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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음의 병을 고치라! (사 29: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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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장명수 목사  I  2005년2월20일 설교 
 
  어떤 여인이 남편과 두 번째 사별하고 어떤 믿음직한 남자와 세 번째 결혼을 했습니다. 새로 맞이한 남편은 아내를 지극히 사랑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행복에 겨워야 할 부인은 몸이 약해지고 얼굴이 날이 갈수록 야위어져 갔습니다. 보다 못한 남편이 묻기를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는 거요.” 그러자 부인은 단지 마음의 병이라고만 대답했습니다. 진실한 남편은 자신이 잘못해 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어떻게 더 사랑해 주면 되겠느냐며 자꾸 묻자 부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당신이 또 죽으면 어떻게 하나요?” 걱정 때문에 몸이 말라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정함, 물질주의, 쾌락주의, 겉모양 추구, 자유분방함, 개인주의, 자기애 등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극도의 인간 중심주의로 인해 마음의 병을 앓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마음속에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진실과 순수함, 거룩성과 경건함이 자리잡을 곳은 없습니다. 일찍이 예레미야서에는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선언했고 이사야서에도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고 함으로 인간의 마음이 병들어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15장에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라.”고 하시면서 심각하게 병든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질타하셨습니다.

혼란과 어둠의 시대를 지혜롭게 살려면 사람들의 마음의 병을 고쳐야 바로 살 수 있습니다.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자신의 마음을 고쳐야 하나님 안에서 올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뿌리가 썩은 나무에게 희망이 없는 것처럼, 중병이 든 생명체에 소망이 없는 것처럼, 마음이 병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선한 열매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며, 사모하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 것, 교만하게 자기 중심대로 사는 것, 지나친 탐욕을 품는 것, 갈등과 반목과 시기심으로 살아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이 병들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 밖에 계시니까 마음의 병이 생겼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에게 가장 큰 마음의 병은 불신의 병일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을 떠나면서 불신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철저히 자기 중심의 삶을 살아갑니다. 자기 중심의 인생은 자기를 방어하기 위해 책임을 남에게 전가합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책임을 던지고, 가인은 동생 아벨에게 자신의 책임을 미루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버린 인생에게 불신의 마음이 자리 잡고 있으면, 결국 사람과 사람을 갈라놓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갈라지고, 형제와 자매가 갈라지고, 이웃과 이웃이 철저히 갈라지는 오늘 우리의 자화상은 불신의 병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불신은 하나님을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종교심을 주었는데도 사람들의 마음의 병이 심각해서 믿음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 없고 믿기지 않는 것은 마음의 병입니다. 불신은 분명 커다란 마음의 병입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은 모든 우주 만물의 중심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자기 완성의 꿈을 꾸게 됩니다. 구약의 느부갓네살 왕이 바로 자기 완성의 꿈을 꾸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꿈 속에서 하늘에 닿는 나무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모든 새들이 와서 깃들고 모든 생물에게 열매를 주는 허망한 꿈을 꾸었습니다. 느부갓네살의 허망한 자기 완성의 꿈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 나무가 베어지고 모든 영광과 권세는 빼앗기고 스스로 저주스러운 삶으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불신앙을 가진 자기 중심의 삶은 철저히 실패와 저주로 끝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미국 시카고 교외에 윌로우크릭 교회가 있습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자주 방문하는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 곳에 자원봉사자로 안내를 맡고 있는 집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이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 앞에서 자신이 경험한 신앙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자기는 아내와 결혼하여 얼마 되지 않아 성격차이가 심하고, 여러 가지 다른 점이 너무 많아 도무지 함께 살 수가 없었답니다. 시간이 갈수록 두 사람 사이에 불신이 깊어지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가 되어 결국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혼을 한 후에 삶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이 닥쳐와서 수치감과 죄책감으로 회사에 갔다 오면 두문불출하고 술로 찌들어 살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기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와 함께 교회가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친구의 말을 듣고 웃어 버렸답니다. 어떻게 자기 같은 사람이 교회에 갈 수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의 끈질긴 설득으로 한 번 교회에 나가 주기로 하고 갔는데, 마침 목사님의 설교가 꼭 자기에게 하는 이야기로 들렸습니다. 그 다음 주일도, 또 그 다음 주일도 교회에 나갔다가 네 번째 주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이혼한 전처였답니다. 이혼한 전처에게 전화를 걸어 교회에 가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나는 교회에 가고 싶지 않지만 당신의 처음 부탁이니 같이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내도 결국 주님을 영접하고 다시 두 사람이 재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없는 마음은 처절하게 투쟁하고 갈등하고 시기 반목하고 불신하는 마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음에 찾아오시니 불신의 마음이 깨끗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신뢰하며 서로 사랑하고 협동하며 아름답게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것이 올바르고 건강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해 갈수록 배신과 불신과 의심이 더욱 많아지는 것은 인간에게 있는 마음의 병이 아주 심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의 심각한 현대인의 마음의 병은 불안입니다. 불안은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불신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불안한 마음은 장래를 모르기 때문에 오는 마음입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에 불안이 찾아옵니다. 의지할 데가 없어 불안합니다. 스스로 살려고 하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은 발달하고 좋아지는데 사람의 마음은 더욱 걷잡을 수 없이 불안이 커져갑니다. 불안이 만병의 근원일 수 있는데 환경이 불안하니까 사람의 마음도 같이 불안해집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이 계셔야 하는데 하나님이 안 계시니 더욱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동수라는 2살짜리 어린 아이가 자주 토하는 병으로 인해 소아과에 찾아왔습니다.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동수가 기다리고 있을 때 의사가 보니까 엄마가 아주 호되게 아이를 때리고 엄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의사가 기독교인이고 아기가 아픈 것이 심리적인 원인이 있을 것 같아서 상담가에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상담가와 만나서 동수 엄마는 아이가 얼마나 잘못을 하고 있는지를 자꾸 말했습니다. “이 애는 욕먹을 짓을 자꾸 해서 단단히 혼이 나야 합니다.”, “요놈이 쌀독에 오줌을 누었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요?” 하면서 아이의 잘못을 계속적으로 나무랐습니다. 상담가와 함께 자기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까, 그녀의 부모는 2남 1녀를 두었는데 아들에게는 사랑을 베풀었지만 자기에게는 조금도 사랑을 베풀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결혼을 해서 남편도 자기 일이 바빠서 아내에게 관심을 별로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랑을 받아보지도 못하면서 자랐고 또 남에게 사랑을 줄 줄도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동수를 낳을 때도 부모님이 와보지 않았고 지금까지 산후의 고통과 외로움을 혼자 달래며 살아왔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수가 조금만 잘못해도 자기가 어릴 때 당했던 것처럼 호되게 때리고 꾸짖고 용서라고는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린 동수의 토하는 병은 심각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상담을 받고 다시 교회 생활을 하게 되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게 되었을 때 아기는 낫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각종 불안은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불신의 병을 고치고, 불안의 병을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게 살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나님 말씀대로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내 마음의 핵심에 하나님을 다시금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내 마음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허황된 것들을 모두 치워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물질이든, 가족이든, 자식이든, 명예와 쾌락이든 일단 제쳐 두어야 합니다. 내 마음의 가장 핵심, 그 중심에 다시 하나님을 모셔 와야 깨끗이 치료가 됩니다.

