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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기념하라 (고전 11: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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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성철 목사

오늘 우리들이 함께 참여하려는 성찬은 주님께서 친히 행하셨고 또한 지속적으로 행하도록 친히 명령하신 성례입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성찬을 베푸시면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주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씀대로 주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찬을 행하여야 하고 또한 성찬을 행할 때마다 주님을 기념해야 합니다. 기념한다는 말은 마음 깊이 기억한다 또는 회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떡과 잔을 앞에 두고 마음으로만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떡과 잔을 함께 먹고 마시며 주님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찬을 행하며 기념한다는 것은 단순한 기억이나 회상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차원에서 주님을 기념해야 할 것입니다.

1.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라

"나를 기념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서는 "나의 고난"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세 언약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을 위해서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라는 명령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주님의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주님께서 지불하신 고난을 함께 마음에 간직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만이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독생자를 죽이시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고통을 함께 마음에 간직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면 주님이 당하신 고난, 하나님께서 치르신 값은 바로 우리들이 당해야 할 고난이었고 죽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고난 당하신 것처럼 연기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친히 고난 당하셨고,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버리신 것처럼 행동하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독생자를 십자가에서 버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혹심한 고난을 실제로 당하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조롱을 당하시고 발가벗기신 체 십자가에서 수치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에게도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님의 고난은 바로 죄인인 우리들이 실제로 당하여야할 고난이었고 버림받음이었습니다. 지은 죄로 인하여 우리들이 조롱을 당하고 채찍에 맞아야 했고, 우리들이 십자가에서 발가벗긴 체 수치스러운 고통의 죽음과 버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27:46)"라는 주님의 고통스러운 외침은 곧 죄인인 우리들의 외침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고통, 우리들의 수치, 우리들의 죽음과 버림받음을 대신 당하신 주님의 고난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기억할 때에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의 옛 모습과 사단의 종이었던 우리의 떠나온 자리를 잊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고통의 질을 느낄 때마다 우리들은 우리들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의 질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의 질을 느낄 때마다 우리들은 그만큼 더 주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2. 주님의 고난이 가져다준 새로운 삶을 누리라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과거에 행하신 주님의 일과 고통만을 되풀이해서 기억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떡과 잔을 먹고 마시면서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우리를 위해서 당하신 주님의 고난의 흔적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먹고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 주신 새로운 삶의 열매들을 맛보며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성찬은 과거의 일에 대한 회상만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현재적인 삶도 강조합니다. 즉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눈물만 흘리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고난을 통해서 새롭게 이루어진 삶을 당당하게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을 참으로 기념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고난을 통해서 얻어진 가장 새로운 삶은 구원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이 진리를 롬5:8-11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지금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주님의 공로에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는 우리를 인도하시고 기르시는 우리의 목자 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예수님 안에서 의지하고 있습니까? 이사야는 주님이 당한 고난에 관하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고 증거했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까?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치료하심과 회복케 하심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성찬을 행할 때마다 주님을 기념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고난을 통해서 이루신 복된 삶들을 지금 누리며 살아감을 뜻합니다.

3.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라

"나를 기념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는 "다시 이 땅에 올 나를 소망하라"는 의미도 감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성찬은 과거에 대한 회상만이 아닙니다. 성찬은 현재적인 삶의 능력만이 아닙니다. 성찬은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망과 기다림의 표현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예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님은 알되 항상 현실 적인 이 땅의 삶에만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신앙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가되 항상 마음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두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신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이 땅에서 참으로 자유할 수 있고 평안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서의 부귀보다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더 소망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이 땅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재림 다음에 주어지는 것임을 확신합니까? 지금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주님의 재림과 함께 주어질 영광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믿고 있습니까? 주님의 고난을 가슴에 담고 살아가는 사람은 주님의 다심 오심은 더 뜨거운 마음으로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들마다 마음의 중심에 주님을 기념함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삶을 지금 누리며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기다림과 소망이 가장 충만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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