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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를 위한 우리의 경주 (히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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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임경택 목사 (종로교회)

2005년 새해 첫 달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세월의 흐름의 속도를 느낍니다. 새롭게 결심하시고 출발했는데 작심삼일이 되어서는 안 될 줄 믿습니다. 또 다시 결심하고 자세를 가다듬고 승리를 위해서 달리시기를 바랍니다. 아직 달음질의 초반입니다.

어떤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며 나이를 먹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며 살아갑니다. 시간을 나타내는 헬라어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단순히 흘러가는 시간을 가리킵니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집니다. 모든 세상 사람은 이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속에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하고 있는 사람은 카이로스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흘러 보내는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 엄청난 창조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삶인 것입니다. 성경은 “세월을 아끼라” 즉, “시간을 사라”고 말씀합니다. 즉 카이로스적인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물론 복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이로스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금년 안에 많은 창조적인 역사를 이루어 내는 우리교회와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인생은 나그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가는 윤회적이고 불교적인 색채가 강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매우 도전적입니다. 기독교는 인생은 경주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승리를 위해 달리는 삶을 가리킵니다.

마라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요. 반토막, 하프코스. 완주, 풀코스가 있습니다. 마라톤은 내가 맘대로 골라서 달릴 수 있지만 인생은 내 맘대로 할 수 없습니다. 내가 마흔살 까지 달리겠다고 맘먹는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어진 대로 달리는 것입니다. 인생은 풀코스입니다.

인생의 경주는 두 번 달릴 수도 없습니다. 연습도 없습니다. 바로 경기에 들어갑니다. 달리다가 멈출 수도 없습니다. 끝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달리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늙어 죽음을 임박한 그 시간 까지 달렸습니다. 최선을 다한 사도바울을 생각하면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달리기를 소원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경주를 포기하지 않는 인생은 참 멋진 인생인 것입니다. 이런 글이 있습니다.

<< 인생의 승리자 >> << 인생의 실패자 >>

1) 실패했을 때 ‘내가 잘못했다’고 말한다. ---- 실패했을 때 ‘너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말한다.
2)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만 여유가 있고 달려가며 계산한다. ---- 성공자보다 게으르지만 늘 ‘바쁘다 바쁘다’고 떠들어 대고 출발도 하기 전에 계산부터 한다.
3) 시간을 관리하며 살고 넘어지면 일어나 앞을 본다. ---- 시간을 끌며 살고 넘어지면 일어나 뒤를 본다.
4) 지는 것도 두려워 않고 과정을 위해 산다. ---- 이기는 것도 은근히 두려하며 결과만 위해 산다.
5) 구름 위에 태양을 보고 ---- 구름 속의 비를 본다.
6) 문제 속에 뛰어들고 눈이 오면 눈을 밟아 길을 만든다. ---- 문제의 변두리만 맴돌고 눈이 오면 눈이 녹기를 기다린다.
7)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보면 존경하고 그 사람으로부터 배울 점을 찾는다. ----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만나면 질투하고 그 사람의 갑옷의 구멍난 곳이 없는지 찾으려 한다.
8)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약하다. ----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하다.
9) 몸을 바치고 행동으로 말을 증명하고 ---- 혀를 바치고 말로 행위를 분양한다.
10) 책임지는 태도로 살고 인간을 섬기다 감투를 쓴다. ---- 약속을 남발하고 감투를 섬기다가 바가지를 뒤집어 쓴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장이요,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마치고 승리하신 분들입니다. 그들은 이미 경기를 마치고 이제는 관중석에 들어가신 분들입니다. 그리고 히12장에 보면 이제는 그들이 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뛰어야 할 차례가 된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그 선배들은 이제 우리의 응원단이 되어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승리를 위하여 어떻게 달리는 것이 좋을까요? 오늘 성경은 몇가지로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1. 우리의 목표는 예수님입니다.

