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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을 계속하는 교인이 됩시다 (히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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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강성찬 목사

  사랑은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도 완전한 덕목입니다. 죄악의 길에서 방황하던 영혼이 영생에 이르는 구속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놀라운 사랑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체험한 사랑을 이웃들에게 증거하는 것은 성도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풀어 주신 사랑의 대가로 성도들이 율법의 모든 조항을 다 지켜 행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주님은 죽기까지 죄악된 인간들을 사랑하신 것같이 성도들도 서로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요 15:12).

예수께서는 율법의 형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본뜻, 즉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신실한 사랑의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성도들이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신앙적인 교훈이기 이전에 인간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도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당시 권력자들의 박해를 피해 유리하는 성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갇힌 자를 위해 권면하며 학대받는 자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체험한 성도라면 자신에게 어떤 불이익이 돌아온다 하더라도 곤핍한 정황에 놓인 이웃을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형제자매라는 이해 아래 고난당하는 성도들을 사랑으로 돌아보는 신자가 돠어야 합니다.

자신의 소유로 다른 사람을 접대하는 것은 복입니다. 그러면서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대동하고 사람의 모양으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때가 정오입니다. 이 시간은 대단히 뜨거운 지방이라 사람들이 활동하지 않고 쉬는 시간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인생의 큰 숙제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 다고 약속하셨지만 지금까지 아들이 없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비록 정오라 해도 다른 사람이 지나가든 말든 상관하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정오에 길을 계속 가다가는 지치고 갈 길을 계속 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들을 간청해서 집에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떡과 짐승의 떼에 가서 살찐 송아지를 주면서 빨리 요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사라도 불평이 없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복을 받습니다. 내년 이맘때에 자식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과 또 롯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 땅을 멸하기 위해서 가시는 하나님을 뵌 것입니다. 절대로 반갑지 않은 손님입니다. 시간도 그렇고 아브라함의 마음도 산란한 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정성을 다해서 나그네를 대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단에 나타나셨다면 상황은 다를 것입니다. 모두 할렐루야 하면서 반갑게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므로 여러가지 상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정성껏 대접했는데 이것이 천사를 대접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바와 같이 라합이라는 여인은 여리고성에서 기생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 진영에서 두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쫓기는 몸이니 자신들을 숨겨달라고 하였습니다. 기생 라합은 이렇게 갑자기 들이 닥친 불청객들을 자신의 집 지붕 삼대 밑에 숨기고 극진히 돌보았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성 군사들의 손길에서 그들을 구원하려고 자기의 목숨을 걸고 이들을 창에서 줄을 매달고 탈출 시켰습니다. 부지중에 하나님의 종들을 숨겨주고 대접하고 목숨을 구해준 이 라합은 며칠 뒤 여리고성이 함락될 때 그와 그의 가족들만 유일하게 대학살의 현장에서 살아남는 기적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고넬료라는 사람은 가이사랴에 파견된 로마의 백부장 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은 식민지하에 있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을 많이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그는 로마의 식민지인 가이사랴에 사는 많은 유대인들을 극진히 보살피고 돌보는 일을 하였습니다.

행 10: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

이렇듯 대접하는 일에 열심 있던 고넬료에게 하나님은 특별한 복을 예비하고 계셨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쁜 소식을 듣고 구원받게 하는 하나님의 복이었습니다.

어느 날  베드로가 기도 하러 지붕위에 올라갔을 때 한 가지 이상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율법에 금한 짐승들이 보자기에 싸여 내려오는데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려오기를 베드로야 이것들을 잡아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깨끗지 못한 것은 먹을 수 없나이다 대답을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깨끗게 한 것을 왜 네가 속되다 하느냐 하시고는 그것들을 다시 하늘로 올리워 가는 이상한 환상을 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방사람인 고넬료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여 그를 구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접촉을 삼가고 음식도 같이 안 먹고 복음의 소식도 유대인들에게만 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베드로에게 이방사람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 그를 구원하라고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대접하는 일을 잘하였던 고넬료를 위하여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자를 강권적으로 보내신 것 이었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복을 그와 온 집안에 내려 주셨던 것이었습니다.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별히 자기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자기 것을 나눠주며 대접하는 일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남을 대접하는 사람을 기쁘게 보시고 계셨던 것이었습니다.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접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대접하며 도와주며 우리의 정성을 쏟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복으로 갚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지중에 예수님을 대접하고 하나님의 천사들을 대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손 대접하는 일을 기쁨과 열심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중국에 황대(黃大)라고 하는 관리가 있었습니다. 청렴결백하기로 소문난 그는 또한 애처가로서 자기 모든 것을 부인에게 맡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인은 인색하기 그지없는 사람으로서, 한번 움켜쥔 것을 절대로 내놓는 일이 없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황대의 부인이 집을 비우고 식모인 홍옥이 집을 보고 있는데, 남루한 옷차림의 나그네가 동냥을 하러왔습니다. 홍옥은 가엾은 생각이 들어 먹다 남은 떡 몇 개를 집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황대의 부인이 황급히 들어서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골목에서 허름한 나그네를 봤는데, 너 혹시 뭐라도 집어준 것 아니냐?" "예, 먹다 남은 떡 몇 개 집어 주었어요." "뭐라고? 떡 우리 집에서는 먹다 남은 떡이라도 얼마나 귀중하게 생각하는지 모르느냐. 빨리 가서 도로 가져와" 하는 수없이 홍옥은 뛰어나가 나그네를 찾았습니다. 한참을 가다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 그를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그녀는 대신 자기가 갖고 있던 돈 몇 푼을 건네주었습니다. 나그네는 떡을 돌려주고 돈을 받으며, 허리춤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대신 이걸 받으세요. 제 정성입니다. 유용하게 쓰일 날이 올 겁니다." 홍옥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펴보니 작은 거울이었습니다. 그 후로 거울을 볼 때마다 그녀의 얼굴은 더욱 아름다워져 갔습니다. 이것을 안 황대의 부인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녀는 거울을 빼앗아 자기 방에 두고 수시로 바라보았으나, 그녀의 얼굴은 오히려 더욱 험상궂게 변해갈 뿐이었습니다. 며칠 후 황대의 부인은 화를 참지 못하고 홍옥을 쫓아내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한 홍옥은 그 길로 현지사의 아내가 되어 더욱 많은 선행을 베풀며 살았다합니다.

