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지중에 오살한 자를 위하여 (수 20:1~9)

  • 잡초 잡초
  • 703
  • 0

첨부 1


- 설교 : 강구원 목사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피성을 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1장에서 모세가 도피성과 같은 성을 장차 둘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 광야를 떠나 요단강을 건너기 전에 이스라엘의 세 지파가 요단강 동쪽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즉 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지파는 요단강을 건너지 않고 동쪽에 정착했는데 이 곳에 3개의 도피성이 설치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가면 다시 도피성을 3개 세우라고 했습니다.

도피성(City of refuge) 제도는 민수기 35장 9-34절과 신명기 10장 1-3절에 대한 재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과거 이미 명령하였던 대로 도피성을 만들 것을 지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도피성 제도는 부지중에 오살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사회 보장제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할 때 엄격한 고대 사회에서도 인간의 인권과 생명은 존중되고 보호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Ⅰ. 도피성(逃避城)의 성격입니다.

도피성은 요단 건너편에 3개(신 19:2; 민 35:14), 요단 이편에 3개(신 19:9; 민 35:14), 모두 6개가 실존했습니다. 이 도피성은 모두 이스라엘인들이 사는 지역 한 가운데 위치해 있었습니다(신 19:2-3). 왜냐하면 어느 장소에서든지 피하기에 용이하기 위함입니다.
도피성은 높은 산지에 있고 그 길은 잘 닦아야했습니다(신 19:3). 누구나 길을 환히 알기 위함이며 그 길로 잘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유대법에 의하면 일년에 1번씩 사람들은 남녀노소 모두 나와서 도피성으로 가는 길을 잘 닦아 놓아야 한다고 히브리인들의 기록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거국적인 명령으로 도피성의 길을 보수한 것은 도피 중에 있는 자가 길이 좋지 않음으로 인하여 변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도피성은 이스라엘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민 35:15). 죄인이 살기 위해서는 도피성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1) 도피성(逃避城) 선정은 신의에 따른 것입니다.
본문 20장 2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12-13절에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계획함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붙임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피성을 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35장 11절에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신명기 19장 3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유업으로 주시는 땅의 전체를 삼 구로 분하여 그 도로를 닦고 무릇 살인자를 그 성읍으로 도피케 하라}고 했습니다.

2) 도피성(逃避城)의 위치는 하나님이 명하신 것입니다.
민수기 35장 13-14절에 {너희가 줄 성읍 중에 여섯으로 도피성이 되게 하되 세 성읍은 요단 이 편에서 주고 세 성읍은 가나안 땅에서 주어 도피성이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요단 서편의 성읍 중에서 선정된 3개의 도피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납달리 지파의 갈릴리 게데스 ②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 ③ 유다 지파의 헤브론 ④ 르우벤 지파의 베셀 ⑤ 갓 지파의 라못 ⑥ 므낫세 지파의 골란입니다.
이렇게 도피성의 위치가 한 곳에 편중되지 아니하고 전국에 골고루 분포되었다는 사실입니다.

Ⅱ. 도피성(逃避城)은 죄인을 피하게 하여 살려주는 곳입니다.

본문 20장 3절에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35장 11절에 {너희를 위하여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여 그릇 살인한 자로 그리로 피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발적으로 살인한 자에게만 도피성이 허락되었습니다.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가 도피성에 들어갔더라도 나중에 고의가 발각되면 그곳에서 쫓겨나서 죄의 보수자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1) 피의 보수자로부터 피하는 곳입니다.
민수기 35장 12절에 {이는 너희가 보수(報讐)할 자에게서 도피하는 성을 삼아 살인자가 회중 앞에 서서 판결을 받기까지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자를 피하여 도망하는 곳입니다.
본문 20장 3절에 『피의 보수자』는 '율법'을 의미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죽이려고 합니다. 범죄한 인생을 사탄은 율법을 통하여 쉬지 않고 추격합니다.
도피성으로 피의 보수자를 피하여 도망하는 자를 위하여 제사장은 문을 열어줍니다.
인간의 죄 값은 사망입니다. 사람에게는 사망을 피하는 도피성이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피난처입니다(요 14:6). 모세를 담았던 갈상자는 생명을 보장받는 도피성이었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하신 도피성입니다. 여리고성에 기생 라합의 붉은 줄은 죽음의 경지에서 삶을 보장받는 도피성이 되었습니다.

2) 도피성은 죽음에서 생의 환희를 맛보는 곳입니다.
본문 20장 9절에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은 안전보장이 되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실 자입니다. 그에게는 사망이 없습니다. 사망의 곡성이 진동하는 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Ⅲ. 도피성은 죄인이 놀라운 은총(Amazing Grace)을 입는 곳입니다.

