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제직의 자격(2) (딤전 3:8-13)

  • 잡초 잡초
  • 761
  • 0

첨부 1


- 설교 : 장빈 목사

# 1

우리는 지난주일, 하나님께서 동광 제직에게 요구하시는 기본적인 자격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첫째, 선한 일을 사모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했습니다. 둘째,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했습니다. 셋째, 한 아내의 남편, 혹은 한 남편의 아내이어야 한다 했습니다. 넷째,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셨습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주일에 받은 말씀의 요지인데요, 이제부터는 동광 제직들에게 요청하시는 보다 구체적인 자격 요건에 대하여, 개인 윤리 차원의 명령과 사회 윤리 차원의 명령으로 구분하여, 차례로 알아보겠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동광 가족 여러분, 2005년도 동광 교회 제직 여러분, 특별히 지난 1년 동안, 쉽지 않은 제자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치고 오늘 졸업하시는 제자 여러분, 이 시간 주께서 주시는 말씀 그대로 잘 받아 잘 실천하시어, 마지막 날, 주님께 잘했다 칭찬 듣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개인 윤리 차원의 자격과 그에 따른 명령들.

1) 절제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첫 번째 자격은 절제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3장 2절과 11절에 <절제>라는 단어가 두 번 반복해서 나오는데요, 그렇습니다. 제직이라면 우선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절제>를 말할 때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으니, 항상 절제해야 할 대상이 전제된다는 사실입니다. 국어사전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절제란, 식욕, 성욕, 술, 담배, 놀이 따위를,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삼가는 것!> 여기 <이러 저러한 따위를 삼가는 것!> 특히 <따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절제란 적정선에서 자기 욕심을 삼갈 수 있는 제어 능력을 말합니다. 해서 공동번역 성경은 <절제>라는 단어를 <자제력>이라 번역합니다. 종합하면 절제란, 내 인간적 욕정과 탐욕을 자제하는 능력, 특히 세상의 시시한 따위들에 쏠리는 나의 마음을 잘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식욕이나 성욕을 자제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술이나 담배에 홀려 자제력을 잃은 사람, 혹은 세상의 어떤 놀이에 밤새는 줄 모르고 노는 사람, 하여 이런 따위들 때문에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사람, 결코 동광의 제직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 절제할 줄 아는 제직을 원하십니다. 부디 절제의 미덕을 잘 갖추시어, 마지막 날, 잘했다 칭찬 듣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근신과 단정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두 번째 자격은 근신하며 단정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2절에 <근신>, 그리고 8절과 11절에 <단정>이란 단어가 나오는데요, 두 단어에 동그라미 하시고, 연결해 두시지요. 여기선 이 둘을 하나로 묶어 받고 싶습니다.

먼저 <근신>이란 단어는 몸가짐이나 행동을 삼가 조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공동번역 성경은 <신중>이라 푸는데요, <신중> 역시 매우 각별하게 조심한다는 뜻이지요. 한 마디로 근신이란 몸을 각별히 조심하라, 곧 몸조심하라는 겁니다.

여기서 <근신>과 <단정>이 통하는데요, <단정>이란 가지런하게 정돈된 상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근신하는 제직, 곧 단정한 제직입니다. 삼가 몸가짐부터 조심하니, 언제보아도 그의 모습 자체가 참으로 단정합니다. 우선 몸가짐부터 단정하니 그의 삶도 언제나 가지런하게 잘 정돈되어 있어, 누가 보아도 늘 단정합니다. 참, 믿음이 가는 분이지요.

