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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3단계(③내세,來世 신앙) (마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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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신만교 목사

(마 17: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마 17: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草幕)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마 17:6)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마 17:7)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 17:9) 저희가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명하여 가라사대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기 전에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지난 3주에 걸쳐서 신앙의 3단계에 대하여 말씀을 증거(證據)하였습니다.  그 중 첫 번째가 구주(救主)신앙입니다. 구주(救主)신앙이란 예수를 '나의 구주(救主),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구원받는 신앙입니다.
  두 번째가 십자가 신앙입니다. 십자가 신앙은 예수 십자가(十字架)의 도(道)를 깨닫고 주님을 따라가되 철저히 자기를 부인(否認)하는 삶이요,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를 좇는 삶을 가리킵니다. 오늘은 마지막 세 번째 단계의 신앙으로 내세(來世)신앙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本文)에 보면 베드로가 신앙고백(信仰告白)을 한 후 엿새가 지난 어느 날, 예수님께서 12제자 중,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놀라운 변화와 신비한 광경을 체험한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산을 변화산(變化山)이라고 합니다.
  사실 제자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예수님이 구주(救主)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왜 고난(苦難)을 당하신다고 하시는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전능(全能)하신 분인데 그런 분이 죽임을 당하신다고 하시다니...
  이런 모순과 혼란에 빠져있는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변화산으로 초대를 한 겁니다. 이 변화산의 신비한 영적 체험을 통해서 모든 의문(疑問)에 대한 답을 주시고자 하신 겁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제자들에게 내세 신앙을 가르치셨습니다. 여기에 신앙적인 모순과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 모두가 내세신앙으로 무장하기를 바라십니다. 내세 신앙이란 무엇인가?
 
1. 내세(來世)신앙은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天國)이 있음을 확신하는 신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셔서 이 세상에서는 상상 할 수 없는 신비(神秘)한 체험을 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갑자기 변형(變形)이 되신 겁니다. 얼굴이 해 같이 빛났고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로만 듣고, 성경(聖經)에서만 들었던 구약의 위대한 선지자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주님과 대화(對話)하는 광경도 보았습니다. 

  이 광경이 무엇을 뜻하는 겁니까? 이것이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天國)의 모습입니다. 베드로가 이 광경을 보고 한마디로 뿅 갔습니다. 얼마나 신비롭고 황홀하였으면 뭐라고 말을 하였습니까? 본문 4절을 보십시오.
  (마 17:4) 베드로가 예수께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거기다가 천막 치고 그냥 거기서 살자는 겁니다. 여러분 맛뵈기라는 것 있지요. 예수님께서 천국을 맛뵈기로 보여주신 겁니다. 마그넷 지하에 가면 큰 매장이 있는데 거기 가면 맛뵈기로 먹으라는 것이 많아요. 어떤 사람은 출출할 때 그거 한바퀴 돌며, 다 먹고 나면 배부르대요.

  베드로가 천국을 맛뵈기로만 보고 뿅- 간 겁니다. 너무너무 황홀하고 행복했던 겁니다. 천국을 맛뵈기만 보아도 이렇게 좋은데 진짜 천국에 가면 얼마나 더 좋겠어요. 이런 천국이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豫備)되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주신앙에 이어 십자가신앙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이 근심하니까 내세신앙을 가르쳐주시면서 천국의 광경을 보여주시는 겁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고 곧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이 근심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위로(慰勞)하며 소망을 주셨습니까? 
(요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요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所望)을 갖게 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도 힘들고 고달플 때 천국의 소망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내세신앙입니다. 그런데 현대교인들은 현세적 신앙에 치우쳐 점점 내세신앙이 약해집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내세신앙을 가지고 살 것을 가르치십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예비해 놓으신 천국(天國)은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사람들이 그 아름다운 천국을 단 1분 동안만 구경을 해도 이 세상에 다시 돌아올 사람이 없을 거라는 겁니다.

