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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엡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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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권영국 목사

1. 선물의 가치는 준 사람에 따라 결정됩니다.
여러분, 누구나 한번쯤 선물 받아 보신 적 있으시지요?
선물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반갑고 귀한 것도 있지만 별로 반갑지 않은 선물도 있습니다.
선물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요? 가격이 비쌀수록 귀한 선물일까요? 꼭 그렇지 많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 경우에는 누가 주었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뜨겁게 사랑했던 한 여자로부터 받았던 선물은 지금도 제 가슴을 울리게 합니다. 그 이후 그보다 더 비싼 선물도 받아보았지만 아직도 그때만큼 흥분되고 좋았던 선물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 그 여자가지금 제 아내입니다.

여러분은 누구에게 받은 선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줄 수 없는 하나님 차원의, 하나님 수준의 선물입니다. 하나님 표가 붙어있는 하나님 정도니까 주실 수 있는 선물, 여러분은 그 위대한 선물을 받아보셨습니까?

오늘 아침 아직도 그 선물이 무엇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얼마나 궁금하시고 또 받지 못하신 분들은 얼마나 후회되고 부러운 마음을 가지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2.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은 영생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선물은 두 가지입니다.
이 둘 모두 하나님 외에는 누구에게 서도 받을 수 없는 선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것이 <영생> 이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이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이라는 거대한 학교에서 사탄의 가르침을 진리로 알고 배워왔습니다. 사탄의 가르침 중 결정적인 거짓말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전부이고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없고, 심판도 없고 천국과 지옥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잘먹고 잘입고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잘사는 인생이지, 보이지 않는 죽음 이후의 세상을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고생하며 힘들게 사는 것은 어리석은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장 크게 속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믿었던 사람이 임종을 맞이하게 됩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 육체에 갇혀있던 영혼이 분리되면서 비로소 영적인 세계를 보게 됩니다. 영의 눈이 열리고 자기 영혼이 갈 곳을 보게 됩니다. 영혼이 갈 곳은 두 곳 뿐입니다. 천국과 지옥입니다. 여러분,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천국이며,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지옥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십시오. 바로 그곳이 지옥입니다.

천국과 지옥을 부인했던 많은 사람들이 죽음 앞에서 “아, 내가 속았구나” 하고 절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절규를 들으며 사탄은 “야, 내가 마침내 완벽하게 속였구나” 하고 승리의 개가를 부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속고 있는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눈에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죽음 이후에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는 영생을 주러 왔노라. 누구든지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을 모르고 죽음 이후에 영원한 나라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을,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결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영생을 알고 천국과 지옥을 믿는 사람은 안개와 같이 잠깐있다 사라지는 이 세상의 삶을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기위해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가장 잘 죽음을 준비하는 인생이 가장 잘 사는 인생입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요일 5:11)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최고의 선물을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영생은 죄의 값으로 영원히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야할 인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입니다.

3. 하나님의 또 다른 선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선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영생을 받은 성도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이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이 구원받고 천국 가는 일에만 감사하고 만족할 뿐 하나님이 주신 또 다른 선물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 권세로부터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영생 주시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생 한가지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시고 또 다른 선물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교회입니다.

“나는 한 가지 선물만도 너무 감사해. 다른 것은 없어도 좋아.” 그러시는 분은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아직 체험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생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시는 그 선물이 교회라는 것을 깊이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인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두 가지 선물을 다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한 가지 선물인 영생만 받아들고 기뻐하지 마시고 영생만큼 귀하고 소중한 또 다른 선물인 교회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귀한 것으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위해 선물을 준비해 놓으셨는데
왜 우리는 그 선물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까?
오히려 교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 정도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골치 아픈 교회, 영생만 얻고 천국만 가면 됐지 교회가 무슨 필요가 있어.”
혹시 그런 생각을 하시지는 않았습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또 다른 선물인 교회에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시기 원하는 모든 것들을 교회 안에 숨겨 놓으셨습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충만하게 부으셨습니다. 지혜와 능력과 존귀와 부와 영광과 권세,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교회를 통해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모든 복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어떤 분은 먼저 내 가정이 잘되어야 교회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을 세상으로 흘러 보내는 파이프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가정을 축복하시고 지역사회와 그 나라를 잘 되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놀랍습니다.