대접은 하나님이 우리를 복 주시려 마련하신 기회로서, 이를 잘 감당한 자만이 복을 받습니다.

서울 지역에서 개척 목회를 하고 있든 이모 전도사는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일본 교회 방문에 동행해 보기로 하였으나 교회 형편상 포기했더니 다른 학우로부터 일본에서 오는 신학대학원 방문단 10여 명의 숙소로  교회를 이용할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일본 사람을 찾아가서 만나지는 못하지만, 앉아서 오는 사람을 맞는다는 것을 퍽 다행스러운 일로 여겨져서 그들을 맞이하여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식사도 성의껏 제공했습니다. 알고 보니 방문단은 다른 교회를 숙소로 예정해 두었었는데, 그곳에서 숙박비를 요구해서 예산상 갑자기 예정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 교통 편의까지 제공해 주었습니다. 며칠 동안을 함께 동거하는 동안에 그들은 교회의 형편을 대충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처지에도 불구하고 힘에 겹도록 대해주는 환대에 대해 크게 감화를 받았습니다. 광복절 날에 독립기념관을 방문하는 그들에게는 또 다른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귀국하면서 정성껏 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한 달 후에 일어났습니다. 방문단의 일원으로 다녀간 한 학생이 100만엔의 특별헌금을 보내온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예기치 못했던 일을 대하게 되어 다만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복을 받게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심을 스스로 체험하게 된 것을 크게 감격해 했다합니다.(인터넷 정보 클럽-부지중에 천사를 대접)




  사랑하기를 계속하라고 말합니다. 히브리 교회에 사랑이 지속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이단과 싸워야하고 또 로마의 커다란 권세와 싸워야 하는 그들은 이웃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관심과 격려가 있었지만 세월이 지나가면서 그들의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사랑을 일시적으로 베푸는 것은 쉽습니다. 한번 돕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계속 돕고, 사랑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수지타산을 맞추다 보면 손해를 보기 까닭에 계속 돕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사랑을 일시적으로만 하고 끝낼 수는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영원히 사랑해야 합니다.  '계속적으로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사랑은 경건한 어떤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 됨의 표시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형제자매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한 교회 교인끼리 사랑해야 합니다. 동포를 사랑해야 합니다.

  국가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되 계속적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미국 택사스에 한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 가장 잘 사는 부자의 집에서 파출부 생활하면서 사는 중에 이제는 나이가 많아졌습니다. 이 부자인 남자는 아주 큰 사업을 하고 있었으나 외아들이 집을 나가서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을 나가서 소식이 끊긴 외아들을 사랑하다가 아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이 부자는 유서 한 장도 남기지 않았고 재산을 기부하지도 않았습니다. 당국에서는 이 죽은 부자의 집에 있던 가구들을 경매에 붙이게 되었습니다. 이 부자가 책상 위에 놓고 보던 작은 사진틀이 있는데, 집을 나간 아들의 사진이 들어 있었습니다. 경매를 실시하는 직원이 이 사진틀은 5불에 내어놓았으나 어느 사람 사가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에서 일하며 살아온 할머니가 부자의 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기에 5불에 사겠다고 나섰는데, 시 직원이 할머니를 보니 그의 모습이 하도 초라하여 1불만 받고 사진틀을 넘겨주었습니다. 이 노파는 어려서부터 엄마도 없이 자라던 부자의 아들을 사랑하면서 보살폈는데 나가버렸습니다. 할머니는 그 아들의 얼굴을 두고 보려고 사진틀을 사들였습니다. 그런데 전혀 발견되지 않은 죽은 부자의 유서가 그 아들 사진 뒤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전혀 없다고 하였는데, 유서가 아들의 사진 뒷면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내가 생명처럼 사랑하던 제 아들의 사진을 가지는 사람에게 전 재산을 인계한다"고 쓰고 서명 날인하였습니다.

