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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행복하게 사는 비결 (살전 5: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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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필도 목사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16 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우리가 통상 보는 뉴스시간의 끝을 보면 항상 오늘이나 내일의 날씨와 온도를 알려줍니다. 그러나 뉴스에서 언급한 실제 온도와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체감온도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산지방은 대체로 다른 지방에 비해 따뜻한 편입니다. 그러나 간혹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몹시 추운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처럼 실제로 나타난 온도보다 체감온도가 훨씬 더 춥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는 남들이 볼 때 행복의 조건을 다 갖추고 살면서도 정작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행복의 조건은 별로 없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독일의 슈피겔지가 보도한 세계 여러나라의 「행복 체감도」를 보면, 벵글라데시가 1위로 나타나있습니다. 이 나라는 최하위의 빈국 중의 하나로 매년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습니다. 또한 길은 온통 먼지투성이고, 비만 오면 진흙탕이 되기 일쑤입니다. 먹는 물도 좋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수인성 전염병에 걸려 목숨을 잃게 되며 위생상태가 매우 불결한 나라입니다. 이런 나라에 살면서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벵글라데시 뿐만 아니라 나이지리아, 인도 등 대체로 못사는 나라들이 상위권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나 스위스, 독일, 일본 같이  잘 사는 나라들이 41-46위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을 보면, 경제적으로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23번째로 행복 체감도가 중간쯤에 속해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행복이라고 하는 것은 잘살고 못살고 하는 것과 상관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잘 사는 나라일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 적고, 못사는 나라일수록 행복하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행복은 돈이 얼마나 많으냐 적으냐, 얼마나 많이 배웠느냐 많이 배우지 못했느냐 또는 높은 지위를 가졌느냐 그렇지 않으냐, 명예가 높으냐 아니냐하는 것과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행복이란 외부조건과 상관없이 자신이 행복을 느끼며 사는지 그렇지 못한지 에 달려 있습니다.

톨스토이의 이야기 가운데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옛날 한 왕이, 하루는 신하들을 전국에 보내어 가장 행복한 사람들을 찾아보라고 명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을 찾으면 돈을 얼마든지 주고라도 그 사람의 속옷을 얻어가지고 오라고 일렀습니다. 그 이유는 행복한 사람의 속옷을 입으면 자신도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신하들은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부지런히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우선 돈이 많은 사람, 권력이 높은 사람, 지식이 많은 사람, 인물이 잘 생긴 사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으나 도무지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을 때, 한 청년이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오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니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옳거니! 저 사람인가보다 생각한 신하는 그 청년에게 다가가 “당신은 참으로 행복해 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이 청년은 “나는 단 하루도 불행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이 청년에게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속옷을 벗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청년은 먼지투성이의 옷을 활짝 벌리고 가슴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속옷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는 속옷뿐만 아니라 변변한 구두 한 켤레조차 없어서 마음이 썩 좋지 않았는데 마침 이리로 오다가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구두가 있어도 신을 수 없는 그 사람보다 자신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하는 생각으로 흥겹게 노래부르며 이 길을 오고 있던 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행복이란 돈이나 지식이나 명예나 권세 이전에 그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는지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좬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좭고 말씀하셨습니다(눅17:20-21).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와 같은 세상의 것들로 임하는 것이 아니며 더구나 하나님의 나라가 부산이나 서울이나 어떤 특정한 지역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먼저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천국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1. 죄를 회개하고 끊어버려야 합니다.

죄는 많은 문제를 가져옵니다. 이 세상에 죄처럼 우리에게 고민을 가져다주고 고통을 가져다주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이 왜 이리 시끄럽습니까? 왜 점점 살기가 어렵고 고통스럽습니까? 그 이유가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이 점점 더 타락하여 악독해지고 얼마나 더러운 죄를 범하는지, 아무리 물질문명이 발달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죄악이 관영하다 보니 이 세상이 점점 지옥과 같이 사람들의 인심이 험악해져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치 아니하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이 지옥을 이루기 때문에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죄를 회개치 아니하면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청교도가 광장 가운데 사람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죄악의 짐입니다. 참된 행복은 이 죄악의 짐을 벗어버릴 때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있던 한 청년이 말하기를 자신은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산다면서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이 물음에 “청년이여! 만일 시체 위에 400파운드 되는 무거운 돌을 올려놓았다고 합시다. 그 시체가 그 돌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야 당연히 느끼지 못하지요”라고 분명한 어조로 청년이 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은 아무리 죄를 많이 지었어도 죄책감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신의 죄 때문에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죄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기쁨과 평강을 송두리째 빼앗아갑니다. 죄는 인간의 행복을 파괴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백하고 회개하면 그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죄사함 받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마음속에 평강이 흘러넘쳐 자연히 마음 천국을 이루며 살게 됩니다.
           
2.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버틀란드 러셀은 그의 저서인 「행복론」에서 “자기 자신의 힘과 존재를 겸허하게 평가하는 것이 행복의 근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낮추어서 평가하고 사는 사람은 항상 자신의 성공에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 나는 이만한 사람이 못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어떻게 이런 복이 내게 왔을까?” 하면서 항상 자기 앞에 이루어지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놀라며 산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자기 자신을 스스로 높이 평가하며 사는 사람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 “어떻게 내 앞에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어째서 내게 이런 불행이 겹친단 말인가?”라고 탄식하며 항상 자신의 실패에 대해 놀라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찬가지 부부 사이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자기 자신을 낮추어 평가하며 사는 사람은 상대방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이 어쩌면 이런 사람을 내게 주셨을까요?” “이렇게 과분한 사람을 내게 주시다니요” 그렇게 생각하며 살다보니 너무나 감사하고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하고 사는 사람은 상대편을 생각할 때 “어쩌다가 저런 작자가 내게 걸렸을까? 나는 저런 인간하고 살 사람이 아닌데, 정말 재수가 없어” 이렇게 상대방을 원망불평하며 살다보면 자연히 마음이 지옥이 되어 기쁨이 없고 결국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자기 자신을 평가절하 한 후 세상을 바라보고 상대방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나같이 부족한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을 주시고 잘 살게 하여주셨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과분하고 기쁨이 넘쳐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줄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좬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좭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때, 마음의 천국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따라서 복이 어느 특정한 곳에 있는 것도 아니며, 쟁취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복을 받을 사람이 되면, 들에 가도 복을 받고 성읍에 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복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복을 받으며 살아갈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4.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껏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으며 살 때 행복해집니다. 사람의 마음은 사랑으로 가득 찰 때 천국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철학자 피이테는 “사랑은 인간의 주성분이다. 소금에 짠맛이 없으면 소금이 아니고 설탕에 단맛이 없으면 설탕이 아니듯 사랑이 없는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잃어버리면 짐승보다 더 못한 인간이 됩니다. 사람이 포악해지면 사람처럼 무서운 동물이 또 어디 있습니까? 이처럼 사람에게 사랑이 없으면 얼마나 해를 주는지 모릅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랑이 없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천국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려고 하면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원수를 용서하지 못하고 증오심을 품고 사는 사람은 그 마음이 지옥을 이룰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0-31에서 좬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이 마음의 천국을 이루며 행복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 전체를 한마디로 축소하면 “사랑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천국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십시오!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항상 사랑가운데 살며 마음의 천국을 이루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잠시 듣고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고 이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고 묵상하며 실천에 옮겨서 이 땅위에 사는 동안 행복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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