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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음 (롬 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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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정석 목사

사람이 구원을 얻는 방법에 있어서
신약 시대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고
구약 시대 사람들은 행위로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것이 틀렸다고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 로마서 4장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문제를 풀어가기 위해 구약 시대에 존재했던 두 사람
아브라함과 다윗의 믿음과 행위를 예로 들면서
그들이 의롭다함을 받은 근거가 믿음이었는가 아니면 행위였는가?...
그들은 비록 구약 시대에 존재했던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신약시대나 구약 시대나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구원의 기준인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그들의 행위에 달려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믿음에 달려 있었던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본문 1-3절입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이 부분은 앞장인 로마서 3장 후반부인 28절에서도 이미 말씀된바 있었습니다.
3장 28절을 보면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하지만 이 말씀은... 신약 시대에 와서 사도 바울이
선택을 받았다고 자부하고 사는 유대인이나 지옥의 땔감으로 창조되었다고 믿는 헬라인이나
알고 보면 다 죄인이고!!
할례를 받은 할례자나 할례를 받지 않은 무할례자도 다 죄인이므로!!
신약 시대 사람들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것이었지만.. 과연
구약 시대 사람들도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 오직 믿음었는가... 하는 것인데
오늘 4장 말씀 서두에 보면........ 구약 시대에도 역시 그랬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1-3절을 읽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바 되었느니라

이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에 대하여 3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첫째는 1절에서 언급하는.. 육신 즉 육신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 것도 얻은 바가 없다.
둘째는 2절에서 언급하는.. 행위 즉 율법의 관점에서 보아도 아무 것도 얻은 바가 없다.
즉 의롭다 하심에 대하여 아무 것도 얻은 바가 없다는 것이고
셋째는 3절에서 언급하는 성경.. 즉 성경의 관점에서 보면 얻은 바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이점을 좀더 분명히 하고자 4-5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왜 이 말씀을 하고 있는가 하면..
4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사람의 일 즉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사람의 수고에 대한 마땅한 결과이므로 그가 얻게 된 의를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삯인.. 빚을 받았다는 개념 정도밖에 가질 수 없게 되지만!!...

사람이 아무리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해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거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경건치 않게 살아왔다고 할찌라도..
이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이 얻은 의,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의가 바로 이러한 의라는 것인데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경건치 아니한 자였으나
5절 말씀처럼 행위 때문이 아닌 믿음 때문에!!....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이번에는 다윗을 예로 들면서 다시 말씀합니다. 6-8절 말씀입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도 보면...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씀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말씀인데
다윗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떠받쳐지는 인물로서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만
하나님 앞에서 보면 행위를 자랑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다윗은 자신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불법을 사함 받은 사람이고...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죄를 가리움 받은 인물이란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조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전선에 나가 골리앗과 싸워 나라를 구한 용장이었으며
그후 나라를 이끄는 왕도 되었지만
자기가 거느리고 있었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이를 교묘하게 은폐하기 위해 우리야를 최전선에 보내 죽게 한 범죄자이기도 했습니다.
이 내용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 자신은 잘 알고 있었기에 자유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밤잠도 설칩니다.

물론 하나님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 다윗의 은밀한 죄 문제를 다룸으로
다윗은 회개를 철저하게 시작하게 됩니다.
말하자면 이러한 다윗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러한 다윗의 불법을 사해 주시고!!...
다윗의 죄를 가리워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은혜라 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사하심"이라는 단어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가리움"이라는 단어입니다.

"사하심"이란 죄를 없앤다는 뜻으로서 불법을 사한다는 것은 죄의 기록을 없앤다는 것이고
"가리움"이란 그 죄를 다른 사람이 안보거나 못보게 한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 즉 불법의 기록을 사해 주시는 것이나 죄를 가리워 주시는 것을 누가 하셨느냐?
하나님께서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항상 있는 일도 아니었고 또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기에
이러한 혜택을 받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었고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9절입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성경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에게도 임하였었고
또한 아브라함에게도 임하였었는데
다윗에게는 불법의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고...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결국은 그 둘 다 같은 것으로서!!...
의로 여김을 받은 것이나.. 불법이 사함을 받게 된 것은... 다 같기에!!
결국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들이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경이 질문하는 것처럼
이러한 행복이 할례자에게만 임한 것인가 아니면 무할례자에게도 임한 것인가가 문제이기에
이 부분에 대한 규명 작업이 필요해서 그 작업을 성경은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이러한 행복이 선택 받은 민족인 선민에게만 이뤄진 것이고
또 할례 받은 사람에게만 이뤄진 것이라면!!...
은혜는 은혜고 행복도 행복이긴 하지만... 차별 있는 은혜요 차별 있는 행복이라는 것인데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은 다윗은 할례시에 이러한 은혜를 받은 것이지만
아브라함은 무할례시에 이러한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9-12절입니다.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 하노라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이렇다면 문제는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설교 서두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월의식과 차별의식을 가지고 살아온 민족입니다.