그러므로 몸가짐부터 흐트러진 사람, 항상 정리 정돈이 안 되어 있는 사람, 하나님 교회의 제직으로 적합하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자기 몸 하나 정돈하지 못하고, 자기 인생조차 단정치 못한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돌볼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부디 삼가 몸을 조심하고, 근신하고 단정하여, 마침내 잘했다 칭찬 듣는 착하고 충성된 종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아담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세 번째 자격, 아담한 사람이라 되라 하십니다. 디모데 전서 3장 2절에 보니, <아담>이란 단어가 나오는데요, 여기 <아담>이란 단어는 고상하고 우아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공동번역 성경은 <품위가 있어야 한다!>고 푸는데요, 여기서 품위를 지킨다는 말,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성을 스스로 지킨다는 뜻이지요. 여기까지 종합하면 아담한 사람이란, 고상하고 우아한 사람, 자기 품위를 지키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제직이란 누가 보아도 고상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성경에 나타난 가장 아담한 사람 한 분을 소개하는 것으로 더 이상의 설명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 창 39:6 / (읽기) / 용모가 준수하다, 곧 용모가 단정하다는 말과 통하는데요, 그러므로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단정하고 아담한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요셉의 모습이 우리에게 더욱 감동으로 다가오는 것은, 지금 그가 먼 나라 이집트까지 팔려온 신세라는 점 때문입니다. 돈에 팔려온 노예 주제에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랬습니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았습니다. 주인마님의 유혹 앞에서도 끝까지 몸조심했습니다. 재물의 유혹 앞에서도 늘 단정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품위를 땅에 떨어뜨린 적이 한번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요셉에게 하나님은 놀라운 복을 주셨습니다. / 창 39:2-3 / (읽기) / 같은 복을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시는데요, 아담한 제직에게 주시는 상급이 두 가지군요, 첫째는 임마누엘의 축복이요, 둘째는 형통의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나는 동광의 제직이라는 자부심, 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잃지 마시고, 직분에 걸 맞는 품위를 잘 유지하시어, 아담한 제직에게 주시는 복, 다 받아 누리는 축복의 종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술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네 번째 자격, 술을 즐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시 디모데전서로 돌아오셔서, 3장 3절을 보니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8절을 보니 <술에 인 박이지 아니하고!>,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시는데요, 문제는 이 명령을 몰라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이해 못할 말이 아니거든요, 신학적 토론이 필요한 대목이 아니거든요, 그냥 실천하면 되는 말씀이요 명령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 크리스천들조차도 이 명령에 대하여 자꾸만 타협하려고 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는 제직이라면 술을 즐기지 말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술에 인박힌 사람을 제직으로 세워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거기 술을 즐기지 말라는 말, <술 곁에 오래 앉아있지 말라!>는 뜻입니다. 술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가는 술을 즐기게 되고, 술을 즐기다 보면 술에 인 박이게 되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그럼요, 날 때부터 주당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날 때부터 고주망태 인생으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 발로 찾아가 자기 손으로 퍼 마시다가, 그만 자기가 마시던 술에 오히려 자기가 먹히고 만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 한번 생각해 볼까요? 술을 즐기려면 날마다 어딜 가야 합니까? 술집이죠. 그러다가 술에 인이 박히면, 요즘 말로 알코올 중독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 무슨 생각만 합니까? 술 생각만 하죠. 그런 분들은, 한 마디로 어디 제직이죠? 그렇죠, 술집의 제직이지요. 하루 종일 술만 생각하다 밤만 되면 술집에 들려야 하는 인생, 술집을 섬기는 술집의 제직 맞지요. 해서 우리 주님,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교회에 제직으로 세울 수 없다 하신 것입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이 말씀엔 토 달지 마시고, 그저 청종만 하시기 바랍니다. 핑계 대지 마시고 아예 이참에 끊으시기 바랍니다. <비즈니스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말씀을 가장 많이 듣는데요, 저 정말 이 대목에서 주장하고 싶습니다. 무슨 비즈니스를 술집에서 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그러니 문제가 터지지요. 그러니 자꾸 신인도가 떨어지지요. 그러니 자꾸 사가 끼지요. 정말입니다. 술을 즐기다 술에 인박힌 인생, 절대로 행복할 수도 없고, 절대로 잘 되는 법도 없습니다. 이 참에 끊을 것 끊으셔서, 제직의 품위를 지켜 주시고, 하여 큰 상급 받은 제직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5. 구타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다섯 번째 자격, 구타하지 않는 자입니다. 디모데 전서 3장 3절에 보니,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않는 자라 하시는군요. 사람이 사람을 구타하게 되는 경우, 대개 거기 술이 개입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술에 인박히지 말라 하신 건데요, 거기 구타(毆打)라는 단어, 어쩌다 한번 실수로 때리게 된 경우가 아니라, 상습적으로 때리는 가리킵니다. 문제는 구타가 여전히 우리 가정과 학교와 사회 여러 곳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라는 점입니다. 매 맞는 아내, 매 맞는 남편, 매 맞는 자녀, 매 맞는 학생, 등등, 정말 구타 사건이 끊이질 않는데요, 심지어 구타하다가 사람을 죽이는 사건도 심심찮게 보도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긴 말씀드리는 대신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상대가 누구건, 절대로 구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때리는 만행을 저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건 제직 이전에 사람이면 꼭 지켜야 하는 명령입니다. 정말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손을 대서는 아니 되는 법, 모든 사람 안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절대로 사람에게 손찌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특히 술기운에 폭력을 휘두르지 사람, 세상에서 가장 비겁하고,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입니다. 아니, 사람이 오죽 못났으면 술 먹고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구타할까? 아니 됩니다. 절대로 아니 됩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그럼요, 그 어떤 이유로도 사람이 사람을 구타하는 건 용서받지 못할 일입니다. 특히 술 먹고 사람 패는 사람, 절대로 용서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제직이라면, 구타하지 말라 하십니다.