4. 한국 전통교회의 갱신 과제

얼마 전 <21세기 한국 전통 교회의 갱신과 성장을 위한 대안적 모델>이라는 논문을 쓰며 공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교회 갱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디자인하시고 예수님이 세우셨던 바로 그 교회와 본질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시절 길이 10센티 짜리 색종이를 20개 만들어 가는 숙제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법 세상을 알고 머리를 굴릴 줄 알았던 나이인지라 이 숙제를 어떻게 하면 힘을 적게 들이면서 빨리 할 수 있을까 궁리를 했습니다. 먼저 자로 정확하게 재어 20센치 길이의 색종이를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색종이를 올려놓고 그대로 잘라서 만들었습니다. 세 번째 색종이는 두 번째 색종이를 갖다 대어 오리고, 이렇게 해서 자로 재는 수고를 들면서 간단하게 숙제를 마쳤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20개 색종이 길이를 맞추어보니 다 다른게 아닙니까? 결국은 다시 일일이 자로 20센티를 재어 숙제를 마쳤던 기억이 납니다. 제 문제가 어디에 있었습니까?

기준을 바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준은 언제나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각각 앞에서 자른 것을 기준으로 잡았으니 길이가 다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교회 갱신은 교회의 기준을 무엇으로 정하느냐에서 시작됩니다. 서울에서 가장 큰 교회가 될 수 있고, 어떤 목사님이 시무하는 교회도 될 수 있고, 내가 전에 경험했던 교회로 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기준은 단 하나입니다. 저는 그것이 초대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초대교회는 지상에 있는 모든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어머니 교회입니다.
비록 시대마다 교회의 형태와 모습은 달라도 그 본질은 항상 동일하며 영원합니다.

한국 교회의 문제점이 무엇이냐 하는 것도 한국 교회를 초대교회라는 기준으로 재어 보면 분명히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찾아낸 문제점을 고치는 것이 바로 교회 갱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성경에서 교회를 가장 많이 세웠고 교회론을 정리한 사람은 바울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살아있는 몸>에 비유했습니다. 몸은 보이거나 또는 보이지 않는 많은 지체들이 서로 서로 연결되어 상호의존하면서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라도 없으면 몸으로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또 바울은 교회를 <하나님의 권속>, <영적 가족>으로 불렀습니다. 이것은 공동체를 말합니다. 공동체란 간단히 말해“나 없으면 네가 못살고 네 없으면 내가 못사는” 관계로 이루어진 모임입니다. 이제 이 잣대로 한국 교회를 재어 봅시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차라리 네가 없으면 이런 문제가 안 일어 날 텐데 하면서 은근히 한 사람을 소외 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공동체가 아니라, 내가 살기 위해서 상대방은 없어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까?

교회에서 중직자일수록 큰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 교회에 알리지를 않습니다. 혹시라도 누가 알면 쉬쉬하면서 제발 알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런 일을 보면서 저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괜히 믿고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돌아오는 이야기는, “아무개가 회개하지 않은 죄가 있어서 그런 일을 당했다느니, 기도가 부족해서 시험을 당했다느니, 누구는 예수 잘 믿는 줄 알았는데 그런 환란을 당한 걸보면 잘 못 믿는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아파 죽는 한이 있어도 다시는 교회 안에서는 이야기하지 말아야지”하며 결심합니다. 그러다 이 다음에 어떤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해도 혼자 꾹꾹 참지 결코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정말 영적 가족이라는 교회입니까?