달리기하는 사람은 그냥 달리지 않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고 목표를 향해 달립니다.
골인지점에 마음과 눈을 두고 달립니다.
한 달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시 무리의 목표를 되찾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무엇을 위하여 사는 지를 망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애완견 경주대회에서 보니까 어떤 강아지는 결승을 향해 쪼르르 잘도 달립니다. 그런데 어떤 강아지들은 결승점으로 뛰지 않고 중간지점에서 딴 짓을 합니다. 킁킁 냄새도 맡고 . . .주인은 애타게 응원을 하는데 . . .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위해서 달리고 있습니까? 성공하기 위해서입니까?
우리의 목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유혹을 받고 세상에 마음을 잘 빼앗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인생의 목표가 없기 때문입니다. 목표란 삶을 잡아주는 힘이 됩니다.
경주자는 목표를 알고, 어디로 뛰어야 하는 지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달려야합니다.
돈입니까? 명예를 위해서입니까? 금년 한해동안 목표를 바라보고 달리시기를 바랍니다. 목표를 가지되 허망한 것들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최근 세상이 어렵습니다. 그런 중에도 벼락부자가 된 벤처 기업가들이 많습니다. 열심히 일하였더니 모든 기회가 척척 잘 맞아 들어가서 부자가 된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또 갑자기 주식 값이 폭등하여 부자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나는 언제나 그런 부자가 되어보나!’ 한 숨을 쉬며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과 행복해지는 것은 전혀 별개의 것입니다.

벼락부자가 된 젊은이들 가운데는 갑자지 엄청난 돈이 굴러 들어오니까, 신나게 펑펑 씁니다. 호화 주택과 별장을 삽니다. 외제 자가용을 삽니다. 그러나 상당수 벼락부자들은 정신적인 혼란을 겪는다고 합니다. 과연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지게 된 것이 정당한 일인가 회의를 품게 됩니다. 너무나 젊은 나이에 너무나 큰 성공을 거둔데 대한 허탈감에 빠집니다. 허무감에 사로잡힙니다. 이제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막상 부자가 되고 보니 별 것도 아닙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정상의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열심히 올라갑니다. 그러나 막상 올라 보면 거기에는 별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산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그러나 거기에 올라가도 결과는 마찬가집니다.

인간은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고전9:26) 인간은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 지음 받았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43:21)

2. 승리를 방해하는 것들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인생의 경주는 단순하게 달려야 합니다. 운동선수들은 경기할 때 최대한 간편한 옷을 입습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가벼운 옷을 입습니다. 그래야 그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벗어 던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주에서 이기려면 가벼워야 합니다. 가벼우려면 벗어버려야 합니다. 윌리암 바클레이는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멀리 가기 위해서는 가벼운 여장이 필요하다. 인생행로에 있어서도 불필요 한 것은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습관, 오락, 욕망 그리고 인간관계가 장애가 되고 있다면 출발점에서 경기자가 윗저고리를 벗는 것처럼 그 모든 것들을 벗어버리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은 바로 생각은 가볍게 되기를 바라면서도 벗어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단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위해 무언가를 하기로 결단하기 전까지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입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 10명 중에 결단하는 사람은 한 명뿐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두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바울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4:22-24)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얽매이기 쉬운 죄가 있습니까?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면 끊어야 하고 벗어 던져야 합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돈은 사람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그렇게도 좋은 물질이 우리의 방해가 될 수 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물질 때문에 신앙이 자라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헌금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는 데 교회생활 잘하는 것 같다가 건축 때가 되면 슬그머니 그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척교회는 아예 안가고 부담 없이 예배만 드릴 수 있는 큰 교회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헌금에 대한 광고를 안 해도 스스로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 교회는 성전 건축을 할 때가 되었구나. 얼마 지나면 헌금하라고 하겠지 . . .’ 하면서 다른 교회로 옮기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시기와 질투라는 것도 신앙의 경주에서 커다란 방해물이 됩니다.
의외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기 질투의 덫에 걸려 넘어지고 에너지 소비를 많이 합니다. 남이 열심히 하면 배아파 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자기는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 . . 그때 마귀는 옆에서 잘한다고 박수를 칩니다. 마귀 좋은 일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무슨 이유로든 상대방을 시기하는 것은 영적인 어린아이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3:2-3) 시기와 질투 때문에 인생의 경주에서 퇴보하는 자가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인생의 경주에서 방해 되는 것은 옛 습관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직 술 담배의 버릇을 끊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아직 음란한 버릇과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게으른 습관을 벗어버리지 못해서 인생의 경주에서 뒤처지는 경우들을 봅니다. 그 외에도 교만, 근심, 걱정, 낙심 . . 승리를 위해서는 가볍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방해물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버릴 것은 벗어버리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목적지까지 뛰시기 바랍니다.