6. 다툼, 일구이언, 참소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여섯 번째 자격, 다투지 않는 자, 일구이언을 하지 않는 자, 참소하지 않는 자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3장 3절에 <다투지 아니하며>, 3장 8절에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며>, 3장 11절에 <참소하지 아니하며> 함께 표시하시고 연결해 두시는데요, 이 세 가지 명령을 하나로 묶어서 받고 싶습니다. 왜? 세 가지 모두 말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떤 일로도 다투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미련한 자들이 다투기를 좋아하고, 현명한 자는 다툼을 멀리 한다 했습니다. 모름지기 제직이라면 어떤 일에 대해서도 다투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꾸 우리 사이에 다툼이 일어나는 건 어인 일인가? 중요한 원인이 하나 있으니, 바로 말 때문이라는 겁니다. 작은 말 실수 하나가 큰 다툼으로 비화되는 경우도 있지요. 해서 오늘 주신 말씀에, 일구이언자하지 말라 하시고, 또한 참소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한 입으로 두 말 하는 사람, 제직의 자격이 없다 하십니다. 특히 이 사람에게 이 말하고, 저 사람에게 저 말하는 사람, 그는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사람이요 다툼과 분란을 일으키는 사탄입니다. 언제나 문제만 일으키는 문제 마귀, trouble-maker란 뜻이지요. 그러므로 일단 제직이 되었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한 입으로 두 말, 곧 일구이언해서는 아니 된다는 겁니다.

또한 참소하는 자가 되지 말라 하셨는데, <참소>란 단어, 거짓말로 헐뜯고 비방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참소>라는 단어 속에는 <말을 물어 나른다!>는 뜻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가 물어 나르는 그 말이 거짓말이요, 헐뜯는 말이요, 중상 모략하는 말이요, 비방하는 말이라는 데 있습니다. 이런 분들, 모시고 가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정신 감정입니다. 왜? 정신이 이상하지 않고서야 거짓말로 남을 비방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소하는 자, 역시 제직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아니, 일단 제직이 되었으면, 죽는 한이 있어도 참소하는 일에 가담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제직들은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여기선 에베소서 한 구절만 찾아 확인하고 가겠습니다. / 에베소서 4:29, 5:4 / (읽기) / 먼저 주목할 것, 더러운 말, 안 됩니다. 어리석은 말, 희롱의 말, 마땅치 않습니다. 우리 제직들이 입을 열어 해야 할 말, <오직 덕을 세우는 말, 선한 말, 은혜를 끼치는 말, 그리고 돌이켜 감사하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은혜와 축복의 덕담 아니면 감사의 말만 하라는 건데요, 하여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 곧 온전한 사람이라 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비방하는 대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참소하는 대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험담하는 대신 덕담만 하시기 바랍니다. 해서 내가 입을 열어 말을 하면, 언제나 덕담과 감사의 말만 쏟아지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해서 우리 동광의 하늘 가족들, 이미 여기서 천국을 살며,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7. 돈, 더러운 이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일곱 번째 자격, 돈을 사랑치 아니하는 자, 그리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않는 자라 하십니다. 3장 3절에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3장 8절에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라 말씀하시는데요, 가장 중요한 대목은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구절입니다. 왜? 돈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마침내 뻔뻔하게도 더러운 이윤을 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해서 우리 주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으며, 그런데도 돈을 사랑함은 일만 악의 뿌리라 하셨던 것입니다.

