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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편 (출 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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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기홍 목사

“하나님 편”이 무슨 말인가요? 요즘처럼 좌파 우파 개혁 수구 네 편 내 편이란 말인가요? 우리 사회의 분열은 심각합니다. 우리 편은 다 옳고 저쪽 편은 없애야할 대상입니까? 세상의 편은 어느 쪽이건 다 옳지 않아요. 그래서 어디든 속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도 늘 그렇게 해야 해요. 하나님 편만 그렇습니다.

링컨 대통령 때 전쟁이 2년간 연전연패 하는 것입니다. 참모들이 절망 속에 말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이 우리 편에 계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때 링컨이 유명한 말을 합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있어야 합니다. 항상 그것만 확인하면 됩니다.” 지금은 안 풀려도 하나님 편은 거룩한 편이고 거기 있다면 결국은 승리한다는 이야기이죠.

링컨은 언제나 자기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 다른 편에 서있는지 두려움 속에 확인하려 했어요. 하나님 편은 깨끗합니다. 욥처럼 다 빼앗겨도 두려움이 없어요. 하지만 다른 편은 그렇지 않아요. 다 가져도 불안합니다.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더 의지하면 그래요. 돈이건 경험이건 지식이건 심지어는 의사나 남편이나 권력자나 다 확신이 오질 않아요.

1. 동기와 열매

1953년 시카고 뉴스의 컬럼니스트 헤이스가 대통령을 위한 기도문을 썼습니다. 이것으로 유명하게 됩니다. 거기 한 구절입니다. “주여, 그에게 자기의 신념이 아니라 당신의 계명 지킬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신념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수준입니다. 내가 옳다고 뭘로 확신합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분명한 기준으로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내 생각이 옳은지 계명에 맞추어보면 됩니다. 그러나 계명 지킨다고 하나님의 뜻을 다 행한 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계명보다 크고 높아요. 그것을 인간의 명령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계명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해서 그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명도 사랑하고 또 그 계명 이상을 행합니다.

사람들은 행위 그 자체만 봅니다. 열매만 아름다우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더 근본을 보십니다. 그 행위의 동기가 있어요. 열매가 아름다워 보여도 동기가 틀리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불신자들이 하는 모든 행위는 동기가 자기 욕심입니다. 아무리 선해도 결국은 자기 자랑이요 존경 받고 싶은 생각이지요. 하나님은 동기를 보세요.

계명을 하나하나 지켜서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면 유대인들처럼 됩니다. 얼마나 자세하게 철저하게 지키느냐에 관심이 모아집니다. 지키는 동기보다는 열매에 집중합니다. 안식일 하나만 하더라도 얼마나 일을 안 하고 버티느냐에 관심을 모읍니다. 그래서 열매만을 보고 거룩한 사람과 덜 한 사람이 결정됩니다. 결국 동기가 자기만족과 대접입니다.

유대인들은 철저하게 계명 지켰어요. 매주 두 번 씩 금식했어요. 십일조 낼 때 파뿌리도 세었어요. 요즘 식으로 하면 안식일에 엘리베이터 버튼도 안 눌렀어요. 전기밥솥의 스위치도 안 눌렀어요. 일이니까요. 극동방송 설교 듣고 한 전도사가 시비를 걸어왔어요. 그런 식으로 안식일 거룩히 지키는 게 아니라니까 주일에 과자 사먹어도 되냐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옛날에는 주일에 아무 것도 못하게 했습니다. 안식하기 위해서죠. 음식 사먹으면 안 됩니다. 버스도 타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거룩하게 지킨 것입니까? 버스타고 와서 점심 사먹고 교회일하면 주일을 범한 것입니까? 율법주의는 동기보다 열매만 보아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유롭게 바르게 행동합니다.

열매는 중요합니다. 사람 눈에 보이는 건 그것이니까요. 사랑한다면서 아내를 때릴 수 없지요.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동기입니다. 좋은 동기는 좋은 행동을 만듭니다. 열매가 불완전해도요. 사랑하면 아내를 기쁘게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서도 그래요. 사랑하면 하나님 뜻을 연구합니다. 당연히 계명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버튼은 눌러요.

계명은 하나님 뜻의 그림자입니다. 자기 아버지는 사진만 보아도 다 떠오릅니다. 남은 사진만 보아서는 거의 모릅니다. 키나 성품을 몰라요. 생김새도 몰라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도 사랑합니다. 계명만 보아도 하나님의 뜻을 알아요.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계명 그 자체에만 매달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해도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2. 하나님 사랑의 원리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면 계명을 문자 이상으로 지킵니다. 그럴 힘을 받아요. 이런 글을 읽었어요. “교인과 신자는 다르답니다. 교인은 세상을 향해 금연운동을 합니다. 신자는 영혼을 거듭나게 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흡연을 안 하게 됩니다. 교인은 세상을 향해 금주 운동을 합니다. 신자는 영혼을 거듭나게 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결국 술을 끊게 됩니다.

교인은 정치인들을 비난하며, 교인이 선거에 나올 경우 그를 지지하는 운동을 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위정자들과 권세자들의 영혼이 거듭나도록 그들을 위해 중보합니다. 교인은 세상을 향하여 사회인권 운동을 합니다. 신자는 영혼을 거듭나게 합니다. 그러면 거듭난 사람은 이웃을 도와줍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할 힘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교인은 사회를 개혁하려 하나, 개혁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에 의해 거듭난 영혼 안에는 개혁이 필요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교인은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고 강요합니다. 하지만 신자는 한 영혼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그 영혼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신자는 문자 이상으로 행합니다.

