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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슨 영광입니까? (삼상 4:12-22, 갈 6:6-10, 마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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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오동 목사

1.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의 현대사를 보아도 이 말이 일면의 진리가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위 “3.15 부정선거”로 대변되는 자유당 정권이 온갖 악랄한 방법을 동원하면서 까지 정권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쳤지만 4.19학생 혁명으로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불의한 정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수많은 긴급조치를 양산하고, 헌법을 뜯어고치면서까지 종신 대통령을 꿈꾸던 박정희 정권은 어처구니없게도 내부의 권력 투쟁이라는 자중지란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역사의 물줄기를 하나님께서 바꾸셨습니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소위 “서울의 봄”을 짓밟고 들어섰던 전두환 정권은 산천초목도 떨 만큼 절대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가장 정의롭지 못한 정권이었으면서도 그들은 “사회정의 구현”이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민주화를 고대하던 많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절망과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렇던 그들이 끝내는 쇠고랑을 차고 법정에 서야만 하게 된 것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역사의 변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오늘 사무엘상 4장의 내용에서도 역시 역사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 불신앙과 무법천지의 암흑시대는 끝나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마치 겨우 남은 토끼 꼬리같이 엘리라는 인물을 통하여 사사시대의 암흑상이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잇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엘리는 나이가 98세였습니다. 거기다 눈이 어두웠습니다. 몸이 비둔하여 움직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육체적인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영의 눈이 어두워서 신령한 일을 분별하는데 매우 둔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으나 거기에 민첩하게 대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대신 그와 그 자녀들은 부정하고 불신앙적인 방법으로 육신을 살찌우고 있었습니다. 최고 지도층이 이러하였으니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암흑이었던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잇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채찍으로 사용한 민족이 블레셋이었습니다. 원래 믿음에서 떠난 이스라엘이 이제는 미신적인 신앙에 빠지게까지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하려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터에 가지고 간 사건이었습니다. 결국 그 신성한 하나님의 법궤를 적들에게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한 시대를 마감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전쟁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엘리에게 근 100여리를 달려온 도망병이 전한 소식은 청천벽력이었습니다. 너무도 충격적인 3가지 소식을 전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군인 3만 명이 전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면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하게 됩니다. 고려는 불교로 개국했으나 나중에 불교가 패망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조선조는 유교의 가르침 위에 나를 세웠으나 나중에 유교가 망국을 재촉하였습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가 바로서지 못하면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채찍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둘째 충격적인 소식은 엘리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같은 날 전사하였다는 소식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앞산에 묻지만 아들이 먼저 죽으면 부모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엘리에게 얼마나 엄청난 불행입니까? 제사장이면서도 아들에게 신앙을 바로 물려주지 못한 결과 이런 비극이 오고 말았습니다.

셋째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하나님의 궤를 적군에게 빼앗겼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엘리는 너무 놀라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불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까지 되었으니 하나님의 이름, 그 영광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보다 더 수치스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 이것은 단지 한 가정의 운명을 말해 주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한 역사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 보면 “살아계신 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섭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대 신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안일한 신앙상태에 정신 번쩍 차리게 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영적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 요리분답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여러분의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2. 엘리이 자부 비느하스의 아내가 아들을 낳다가 충격 가운데 목숨을 거두면서 아들 이름을 남겼습니다. 그것이 “이가봇”입니다. 이가봇이란 말은 “영광이 이스라엘에게서 떠났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옳은 말이겠습니까? 사고무친이 될 아들을 생각하면서 그런 절망적인 말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이 말은 잘못되었습니다.

먼저 도대체 여기서 말하는 영광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아버지가 제사장이라는 이런 배경을 내세워 특권을 행사하며 소위 그 특권이 주는 영광을 누리면서 저희들 마음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시아버지가 죽고 시아주버니와 남편이 죽는 것을 보고 이제 자기 가문의 영광이 사라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새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박경리씨의 “토지”에서 몰락해 가는 양반의 모습과도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만일 그 영광을 이런 세속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이 자부의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한님이 보실 때 이런 영광은 사라져야할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래위에 세워진 건축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헛된 영광만을 추구하던 그들에게서 그 영광을 빼앗으셨습니다.

