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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만 섬기라 (출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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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서해원 목사

  지난 해 상영되었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The Passion of Christ)’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영화가 나왔을 때, 가장 큰 논쟁은 ‘과연 예수를 누가 죽였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을 누가 죽였습니까? 이 영화를 몇 번 본 저의 아들이 아주 진지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죽인 것이라고...’ 물론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그것이 정확합니다. 뇌성마비 시인이었던 송명희 자매가 고백했던 것처럼, 우리의 어두운 눈이 그를 미워했고, 우리의 캄캄한 마음이 그를 몰랐으며, 우리의 무지한 채찍질로 그를 내리쳤고, 우리의 악독한 혀가 그를 정죄했으며, 우리의 폭력의 손길이 그 몸 멍들게 때렸으며, 살인자의 본받아 우리는 그를 찔렀던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역사의 관점으로 돌아가 보면, 예수님을 죽은 것은 로마군인이었고, 그 배후에는 당시 기득권을 쥐고 있었던 바리새인들, 즉 유대인이었습니다. 왜 그들은 주님을 죽이려고 했을까요? 물론 내면적으로는 그들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주님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겠지만, 표면적으로는 그들의 사상을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을 모독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들이 관념으로는 하나님은 한 분뿐이라고 알았습니다. 상천하지에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 존재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죄목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입니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주님이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지금도 주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이 메시아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으로 믿습니다. 이것이 그들과 우리의 차이입니다. 그 외에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히 그들이 가진 철저한 하나님에 관한 신앙은 본받을 만합니다. 유일하신 하나님,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이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이 신앙의 근거가 구약성경에서 시작되었고, 그 핵심적인 내용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십계명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열 가지의 계명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 1계명과 2계명을 본문으로 함께 읽었습니다. 여기에서 가르치는 중심적인 내용은 3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여기 말씀에서 ‘나 외에’ 라는 말의 의미는 ‘내 면전에’ 또는 ‘나와 대립시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면전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것에도 절할 수 없다는 것이요, 세상에 하나님과 대립시킬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여기에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 말씀을 무엇으로, 무슨 의도로 주셨을까요?

  첫째, 명령으로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그 말에서 우리가 아는 것처럼 명령입니다. 여기 1, 2 계명도 명령으로 되어 있습니다. 문법적으로도 명령형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을 만들지 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모두 명령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엄하신 명령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명령의 말씀들은 대부분 사람을 통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여기 십계명은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명령보다도 이 명령이 중요하고, 거룩한 무게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적어도 3가지 형태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는 ‘교훈’입니다. 어떤 사건, 어떤 일을 보여줌으로서 스스로 깨닫고, 교훈을 받기 위한 말씀들입니다. 또 하나는 ‘권면’의 형태가 있습니다. 이것은 교훈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서 성경을 대하는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기 위함인 것을 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형태가 바로 ‘명령’입니다. 명령은 단순한 교훈이 아닙니다. 용기의 권면도 아닙니다.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명령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든지 하지 않든지 이것 밖에는 없습니다.

  ‘명령’이란 말은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우리 나라는 오래 동안 전쟁의 위험에서 살고 있기에 사람들의 의식과 생활에 군사적인 습관과 언어가 많이 배어있는 것을 봅니다. “D-day가 얼마 남지 않았다, FM대로 해라, 총대를 매겠다, 파이팅...” 이런 모든 말은 군대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D-day는 군사작전계획상 공격예정일의 약자입니다. ‘정석’의 의미를 갖는 ‘FM’ 역시 ‘야전 교법(Field Manual)’의 준말입니다. 책임을 진다는 의미의 총대를 맨다는 말도 ‘총대’에서 보는 것처럼 군대에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힘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파이팅(fighting)’도 군사용어입니다.
명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단체, 어느 기관, 어느 회사든지 상관의 명령, order가 떨어지면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명령입니다. 명령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즘 10. 26 사태를 다룬 영화가 상영되고 있습니다. 이 영화는 윗사람이 아니라 아래 사람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영문도 모르는 채 오직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다가 일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당시에 행동했던 유일한 이유는 오직 ‘명령’ 때문입니다. 그 명령이 숨가쁜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뀌게 만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신앙인의 삶을 군사로 말하는 것을 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의 좋은 군사로 부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군사가 하는 일은 전쟁에서 잘 싸워야 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명령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대장이십니다. 세상의 싸움터에서 하나님은 오직 명령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하고, 복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복종은 맹목적이거나 무분별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상관을 위한 복종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은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인간을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속성과 구조를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명령하는 것은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라," 이것은 신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여기에 이유가 없고,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명령에 복종하고 따르는 길뿐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이 명령과 말씀에 순종하면서 나의 생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사랑으로 주셨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 계명을 주시면서 5절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 신가를 알려주셨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아는 길은 성경의 저자들이 기록한 말씀의 해석을 통해 우리가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스스로 어떤 분인가를 알려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본문에 소개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구약에 자주 등장합니다. 특히 스가랴 8장 2절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시온을 위하여 크게 질투하며 그를 위하여 크게 분노함으로 질투하노라” 시온은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이 질투하시는데 크게 질투하고, 나중에는 분노하면서 질투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도 질투하시는가, 하나님이 그렇게 인간적이신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말씀하시는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사랑하기에 질투하는 것입니다. 질투 속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우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고, 아내가 집을 나갔는데도 찾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만큼 관심이 있고, 사랑하기에 질투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하나님은 질투하시기까지 그의 택한 백성들을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탄도 질투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탄의 질투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사단은 우리의 형통함을 보고 질투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죄악을 보고 질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이 이런 사랑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외에 다른 것을 향할 때, 크게 질투하고 때론 분노하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사랑을 받고 아는 자들은 계명을 사랑의 차원에서 지켜야 합니다. 계명을 명령으로서도 지켜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귀한 자세가 사랑입니다. 사랑에 무슨 이유, 무슨 조건이 있습니까?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기에 나도 그 분을 섬기고, 그 분이 말씀하시는 계명을 따라야 합니다.

