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라랏산 (창 8:1~5)

  • 잡초 잡초
  • 792
  • 0

첨부 1


- 설교 : 고신일 목사 
 
1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2  깊음의 샘과 하늘의 창이 막히고 하늘에서 비가 그치매
3  물이 땅에서 물러가고 점점 물러가서 일백 오십일 후에 감하고
4  칠월 곧 그 달 십칠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으며
5  물이 점점 감하여 시월 곧 그달 일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더라
  (창세기 8장 1~5절) 

<목회기도>

선과 악을 구별하여 보시는 하나님!
죄 많은 세상에 살던 우리들이 모여 예배드립니다.
명절이라고, 휴일이라고… 고향을 찾고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참으로 가야 할 고향을 모르고, 참으로 해야할 천국길 가는 여행을 외면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시는 하나님,
오늘 모인 우리들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원합니다.
오늘 모인 우리들을 복음 전하는 도구로 쓰시기 원합니다.
하나님, 오늘 드리는 예배를 통해 경건을 회복케 하시고,
영육간에 병든 부분이 치료받는 체험의 기쁨을 누리게 하시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게 하시옵소서.
하나님, 기둥교회 성도들 중에 사업의 어려움으로 한 숨 쉬는 이들이 있습니다.
회수해야 할 것, 막아야 할 것 때문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젊음과 인생을 걸었던 직장에서 나와 하늘만 쳐다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학생들이, 부모님들의 사랑과 직장을 염려하며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학비와 용돈이 끊어질까 염려합니다.
저들의 염려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하나님, 연약한 목사의 성도들을 위한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날 군대에,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고
기둥교회에 속한 저들 어느 곳에 있든지 평안함으로 돌보아 주시옵소서.
병상의 환자들을 긍휼히 여기셔서
저들이 회복받은 기쁨으로 찬양하며 간증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귀한 시간 성령께서 역사하여 주실 줄로 믿고
존귀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여러분께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와
놀라운 평안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난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부활절 전 40일, 주일을 뺀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절 기간에는 주님이 당하신 고난을 기억하며 경건하며 엄숙하게 지냅니다.
우리 기둥교회 꽃꽂이 위원들은 교회 절기에 맞추어 꽃장식을 잘 합니다.
그래서 사순절의 상징색이며
권위와 희생과 헌신의 색인 보라색으로 꽃장식을 했습니다.
강단의 꽃장식을 보면서도 은혜 받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와 앉아 있는 것만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 부르는 찬송, 드리는 기도, 듣는 말씀, 우리의 예배 전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 받으시고, 우리는 은혜의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설교는 제가 하지만 말씀 중에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옆의 분과 "복된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날이 조금 춥긴 하지만 옆의 분과 "산뜻해 보이십니다"라고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부터 <산>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에덴동산에 대해 말씀 전했고,
오늘은 아라랏산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아라랏산에 대한 내용은
방주가 "머물렀다"는 것 외에는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아를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다가 아라랏산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 여호와께서 보시고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했을 때(창6:1)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가득하게 참) 했고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습니다(창6:5).
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악을 하나님께서 보셨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6:5)
"The LORD saw how great man's wickedness on the earth had become,
  and that every inclination of the thoughts of his heart was only evil all the time."(NIV)
 
그러나 하나님은 악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창세기 7장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창7:1)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악만 보시고, 악만 계산하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단순히 악만 행치 않고 얌체처럼 살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의로움도 함께 보시는 분이십니다.
 
- 의로움은 적극적인 선(善)을 말합니다.
의로움은 고민과 땀흘림, 노력과 희생, 힘쓰고 애쓰는 삶을 통해 얻어진 결과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의로움을 보시는 분입니다.
노아의 때에 사람들은 악하게 살고 있었고 죄를 오히려 즐기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 속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한탄하시기도 하셨습니다.(창6:6)
 
●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노아]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악하게만 살던 때에도… 하나님의 눈에 띄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 [노아]가 있었습니다.
 