우리 신앙 가운데 이런 세속적인 욕심이 자리 잡고 있다면 이것은 이가봇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들이 이런 세속적인 영광을 목표로 한다면 이런 교회도, 이런 종교도 이가봇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현재 최첨단 기기로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의 핵심부품인 실리콘 칩의 소재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래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세속 문화는 거의 컴퓨터에 의하여 조종되어지고 잇습니다. 그리고 그 주된 내용은 무신사상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문화야말로 말 그대로 모래위에 세워졌다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런 무신적인 문화는 결국 하나님의 심판 대상입니다. 그리고 무너질 때 그 무너짐이 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없이 세속 물결에 휩쓸릴 것이 아니라 힘써 여호와를 찾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 땅을 지키는 파수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사무엘서 본문에서 마치 캄캄한 밤중에 한줄기 빛을 보는 듯한 하나님의 은총의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엘리 일가족이 다 망하는 가운데 이가봇이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씨를 남겨 주셨습니다. 상수리나무를 다 베었는데도 거기에 새싹이 돋아났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총의 표지입니다. 그리고 결국 이스라엘을 살려내는 힘은 이 하나님의 은총에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은혜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있을 때는 더없이 절망적인 현실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당시 형편은 그 아들을 지킬 수 없어서 나일강에 떠내려 보낼 수밖에 없는 그런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이 다름 아니라 그 바다에서 건져낸 구사일생의 인물 모세였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에 의한 것입니다.

사무엘서에 보면 온 이스라엘이 죄악에 빠져있고, 엘리의 자녀들이 성전을 중심으로 그 막강한 불의의 권력을 휘두를 때 사무엘은 숨도 크게 쉬지 못하고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황량한 광야 같은 세상에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그 사무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새롭게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꺼지 아니하시는 이런 긍휼로 그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이런 일이 가장 극대화하여 나타난 것이 우리 주님의 탄생이었습니다. 더벅머리 총각 요셉, 아직 제대로 철들지 못한 동정녀 마리아, 정말 겨자씨만도 못한 존재들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들과 그 가정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할 구주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요3;16에는 이 사실을 놓고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구원의 근거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큰 것을 선호합니다. 집도 큰 것, 차도 큰 것, 냉장고나 텔레비전도 큰 것을 선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큰 것을 통해서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겨자씨”를 예로 드셨습니다. 여러분 속에 싹트는 겨자씨 같은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은 엄청난 일을 계획하십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쩌면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나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내 속의 믿음을 보시고 오히려 놀라운 일을 이루신다는 이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 삶에서 이가봇을 추방하는 일입니다.

(1) 먼저 우리 자녀들을 세속적인 성공의 희생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의 자녀가 되게 해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한들 우리 자녀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떠났다고 하면 그것은 이가봇 이상일 수 없습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친 아들에게 유모역할을 하면서도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그가 이스라엘 해방의 위업을 성취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수능 고사를 통해서 나타난 우리 교육의 문제점을 역력히 보았습니다. 성공과 출세위주의 이가봇 교육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아무 거리낌 없이 저지르게 되는 가를 보았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해 나갈 때 이 땅에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절대 목표로 삼는 그런 교육을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시키시기 바랍니다.

(2) 이제 우리는 이가봇 문명을 거절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바벨탑을 무너뜨리셨습니까? 그들이 인간의 지식과 기술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 인류가 가진 지식과 기술을 다 동원하여 쌓은 탑도 하나님이 한번 휘저으실 때 바람 앞에 겨와 같았습니다. 고학이 발달하면서 이간은 하나님을 부정합니다. 현대의 3가지 우상이 돈과 쾌락과 과학기술이라고 합니다. 이제 인간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노아 때 홍수가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pt상 풍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쉽게 물들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런 반신앙적인 일들이 예사롭게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의 듯에서 멀리 떠나고 있습니다. 탕자 문명에 동화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정신 차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증인으로, 사명자로 세우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3) 우리 소유가 이가봇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영광을 많이 누린 왕이 솔로몬입니다. 그는 무엇이든지 소원없이 소유해 본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만년에 죽음을 앞두었다면 “내가 가질 것 다 가져 보았고, 누릴 것 다 누려 보았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만년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남긴 말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무슨 영광을 추구하십니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어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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