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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3단계(②십자가 신앙) (마 16: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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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신만교 목사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苦難)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天下)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마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지난 주일에는 신앙의 3단계 중 첫 번째가 되는 '구주(救主) 신앙'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구주(救主)신앙이란 세속적인 우상문화(文化)와 세상 사람들의 여론(輿論)을 초월해서 예수를 '나의 구주(救主), 나의 하나님'으로 믿는 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구주(救主)신앙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복(福)인 천국에서 영생(永生)하는 복을 받게 하는 것이고 이 구주(救主)신앙을 가진 자에게는 천국문을 열 수 있는 천국열쇠를 주신 다고 하였습니다. 구주신앙은 보석보다 더 귀한 겁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이 구주신앙을 고백하였을 때 예수님께는 너무 기뻐하시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마 16:17)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가 그 칭찬을 받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을까요. 아마 입이 귀에 닿았을 겁니다. 싱글벙글했을 겁니다. 아마 구름 위에 붕 떠있는 기분일거예요. 신앙생활하면서 이런 일만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러나 그렇지를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구주신앙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더 발전해야합니다. 한 단계의 더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난 주 본문에 이어 오늘 본문을 말씀하신 겁니다. 2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마 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苦難)을 받게 되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비로소 말씀하셨습니다. 화창한 날씨가 갑자가 시커먼 먹구름이 몰려온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모처럼의 좋은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말씀을 안 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곧 닥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하신 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신앙의 단계인 십자가 신앙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십자가 신앙이 무엇입니까? 
 
1. 십자가 신앙은 예수 십자가(十字架)의 도(道)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이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대로가 좋은데. 그리고 앞으로 더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데 고난과 죽음이 왠 말인가?
  이것을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에게는 구주신앙은 있었는데 아직 십자가 신앙은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필요성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토록 능력이 많으신 주님이 고난을 당하시다니. 힘으로 세상을 정복할 수 있지 않는가. 그래서 예수님을 붙들고 간청(懇請)하였습니다. 22절입니다. 
(마 16: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수 십자가의 도(道)가 이해가 되십니까? 십자가의 의미를 아십니까? 왜 예수님이 그처럼 부끄러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야 했나요? 십자가의 쓴잔을 피하면 안되었나요? 이 가운데는 아직 이것까지는 이해가 안 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오늘 이 시간 십자가의 도(道)를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했습니까?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속죄(贖罪)의 죽음입니다. 인류의 죄를 위하여 대신하여 죽으시는 겁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 하시는 죽음입니다.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는 죄(罪)와 사망(死亡)과 저주(咀呪)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궁극적 문제를 십자가에서 풀었습니다. 십자가는 죄인(罪人)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죄(罪)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충족되는 사건입니다.