신자에게 계명은 갈 방향을 보여줍니다. 정진하게 합니다. 그러나 그냥 교인에게 계명은 무거운 짐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동기에서 나온 행동을 받으십니다. 부족하고 불완전해도 완전한 것으로 받고 기뻐하십니다. 아이가 엄마를 도우려 접시를 닦습니다. 접시에 얼룩이 그냥 묻어있습니다. 그러나 파출부가 닦은 것보다 더 엄마를 기쁘게 합니다.

4번째 안식일의 계명은 사람의 계명으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어요. 모든 날은 다 하나님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를 지정해서 하나님을 특별히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날은 일하지 말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 명하신 대로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 그 날이 복된 날이 된다는 겁니다.

평일에 열심히 일하고 그날은 쉽니다. 삶의 불안, 먹고살기, 성공을 향한 안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깁니다. 주말에 놀자, 또는 잠자자하는 식의 강박관념도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하고 보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따로 구별해 놓고 하나님의 날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거룩한 날이라는 겁니다.

나 혼자만 편히 쉬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안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냥 쉬는 것이 아니라 성회로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겁니다. 거룩한 노래를 하며 거룩한 말씀을 듣고 예물을 드립니다. 이 모두가 습관 이상의 것입니다. 벌 받을까 불안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 서 있으려는 마음의 동기입니다.

쉬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평일보다 하나님께 집중해 몸과 마음이 쉬며 힘을 얻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어찌 잘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이 우주만물과 만사, 내 생명과 삶의 주권자이심을 우습게보면 큰일입니다. 그래서 “너희는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출31:13)이라 하셨어요.

3. 하나님 편에 서기

정말로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으로부터만 모든 좋은 것을 받겠다는 동기는 삶의 질서를 줍니다. 주일에 대한 원리가 그것입니다. 일주의 하루는 세상일을 놓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에 마음을 모읍니다. 그러면 다른 6일도 거룩하게 구별이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손해를 막고 수입이 새지 않게 넉넉하게 하십니다.

그 자세로 다른 계명들도 보세요. “부모를 공경하라.” 간단해요. 방법이 아닙니다. 공경해 알아서 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기 부모를 공경합니다. 그럴 마음도 그럴 힘도 받습니다. 또한 세상 모든 부모들, 스승들, 교역자들을 다 공경합니다. 제사를 모시고 부모의 무덤 옆에서 몇 년 곡하라. 이건 사람이 만든 율법이지 사랑이 아니에요.

살인하지 말라. 하나님 편에 늘 서는 연습을 한다면 살인이 무엇입니까! 미워하는 일도 안 하려고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아내를 남편을 사랑하는데 무슨 그런 일을 하겠습니까? 생각도 안 하지요. 도적질하지 말라.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 나서는 사람이 어찌 이웃의 것을 훔치고 빼앗겠습니까. 줄 것을 안 주고 버티겠습니까. 하나님 편에 서세요.

모든 수입은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중 십분의 일을 드리면서 그 점을 확인합니다. 그러면 나머지가 남보다 십 분의 일 적어지는 게 아니라 십 분의 구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넘쳐나 생기를 얻게 된다는 겁니다. 경제에 대한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겨 버리고 십분의 일을 온전히 드려보세요.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사랑하는 동기로 그렇게 하세요.

혹시 지금 힘드십니까? 무슨 일을 할까? 돈 꿔줄 사람이 누굴까? 그 편에 서려고 하지 말아요. 욥은 완전히 망한 가운데 있었어요. 아무런 소망이 없어보였어요. 그러나 그는 아픔 가운데 여전히 하나님 편에 서려고 노력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것이 계명의 시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동기가 되어 계명을 지킵니다.

무슨 일을 하든 하나님 편에 서서 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 되게 해 달라 하지 마세요. 여호수아가 전쟁에 나갈 때 무서운 사람이 앞에 가로 막고 섰어요. “너는 우리 편이냐 적군이냐?” “나는 네 편도 아니고 적군도 아니다. 하나님의 천사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편입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 신을 벗으라.” 여호수아가 하나님 편에 섰기에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보고 우리 편 해 달라 하지 마세요. 그저 하나님 편에 구별되기를 사모하세요. 다윗이나 욥이나 링컨처럼 금새 이기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 편은 확실합니다. 거룩하니까요.

하나님 편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아요? 내 신념이 그렇게 말합니까? 기분이 그래요? 그냥 하나님 편입니까? 계명을 보세요. 열 가지를 다 안 보아도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가?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하는가? 하나님 사랑과 계명 사랑함은 함께 갑니다. 늘 하나님 편에 구별되기를 연습한다면 거룩한 삶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QT를 위한 질문 (괄호안의 숫자는 참조할 장절의 위치입니다)

1. 하나님 편과 다른 편의 차이?(서/2,3)
2. 율법주의와 하나님 사랑의 차이는?(1/6)
3. 교인과 신자의 차이는 무엇인가요?(2/1-3)
4. 안식일의 중요성을 나름대로 설명해 보세요.(2/5-8)
5. 삶이 힘들 때 무엇부터 할까요?(3/5)
6. 내가 하나님 편에 섰는지 어떻게 알까요?(3/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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