>> 노아는 의인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창6:9)
- 의인(righteous man)이라는 말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의롭고 사려 깊은 인격의 소유자라는 뜻입니다.
- 당세에 완전한 자(blameless among the people of his time)라는 뜻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책망 받을 것이 없는 나무랄 것이 없는
도덕적인 성실에서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람 앞에, 부부, 부모자식, 형제… 이웃 간에
탓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창5:24)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노아도 "하나님과 동행"(창6:9)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악을 행하고 악한 세상을 따라 갔지만
노아는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런 노아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멸하고자 하셨을 때도 빼내고 싶은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이상해져도, 멸망받을 수밖에 없게 된 세상에서라도
그중에 빼낼 만한 사람, 구별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희망이 있는 것 아닙니까?
 
인간 역사(史)의 흥망을 살펴보면 역사 속 흥망의 주인공이 된 사람들이
<의인이었는가? 악인이었는가?>에 따라 개인과 민족, 나라의 운명이 바뀌어졌습니다.
한 개인, 민족, 나라가 흥하고 망하는 요인을 살펴보면 모두 죄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조직과 단체 민족과 나라를 평가할 때
외적이고 물리적인 조건에 따라 결론을 내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수와 크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 조직과 단체, 그 민족과 나라 속에 속한 사람들이
<얼마나 바르게, 깨끗하게 사는가? 그 속에 의인이 얼마나 있는가?>하는 것이
그 조직, 단체, 민족, 나라의 저력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대다수 사람들이 어떻게 살던지…
예수 믿는 우리들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인정받고,
빛과 소금되어 기둥처럼 버티며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그런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노아처럼 홍수 같은 심판의 때에 빼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십니다.
 
신앙은 취미가 아닙니다. 여가 선용이 아닙니다.
지금도 신앙 때문에 직업을 바꾸고, 직장을 옮기고, 사는 곳을 옮기고,
인생 설계를 바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인생과 생명…을 걸지 않은 신앙은 어쩌면 온전한 신앙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기 때문입니다.
 
●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배를 지었습니다.
 
우리는 지난해 연말에 [남아시아에서 있었던 해일 피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의 희생자들이 아직도 실종된 상태로 확인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때도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살았습니다.
이런 때 우리는 노아의 때를 생각해야 합니다.
노아의 때에도 지금 우리처럼 보통으로, 일상적으로 살았습니다.
그때도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했습니다.(마24:38,눅17:27)
 
바로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120년 뒤에 일어날 홍수에 대해
노아에게 일기 예보를 주셨습니다(창6:3,17). 그리고 배를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방주의 제도는(창6:15)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었습니다.
<규빗>은 당시 성인 남자가 팔을 편 상태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하는 것으로
당시 사람들의 신장을 고려할 때 45센티미터가 될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노아가 지었던 방주의 크기는 길이 135미터, 폭 24미터, 높이 14미터가 되며
규빗의 길이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사람마다 다소 오차가 있습니다.
이것의  길이는 축구장보다 좀더 길고,
폭은 축구장의 절반 가량(농구장 20개 합친 크기),
높이는 건물 3층 정도 되는 배수량 2만톤의 거대한 배입니다.
이 면적이면 현재 생존하는 생물체(포유류, 조류 등)
17,600여종의 암수 한 쌍씩, 즉 35,200마리의 동물을 실어도
약 1/3정도만 차지하는 큰배입니다.
그러므로 방주는 동물들과 노아의 가족을 태우고 항해하기에 충분한 크기였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실제적으로 가능한 것인지 한국창조과학회에서는
해군사관학교 연구소에 "노아방주의 안정성"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용역 연구 형태로 의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해군사관학교 연구소에서는 방주가 풍랑에서 안정한지,
전복되었을 때 극복하는 능력, 방주가 이겨낼 수 있는 최고 파도의 높이 등을
최첨단 연구기자재와 컴퓨터 계산방식을 사용하여 밝혀냈습니다. 
연구결과 노아방주는 40미터가 넘는 파도에서도 안정하며,
함께 비교 연구한 10여종의 다른 선박형태 (구축함 같은 군함형태 포함)에 비하여
가장 안정된 항해능력을 갖추었다고 결론 내린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 기록된 파도의 최고 높이가 30미터 내외인 점을 고려한다면
방주는 높은 파도에서도 사람과 화물을 싣고
안정된 항해를 하였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노아는 이런 어마어마한 배를 480살에 짓기 시작해서
600살이 되던 해에 완성했습니다. 배를 짓는데 120년 걸렸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에이, 무슨 소리…, 어떻게… 그렇게… 오래… 살 수 있나?'라고
의문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말을 하면 '무식하다'는 소리 듣습니다.
이미 과학자들에 의해 대홍수 이전에 그렇게 오래 살았음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성경에 나오는 장수에 대해 논쟁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불신자들이나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정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은 서점에 가면
성경신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A Scientific Approach to Biblical  Mysteries)에 대한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은 보고 믿는 것이지만(Seeing is Believing)
신앙은 믿고 보는 것입니다(Believing is Seeing).(히11:1)
 
