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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변화산의 체험(마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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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영태 목사(2005. 02. 06)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올랐습니다. 예수님은 산을 즐겨 찾으신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산 자체를 좋아 하셨다기 보다 조용한곳을 찾다보니 산을 많이 찾으신 것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산은 예수님이 기도하는 장소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세상의 혼잡하고 여러 가지 오염된 그러한 분위기에서 탈출하는 것도 됩니다. 다른 방해를 받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많이 만날 수 있는 곳, 그래서 40일 금식하며 시험을 이길 때도 산이요. 때때로 기도하러 가실 때도 산이요.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도 높은 산은 아니지만 한적한 산이 였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들 세 사람을 데리고 산으로 갑니다.

성경에는 산과 관련된 사건들이 많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든 것도 산이요.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친 곳도 산이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곳도 산이요. 성전이 들어 선 곳도 시온 산입니다. 이밖에도 산에서 일어난 사건은 많습니다. 그것의 의미는 산은 세상처럼 오염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입니다. 인간의 모든 죄로 더러워진 인간 세상에 임재하실 수 없는 분입니다. 그래서 산으로 오게 하시고 산에서 만나주시고 산에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려면 산에 올라야 합니다. 성전 산. 믿음의산. 구별된 마음의 산. 그 산에 올라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엊그제 프래미스랜드에서 심야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은혜가 충만 했습니다. 모든 세상의 것은 다 뒤로 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된 장소입니다. 집회를 마치고 그곳에 머무르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며 생각하니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합니다. 사람소리 하나도 안 들립니다. 자동차 소리도 안 들립니다. 텔레비젼 소리도 안 들립니다. 고요합니다. 그곳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과 마주 앉을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래서 산으로 가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 앞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이어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기뻐하십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아들입니다. 이 대답 후에 주님의 설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아들이 와서 해야 할일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 일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당황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16:24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죽으라는 이야기쟎아요. 너희들이 나를 따라오려면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에 제자들이 기분 좋았으리라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저들이 심각해졌고 과연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하는 고민도 생겼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러한 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 산에서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천국을 경험합니다. 주의 영광을 봅니다. 그들의 의심과 불신이 확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 고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 이 영광을 위한 것이었구나. 알았습니다. 깨달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외칩니다. 초막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삽시다. 하고요. 얼마나 좋았으면 초막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삽시다. 하는 소리가 나왔을까요.

천국은 우리 상상을 초월합니다. 초막이 무엇입니까? 풀을 뜯어다 만든 집입니다. 한마디로 하면 움막입니다. 겨우 햇빛을 가리거나 비를 피하기 위하여 지은 집입니다. 그런데 그런 집이라도 좋으니 여기서 살자는 것입니다. 순교하는 사람들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아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이런 축복과 경험이 여러분에게도 있기를 바랍니다. 이들이 산에서 깨달은 체험이 무엇입니까?

1절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먼저 따로 서야 한다는 깨달음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다 해도 문장에 하나도 지장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에서는 그사이에다가 단어를 하나 더 삽입했습니다. 그 단어가 따로 라는 말입니다. 아무나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받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제자가 많지만 다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택한 자만이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은혜 받는 자리에 서기를 바랍니다. 축복받는 자리에 서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주님의신임을 받아야합니다. 주님의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후에도 천국에 가는 자는 아무나 가는 것이 아닙니다. 따로 구별된 자들만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별되어지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보세요. 엘리야도 변화되었고 모세도 변화 되었고 예수님도 변화 되었습니다. 변화되지 않은 것은 세 제자뿐입니다. 천국은 변화되지 않은 이 몸으로는 안 됩니다. 천국엔 변화 된 사람만이 가는 곳입니다. 고후 5:17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라 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새것이 되었도다. 했습니다. 새것입니다. 옛것이 아닙니다. 새것이 되어야 합니다. 옛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제자들이 그것을 체험 한 것입니다. 2절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천국백성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후에 이처럼 변화 될 것을 믿습니다. 그러려면 지금 우리는 새것이 되어야 합니다.

생쥐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쥐는 고양이가 너무 무서워 신에게 빌었습니다. 나도 고양이가 되게 해 주세요. 신은 생쥐를 측은히 여겨 고양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가 되고나니 개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기도합니다. 개로 만들어 주세요. 그래서 개가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호랑이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몸은 변했는데 마음은 여전히 생쥐입니다. 신은 너는 생쥐의 마음이니 생쥐 밖에 될 것이 없다 하고 다시 생쥐로 만들었습니다.

여러분의 몸은 지금 하나님의 집에 와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습니까? 몸과 마음이 따로 놀지는 않습니까? 입술로는 찬송을 부릅니다. 입술로는 기도를 합니다. 입술로는 믿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불안해하고 근심하며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이것은 물건으로 하면 불량품입니다. 모양은 좋은데 질이 안 좋은 것이지요. 불량품 믿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순도 99.5%가 아니라 100%믿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경험은 주님의 말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누구 말을 듣고 사느냐? 주님의 말을 듣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 기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이 없어 기근입니다. 정치가 잘못되어 가는 것이 먹을 것이 없어서입니까? 이 사회가 삭막해져 가는 것이 먹을 것이 없어서 입니까? 가정이 파탄되는 것이 먹을 것이 없어서입니까? 이 나라의 기근은 하나님의 말씀 이 없어서입니다. 내 마음에 평화가 왜 깨어져 나갔습니까? 왜 기쁨이 사라지고 감사가 사라졌습니까? 말씀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의말씀을 듣고 사는 것이 축복이요 행복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삶 속에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경험은 주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주를 바라볼 때에 우리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모든 사람이 주 만 바라보고 사는 삶에서 저들의운명이 달라졌습니다. 저주 받은 삶에서 축복의 삶으로 불행한 삶에서 행복한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세가 다윗이 다 주님을 바라보는 삶에서 바뀐 사람들입니다. 나는 오늘 여러분의 삶도 그렇게 바뀌기를 바랍니다.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아기가 태어나서 최초의 몇 분 동안에 40여 가지의 신체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고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소망 없던 세상이 하나님의 일터로 바뀌었습니다. 감사가 없던 입에서 찬송과 기쁨이 터져 나옵니다. 주님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경험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잡기위해 빙글빙글 돕니다. 옆에서 보다 못한 늙은 개가 충고를 합니다. 이 놈아 너는 행복이 꼬리에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것은 끝없는 불행한 공전이다 그러지 말고 앞을 향해 뛰라 그러면 꼬리는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무엇을 보고 뛰겠습니까?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평안이 기쁨이 행복이 따라올 것입니다. 베드로에 대한 이야기 하나 하고 마치겠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결혼한 사람은 베드로뿐입니다. 예수님이 좋아 쫓아 다녔는데 가이사라 빌립보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베드로가 책망을 듣지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고요. 우쭐 했다가 풀이 죽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을 가르치지요.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 그런데 베드로가 가는귀가 먹어서 그 말을 들을 때 “를” 자를 놓쳤어요.

그러니까 말이 어떻게 되지요 자기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가 되지요. 그래서 부인하고 열심히 주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부인하고 따르려니 신경 써지는 것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그러다가 변화 산에 올라 왔어요. 놀라운 체험을 했어요. 거기에 주 만 바라보게 되었어요. 이때부터 베드로는 주 만 바라보고 살아야겠다하고 그 평생을 주님께 바쳤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천국이 여러분의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 되어 살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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