얼마 전 가수이자 라디오DJ, MC로 잘 알려진 길은정 씨가 10년간 직장암과 사투 끝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인이 쓴 마지막 일기장에 한 구절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는 투병 중에도 사생활 문제로 여러 가지 오해를 받으며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세상을 향해 “말이 통하는 사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하고 울부짖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을 살아갈수록 말이 통하는 사람을 찾기가 점점 힘들어 집니다. 무엇을 해결해 주고 도와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내 말을 들어주기만 해도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텐데 그런데 교회 안에서 조차 그런 사람을 찾기가 힘들게 되었다면 도대체 어디 가서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사를 보면 교회가 오래 동안 타락하고 세속화 될 때마다 교회갱신 운동이 일어납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운동들은 성직자보다는 평신도들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과 그리고 조직화 되고 기관화된 교회 밖에서 작은 형제단이나 클럽 같은 소그룹을 통해 운동을 일으키는데 그들이 항상 주장하는 것이 공동체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공동체를 이루지 않고 일하면 그 하는 모든 일이 왜곡되어 나타나게 되어있습니다.
공동체가 안되었는데 예배를 드려 보십시오. 그 예배는 각자가 하나님으로부터 더 많은 복을 받기 위해 시기하고 경쟁하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공동체가 안되었는데 전도해 보십시오. 불신자를 교회에 데리고는 왔지만 영적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없으니 양육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람이 준비되지 않았는데 아무리 많은 아기가 태어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공동체가 없는데 말씀을 배운들 어디 가서 적용해 볼 수 있겠습니까? 밭이 없는 씨앗과 같지 않습니까? 신앙은 공동체 안에서 성장하고 제자는 공동체 안에서만 만들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교회가 공동체가 아니라 기관이나 조직이 되어 구제한다면 그것은 자기를 알리고 겉으로 보이기 위한 전시행사로 치우치고 말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있다면 먼저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한 몸 된 공동체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한 몸으로 하나 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모임도 결코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그 안에 모신 교회만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의 사명은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입니다. 마 28:19-20은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대 위임령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세우신 주인이 왜 교회를 세우셨는지 그 목적을 분명히 가르쳐 주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간판을 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간판을 00성경학교, 00예배소, 00전도단, 00만남의 장소로 바꾸어야 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잃어 버렸습니다. 무엇인가 분주하게 프로그램은 돌아가
고 쉴새없이 행사는 진행되는데 그 일을 통해 과연 얼마나 많은 불신자가 예수를 믿고 세례 받는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수의 제자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따져봐야 합니다.

교회가 불신자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까? 어떤 교회는 불신자들이 교회 나오는 것을 오히려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불신자들이 한번 교회 나오려면 얼마나 많은 장애물을 극복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교회 분위기, 예배 순서, 행사등 모든 것이 오래 믿은 사람들 중심으로 운영되지 불신자나 초신자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제자가 만들어지는 교회의 특징은 날마다 간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간증하라고 하면 언제나 10년 전 페병 고쳐 주신 일, 6.25전쟁 때 중공군이 습격해서 도망가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이야기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수 믿은지 10년 20년이 넘어도 레파토리가 늘 똑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 하나님이 지금 어디에 계시며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신앙은 늘 현재형이 되어야 합니다. 어제 은혜보다 오늘 받은 은혜가 더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어제로 만족하지 마십시오. 오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성도는 항상 오늘보다 내일이 더 좋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새롭고 더 좋은 것을 평생 주셔도 다 못주실 만큼 풍성한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 교회의 사역입니다. 몸에서 모든 지체는 제각기 할 일이 있습니다. 몸에서 필요 없는 지체는 하나도 없습니다. 교회도 몸이기 때문에 모든 성도는 지체로서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교회에서 일을 맡아하는 사람들은 20%가 채 안됩니다. 일을 하고 싶어도 교회 안에 사역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 중 2/3 이상은 그냥 주일 낮 예배만 참석하고 예배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지 교회안의 어떤 사역팀에 소속되어 일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기관이나 조직으로 전락하면 구성원의 10%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꾸려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목사나 몇몇 사람만 일을 독점하고 나머지 대다수 사람들은 구경꾼이나 방관자로 만드는 교회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목사는 성도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하느라 너무 바빠서 자기 본연의 일은 못하고, 성도는 모든 일을 목사에게만 맡겨놓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하지 않으니 비판이나 불평만 일삼게 됩니다. 목사와 성도는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한 지체입니다. 다만 주어진 역할과 책임이 다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시대를 가리켜 제 2의 종교개혁시대라고 말합니다.
제1의 종교개혁은 성직자의 손에서 성경을 빼앗아 평신도의 손에 들려준 것이었습니다.
제2의 종교개혁은 성직자의 손에서 사역을 빼앗아 평신도의 손에 돌려주어야 한다고 합니다.

