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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회자와 함께하라 (고전 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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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성철 목사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9:13-14)

오늘은 은급주일입니다. 은급주일은 일생을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사역하다가 은퇴하신 목사님들을 생각하면서 모든 교회가 정성스러운 헌금을 모아 원로목사님들을 위로해 드리고 그 분들의 복지를 위해 기금을 마련하는 날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해마다 2월 첫 주일을 은급주일을 정해놓고 성실하게 지킬 뿐 아니라 각 교회의 일년경상비수입의 1.5%를 은급부담금으로 헌금함으로써 넉넉하지는 않지만 원로목사님과 유가족들을 위해 최소한의 생활비에 보탬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감리교회는 원로목사님을 비롯하여. 원로목사님과 함께 계시다가 홀로되신 사모님과, 목사님들이 병환이나 사고로 돌아가시고 홀로되신 사모님이 합하여 810여분들에게 지급되는 생활비가 매월 5억원정도 소요되고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이러한 은급사업을 온 교회가 정성을 다함으로 감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은급주일을 지켜 정성을 다하여 원로목사님들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교회가 있도록 수고하신 이 분들께 존경과 함께 자녀가 부모님을 섬기듯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은급주일을 맞이해서 우리는 목회자와 함께 하는 믿음의 삶을 바로 간직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떠나서 살아갈 수 없음같이 교회생활은 목회자를 떠나서 이루어 질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신앙의 삶은 목회자와 함께 하는 삶입니다. 목회자와의 관계가 바르고 건강하며 은혜로운 생활이 되지 못하면 병든 신앙의 삶이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와의 관계는 항상 은혜로운 관계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목회자의 사역을 귀중히 여기며 존경하고 그 사역의 권위를 인정하는 데서입니다.

이시간 우리는 바울의 고백과 주장 속에서 목회자의 삶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자 합니다. 그럼 목회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목회자를 바로 이해하는데서 목회자와 함께 하는 신앙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신령한 것을 뿌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11절)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신령한 것을 뿌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자입니다.
신령한 것이란 무엇입니까? ‘복음’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하기 위하여 수고합니다. 신령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일합니다. 교회가 신령한 은혜를 나누는 곳이 되도록, 교회가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가 넘치도록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A. 라이트’ 라는 사람은 “목회자는 무한한 가치가 있는 보석을 값없이 파는 상인이다”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없이 목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어머니와 같습니다. 젖꼭지를 물려주는 어머니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은혜를 나누어주기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서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다”(살전 1:7)고 했습니다. 목회자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교인들에게 신령한 믿음의 삶을 나누어주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빌리그레이엄 목사님에 의하면 목회자가 주일 낮 예배 때에 한시간 정도 설교하는 것이 중노동자가 일주일 내내 노동하는 것만큼 에너지가 소비된다고 했습니다. 스펄젼은 설교준비에 지쳐서 50대에 죽었다고 했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장이셨던 홍현설 박사님은 설교할 때 힘주고 열내어서 설교하면 목회자가 단명한다고 했습니다.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은 예배 후에 악수하면서 웃지 말고 말하지 말고 손을 힘주어 잡지 말라고까지 했습니다. 계속 웃으면 입이 찢어지고, 말하면 입이 아프고, 손을 꼭 쥐면 손이 으스러진다고 했습니다. 이 모든 표현은 신령한 것을 나누어주는 목회사역의 수고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신령한 것을 뿌리고 나누어주는 목회자와 함께 하는 은혜의 삶을 잘 가꾸어 가시는 것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처럼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신령한 모든 것을 간직하는 교회 생활을 이루십시오.

성전의 일을 하고 제단을 모시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사역자의 권리를 항변하는 중에서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레위기 6장 16절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목회자는 성전의 일을 하고 성전의 제단을 모시는 자입니다. 곧 교회를 치리함으로 섬기고 예배를 주관함으로 섬기는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 가지 대상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첫째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을 위해 예배하는 곳입니다. 목회자는 이 예배가 예배되도록 섬기는 사람입니다. 둘째 대상은 세상 사람들입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고, 하나님 나라를 그들 가운데 성취하기 위해 존재합니다. 목회자는 이 일이 이루어지도록 교회의 교인들을 필요적소에 세우도록 섬기는 사람입니다. 셋째 대상은 교인들 자신입니다. 교회는 교인들을 잘 돌보아 주고 교육하고 훈련하여 양육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이 일을 위해 섬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의 일과 제단을 섬기는 일을 아주 중요시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일의 전담자를 세우시는 제도를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구약성경에서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성전에서 나오는 것으로 생활하면서 성전의 일과 제단을 섬기는 일에 전념하게 했고, 그 일을 위해 하나님이 택하여 사용하시는 영적인 권위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배경 하에서 목회사역의 독특한 영역을 주장합니다. 바울은 목회자는 그리스도의 목양과 복음사역과 하나님 나라 사역, 그리고 예배를 위한 섬김의 사람으로 전담하는 사람임을 말하면서 14절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곧, 목회자는 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생활하면서 목양과 복음사역과 예배를 위해 전담하여 섬기는 사람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계시록의 말씀을 주시면서 자신을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드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로 다니시는 이”로 보여 주시면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계1:20)고 설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와 함께 하시며 교회의 목회자를 붙들고 일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로서의 성전의 일과 제단을 모시는 목회자들을 예수님이 붙드셔서 사용하고 계시다는 영적인 권위를 인정하는 믿음으로 목회자와 함께 하는 은혜로운 교회 생활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종이 된 사람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되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하여 종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제외한 무엇으로부터도 자유로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도록 하기 위해 그의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음의 즐거움을 누리며 평안히 잠들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고린도 교인들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하여 편히 잠자지 못하고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밤늦도록 기도하는 잠 못 이루는 종과 같이 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사건을 안타까워하며 자유로운 자신을 그 아픔과 괴로움에 함께 묶어두며 고린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고통을 겪는 고통의 종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권력과 부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권력과 경제적 권리를 포기하고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가난의 종이 되고, 자기 스스로 로마의 죄수가 되는 종이 되는 길을 걸은 것입니다.

