 성경말씀은 하나님이 다니엘이라고 하는 청년에게 "장차 이 세계가 어떻게 되갈 것인가?" 하는 세계사의 장래를 예언의 능력을 주셔서 그 중심부분이 나타난 말씀을 읽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대로 보면, 또 우리 신앙 경험대로 보면 하나님은 간혹 어떤 특별하신 목적이 계실 때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어떤 영적 능력을 열어주셔서 예언성 있는 일을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요셉에게 특별한 꿈의 계시를 주셨잖아요? 또 꿈에 예언성을 해석할 수 있는 영적 능력도 주셔서 하나님의 목적이 요셉을 통해서 실현되도록 그런 일을 성경에도, 우리 현실에도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은 '장래 하나님의 인간 구원사가 인류 역사에 어떻게 나타나게 될 것인가?' 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계시적 사건이 이 다니엘이라고 하는 포로가 되어서 노예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나타남으로 하나님의 구원사를 우리가 생각할 수 있도록 그런 사건의 내용이 오늘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내용을 보면 이렇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어느 날 아주 매우 흉측한 꿈을 꾸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까 도저히 마음이 불안해서 이 꿈 때문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분명히 흉악한 꿈을 꾼 것으로 아는데 그만 하도 무서워서 내용을 잊어버렸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전국에 학문이 있는 모든 학자들, 점쟁이 할 것 없이 다 불러서 질문을 했습니다. "내가 지난밤에 꿈을 꾸었는데 잊어버렸다. 내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알아내라!" 아니, 세상에 남이 꾼 꿈을 알아낼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느부갓네살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으니까 "틀림없이 좋은 꿈이 아니고 나쁜 꿈을 꾸었는데 이게 뭔지 모르겠다." 아니, 꿈을 어떻게 꾸었다고 말을 해야 돈 생길 거라고 하던지 뭐라고 하던지 말을 하지, 무슨 꿈을 꾸었다고 말하지도 않고 내 꿈 꾼 것을 알아내라고 하니 알아낼 사람이 어디 있어요? 알아내지 못하니까 말을 합니다. "만약 너희들이 내가 꾼 꿈을 알아내지 못하면 다 죽이리라." 이 바벨론의 학자들은 이제 다 죽게 생겼습니다. 이런 때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그 꿈의 내용과 해석을 계시하여 주심으로 앞으로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세계사 역사가 어떻게 될 것을 예언성 있게 가르쳐주는 말씀이란 말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잊어버린 것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요 그것을 오직 다니엘만 알아내도록 하나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신 것입니다.

오늘 꿈의 내용이 성경말씀에 나오고 있습니다. "광채가 나고 심히 두려운 우상이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종아리는 철이요 그런데 얼마는 진흙이라. 이런 우상을 보셨나이다." "아, 맞다! 그거다! 그런 걸 내가 봤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이 세상에 그렇게 강한 힘을 자랑하는 우상의 나라들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머리는 정금이라 했는데 이것은 바로 느부갓네살 당신이 있는 이 바벨론 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장 위에 있고 그 힘이 금빛같이 빛이 나고 있는 세계를 지배하는 힘의 상징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당신과 당신 나라를 뜻합니다." 사담 후세인이 가장 즐겨하는 말이 "나는 바벨로니아 느부갓네살의 후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바벨론은 망할 것입니다. 바벨론의 시대가 지나면 가슴과 팔은 페르시아 제국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 빛은 금 같지 않은 은빛 나는 찬란한 국가 건설을 이제 페르시아가 하게 될 것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라고 그랬는데, 놋은 힘의 상징입니다. 놋쇠 같은 힘을 가진 헬라 제국이 이제 또 탄생하게 될 것이고 그 다음은 발이 철이라. 철 같은 힘의 로마 제국이 나올 것인데, 로마 제국은 열 개의 연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 개의 발가락이 보여진 것입니다. 철과 같고 얼마는 진흙이라 그랬는데 열 연방 중에 얼마는 철같이 힘이 있고 얼마는 힘이 적은 진흙이었더라. 그런 시대가 올 것입니다. 이 모든 나라들은 힘을 자랑하고 온 세상을 전쟁터로 만들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는 세상 권세의 표본이 되므로 이 크고 두려운 우상의 모습은 깨어져 무너질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을 합니다.

