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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 (막 10: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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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42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43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우리나라 속담에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살다보면 열 번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사람이 변하는 것이 좋은지 혹은 나쁜지 따져 볼 필요는 없습니다. 좋게 변하면 좋고, 나쁘게 변하면 나쁠 것입니다. 아이가 어려울 때는 부모의 말도 잘 안 듣고 철이 빨리 안 들어서 매우 걱정스러웠으나 나이가 들면서 제법 의젓해지고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으로 성장했다고 하면 이 얼마나 잘 된 일입니까? 

대체로 아동기의 아이들은 무엇이든지 먹으려 하고 가지려 하기 때문에, 주면 좋아하고 제 손에 있는 것을 하나라도 빼앗기면 악을 쓰며 웁니다. 배가 고프면 참지 못하고 먹을 것을 달라고 조르고, 가지고 싶은 것이 있으면 가정 형편이 어떠하든지 무조건 사달라고 떼를 쓰기 일수입니다. 사랑해주면 좋아하고, 뭘 주면 좋아하고 그저 무엇이든 받으려고만 합니다. 이것이 어린아이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도 정신연령이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디를 가나 원망불평이 많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도 교회가 사랑이 있느니 없느니, 대접을 해주느니 안해주느니 마치 철없는 아이처럼 불만이 많고 그저 받기만을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평생 사람노릇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참으로 골치 아픈 사람입니다.

소년기를 지나 청년기가 되면서부터는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합니다. 이 시기에는 무엇이든지 많은 경험을 해보고 싶어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면 기뻐하고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속상해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불행하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수완이 좋아서 돈을 많이 벌기도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여 박사가 되기도 하며,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성공해보려고 애를 쓰기도 합니다. 그리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안정된 생활로 접어들게 됩니다. 이들 중에는 성공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청년기를 지나 장년기에 접어들게 되면서부터 사람은 또 다시 변하게 됩니다. 50년 혹은 60년을 살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전에는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돈을 벌고 보니 행복이 소유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에베레스트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 깃발을 꽂고 이 산을 정복했다는 만족감으로 하산합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자신이 굉장한 일을 한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 역시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또 큰 명예를 얻은 분들은 한때 높은 자리에 올라가 “야! 이젠 성공했구나.”라는 생각으로 기쁨이 솟고 마치 자기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여겨졌지만, 몇 년 지나고 보니 그 자리가 바늘방석으로, 여기까지 오려고 이 고생을 했는지 허무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 둘씩 이 세상을 떠나가는 친구들을 볼 때마다 “인생은 누구나 빈손들고 왔다가 빈손들고 간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어떤 장로님은 한 때 수백 억의 재산을 가진 큰 회사의 사장으로 무척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회사의 부도로 그렇게 많던 재산도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버리고 지금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많은 재산과 명예가 물안개처럼 하루아침에 다 사라져버렸으니 참으로 허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 장로님에게 남아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사업이 한창 번창할 때, 어려운 사람을 외면하지 않았고, 어려운 교회를 도와주었습니다. 시골 교회 목회자님들이 도움을 청하면 기꺼이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도시 농촌을 합하여 성전을 열 개정도 지어바쳤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 하나님 나라에 저축한 것으로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칭찬 듣고 상급을 받을 것이므로 영원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남을 돕고 선을 베풀고 나누어주는 일들이 진정으로 남는 일입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유아기의 정신연령을 가진 사람은 받는 것만 좋아하고 줄 줄을 모르며, 먹는 것만 좋아하고 대접할 줄 모릅니다. 도무지 섬길 줄을 모르는 이런 사람이 머리가 되고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될 말입니다. 만일 자신만 알고 받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고 머리가 된다면 불행한 사회가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려고 하면 베풀기를 좋아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섬기기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자를 섬기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서로 높은 자리에 앉겠다고 다투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좬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말씀은 좬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좭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아낌없이 모든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통해 어떤 사람이 으뜸이 되고 머리가 되어야 하는지 알게 됩니다. 