● 노아는 끝까지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방주를 지으라는 명(命)은 가장인 노아가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아의 온 가족이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배를 짓는 노아에게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까요?
'장마가 진다고? 어디에 비가 올 징조가 보이는가?
손바닥만한 구름도 없는 것이 아닌가? 왜 그리 어리석은 짓을 하는가?'
집어치우라고 하였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놀려댔을 것이 뻔합니다.
멀쩡하게 살고 있는데…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들이 비웃으며 늙은 노아가 망령 났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모범적인 신앙 인물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노아를 아벨과 에녹 다음에 셋째로 말하기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히11:7)
고 하였습니다. 
 
● 함께 한 방주에 들어간 노아의 가정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노아와 같이 미련하다 싶을 정도로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심판하시고 또 구원하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고 용기 있고 믿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더 중요한 것은 노아의 아내, 노아의 자식 그리고 며느리까지
노아를 따라 방주를 지었고 함께 방주에 들어간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는 여러분의 가정은 아버지가, 가장이, 부모가 신뢰받으며
어른으로서의 권위가 유지되는 노아의 가정과 같은 집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 노아의 식구들이 홍수 때에 모두 구원받은 것처럼
여러분 가정의 모든 식구들이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족들은 아버지를, 가장을, 부모를 신뢰하고 존경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바뀌어도 가정에 어른은 존재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요, 어머니는 어머니인 것입니다.
가정에서 어른을 신뢰하고 존경하고 따르지 않으면…
그 집은… 바른 질서가 유지되지 못합니다.
그러기 위해 아버지들은, 가장들은 범사에 존경받게 해야 하고
부모들은, 가장들은 가족들을, 자녀들을 귀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가장이 신뢰를 받고 가장의 권위가 서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같이 벌어도, 잠시 일을 놓아 벌지 못해도,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가장의 권위가 서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님, 특별히 '가장' 그리고 온 가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시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적인 노력도 하지만 세상에서의 삶에도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급적 한 방주에서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출가해서, 결혼해서 나간 식구…, 학교, 직장 때문에 따로 사는 식구…
충분히 설명과 이해가 가능한 경우는 모르지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노아의 식구들처럼 한 방주에 올라야 합니다.
식구들이 가급적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가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온 가족이 같이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자녀들과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아이들이 조금만 크면 부모와 함께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귀찮아 합니다.
영화도, 노래도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온 식구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할아버지부터 아이들까지 한 책을 보고, 한 노래를 부르고,
함께 앉을 수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보세요. 온 가족의 구원은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창6:8)
노아의 가족처럼, 여러분의 온 가족이
모두 예수 믿고 구원받는 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 아라랏산은 '축복의 산'입니다.(창8:16~17)
 
노아가 480세에 배를 짓기 시작해서 600세에 완성해서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가서 바로 비가 왔으면 좋았을 텐데…
일주일 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노아의 식구들을 얼마나 조롱했겠습니까.
그런데 7일 뒤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40일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비가 내렸습니다.
세상이 다 물로 잠겼습니다. 150일 동안 세상이 물로 가득했습니다.
비가 그치고 물이 마르기까지 1년 10일이 걸렸습니다.
 
노아의 방주가 물에 떠다니다 <아라랏산>에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아라랏산은 성경에 나오는 산중에 가장 높은 산입니다.
우리나라 제주도에 있는 한라산의 높이가 1,950m, 백두산의 높이는 2,744m입니다.
그런데 아라랏산은 높이 5,165m로
현재는 터어키에 있으며 사철 눈으로 덮여 있습니다.
 