3. 인생에는 좋은 멘토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면 언제나 낙심하게 되고 실망하게 됩니다. 사람은 이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언제나 절대 손해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속이고, 결국 나를 손해되게 합니다.
그러나 나의 죄 때문에 말할 수 없는 천대를 받으신 예수님, 희생하신 예수님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요즘 멘토(Mentor)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멘토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인데 BC 1200년 고대 그리스의 이타이카 왕국의 왕 오디세이가 트로이 전쟁에 출정하면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가장 믿을만한 친구인 멘토에게 맡기고 떠나게 되었다. 오디세이가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무려 10여년동안 멘토는 왕자의친구, 선생, 상담자, 때로는 아버지가 되어 그를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이후로 멘토(Mentor)라는 이름은 지혜와 신뢰로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

여러분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상의할 사람이 있습니까?
언제나 본받고 싶은 멘토가 있습니까?
삶의 정보를 주고 삶의 지혜와 기술을 가르쳐 주는 인생의 코치, 인생의 방향 표시가 되어 주는 본받고 싶은 멘토가 있습니까?
이런 멘토가 있는 사람은 발전이 있습니다. 행복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멘토 혹은 이런 참 좋은 믿음의 친구를 많이 가지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통계적으로 그 교회 안에 6,7명의 친구 가 있는 교인은 결코 그 교회를 떠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새로운 천년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신앙의 친구를 필요로 합니다. 인생의 성패는 관계성(relationship)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기분대로 하는 사람을 모델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예배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기도를 소중히 여기는 자들을 찬양을 하여도 온 마음으로 소중히 사는 사람을 모델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들이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수상 중에 베긴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수상으로 재직할 때 중동에 6일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인구 300만 명으로 아랍의 3억 인구가 싸워야 했습니다. 한 미국의 목사님이 승리한 비결을 물었습니다. 베긴 수상이 말한 승리의 비결은 정말 의외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명령이 있습니다. 우리 이스라엘 군의 장군이면 부하들에게 절대로 명령해서는 안 되는 명령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앞으로 가’라는 명령입니다. 다만‘나를 따르라’라는 명령만 할 수 있습니다. 자기는 뒤에 있으면서 ‘앞으로 가’라는 명령이 아니라, 먼저 앞장서면서 ‘나를 따르라’는 명령을 할 수 있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앞으로 가라는 명령을 하지 않으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나를 따르라”, “나를 좇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에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최고의 멘토이신 예수님을 늘 바라보며 달리시기를 바랍니다.

4. 십자가를 참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1절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경주에는 반드시 시련이 따릅니다. 인내심을 요하는 일들이 이 세상에 참으로 많습니다. 어떤 분은 “끈질김만 있으면 바늘로도 우물을 팔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내의 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하겠습니다.

B. Franklin은 “인내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 고 했습니다. 영어사전 웹스터를 집필한 웹스터는 36년 동안의 각고 끝에 사전을 완성했습니다. 작곡가 하이든은 66세 되던 해에 800번째 작품으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완성했습니다. 화가 미켈란젤로도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까지 8년 동안 2천 번이나 스케치하였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작 모나리자의 모델은 엘리자베타라는 여인인데, 그 여인은 자그마치 4년 동안이나 동일한 표정을 유지해주므로 작품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모두 인내의 사람들입니다. 인내만이 귀중한 결과를 얻어 내는 것입니다.

좋은 인품의 척도는 나쁜 이와 얼마나 잘 견디느냐에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는 영성을 강하게 하고, 인품을 우아하게 하며, 자만을 죽이고, 혀에 재갈을 물려줍니다.
참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히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2절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 .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구원하기 위해 . . .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도 십자가를 지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참지 못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며 십자가를 내려놓으려 하고, 내려놓기도 합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 야할 때입니다. 오늘 본문 히브리서 12장 3절을 보세요.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예수님을 생각할수록 지치는 대신에, 오히려 새 힘이 솟아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올해 2005년은 이미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신앙이 승리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좌우로 치우침이 없이 오직 목표를 향하여, 방해 되는 것들을 벗어 버리고, 좋은 멘토 예수님과 함께, 인내로서, 예수님을 생각하며 승리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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