  온 인류의 저주와 형벌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에게로 옮겨졌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저주와 형벌을 받으시는 겁니다. 예수께서 속죄양이 되어 죽으시는 겁니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리고 예수를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겁니다. 예수의 의(義)를 힘입게 하는 겁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救贖)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십자가의 도(道)를 깨달은 사람은 이 십자가를 사랑합니다. 자랑합니다. 그리고 전합니다. 십자가만이 구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롬 1:16) 내가 복음(福音)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도 바울 만큼 십자가 신앙으로 충만했던 사람도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십자가만 자랑했습니다. 
(고전 1:22,23)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베드로 역시 이때는 십자가의 도(道)를 이해 못했으나 나중에는 십자가 의 도를 깨닫고 십자가신앙으로 무장되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 시  설교하는 가운데 예수 십자가를 전하였습니다. 
(행 2:23-24)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십자가 신앙은 철저히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삶입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고백(告白)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음으로만 가지고 있으면 안됩니다. 입으로 표현해야 완전한 겁니다. 사랑도 고백해야 진정한 사랑입니다. 고백되지 않는 사랑은 50점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롬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러나 신앙이 고백으로만 끝나서도 안됩니다. 고백이 있고 나서는 삶으로 실천을 해야하는 겁니다. 사랑도 고백이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는 행동이 중요하듯 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누구라고 고백했습니까?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그 예수를 따라가야 합니다. 그 예수께 순종해야합니다. 예수가 나의 구주(救主)가 되고 나의 하나님이 되셨으니 그 분에게 순종을 해야지요. 그렇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신다고 하니까 뭐라고 했습니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 하리이다'(마 16:22) 
  이게 구주(救主)로 믿고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분에게 할 말입니까? 해서는 안될 행동이지요. 오죽했으면 예수님께서 뭐라고 책망을 하셨습니까?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방금 전에는 신앙고백을 잘해서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가 지금은 뭐가 됐습니까? 사단이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한다고 충고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주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주님을 넘어지게 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인간의 일일뿐이라는 겁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 볼 때도 황당한 일 아닙니까? 사단의 도구가 되다니요? 여러분도 얼마든지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합니다. 주님의 일한다고 하며 사단의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어요.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자기를 부인(否認)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라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안됩니다. 주님의 뜻을 따르려면 자신의 뜻을 부인해야합니다. 자신에 대하여 '아니오'(NO) 라고 말하고 주님의 뜻에 대하여 '예'(YES)라고 할 수 있어야합니다. 이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예수를 좇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신앙이 안 되는 겁니다. 여러분,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려고 하면 안됩니다. 신앙생활은 이성과 상식을 초월하는 겁니다. 자기의 뜻과 주장을 앞세워서 주의 일을 하고자 하면 안됩니다. 모두들 주님을 위하여 충성한다고 하는 교회에 문제가 생깁니까? 결정적인 일에 자기를 부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마 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否認)하고 자기를 부인하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막으라는 겁니다.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포기하라는 겁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情)과 욕심(慾心)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이미 본을 보이셨습니다. 40일 금식기도 후에 마귀가 뭐라고 유혹했습니까? 쉬운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다 거절하고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자신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오늘날도 사단은 우리에게도 쉽고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하라고 유혹합니다. 자기부인 하는 좁고 협착(狹窄)한 길을 가기보다는 넓은 길로 가도록 시험합니다. 여기에 많은 성도들이 넘어갑니다. 
  신앙생활이나 교회생활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자기 부인하는 것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고집과 감정과 주장을 깨뜨리는데 실패하는 사람은 결국 신앙에 실패를 하게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3. 십자가 신앙은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삶입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뭡니까? 나는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바로 십자가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십자가란 나는 원하지 않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그게 바로 십자가다.' 내 생각하고 다르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따르는 게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내 생각이 대치될 때 불순종하면 죄(罪)를 짓는 것이고 순종하면 그게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은 죄를 짓든지 아니면 십자가를 지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옆에 사람과 인사합시다.) '당신은 죄를 짓는 일이 많습니까? 아니면 십자가를 지는 일이 많습니까?'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십자가는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입니다. 그런데 죄를 지었어요? 십자가를 졌어요? 영생(永生)을 얻으려고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 청년의 십자가는 재물(財物)입니다. 버리지를 못했습니다. 지붕 위를 거닐던 다윗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밧세바라는 여인입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하던 요셉의 십자가는 보디발의 아내입니다. 그는 그것을 거부하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니까 죄의 길을 선택합니다. 요즘에 십자가 없는 교회가 많고 십자가 없는 교인도 많습니다. 
십자가 신앙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십자가 신앙으로 무장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간곡히 말씀하십니다. 
(눅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 날마다 십자가에 넘겨야 할 문제가 내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 뜻을 십자가에 넘겨 죽이라는 겁니다. 매 순간 순간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겁니다.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굴복시키며 살아야 합니다.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고전 15:31) 

  우리가 이렇게 날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선 피나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기적을 위해 겟세마네에서와 같은 기도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오직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핏방울 같은 땀방울을 흘리셨습니다. 
(마26:39)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 없이 자신을 부인(否認)하거나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베드로가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부인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그는 잠자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 내 뜻을 포기하는 게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처럼 십자가를 지기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질 수 없습니다. 기도로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데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4. 십자가신앙은 고난 뒤에 오는 영원하고 영광스런 부활(復活)을 바라볼 때 생깁니다. 

  십자가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는 고난입니다. 고난 뒤에 오는 영광스런 부활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십자가는 고난이 아니라 기쁨이며, 영광입니다. 
(고후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롬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苦難)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십자가는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담을 그릇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상급도 없고 면류관도 없습니다. 'No cross, No crown!' 다같이 '십자가가 없으면 면류관도 없다'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영광스러운 면류관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 25, 26절을 보십시오.   
(마 1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天下)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육신을 위하여 사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을 주를 위해 버리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고난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빌 2: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빌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빌 2: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결론)

  십자가를 지는 일은 예수님과 함께 가는 영광(榮光)스러운 행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한 행진입니다. 우리의 친구가 되어 내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스펄전이 말하기를 '주님께서는 외롭고 삭막한 길을 가리키시면서 '너희들은 가거라'고 하지 않으시며 오히려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을 볼 때 가슴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걷고, 예수와 함께 먹고, 예수와 함께 쉬는 것, 예수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주 예수와 함께" 날마다 갈보리 십자가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코 외롭지 않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신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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