"너는 네 아내와 네 아들들과 네 자부들로 더불어 방주에서 나오고
너와 함께 한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육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 이끌어 내라 이것들이 땅에서 생육하고 땅에서 번성하리라"(창8:16~17)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범죄를 짓고 죄가 관영해지면서 하나님께서 물로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라랏산에서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리라"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아라랏산에서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아라랏산은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된 산이며 하나님께서 새롭게 복 주신 산입니다.
 
● 아라랏산은 '약속의 산'입니다.(창9:11~17)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침몰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하는 모든 생물 사이에
  영세까지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창9:11~13)
 
무지개가 뜨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 아라랏산은 '부끄러움을 당한 산'이기도 합니다.(창9:20~27)
이렇게 아라랏산은 홍수 뒤에 방주가 머물렀던 산이요,
축복의 산이요, 약속의 산입니다.
그런데 아라랏산은 선택받은 사람이 '부끄러움을 당한 산'이기도 합니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창9:20~21)
 
노아는 술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었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데 벌거벗고 누웠고, 실수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아닌 인간은 모두 실수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모세도, 다윗도, 솔로몬도, 바울도…
부끄러움과 실수가 있었습니다.
노아가 실수했던 때는 120년 동안 방주를 짓고, 방주에 타서 구원 받고,
축복받고, 약속받고 '다 되었다, 안심이다'라고 생각했을 그때 실수를 했습니다.
'다 되었다'고 판단될 때…,  '안심이다'라고 생각될 때… 그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합격, 졸업, 제대, 승진, 안정… 되었을 때 그때 더 조심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 했습니다.
절제할 수 없을 때 부끄러움을 당합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신 게 문제가 아니라 절제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성령의 열매(갈5:22) 중에 마지막이 "절제"입니다.
자기를 통제하는 것을 할 줄 모르면 망신당합니다.
여러분 범사에 절제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먹는 것, 마시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라랏산에 머물러 복을 받았고, 약속을 받았으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노아는 방주를 건축하고 가족들을 방주에 태웠고, 짐승까지 태웠습니다.
사람들이 방주에 타겠다고 왔다면 노아가 태우지 않았겠습니까.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노아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노아는 사람들의 편한 삶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어리석다 조롱하는 소리에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방주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노아는 방주에 올라 타 지루한 것 같지만 150일 동안…
1년이 넘게 방주안에서 생활하면서도 방주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 하면서 지루한 것 같고, 흔들리는 것 같고,
반복되는 것 같은 것에 실망하지 말고 방주에 사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낙심하지 말고, 방주에서 내리지 말고… 아라랏산에 머무는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십자가의 고난을 가르칩니다. 무덤의 캄캄함도 가르칩니다.
그러나 부활의 아침을 믿습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십자가 같은 고난 중인 분도 있습니다.
무덤 속의 캄캄함 같은 상황중에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의 아침을 믿고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행하면 하나님이 빼내십니다.
자기 욕심만 부리고, 자기 생각만 하지 말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의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농부가 소를 기르는데 그 소가 새끼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농부는 송아지가 태어난 것이 너무 너무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그는 송아지 새끼 두 마리를 낳고서 너무 감사한 나머지
당장 자기 부인에게로 달려가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송아지 새끼가 두 마리야. 하나는 주님의 것으로 하고 주님께 드리십시다."
그의 아내도 "아멘"으로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얼마 후에 송아지 새끼 한 마리가 비실비실 앓더니 죽었습니다.
죽은 송아지를 본 이 농부는 울상이 되어
방안에 있는 자기 부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큰일났어. 큰일났다고!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어.
  주님께 드릴 송아지가 죽었단 말이야."]
 
이것이 보통 우리들의 생각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2005년 [산에 오를 자]로 살기로 결심했으니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 한 데 두지 않고…
거짓 맹세치 않으면… 하나님께서 따로 빼내 주실 것을 믿고,
힘들고 어려워도 결국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믿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승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힘들고 어려운 유랑과 같은 방주속의 캄캄하고 어두운 곳에서 떠도는 것 같아도
아라랏산에 머물게 하시고 축복하시고 약속해 주실 하나님을 믿고
참고 견디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2월 13일 주일낮설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