  솔직히 우리가 이런 천국(天國)에 대하여 잘 모르니까 세상에서 아웅다웅하며 사는 겁니다. 다이아몬드를 가진 자는 조약돌을 가지고 다투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는 10평 집에서 사느냐 50평 집에서 사느냐에 굉장히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저 하늘에 올라가서 내려다보세요. 땅에 있는 것, 아무것도 아니예요. 아무리 큰집, 큰 빌딩, 63빌딩도 성냥갑 같이 보이고 한줌의 모래처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천국의 시각에서 이 세상 것들을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 가지고 일희일비(一喜一悲)할 일이 아니고 더욱이 죽고 살 일처럼 여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누가 제일 큰집에 살까요? 대통령이겠지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집에 청와대일 꺼예요. 그리고 성북동 같은데 있는 재벌들의 저택(邸宅) 엄청 좋지요. 대통령들이 외국 여행 중 묵는 고급호텔도 엄청 좋고요. 비용도 하루에 수 천만 원이 넘는 대요. 강남(江南)에 수십 억 나가는 고급 아파트도 많대요. 우리 보통사람들은 평생 이런데서 단 하룻밤도 잠을 잘 수 없을 거예요. 누가 우리를 그런데서 잠을 자게 하겠어요. 어림도 없지요. 

  그러나 여러분 낙심(落心)하지 마세요.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까짓 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집에 우리의 거처(居處)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얼마나 좋겠어요. 대통령의 집만 못하겠어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님이 사시는 그 천국에 우리도 같이 살게 하신다는 겁니다.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나는 이것을 생각하면 너무 기뻐요. 저도 이 세상에는 변변한 집 한 칸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집에 있는 나의 거처(居處)를 바라보고 소망하며 삽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하지 않아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영원토록 누릴 영화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소망을 주시는 겁니다. 제자들도 집 한 칸 변변히 없습니다. 그러나 이 소망을 가지라는 겁니다. 우리는 내세 신앙으로 무장해야합니다. 그래야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2. 내세(來世)신앙은 오직 예수만이 천국(天國)가는 길(道)이 되심을 확신하는 겁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산에서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본 겁니다. 어떻게 그런 모습으로 예수님이 변형(變形)이 될 수 있었을까 꿈만 같았습니다. 2절을 보세요. 
(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예수님의 얼굴에서 광채(光彩)가 나고, 예수님이 입으셨던 옷에서 빛이 나는데 어찌나 화려하고 영광스러운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막 9: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이것이 본래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본체(本體)의 영광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의 영광입니다. 예수가 누구입니까?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태초(太初)부터 말씀으로 계시며,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주(主)께서 사람의 모양으로, 비천한 죄인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여 오신 겁니다.
(빌 2:6,7)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本體)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 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겁니다. 왕(王)의 특명(特命)을 받아 지방을  도는 암행어사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초라한 차림을 합니다. 그랬다고 얏 보았다 가는 큰코다칩니다. 예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막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제자들은 지금까지 그런 초라한 예수의 모습을 보아왔던 겁니다. 
(사 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런 예수가 이렇게 변형되시다니 놀라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변화산에서 예수가 과연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시는 겁니다. 예수님의 본체를 확실하게 증거 하는 겁니다. 누가 증거(證據)하였습니까? 
  먼저는 성부(聖父) 하나님의 증거(證據)입니다.
하나님의 증거야말로 이 세상에서의 그 어떤 증거보다 더 강력하고 권위가 있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 아들이라는 확실한 증거를 받았습니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이 하나님의 음성은 주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에도 들려주신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생자(獨生子)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구세주라는 것을 친히 증거 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는 자칭(自稱) 구세주라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증거를 받지 못한 사람은 다 가짜입니다. 이단(異端) 사이비(似而非)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속지 말아야합니다.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께서 증거 하신 예수만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예수를 증거(證據)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마 17:3)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왜 이들이 여기에 나타났습니까? 큰 뜻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의 율법(律法)과 예언자(預言者)들의 뒷받침 없이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래 전부터 구약의 율법과 예언 속에서 준비되어온 분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겁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율법과 예언의 대표자들입니다. 이들이 증거 하는 것은 예수가 구약(舊約)의 율법과 예언자들이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메시아라는 겁니다. 
  또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舊約)의 대표요, 지금 예수님이 데리고 올라온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신약(新約)의 대표입니다. 그러므로 신구약 성도가 다 모여 있는 가운데 오직 예수가 그 중심(中心)에 서 계신 것입니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마 17: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예수 외에는 구원(救援)이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공자(孔子)도 훌륭하고 맹자(孟子)도 훌륭합니다. 석가모니도, 소크라테스도 다 훌륭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구주(救主)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받은 일이 없습니다. 성경이, 어느 선지자가 그들을 메시아로 증거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받으시고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으신 예수만이 천국의 길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 군용기 사고가 나서 조종사(操縱士)가 동남 아시아 밀림 속으로 낙하산을 타고 떨어졌습니다. 비행기 사고가 난 것을 목격한 부근 마을 사람이 밀림을 헤치고 조종사를 구하러 왔습니다. 두려움에 쌓인 조종사가 이 마을사람을 보자 다급하게 '길이 어디입니까? 내가 어디로 나가야합니까?' 라고 애원하며 물었습니다. 그러자 구조원은 대답했습니다. '길은 없습니다. 내가 길이요, 나를 따라오시오.' 조종사는 그 사람의 말을 믿고 구원을 받았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요14: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천국 가는 길을 닦으시려고 십자가에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시는 겁니다. 죄 때문에 벌어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구원의 다리를 놓으신 겁니다. 고속도로 하나를 건설하는데 엄청난 예산이 들어갑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다리공사에는 십자가의 피 값이 필요했던 겁니다. 
  여러분의 구원과 영생을 위하여 오직 예수만을 신뢰(信賴)하는 믿음을 가지시고 구원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3. 내세(來世)신앙은 산상(山上)의 체험 후에 산하(山下)로 내려가서 빛 된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산상(山上)의 체험과 변화산의 황홀한 광경이 너무 좋아서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기다가 초막(草幕)을 짓고 삽시다.'(마 17:4)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그 간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산하(山下) 동네로 내려왔습니다. 산 아래서는 9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 때문에 곤경(困境)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귀신이 나가지를 않는 겁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보시고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마 17:17)하시며 그 벙어리 귀신들린 아이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렇듯이 산 아래에는 힘들고 골치 아픈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맛본 3제자들이 내려오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복음으로 세상을 구원하는 일을 해야합니다. 오늘의 교회 안에는 세 종류의 교인이 있습니다. 첫 번째 교인은 산상(山上), 즉 변화산의 체험이 없이 산하(山下)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들에게서는 아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산아래 9제자들은 산상의 체험이 없이 산하에서 사단에게 조롱받고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교인들이 많습니다.
 