사랑의 가치와 사랑의 결과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이 부인이 집을 나간 그 아들을 사랑하지 않았으면 그런 사진을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부자는 죽으면서 생각하기를 자기 집에서 일하신 할머니가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였다고 하면 사진을 가져갈 것으로 보고, 그동안 고마운 마음으로 유산을 넘겨준  사랑의 보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하튼 끝까지 사랑하기를 원한 할머니에게 복이 임한 줄 믿습니다. 




헌트 선교사가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 1941년 10월 감옥에 갇혔을 때의 일이라 합니다. 어느 날 검사의 심문을 받으러 검찰국에 나갔습니다. 가던 중 여러 죄수들을 만났는데 그 중에는 헌트 선교사가 알고 지내던 신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죄수번호 말고도 "22"라는 번호표를 달고 있었는데 그것은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끌려 온 자들에게 붙여진 번호였습니다. 헌트 선교사가 검사의 조사를 받고 다시 형무소로 가기 위해 사람들이 서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어떤 키가 크고 말쑥하게 생긴 약 20세 안팎의 젊은 한국인이 사람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빈 수갑이 그의 오른쪽 손목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도 "22"라는 번호표를 달고 있었습니다. 간수가 그 빈 수갑을 헌트 선교사의 손목에 채웠습니다. 그 젊은 한국인은 선교사와 함께 묶인 것을 기뻐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헌트 선교사도 신앙을 지키려 싸우는 한국인과 같이 묶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호송차 쪽으로 나갔습니다. 살을 에는 추운 겨울바람 속에 흰옷을 입은 부인들과 어린아이들이 길가에 죽 늘어서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죄수들에게는 말이 금지되어 있었으므로 미소만 지었고 간수들은 죄수들을 빨리 차에 타도록 재촉했습니다. 헌트 선교사와 같이 걸어가던 청년이 선교사를 쿡 찌르며 말했습니다. "저기 선 사람이 나의 아내입니다." 그 때 구경하던 무리 속에서 누군가가 "끝까지!" 라고 소리쳤습니다. 끌려가던 사람들에게 끝까지 견디라는 격려였습니다. 헌트 선교사와 함께 수갑을 찬 청년의 아내도 다른 이들과 함께 소리쳤습니다. "끝까지!" 이 소리를 들은 청년은 행복에 겨운 모습으로 헌트 선교사를 바라보았습니다.

사명 감당을 끝까지 해야 하며 사랑도 끝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빅톨위고'라고 하는 사람이 작품을 내놓았더니 날개가 돛인 듯이 팔려 나갑니다. 많은 돈을 벌고, 그 명성이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올라갑니다.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고, 돈은 계속 들어옵니다. 이런 상황이 되다 보니 그에게는 하나님도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져버리고, 자기의 아내 또한 우습게 보입니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와 방탕합니다.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닙니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그에게는 '레오폴디노'라는 외동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딸이 아버지를 찾아서 아무리 붙잡고, 눈물로 호소를 해도 듣지를 않습니다.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딸이 하루는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며칠을 수소문을 해서 찾아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듣고, 돌아와서 아무리 찾아도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연락이 왔습니다. "파리의 중심  가를 흐르는 세느강에서 송장이 떠올라와 있습니다. 혹시 당신의 딸이 아닌가 확인해 보십시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보니 바로 자기의 딸입니다. 꽃다운 나이의 외동딸입니다. 통곡을 하며 장례를 치르고, 딸의 방을 정리하는 중에 '아버지께 드립니다.'라는 유서가 나왔습니다. "아버지, 돌아오십시오. 가정으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돌아오십시오."라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 편지를 붙잡고 얼마나 통곡을 하고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잘못 살아도 보통 잘 못 산 것이 아니지! 이 딸을 내가 죽였구나! 이런 충격을 받아야 내가 돌아오겠기에 이런 일을 저질렀구나. 날 구원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했구나."하고 가정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평생을 봉사하며 살리라."고 다짐했습니다. 파리 시청 사회 복지과의 말단 공무원으로 취직했는데 그때 나이가 40살이었습니다. 가난해서 어려움을 당하는 가정들을 전부 찾아다니며 상담을 하고, '무엇을 도와주어야 하나?'를 생각하며 알아서 도와주고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그러다 보니 떨어졌던 명성이 다시 올라갑니다. 삶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정상적으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는 '교육부 장관'까지 지내고 세상을 마칩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기의 아버지를 구원하는 아버지에 대한 딸의 사랑을 무엇과 바꿀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믿지 않는 아버지를 구원하려고 강에 뛰어들라는 말은 아닙니다. 아버지에게 충격을 주어야 아버지가 돌아올 것 같아 죽음을 택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전도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 해야할만한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전도는 사랑 중의 최고의 사랑입니다. 가족 전도는 더욱 큰 사랑의 실천입니다. 내 가족이 함께 구원 받고 천국의 복락을 누리도록 함께 하는 모두가 됩시다.

사랑 안에서 행하되 사랑을 나타내고 공급하며 격려하며 계속적으로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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