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닙니다. 돈은 잘 써야 하는 대상입니다. 돈 많이 버시고 잘 쓰시기 바랍니다. 기왕에 돈벌러 세상에 나가 그토록 애쓰시는 것, 부디 돈 많이 버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잘 쓰기 위해 돈을 버시기 바랍니다. 행여 돈을 사랑한 나머지 더러운 이윤을 탐하진 마시기 바랍니다. 불의한 방법으로 번 돈은 오히려 화근이 된다는 사실을 누구 보다 우리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디 돈 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시고, 어떤 경우에도 불의한 재물은 멀리 하시어,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거부, 사랑받고 존경받는 깨끗한 부자들,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동광 제직에게 요청하시는 사회 윤리 차원의 자격과 그에 따른 명령들.

1. 관용

디모데 전서 3장 3절에 보면 <오직 관용하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관용이란 단어, 너그러울 관 자에, 얼굴 용 자를 쓰는데요. 파자해서 풀면, 항상 너그러운 얼굴로 대하는 것을 관용이라 하겠습니다. 해서 국어사전은 <관용이란,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이라 풀어주는데요, 해서 우리 주님 하시는 말씀, 동광의 제직이라면, 항상 너그럽고, 항상 넉넉하고, 항상 친절하고, 항상 관대하고, 항상 용서할 준비가 된 관용의 사람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요, 저는 오늘 <관용>이란 미덕을 사회 윤리적 차원의 명령으로 받자고 제안하는 중입니다. 거기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최근 이 땅의 백성들과 우리 사회 전반에 비친 한국 교회의 얼굴이 너그럽지도 않고, 친절하지도 않고, 관대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해서 세상은 교회를 향해 대개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들끼리만 좋아하는 폐쇄적인 클럽, 자기들끼리만 모이고 통하는 게토 집단, 조금만 달라도 그 안에 절대로 받아주지 않는 배타적인 집단, 용서할 줄 모르는 율법주의 집단, 그래도 자기들만 성장하겠다고 아우성치는 이익 집단!>

이 말에 우리가 동의하고 안 하고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문제는 지금 한국 교회가 우리 동포들에게 그런 얼굴로 비쳐진다는 데 있습니다. 관용을 베풀어야 할 교회가 그렇지 못한 속 좁은 이기적인 집단으로 각인되면서, 기독교를 향한 집단적 혐오증이 날로 고조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입니다. 해서 저는 <관용>이란 미덕을 사회 윤리적 차원의 명령으로 받자고 제안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동광교회가 이 일에 솔선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동광 교회를 생각하면 항상 밝은 얼굴이 연상되기를 소망합니다. 동광 교회 하면, 한국에서 제일 친절한 교회, 누구나 넉넉하게 품어주는 교회라고 소문나기를 소망합니다. 해서 우격다짐과 한심한 정쟁과 끝없는 생존경쟁으로 한없이 살벌해져만 가는 이 세대 한 복판에 서서, 관용의 미덕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교회의 문이 더 활짝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끼리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회 한 복판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 힘들고 어려운 백성들이 언제든 와서 쉼과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교회, 해서 이름 그대로 빛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나그네 대접

동광 제직들에게 요청하시는 사회 윤리적 차원의 두 번째 소명은 나그네 대접입니다. 3장 2절에 보니, 나그네를 대접하라 하시는데요, 그렇습니다. 나그네는 학대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잘 대접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여기서 기억할 것은 우리가 대접해야 할 대상을 정확하게 지정해 주셨다는 점입니다. 아무나 대접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나그네 된 자를 대접하라는 겁니다. 그러면 왜 꼭 짚어 나그네를 대접하라 하셨나? 답은 간단합니다. 나그네라는 존재 자체가 의지할 데 없는 서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나그네란 단어는 설움이란 단어와 함께 다니지요. 나그네 설움!

그런데 이 명령 앞에서 우리 한국 교회의 성도들과 우리 한국인들은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왜?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사회에 들어온 이방 나그네들을 우리가 너무 홀대하거나 학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은 간증 및 보고 / 저는 지난 주중에,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개최된 공개 토론회에 다녀왔습니다. 우리 교회가 1층 로비의 커피 자판기 수익금으로 지원하고 있는 두레방 선교센터가 주관한 공개토론회였는데요, 우선 그 주제 자체가 아픔으로 다가왔습니다.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 근절을 위한 공개 토론회>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성매매를 목적으로, 인신 곧 사람의 몸을 팔고 사는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그것도 성 착취를 목적으로, 팔고 사다니요.