5. 우리가 세워야 할 교회
언젠가 한 집사님과 대화를 나누던 중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목사님, 제가 이 교회로 옮기려 결정했을 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래 동안 함께 일했던 정든 친구들과 헤어져야 했고, 조상적부터 섬겼던 제단을 떠나야 했습니다.”

더 말씀하지 않아도 저는 그분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하나님, 저 집사님이 자녀들로부터 언젠가는 <아버지의 결정이 옳았습니다> 고 꼭 인정받게 해 주세요. 그리고 저 집사님도 자신이 내린 결정에 결코 후회하지 않도록 도와 주세요.”

아마 이 곳에 모인 많은 분들은 정든 교회와 친구와 이별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다시는 이런 고통을 맛보지 않아도 좋을 그런 교회를 꿈꾸면서 오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기가 과연 여러분들이 그리던 유토피아였습니까? 그런 이상적인 교회였습니까? 높은뜻 숭의교회는 아무 문제나 상처도 없는 완벽한 교회입니까?

벌써 여러분은 이곳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견했는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미 상처를 받고 또 다른 유토피아가 없는지 찾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 그 땅은 문제가 해결된 땅이 아니었습니다. <고생 끝 행복시작> 하며 광야에서의 모든 고난과 문제가 사라진 땅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결국은 차지했지만 전쟁을 통해서 이기는 정복의 역사 없이는 단 한 평의 땅도 차지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기대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이상적인 교회는 자기희생과 치열한 영적 전쟁 없이는 결코 세워질 수 없고 맛볼 수 없습니다.

성도는 좋은 것을 향해 도망치는 자가 아니라 좋은 것을 만들어 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항상 안 되는 교회를 가보면 하는 말이 있습니다.
“저 교회는 찬양이 강하고, 이 교회는 예배가 은혜스럽고, 또 저 교회는 설교가 좋은데”
하면서 남의 교회를 부러워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오래 동안 정말 한 교회를 꿈꾸어 왔습니다. 목마르게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곧 그런 교회는 지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상의 모든 교회는 그 교회를 꿈꾸며 좇아가는 <도상위의 교회>일 뿐이지 완성된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 교회는 우리 손으로 만들고 세워 나갈 때에만 존재할 수 있는 교회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그런 교회를 약속하셨고 보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디자인 하신 설계도를 가지고 있고 그리고 건축의 재료와 건축의 노하우까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그런 교회를 지금 여기에다 세우고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얼마나 힘을 합해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씩 하나씩 그 교회를 세워나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예수님이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행20:28에서 에베소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시기 위해 피와 생명을 아낌없이 바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이 땅에 교회를 탄생시키기 위한 해산의 고통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남은 생애를 어떤 일에 바치려고 하십니까?
아직까지 그 답을 찾지 못하신 분은 없습니까?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분은 지혜의 근본이시며 참 사람이셨습니다.
그분은 한 치의 낭비도 없는 가장 완벽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사신대로 따라 살면 결코 후회하거나 실패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자신의 모든 것을 교회를 세우는 일에 송두리째 바치셨습니다.
그분이 그렇게 사셨다면 우리 모두도 그렇게 사는 것이 옳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꿈꾸고 그리는 교회는 십자가의 고통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보다 더 귀하고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이 땅에 교회를 통하여 주님의 일을 계속해 나가는 것입니다. 높은뜻 숭의교회를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세우는 일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걸어도 결코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인생에 그보다 더 가치 있고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이제 우리 높은뜻 숭의교회를 한몸된 공동체로 만들고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아 주님의 소원을 풀어드리고
모든 성도를 사역자로 삼는 교회를 세우는 일에 우리의 남은 생애를 바쳐서 비록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날이 온다할지라도 그 아름다운 교회를 세상에 남기고 가는 것으로 기뻐하고,
주님 앞에 가서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려다 받은 상처와 흘린 눈물을 흔적으로 보여드릴 수만 있다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은 삶이었다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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