우상을 깨뜨려 버리는 물체가 하나 등장합니다. 34절에 나옵니다. "또 왕의 보신즉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며 때에 철과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었나이다. 이런 꿈을 꾸셨나이다." "맞다. 그렇게 되었다." "이제 세계는 앞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해석을 했더니 느부갓네살 왕이 청년 다니엘에게 엎드려 절을 했다고 다음 장에 나옵니다. 그러면 그 우상을 부서 버린 그 뜨인 돌이 무엇인가? 예수님은 자신을 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0장 17절~18절!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이 돌은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라 이렇게 지금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중에서 별안간 돌 하나가 생기더니 그 돌이 그 신상들을 모두 때려 부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출처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 직접 하신 성령에 의한 탄생을 하신 분이란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돌은 세상에 와서 받은 인격 대우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라 했습니다. 이 건축하는 석공들은 돌을 좋은 것을 고르고 또 잘 다듬어서 건축을 합니다. 이 글이 쓰여진 유대 나라 예루살렘은 건축물의 내용이 모두다 90% 이상이 돌멩이로 했습니다. 쓸모없는 돌은 건축가들이 집어던져 버리고 좋을 것을 골라서 건축에 사용하는데, 이 예수는 쓸모가 없다고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고향 나사렛에서 버림을 받아 가버나움으로 옮겨갑니다.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아 미친 사람으로 취급을 받게 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배척을 당하게 됩니다. 제사장 서기관들에게 버림을 받아 죄인으로 낙인이 찍힙니다. 유대 민족이면서 유대 민족에게 버림을 받아 민족반역자로 취급을 받게 됩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됩니다. 가룟유다에게 버림을 받아 은 삼십에 팔려 가는 몸이 됩니다. 맨 나중에는 하나님을 향하여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철저하게 버림을 당하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됩니다.

이 예언은 시편에도 나타나 있습니다. 118편 22절~23절에 보면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 머릿돌은 모든 건축물의 기초를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모퉁이에 놓게 되는데, 그 돌은 이쪽과 저쪽을 연결하는 기준의 자리를 가집니다. 다니엘은 꿈의 마지막 해석을 2장 44절에 나중에 말하고 있는데 "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이 꿈은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니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나이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뜨인 돌과 같은 예수, 버린 돌과 같은 예수가 세우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영원토록 이 세상에 세워질 것입니다." 하는 예언입니다. "이 돌은 처음에는 작은 돌로 나타났으나 나중에는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게 되었나이다." 라고 오늘 35절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세우는 그리스도의 왕국은 처음에 갈릴리 호수 어부 몇 사람에게 나타난 작은 돌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돌은 점점 커져서 마침내 오늘 다니엘이 예언한대로, 이 말씀에 있는 대로 "온 세상에 가득하게 태산을 이루었나이다."

모퉁이돌은 건축물의 기초가 되는 곳이요 가장 힘을 많이 받고 있는 두 벽이 만나는 지점에 있으므로 만약 그 모퉁이 돌을 빼버리면 그 건축물은 무너지게 됩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기초가 됩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이데올로기라든가 철학이라든가 학문, 정치, 법률, 사회 정의 등등 모든 것에 그리스도의 진리가 모퉁이의 머릿돌 기초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을 빼버리면 모두가 무너지도록 되어있습니다. 사회 정의의 기초가 어디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빼버리면 아무 것도 성립이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퉁이의 돌이 되셨기 때문에 두 지점이 언제나 만납니다. 두 나라가 만나는 장소, 두 세대가 만나는 지점,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이 모퉁이 돌입니다. 다니엘은 수천 년 전에 죽었지만 그가 예언한 뜨인 돌의 예언은 지금 그의 예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돌이신 자신을 설명하시게 되는데, 첫 단계는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내어버린 돌이 되셨고, 둘째 단계는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어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유일한 도구가 되시고, 세번째 단계는 오늘 말씀에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약 이사야가 예언해 놓은 말씀이 이사야 8장 14절~15절에 있습니다. "그가 거룩한 피할 곳이 되시리라. 그러나 이스라엘의 두 집에는 거치는 돌 걸리는 반석이 되실 것이며 예루살렘 거민에게는 함정 올무가 되시리니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하여 거칠 것이며 넘어질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니라."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은 인간에게 최대의 귀한 선물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이 자체가 걸림돌이 되고 거치는 골칫거리가 될 수가 있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예수가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서기관들은 예수가 골머리거리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예수 때문에 장사가 다 깨어졌습니다. 이 세상에 점쟁이, 운명철학, 토정비결, 무당집, 민속신앙, 고사 지내는 무리, 산 제사 드리는 사람, 미신놀이하는 사람 예수가 던진 진리의 돌에 다 맞아 깨어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넘어질 것이며 거칠 것이며 부러질 것이며 걸릴 것이며 잡힐 것이고 올무가 되고 함정이 될 것이다." 그렇게 예언을 했습니다. 예수라는 돌에 맞아 다 깨어지는 것입니다. 사회주의국가, 유물론사관, 칼 막스의 유토피아도 예수의 복음의 진리대로 다 깨어졌습니다. 우상들은 다 깨어집니다. 그 다음 예수님은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이런 말씀을 복음서에서 하셨는데, 이 말씀의 뜻은 역사의 끝이 되면 이 돌은 심판의 무서운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초림 예수는 고난의 종, 재림 예수는 심판의 주로! "초림 예수는 말구유간에 오셨지만 재림 예수는 구름을 타고 천사들의 나팔 소리를 들으면서 이 땅에 나타나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심판의 무서운 도구가 또 예수의 이 뜨인 돌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예수의 복음 전파는 받아들이는 쪽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 같이 보여집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불신자 하나를 예수 믿게 하려고 할 때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지, 받아들이는 쪽이 전해주는 자보다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듯이 보여지는 세상입니다. 그 사람 마음에 드는 말을 해야 되고 그 사람 신경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그 사람 좋아하는 것 나도 같이 좋아해 주고 서비스가 필요할 때는 반갑게 종으로 변하고 도와줄 일이 있으면 서슴지 않고 나서고 해서 그 마음을 돌려서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 믿도록, 교회에 올 수 있도록 온갖 애를 쓰는데, 어떤 때는 그것이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친구와 친구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또 어느 때는 자식과 부모의 관계에서도 나타나고 정말, 이 한 영혼을 불쌍히 여겨서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는 지극한 정성의 마음을 보여서 받아들이는 쪽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그러한 문화로 지금은 보여집니다.