두 번째 교인은 산상에서 변화를 체험하고 변화산에 머물러 있고자하는 교인입니다. 베드로는 변화의 체험을 하고 산 위에다가 초막을 짓고 머물고자 하였습니다. 은혜는 받았는데 세상 속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는 못하는 신자입니다. 늘 기도원에서 살고 예배당 안에만 머물러 있고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으로 사회적응을 잘 못합니다. 이런 사람 중의 이단(異端), 사이비가 생기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세 번째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변화산의 은혜를 체험하고 산아래, 세상으로 가서 세상 사람들을 섬기고 마귀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우리는 먼저 변화산의 체험을 있어야합니다. 내세신앙의 확신이 필요합니다. 천국을 맛보아야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산 위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예배당 안에만 있으면 안됩니다. 세상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 받은 은혜, 그 받은 능력(能力), 그 받은 신령한 체험을 가지고 내 가정에서, 내 일터에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며 빛 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그래서 세상을 변화시켜야합니다. 세상에서 죄악과 싸워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들도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항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그 뜻에 잘 따라 행하여 진정한 변화의 체험을 늘 하실 수 있길 바랍니다. 이것이 사랑의 실천입니다. 
 
결론)

  우리는 전인적이며, 인격적인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어느 한곳에 치우치면 안됩니다. 우리의 머리는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고 사모해야합니다. 이것이 변화산의 은혜(恩惠)입니다. 은혜 중의 은혜는 천국과 영생을 확신하는 겁니다. 이것이 내세(來世)신앙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셔야합니다. 우리는 가슴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이 예수님이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겁니다. 이것이 십자가(十字架)사건입니다. 그리고는 산하(山下)로 내려가야 합니다. 우리의 두발은 땅에 닿아 있고 우리의 손발은 세상을 섬겨야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구원해야합니다. 주님은 이 시간 예배 후에 여러분을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요 20: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平康)이 있을 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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