목회자는 3방에 열심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즉 기도하는 골방, 책을 보고 연구하는 책방, 그리고 심방입니다. 이 것을 위해 세 가지가 닳아져야 한다고 합니다. 성경을 읽어 성경책이 달아야 하고, 심방하고 전도하여 신발이 닳아야 하고, 열심히 기도해서 무릎이 닳아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한국교회 원로목사님들 시대에는 이 3방이 닳아지도록 목회를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더 많은 그리스도의 사람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회사역자는 더 많은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얻기 위하여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들을 얻기 위하여, 더 많은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자들을 얻기 위하여 자신의 한 인간으로서 누리고 싶은 자유를 포기하고 종과 같이 되는 사람입니다.
저 자신 목회자의 삶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교인들이 아프고 고통을 겪으면 목회자는 똑같이 아픔과 고통의 종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인들 중 위험한 수술을 받을 때는 잠을 이루지 못하며 기도의 자리에 찾아나가게 됩니다. 깊은 잠을 청할 수 없는 불면의 종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저 자신이 그 억울함에 분노의 종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나 자신이 이 종의 삶을 포기할 때가 목회자의 타락인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더 많은 성도들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하기 위하여 수고의 종으로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깨달음을 가짐으로서 목회자를 귀하게 여기며 목회자와 함께 하는 은혜로운 교회생활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 가운데는 바울의 목회사역의 권위와 수고를 알아주지 못하고 무시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교인들 앞에서 목회 사역과 함께 하는 은혜로운 교회 생활이 되기를 권했습니다.
은혜로운 교회 생활은 목회자와 함께 하는 은혜로운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다툼의 대상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비난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의 은혜로운 신앙의 삶을 위해 함께 하는 대상입니다.
부정적이지만 목회사역에 대한 잘못된 교회 생활을 깨닫게 하는, 목회자를 비난하는 ‘만일 목회자가’ 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합니다.

만일 목회자가 젊으면, ‘경험이 부족해.’ 나이가 많으면, ‘너무 늙어서 젊은 세대에게는 맞지 않아.’/ 만일 목회자 가정에 자녀가 많으면, ‘애들이 너무 많구만.’ 자녀가 없으면, ‘교인들에게 본이 되어야지.’/ 만일 목회자가 원고를 보고 설교하면,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어.’ 원고 없이 설교하면, ‘왠지 깊이가 없는 것 같아.’/만일 목회자가 가난한 교인들을 가까이 하면, ‘인기를 끌려고 하는구만.’ 부유한 교인을 가까이 하면, ‘돈 있는 사람만 너무 좋아하고 너무 귀족적이야.’/ 만일 목회자가 예화를 많이 들면, ‘성경 말씀은 아예 하지도 않는구만.’ 예화를 사용하지 아니하면, ‘이해가 분명치 않아.’/ 만일 목회자가 교인들의 나쁜 행동을 지적하면, ‘너무 직선적이야.’ 나쁜 행동을 지적하지 않으면, ‘타협주의적이구만.’/ 만일 목회자가 올바른 말을 하면, ‘너무 공격적이야.’ 올바른 말을 하지 않으면, ‘위선적이구만.’/ 만일 목회자가 모든 교인을 기쁘게 해 주지 못한다면, ‘교인들을 자꾸 실망시키니 아무래도 목사를 내보내야 되겠어.’ 모든 교인을 기쁘게 해 주려고 하면, ‘주체성이 없구만.’/ 만일 목회자가 헌 차를 몰고 다니면, ‘우리 교회 망신시키는구만.’ 새 차를 몰고 다니면, ‘세상 물질을 너무 밝히는구만.’/ 만일 목회자가 항상 설교하면, ‘매 주일 똑같은 설교를 듣자니 피곤하구만.’ 특별강사를 초청하면, ‘목사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구만.’/ 만일 목회자가 월급을 많이 받으면, ‘돈밖에 모르는 삯군 목자로구만.’ 월급을 적게 받으면, ‘그야 어쩔 수 없지, 월급을 많이 받을 만큼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목회 사역은 존경하고 귀하게 여기는 데서 은혜로운 신앙의 삶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목회사역을 비판하며 모욕하는 것은 자신의 신앙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 것일뿐 아니라, 목회사역을 붙들고 계시는 하나님을 비판하며 모욕하는 것입니다.

목회사역을 돕고 그 사역과 함께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아름다운 삶입니다. 목회사역과 함께 하는 은혜로운 신앙의 삶을 이루십시오. 목회자와 함께 하는 것이, 마치 예수님과 함께 하듯이 하는 것이 되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것이 원로목사님들을 섬기는 우리들의 모습이 되도록 하십시오. 그럼으로 풍요한 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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