  이것을 어떤 사람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마치 대학교 합격 통지서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주신 십계명은 학교 들어가서 지켜야 할 교칙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공부해서 가고 싶었던 대학의 합격 통지서 받아든 기분을 아십니까? 합격 통지서를 하나 받아들면 그 밑에 입학금 고지서, 주의 사항들이 밑에 주르륵 붙어서 두툼합니다. 그러나 그 내용이 무엇이든 별 관계가 없습니다. 아마 잘 보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합격 통지서 받아든 이상 학교 교칙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합격 통지서만 확인했으면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합격 통지서를 받고도, 교칙을 따지면서 학교가 뭐 이 따위냐고 불만을 토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고 은혜를 베푸시고 해방시키시고 가나안으로 인도해 주시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계명을 주어서 우리를 이렇게 얽어매느냐고 불만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라,” 이것은 명령인 동시에 사랑으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학에 합격통지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이제 이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질투하는 사랑입니다. 진정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면, 이제 그분이 말씀하시는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 사랑의 법으로 하나님만을 온전히 섬기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축복으로 주셨습니다. 본문 6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은 계명을 주시고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것이 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만약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면 그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한다고 비교하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심판은 잠깐이고, 사랑은 영원합니다. 내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면 나만 복 받는 것이 아니라 자손의 자손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이 오랜 세월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섬기는 자들이 얼마나 당대와 후대에 복을 받았는가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는 개인, 가정, 그리고 국가는 후대까지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이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나라를 경제적으로 구분하면,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가 아주 명확하게 나누어집니다. 세계의 지도를 펼쳐놓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제3세계의 사람들이 사는 지역을 보면 대부분 북위 10도와 40도 사이의 직사각형에 거의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지역을 선교학적으로 ‘10/40 window’라고 부릅니다. 이 나라의 대부분은 아프리카와 아시아 지역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은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세계 인구의 60%가 이 지역 안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곳은 세계의 빈민(貧民)층이 거의 밀집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큰 특징은 세계에서 기독교인의 비율이 가장 낮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른 종교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불교, 회교, 그리고 힌두교 등 3대 종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인류의 기원과 함께 성경의 역사가 이루어진 곳이며, 문명의 발생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떠났기에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못사는 현장, 빈민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나라에 비해 미국은 어떻습니까? 지금 미국은 경제대국입니다. 그들이 지금 이처럼 잘 사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들이 잘해서 부유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을 처음 세웠던 청교도의 신앙에서 축복이 나온 것입니다. 청교도의 삶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신앙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국이념으로 삼고 출발했기에 지금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길 때, 그 나라는 잘 되고, 하나님을 떠나면 힘든 것을 역사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은혜가 임합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역사가 증명합니다.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 자손, 후대가 분명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중심이어야 하고, 우리 가정에, 나라에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잘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축복을 위해 우리가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다짐하고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24장에 보면, 여호수아가 죽기 직전, 온 이스라엘을 모아놓고 유언처럼 전한 감동적인 설교가 있습니다. 그는 가나안에 정착하여 이만큼 살게 된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땅에서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결단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성실과 진정으로 그를 섬길 것이라 너희의 열조가 강 저편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여호수아처럼, ‘오직 나와 내 집은 영원히 하나님만을 섬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축복과 은혜의 길을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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