부끄러움을 당한 어느 하사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부대건물을 보수하는 일을 지휘하면서, 나무로 된 무거운 대들보를 올려놓기 위해 일반 병사들이 끙끙대며 애를 쓰고 있는 현장에서 어서 힘을 내라고 고함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그에게 다가가 “왜 병사들을 돕지 않고 서있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군인은 거드름을 피우며 “저는 하사관입니다.”라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지나가던 그 사람은 “그렇습니까? 당신이 하사관인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하사관님, 한 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제가 저들을 돕겠습니다”라고 말을 한 뒤에, 병사들에게 다가가 함께 무거운 대들보를 들어올렸습니다. 이 일이 끝난 후에 그는 돌아서서 “하사관님, 이와같은 일이 또 생겨 사람이 모자라게 되면 사령관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기꺼이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고 현장을 떠나갔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하사관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있습니다. 그 사령관은 나중에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로 초대 대통령에 오른 죠지 워싱톤 장군입니다. 이처럼 허리 굽혀 섬길 줄 아는 섬김의 본을 보인 이런 분이 최고 지도자가 되었으니 미국이 어찌 축복을 받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의 직분은 종의 자세로 자원하여 섬기는 봉사직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보실 때 위대한 사람은 팔짱을 끼고 명령하는 사람이 아니라 발벗고 나서서 섬기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교회마다 문제가 많습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는 집사나 안수집사나 장로나 권사가 되는 것을 마치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으로, 교회의 직분을 명예직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출세직도 명예직도 아니며 오로지 봉사하며 섬기는 직분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모르고 직분을 가지게 되면, 평신도보다 한 계급 올라간 것으로 생각하여 섬기려하기보다는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려 하고, 자기 생각대로 사업을 결정하고 밀어부치려 합니다. 이는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좬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중에 장로가 되고 싶은 분이 계십니까? 먼저 우리 교회 나오는 모든 성도들의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는 기꺼이 수영로 교회의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는 종이 되겠습니다.”하는 자세로 섬기기를 즐거워하는 분들이 장로의 자격이 되는 줄 믿습니다.

종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천한 종과 영광스러운 종입니다. 천한 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끌려와 종이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영광스러운 종은 자원하여 기꺼이 섬기기를 원하여 종이 된 사람입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 교회 서리 집사도 강제로 임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봉사하지 않으면서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혹은 돈이 많기 때문에, 또는 사회적 신분이 높다고 해서 집사로 임명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더구나 안수 집사나 권사나 장로의 직분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는 표시도 아니며, 출세한 사람을 나타내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모든 직분은 명예직이 아니라 봉사하고 섬기는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사람을 집사로 임명하려고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에게 집사라는 직분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일에는 따로 월급이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의 직분을 가지게 되면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십일조를 바치고 건축헌금을 드리며, 여러가지 감사의 예물을 드리면서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교회를 섬깁니다.
본래 위대한 일에는 월급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어머니를 보세요! 월급 받고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움을 당할 때 교회문제를 해결하고 교회를 부흥시킨 일곱 집사들이 월급 받고 그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명까지 바쳐가며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도행전 5:40-42절을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채찍에 맞고 고통을 당할 때에도 오히려 주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며 더 열심히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며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매를 맞으면서도 기뻐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영혼을 구원하는 기쁨과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잠시 받는 고난은 장차 천국에서 주님으로부터 받을 영원한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성도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섬김은 예배입니다.
섬기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예배를 Service라고 합니다. 이처럼 섬긴다는 뜻이 들어있습니다. 예배야말로 믿음의 표현이요 믿음의 고백이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1절에서 좬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좭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예배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가운데 예배처럼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시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즐겁게 섬길 수 있는 힘을 공급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배가 가장 중요한 섬김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스티븐 코비가 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이라는 책을 보면, 그가 한 세미나의 강사가 되어 호텔에 가게 되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는 호텔에 매우 늦은 시간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한 뒤 룸서비스가 되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데스크의 한 남자 직원이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룸서비스가 되지 않습니다. 원하신다면, 제가 들어가서 주방에 있는 샌드위치나 샐러드 등 원하시는 것을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코비는 그 직원의 말에 매우 호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회의장도 한번 둘러보시겠습니까?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 도와 드리겠습니다. 선생님의 편의를 봐드리는 것이 저의 임무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튿날 강의하는 도중에 꼭 필요한 필기도구를 챙겨오지 않은 것을 알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짧은 휴식시간을 이용하여 회의장 밖으로 나왔을 때 마침 한 종업원이 다른 회의장으로 급히 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에게 다가가 ‘제게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는 이 호텔에서 관리자 교육을 하고 있는데 칼라 매직펜을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강의실에 들어가고 말았습니다. 지금은 잠시 휴식 시간이라 이렇게 밖에 나와 도움을 청합니다.’ 그러자 그 직원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내 이름표를 본 뒤 “코비씨, 제가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 직원은 결코 내 담당이 아니라며 데스크에 가서 알아보라고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즉시 뛰어나가 몇 가지 칼라 매직펜을 구해 나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런 봉사정신이 이곳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가슴과 태도에 배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된 종업원들이야말로 이 호텔이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좬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좭고 교훈했습니다(엡 6:6-7). 다시 말해서 섬길 때 기쁜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 주님께 하듯 진실되게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교회는 일만 개의 구역을 만들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보다 많은 헌신적인 훌륭한 구역장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의 종이 되겠다는 사람, 자원하여 기쁨으로 섬기는 일을 하는 진실한 일군들이 많이 나와야 하겠습니다. 주님께 하듯 성도들을 대접하는 훌륭한 구역장이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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