저는 책에서 봤는데, 서울에서 전도상을 타신 집사님의 고백 수기라 하는데 그분은 일년에 몇백 명씩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어요.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를 전부 써낸 것입니다. '아니, 평생에 한사람도 전도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일년에 몇백 명씩 했나?' 그 사람은 거기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바울과 같이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 즉 노예와 같은 마음으로 임했다." 그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렇게 해도 마귀 역사는 얼마나 강한지 마치 예수 안 믿는 것이 큰 권세나 되는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거만스럽게 행동합니다. 마치 "예수는 내가 너를 위해서 믿어주겠다." 하는 식으로 이렇게 주도적 입장을 안 믿는 사람이 가지는 문화 속에서 우리가 지금 전도를 하는 겁니다. 예수님 오실 때까지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세상에서 큰 소리 한번 칠 곳이 없는 삶을 살아야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저렇게 야단이야?" 그런 말하잖아요?

저는 지난 금요일에 우리 교구 목사님이 "목사님이 여기에 전화 한번 걸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메모지를 가져오셔서 전화를 했는데, 전화번호가 바뀌었나 봐요. 내가 찾는 집사님이 안 계시고 다른 사람이 받았는데 "제가 아무개 집사님 아니십니까?" 이렇게 물었더니 그 전화 받은 사람이 술이 취했는지 자다가 깼는지 큰 목소리로 "집사요?" "네, 아무개 집사님 아니십니까?" "어휴, 나 같은 잡놈을 보고 집사라고 하는 사람을 보니까 그 놈은 더 잡놈이로구먼!" 그러면서 끊어버려요. 예수도 욕먹고 끌려 다니고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고… 지금은 전도하는 자보다 받아들이는 쪽이 훨씬 더 주도적 입장에 서야 되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어요. "심판 때에는 이 돌이 역사의 주인이 되어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게 되는데 그 때 그 돌은 모든 이 땅의 심판 받을 사람을 가루로 만들어 흩어지리라." 버려진 돌의 역사관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Living stone이라, 산 돌이라고 하였고, 요한계시록에서는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White stone을 주리라, 흰 돌을 주리라!" 다 예수 그리스도를 돌로 표현했어요.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실 때 역사의 마지막 청사진을 내어다 보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그 돌이 나다. 나는 산 돌이요 흰 돌이요 버린 돌이요 뜨인 돌이다. 이 뜨인 돌 하나가 마침내 철갑을 입은 이 세상의 모든 권세의 우상을 다 깨뜨려 버리고 내가 세우는 그리스도의 이 왕국이 온 세상에 태산을 이루어 충만하게 될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먼 앞날에 세계사의 영적으로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그렇게 보시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모두가 나를 버려 버린 돌이 되었으나 하나님은 나를 모퉁이 머릿돌로 삼으사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십자가에 놓으셨도다. 이 돌 위에 집을 짓는 자는 영원히 튼튼하게 설 것이요 그 나라가 영원하리라. 내게 와서 부딪치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제 마지막 역사의 끝장을 떼는 날에는 이 돌이 모두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버려진 돌의 역사관을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미래학자들이 말을 하고 우리 생각도 여러 가지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저는 '하나님이 예언해 오신 대로 될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입니다. 버린 돌의 역사관대로 세상은 되어지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예언한 우상들은 모두 다 깨어집니다. 로마제국, 바벨로니아, 페르시아 시대, 헬라 시대 모두 다 깨어집니다. 우상은 다 깨어집니다. 그리고 "이 돌이 세우는 한 그리스도의 왕국이 세상에 태산을 이루게 될 것이다." 다니엘 자신도 아마 모르면서 얘기했을지도 몰라요. 하나님이 주신 영감을 그대로 발표한 것뿐이죠. 이제 앞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은 영원합니다. 우리가 모두 이러한 다니엘 시대부터 예언해주신 뜨인 돌의 역사관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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