집 주인이 없으면 가축들이 집을 난장판으로 만듭니다. 부모가 없을 때 아이들은 싸움판을 벌일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세상의 복잡한 것들이 마음을 지배하고 싸움판을 벌이게 됩니다. 내 마음을 불신과 의심, 불안과 두려움, 절망으로 내몰게 됩니다.

마음의 병을 가장 확실하게 치료하는 방법은 내 마음의 핵심에 하나님을 모셔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실 때 불신이 신뢰로 바뀌게 됩니다. 상처투성이의 마음이 건강하게 치료됩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의 손길이 닿을 때 깨끗하고 기름진 마음 밭이 됩니다.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유명한 제롬이라는 수도사가 있습니다. 이 분에게 전해지는 일화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베들레헴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제롬은 너무 감격하여 “예수님, 제 마음을 다해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물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이 내 것인데 그대가 내게 무엇을 줄 수 있겠는가?” 제롬은 다시 말하기를 “그러나 주님, 저는 주님께 제가 가진 적은 돈 모두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수도사이기에 많은 것은 없습니다. 받아 주십시오.” 주님은 여전히 웃으시며 “너의 돈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제롬이 주님께 드리고 싶다고 했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답니다. “만일 그대가 나를 기쁘게 할 선물을 가져오고 싶다면 그대의 모든 죄와 욕망을 가져오너라. 그대가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지 못하는 그것을 가져오너라. 나는 그것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었다. 나의 기쁨은 죄와 욕망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나의 피로 씻김 받아서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모든 더럽고 추한 것들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주님을 모실 수 있다면, 우리는 새로운 삶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병을 고쳐야 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다시금 하나님께서 오셔서 청결하고 거룩하고 능력있는 마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광야의 권속들이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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