공개토론회가 있기까지 두레방은, 지난 1년 동안 경기도 제2청사의 공적 지원을 받아, <경기북부 지역 성매매 근절을 위한 피해여성 지원사업>을 벌인 바 있습니다. 공개 토론회 자리는 1년 동안의 사업 결과를 보고하고 추후 대책을 세우는 자리였는데요, 거기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한 가지는, 현재 경기북부 지역 기지촌에서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인신매매에 연루되어 피해를 당한 여성의 80% 이상이 외국인 여성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국가별로 보면 필리핀 여성과 러시아 여성이 제일 많았고, 그 외에도 아시아 지역의 가난한 나라에서 돈을 벌기 위해 팔려온 여성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문제는 저들이 출발부터 사기를 당해 이 땅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가수로 취직시켜 준다, 혹은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 혹은 한국의 좋은 총각과 결혼하게 해 준다고 광고만 믿고, 비싼 소개비까지 내며 한국에 와보니, 저들을 기다리는 것은, 기지촌 클럽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술과 함께 몸을 팔아야 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 중에는 대졸 학력자도 있고, 10대 어린 아이도 있고, 심지어 아이 엄마도 있었습니다.

저들이 악덕 업주들에게서 받는 학대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국가 차원에서 볼 때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 사회 어디에도 저들 나그네들의 호소를 들어주고, 저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저들에게 살 길을 열어줄 만한 그 어떤 법적 제도적 장치도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법을 공부하신 분들이 좀 깊이 연구해 주시기 바라는데요, 어떤 여성은 고국에서 굶고 있을 가난한 가족들 생각에 이를 악물고 일을 했는데, 1년 동안 현금으로 받은 월급이 채 백만 원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구타와 착취를 당하던 여성들이 참다못해 업소를 탈출하면, 업주는 그날로 무단이탈자로 신고하면 끝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정부가 하는 일이란, 그런 사람을 불법 체류자로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수사팀을 보내 잡아다가 잡히는 즉시 강제로 귀국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항변할 수 있는 그 어떤 통로도 전혀 없는 실정이었습니다. 해서 결국 우리는 아시아 모든 형제자매 나라들로부터 <Ugly Korean>이라는, 번역하기조차 민망한 별명을 얻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입장 한번 바꿔 놓고 생각해 보시지요. 내 딸이 돈벌러 간 나라에서, 인신매매를 당했고, 그래도 몸까지 팔아가며 돈 좀 벌겠다고 버티다가, 매만 맞고, 돈도 못 받고, 그렇게 강제로 쫓겨났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대한민국이 아시아 여러 나라들에게 국제적 <왕따>를 당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사정이 기지촌 여성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는 하기 싫어하는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나그네들 모두가 다 비슷한 처지에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현장에 계신 분들은 하실 말씀이 없지 않으실 겁니다만, 그러나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억울한 한을 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이방 나그네가 없도록 저들을 대접하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이 대목에서 목회자의 한 사람으로 더욱 안타까운 점은, 우리 한국 교회는 이런 문제에 별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관심을 갖는 경우에도 피해 여성들 편에 서기 보다, 저들을 정죄하고 돌을 들어 치려 한다는 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정말 큰일입니다. 주님 앞에 가서 무어라 말씀드릴지 걱정입니다.

이 점에서 전 우리 동광 교회에 주시는 소명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기왕에 두레방과 연을 맺고 지원하기 시작한 일, 이 땅에 들어온 나그네 전부를 우리가 다 책임지고 대접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선 경기북부 지역의 여성들부터라도 잘 대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작은 몸짓이 피해 여성들에겐 위로와 희망이, 우리 한국 교회에 한국인들에겐 거룩한 도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여 디모데 전서 3장 7절의 말씀처럼, 외인들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으며, 또한 9절의 말씀처럼, 우리 교회가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간직한 교회가 되어, 기장의 동편을 책임지는 교회, 한국교회에 빛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주신 말씀 가슴에 새기며 명상 기도합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