선택도 자기들만이 받았고.. 할례도 자기들만이 받았고.. 율법도 자기들만이 받은 것이기에..
그것은 곧 의와 연결되고 구원과 연결된다고 생각하고 여태껏 살아왔는데.. 이것이 아니라니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그 "무너진다"는 것이란
첫째는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기 때문에 무너진다는 것이며
둘째는 아브라함이 의롭다함을 얻은 것이 할례시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무할례시에 이루어졌기에 무너진다는 것이고
셋째는 아브라함이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기에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 세 번째 내용은 조금 어려운 것으로서 좀더 쉽게 풀어 말하자면
아브라함이 할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 할례 받은 것 때문에 의롭다함을 받은 것인가
아니면!!...... 할례 받기 전에 이미 의롭다함은 받았는데
그 의롭다함을 받은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나중에 할례를 받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하여 성경은 11절에서 말하기를
저가 할례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아
아브라함이 할례 받기 전에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믿음으로 인하여 의롭다함은 얻었으며!!...
그리고 나서 얼마의 세월이 흐른 후... 하나님이 할례를 시행하라 하여 할례를 행한 것으로!!
결론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의란...
할례를 행한 행함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가 그동안 선민의식과 우월의식에 사로잡혀왔던 유대 민족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무너지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절을 보면 중요한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는데 그것은 "믿음의 자취"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다시 읽습니다.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 뿐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무슨 말씀인가 하면... 이 믿음의 자취를 좇는 삶!!.. 이것이 의를 얻는 열쇠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다음 13절에서는 단적으로 이렇게 선언합니다.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또 16-1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이제 우리는 아주 중요한 작업을 해야할 순간에 서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면 이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무엇인가?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길래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는가 하는 점입니다.

왜 우리가 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알아야 하는가 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성격과 내용을 정확히 알아야만!!... 우리도.... 12절 말씀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따라 갈 수 있으며!!...
그래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하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인데...
이 부분에 대하여 오늘 본문은 18-2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8-22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한마디로 말하면 아브라함의 믿음은... 오늘 설교 제목처럼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그런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 얼마나 좋은 믿음이며 대단한 믿음입니까?
여러분도 다... 이런 믿음 갖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는... 나 중심의 믿음이 있고 하나님 중심의 믿음이 있습니다.

나 중심의 믿음이란 하나님을 믿는 이유가 나에게 있다는 것으로서
내가 이해되야 믿고... 내가 잘되야 믿고... 내 병이 나아야 믿고...
내 기도가 응답되어야 믿고... 그저 모든 것이... 나 나 나 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생활 하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이해가 되지 않아도 믿고... 잘되지 않아도 믿고...
병이 낫지 않아도 믿으며... 기도가 응답되지 않아도 믿는...
새로운 믿음의 차원에로..... 하나님 중심의 믿음에로 나아가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바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아무 것도 손에 잡힌 것이 없어도... 단순하게 믿기 시작합니다!!...
불가능한 가운데서도 믿고... 궁핍한 가운데서도 믿으며...
현실 속에서는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믿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은 것입니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다시 18절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아브라함의 믿음을 요약해서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렇게...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믿는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그의 믿음은 불가능한 것을 알고도 믿은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결론나면 이내 포기하게 됩니다.
아니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역시 그런 상황에 놓였습니다!! 가능성은 0%였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는!!...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9절입니다.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아브라함의 믿음은... 의심치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20-21절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 결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러한 결론을 내리십니다.

  좋다!!! 그 믿음 접수한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의로 여기겠다!!

22절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이제 말씀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성경은 자세히... 그리고 깊이있게 다루면서
그 믿음의 결론이... 건강이라든지... 거부가 되는 축복이라는지... 아들 딸을 낳았다든지...
이렇게 결론 내린 것이 아니라!!...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이렇게 믿음의 결론을... "의"라고 내리면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것이 가장!!!... 중요한데...
23-2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무슨 말인가 하면 아브라함의 믿음과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사건은
아브라함만 위하여 있는 사건이 아니라!!!....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도 위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손에 쥔 것 하나 없어도 20절 21절 말씀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나아갔던 것을... 하나님이 의로 여기셨던 것처럼!!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메시아로... 그리스도로... 구주로... 구세주로 보내시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그 말씀... 그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구원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의 말씀을 통해... 이렇게 결단하며 기도하며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아브라함의 믿음!!.. 알고도 믿은 믿음!!..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은 믿음!!..
  약속을 의심치 않은 믿음!!..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끝까지 믿은 믿음을!!...
  저에게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의 의를 얻게 하시고 구원을 이루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할 때!!... 믿음을 통한 의와 구원을 이루는 역사는 오늘도 일어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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