도피성은 여섯 성읍에 두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이 여섯 성읍의 이름의 의미에서 이 사실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1) 성별의 은총입니다.
본문 20장 7절에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여기『게데스』의 어원은 구별(Separation)한다는 성소의 뜻입니다.
이것을 영어로는 Holy 혹은 Sacredness로 번역되었습니다(B.D.B. p.871). 이것은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요 2:1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별의 은총을 체험한다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2) 능력의 은총입니다.
본문 20장 7절에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이라고 했습니다.
세겜에다 도피성을 세웠습니다. 『세겜』은 '양어깨'(the Pair of shoulders. upper part of fack)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어깨에 정사를 메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사 9:6). 세겜은 능력을 상징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죄인은 약합니다. 인간은 약한 존재입니다. 무능한 존재요 힘이 없는 존재입니다. 죄가 우리를 약하게 만들고 힘없고 무능하게 만듭니다. 사도 바울은 죄가 자기를 죽게 만든다고 했습니다(롬 7:13). 죄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 했습니다(롬 7:20).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사죄의 은총을 체험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했습니다(롬 8:1).

3) 교제의 은총입니다.
본문 20장 7절에 『헤브론을 구별하였고』라고 했습니다.
『헤브론』의 어원 '헤베르'( )는 '연결'(united joined)을 의미합니다. 곧 '교제', '친교' 혹은 '교통'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후 5:18,19).
요한1서 1장 3절에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거침이 없는 교제는 축복입니다. 교제의 단절은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4) 안전의 은총입니다.
본문 20장 8절에 『또 여리고 동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라고 했습니다.
『베셀』의 뜻은 '끊어 버리다'(cut off) 또는 '가까이 못하도록 한다'(make inaccessible) 혹은 '담을 친다'(enclose)는 의미입니다. 곧 베셀은 '요새지'(要塞地)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베셀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시 91:2).
예수는 우리의 요새입니다. 방주 안에 있는 노아는 안전했습니다. 갈상자에 담기어 하수가에 떠내려가는 아기 모세는 안전했습니다. 문설주 인방에 양의 피를 발랐던 고센 땅의 이스라엘 백성은 안전했습니다. 창에 붉은 줄을 매고 여호수아 군대가 오기를 기다렸던 기생 라합은 안전하게 구출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안전지대입니다.

5) 높이 들림 받는 은총입니다.
본문 20장 8절에 『…길르앗 라못과…』라고 했습니다.
『길르앗 라못』의 어원 '라암'( )은 '솟아오른다'(rise) 혹은 '높은 고지'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라못은 성도들을 높이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엡 2:6).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높이 들렸습니다. 진노의 자식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높이 들림입니다. 이새의 막내아들 다윗은 높이 올리운 자라고 했습니다(삼하 23: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높이 들리운 자들입니다. 주님이 재림할 때 우리는 공중에서 주를 영접합니다. 우리는 이제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높이 들리운 자들입니다.
제 2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제 1아담 즉, 원시 아담보다 한 단계 높아진 신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6) 행복의 은총입니다.
본문 20장 8절에 『…바산 골란을 택하였으니』라고 했습니다.
『골란』은 '기쁘다'(rejoice)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행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롬 5:4). 그리스도 안에서의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신명기 33장 29절에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행복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도피성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비록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지만 이 영원한 도피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아무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은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우리 자아의식은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모르고 태어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부터 죄인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죄' 혹은 '본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습니다(요 3:16).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사랑 없이 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 역시 공의 없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곳입니다. 살인자가 땅 위의 도피성에서 보호를 받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형벌로부터 보호받는 자가 된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죽음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예수 이름 외에는 구원 얻을 이름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죽을 날이 임박했을 때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기를 자기를 저주한 시므이를 맹세코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왕상 2:8-9). 솔로몬은 부왕 다윗이 죽은 후에 아버지의 유언을 따라 시므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고 했습니다(왕상 2:36). 만약 예루살렘을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겠고 네 죄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고 했습니다(왕상 2:37). 이에 시므이도 찬성했습니다(왕상 2:38). 이것은 일종의 금족령인 동시에 들어오면 살고 함부로 나가면 죽는 도피성을 연상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그는 3년이 지난 후에 도망간 자기 종을 찾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기드론 시내를 건넜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솔로몬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불러 약속을 어긴 죄를 물어 처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다고 했습니다(요 5:22).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이 시간에도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죄인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살고 싶은 자가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려주려고 작정한 자는 도피성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했습니다.
부지중에 오살한 자, 곧 우리의 원죄와 자범죄를 위하여 만든 곳이 오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부지중에 오살한 자를 위하여 교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교회를 통하여 자기 백성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하나님의 기쁘신 뜻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