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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자유 실행하기 (눅 4: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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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오늘이 광복절입니다. 일제 치하에서 해방된 지 59년이 되었습니다. 식민지 치하에서 억압받던 분들은 광복절만 되면 감격 속에 이 날을 축하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거의 세상을 떠나고 일본에게 강점당했던 시절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광복절이 전과 같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형식적인 행사로 그치고 말지요.

다른 나라들은 그렇지 않아요. 인도네시아만 해도 한 주일 전부터 축제가 벌어집니다. 그만큼 자유와 독립은 축하될 중요한 덕목이라는 것입니다. 가장 전통적이고 확실한 행사는 이스라엘입니다. 유월절이 되면 오래 전부터 준비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행사가 일주일이 유지됩니다. 언제 독립했나요? 지금으로부터 약 3천 6백 년 전 일어난 일입니다.

이 기간이 되면 아이들에게 반복해서 외우게 합니다. 애굽에서 해방됨, 광야에서의 40년 그리고 가나안 전투이지요. 그렇게 하면서 그들은 자신이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이 도우시는 민족이며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자유와 독립을 계속 펼쳐나가야 할 존재임을 확인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특별한 민족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됩니다.

1. 자유의 대가

세상에서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은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요. 크게 보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강점해서 노예로 삼습니다. 우리나라가 일제 치하에서 그랬지요. 작게 보면 직장에서 거의 노예처럼 짓눌려야 합니다.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그래요. 그래서 계속적인 투쟁이 일어납니다. 국가간에서부터 시작해서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자유를 위해 싸웁니다.

성경은 사람들 모두가 노예라고 말합니다. 죄의 노예라는 것이지요. “내 안에 선이 없으니 선을 원해도 악만 행하는구나. 내가 죄의 법에 사로잡혀 가는구나. 아 나는 비참한 사람이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18, 23) 바울의 탄식입니다. “의인은 하나도 없고 다 치우쳤고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도 없다.”(롬3:10)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 결과로 모든 악한 행동이 일어납니다. 교만, 열등감, 방탕, 음란, 간음, 술취함, 폭력, 사기 같은 나쁜 게 나옵니다. 또한 모든 병과 가난, 원망, 슬픔, 약함과 무능함이 사람들을 지배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죄 속에 살다가 죽으면 심판을 맞게 됩니다. 나올 수 없는 지옥에 떨어집니다. 영원히 망하는 겁니다. 죄의 노예된 결과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구출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해방을 누가 가져왔나요? 독립군이? 몇 차례 훌륭하게 싸웠지만 어림도 없었어요. 만약 우리가 일본의 패망에 한 몫을 했더라면 삼팔선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가 해방을 주었나요? 당시 상황이 이러니 저리니 하지만 하나님입니다. 죄 많은 우리 민족을 남한 만이라도 살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도 약해서 애굽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애굽과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신 겁니다. 그렇게 많은 고난을 겪고 많은 사람이 죽었으면서도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수천 년 전의 독립기념일을 축하하며 하나님의 하신 일을 확인합니다. 자유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잊지 않고 도움을 받으려는 겁니다.

우리는 이들과 달라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아요. 해방을 시켜주고 전쟁에서 나라를 지켜준 나라들에게 감사하지 않아요. 강대국이 제 욕심 때문에 그랬다고 욕해요. 어떤 이유에서건 전체 한민족의 2/3는 구출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미국을 이용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은 거의 없어요. 감사하지 않는 민족이건 개인이건 자유는 누려지지 않아요.

불신자들은 몰라서 그런다 해도 믿는 사람들은 늘 감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수천 년 전의 일을 되풀이 축하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자유를 주셨고 앞으로도 주신다는 겁니다. 그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모든 게 제대로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찾고 하신 모든 일을 감사하나요? 우리에게 더 큰 자유의 축복을 달라는 겁니다.

나라를 위해서 영혼을 위해서 우리는 치를 게 없었어요. 일제 말과 한국동란의 절망 속에 누가 우리를 구원하고 먹이고 일어나게 했나요? 우리의 똑똑함과 근면함이 그랬나요? 아무리 그래도 기도하는 신자들이 없었다면 이 만큼 될 수 없었어요. 하나님을 의지하는 몇 사람의 기도가 나라를 일으킵니다. 참 자유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나옵니다.

2. 자유의 훈련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배웁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40년이나 사막에서 살게 하셨어요. 사막이 사람 살 곳이 못됩니다. 그러나 살 수 있게 기적을 베푸셨고요.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의지해서 자유의 훈련을 하게 만들어줍니다. 그래서 다윗을 통해서 일어난 위대한 이스라엘을 세우도록 성장시킵니다.

대부분 자유를 방종으로 알고 있어요. 마음대로 하는 게 자유인가요? 아름다운 이성을 끌어안고 미운 사람은 욕하고 막대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습니다. 그래서들 권력을 가지고 왕이 되고 싶어 합니다. 조금만 높은 사람이 되어도 밑의 사람을 마구대합니다. 자녀에게 배우자에게 함부로 대합니다. 그러면서 자유를 느낍니까? 아니요. 망해갑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유라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이들이 많아요. 일방통행은 거의 무시됩니다. 노조는 투쟁 일변도입니다. 여기저기서 띠 두르고 투쟁하는 이들이 힘을 얻어요. 불법을 행해도 그냥 내버려둡니다. 선진 자유국가에서는 어림도 없어요. 신호등 하나만 어겨도 어느새 경찰이 따라옵니다. 무거운 벌금이 매겨집니다. 어딜 뗑깡을 부립니까!

자유는 방종과 반대입니다. 절제와 질서가 있어요. 태양과 지구가 가고 싶은 대로 가면 파국이 옵니다. 아무리 튀고 싶어도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면 죽음이 옵니다. 훈련되지 않은 상태로 마음대로 하면 누구건 파멸합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카드 만해도 훈련 안 되면 쓸 수 없어요. 우리도 계속 자유를 훈련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자유훈련을 받습니다. 용변 훈련부터 받았어요.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신23;13) 길에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길 다닐 자격이 없어요. 선진국 사람은 다른 게 아니라 자유 훈련이 잘 된 사람입니다. 질서 지킴이 몸에 배었어요.

그러려면 실력이 필요합니다. 자유는 이행할 힘이 필요합니다. 루즈벨트가 말한 언론의 자유, 가난에서 자유, 공포에서의 자유, 신앙의 자유, 모두가 다 힘이 없으면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사막을 극복하고도 잘 살 힘을 주셨습니다. 신자는 모두가 자유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아예 성령으로 들어와서 자유를 누리도록 도와주십니다.

먼저 복음을 전해서 듣는 사람의 신분이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예수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노예 값이 치러졌는데도 여전히 노예 할 필요가 있나요? 애굽을 망하게 했는데도 거기 남아서 노예 한다면 참으로 바보이지요. 우리를 억압하는 게 무엇인가요? 왜치세요. “예수께서 내게 자유를 주셨다. 나는 가난하지도 두렵지도 않다.”

자유의 힘은 성령을 통해 주어졌습니다. 귀신의 포로에서 해방되었어요. 영의 눈이 열렸어요. 모든 눌림이 해결되었어요. 은혜의 해가 솟았어요. 그러면 그 자유를 훈련해야 합니다. 방종을 피하세요. 좋은 것을 선택하세요. 아무리 힘들어도 생각부터 바꿉시다. “병자다 무능하다 돈이 없다.” 모두 노예생각입니다. 성령이 주신 자유의 능력이 있어요.

3. 자유의 포기

이제 자유의 가장 높은 차원으로 나가봅시다. 영국 가수 클리프 리챠드는 60이 넘어서도 온 세계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아요. 20대 후반에 예수를 믿고 복음송을 부르기 시작했어요. 그는 자유를 얻고 나서 점점 자유를 포기하는 훈련에 들어갑니다. 우리도 다 그와 같아요.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놓으니까 자신은 그 다음이 되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나님 기쁘시게 하니까 나는 다시 노예가 되는 겁니다. 나는 얼마든지 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방종을 거부하고 자유를 선택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술을 사랑하지 않아요. 그렇게 피해 보세요. 깨끗한 삶이 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세상에 안 가고 교회에 옵니다. 와서 목사님께 순종합니다. 내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그럽니다.

클리프 리차드는 주일 공연을 포기했어요. 엄청난 재산 손해가 왔지요. 과연 그럴까요? 아니요. 그보다 더 부자는 없어요. 그만큼 헌금 많이 하고 선교비 많이 내는 이도 없어요. 다른 가수들은 다 도중하차입니다. 누구나 돈벌고 유명하면 방종해요. 마약과 성도착에 빠집니다. 하나님 우선순위를 따라 자유를 포기할수록 더욱 자유가 많아집니다.

루터는 말했어요. “신자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했지만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다.” 이 수준이 되면 정말로 자유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그런 자유를 보여주셨어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20:28) 모든 것을 다 가진 하나님께서 자신을 종으로 드렸습니다.

예수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습니다. 제자들이 다 자기를 버리고 도망할 때, 베드로가 욕을 하며 부인할 때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기를 못 박고 모욕하는 군중들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하는 상상할 수 없는 자유를 발휘했어요. 나를 반대하는 사람을 죽이는 게 강한가요 사랑하고 축복하는 게 강한가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본래 하나님이신데도 종의 형체로 사람으로 자신을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엄청난 능력을 버리고 스스로 노예가 된 분이 어떻게 되었나요?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 땅과 그 아래 있는 자들 모두가 무릎 꿇게 하셨다.”

이스라엘에게는 자유를 통해 방종하지 않고 힘들어도 바른 길을 걷게 하셨어요. 40년 훈련으로 질서와 능력 속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어요. 우리 신자에게는 그 보다 더 높은 진짜 자유를 주셨어요. 자유를 포기하고 종이 되는 자유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자유입니다. 성령은 나를 자유케 했습니다. 예수처럼 해 봅시다.

사랑 속에 봉사하고 섬기세요. 다른 사람도 자유하도록 자유를 주세요. 그럴수록 예수의 자유를 누립니다. 세상의 한계를 넘어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늘 자유를 포기해 보세요. 그러면 진짜 자유를 얻습니다. 하나님처럼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와 함께 섬기기 위해 세상에 있습니다.

QT를 위한 질문

1. 어떻게 이스라엘이 특별한 민족이 되었나요?(서/3)
2. 죄의 노예된 결과는?(1/2,3)
3. 자유를 계속 누리려면?(1/7,8)
4. 자유의 능력을 어떻게 발휘할까요?(2/6-8)
5. 자유포기의 이유와 결과는?(3/1-3)
6. 이스라엘과 우리에게 준 자유의 차이는?(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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